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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거제의 봄, 저 징검다리 건너온 봄, 매화의 잠을 깨웠습니다

by 혜강(惠江) 2011. 2. 15.

거제의 봄

 

저 징검다리 건너온 봄, 매화의 잠을 깨웠습니다

 

 

글·사진 박경일기자

 

 

 

▲ 거제 최남단에 솟아 있는 망산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옥빛을 띤 한려수도의 봄 바다와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대·소병대도와 매물도, 가왕도, 장사도, 대덕도, 비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만하다.

 

 

 구조라분교 교정에서 해마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네 그루 매화나무를 앞세운다면 봄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가장 먼저 딛고 오는 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경남 거제입니다. 올해도 매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보름 전쯤에 이미 거제의 매화가 첫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순백의 꽃잎은 화사했고, 향기는 그윽했습니다. 거제에서 그해의 첫 매화를 만난 것이 올해로 세 번째. 꽃소식을 ‘봄이 보내온 엽서’라고 한다면, 올해로 삼 년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분교 교정에서 봄이 부쳐온 첫 엽서를 받아들었던 셈이지요.

 거제는 찾아간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몇 안되는 여행지 중 한 곳입니다. 명승 중의 명승으로 꼽히는 해금강과 외도의 빼어난 자태, 봄바다의 파도에 자갈들이 자그르르 구르는 학동과 여차, 농소의 몽돌해안, 핏빛으로 피어나는 지심도의 동백, 절경의 다도해 풍경이 펼쳐지는 여차에서 홍포까지의 비포장도로…. 아무리 이름난 관광지라 해도 서너 곳의 명소를 꼽는 게 고작인데, 거제만큼은 두 손가락을 다 합쳐도 남을 만큼 빼어난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늘 발걸음이 바빠진다는 게 불만 아닌 불만일 따름이지요.

  그런 쟁쟁한 명소들로 가득한 거제에서 눈밝은 거제 사람들이 꼽는 명소가 따로 있었습니다. 거제면의 포구에서 만났던 한 사진작가도, 저구마을에서 낚싯배를 운영하던 선장도, 대구탕을 내놓던 성포항의 횟집 주인도 마치 짜고 그러는 것처럼 ‘망산에 올라봤느냐’는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거제 최남단에 솟아 있는 해발 397m의 산. 망산을 놓고 이들은 ‘거제가 가진 풍경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장담했습니다.

 망산에 올라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왜 그들이 거제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망산이야기부터 꺼냈는지, 왜 ‘바랄 망(望)’에 ‘뫼 산(山)’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망산 산자락 능선을 따라가며 굽어본 봄바다 풍경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봄볕에 녹아 폭신해진 산길을 따라가며 새소리를 벗삼아 동백과 후박나무, 서어나무 사이를 걷던 시간은 또 어떻게 펼쳐보여야 할까요. 쪽빛바다 위로 떠 있던 섬들 사이로 바다에 반짝이는 주름을 만들며 미끄러지는 고깃배가 그려내는 서정을 어찌 전해야 할까요. 고백하건대 세 시간쯤의 산행내내 발목을 잡은 것은 그런 난감함이었습니다.

 거제에 대해 말하자면 지난해 12월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의 개통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보자면 거가대교 개통은 거리를 단축하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거가대교가 놓인 뒤에도 수도권에서 거제에 가자면 여전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따라 거제대교를 건너는 편이 훨씬 빠르니 말입니다. 대신 대교 개통으로 부산과 가까워진 거제는 이제 부산의 근교 여행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치자면 양수리나 양평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거가대교 개통으로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거제에서는 이제 숨겨지거나 가려졌던 곳들이 속속 ‘발견’되겠지요. 그렇게 미처 몰라봤던, 알아채지 못했던 명소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한려수도의 절경을 조망하는 망산과, 통영에 딸린 섬들과 산자락이 첩첩이 이어진 거제 서쪽 해안의 장쾌한 전망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계룡산이, 단언하건대 그렇게 발견되는 곳들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남쪽 바다도 전설 깃든 산도 꽃폭죽을 기다립니다

 

 

# 거제도에 핀 매화… 봄꽃 폭죽의 심지에 불붙었다

 

 


  봄꽃은 마치 폭죽과도 같다. 봄날의 훈기가 폭죽의 심지처럼 타들어가다가 일제히 한꺼번에 아우성처럼 꽃들이 피어난다. 봄이 가장 먼저 딛고 오는 땅, 거제에서는 이미 봄꽃 폭죽의 심지에 첫 불이 당겨졌다. 올해 봄꽃의 첫 불꽃은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구조라분교 마당의 매화가 피워낸 것이다.

  지난 겨울이 워낙 혹독해서일까, 올해 거제에서는 봄꽃의 순서가 좀 다르다. 예년에는 겨울의 끝무렵 지심도와 학동 일대에서 동백이 가장 먼저 선혈처럼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고, 뒤이어 구조라의 매화가, 그리고 대금산의 진달래와 공곶이의 수선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났다. 그리고 뒤를 잇는 것은 흐드러지는 벚꽃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동백을 제치고 구조라분교 마당의 매화가 먼저 순백의 얼굴을 내밀었다.

  분교 한쪽의 노인정에서 만난 노인들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1월 중순 매화나무가 첫 꽃을 피웠다고 했다. 거제에서도 지난 겨울 추위는 혹독했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던 무렵에는 영하 10.4도를 기록했단다. 다른 지방에서는 별것 아닌 추위라 여겨지겠지만 거제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최저기온이었다. 이런 혹독한 추위의 한가운데서 장하게도 매화는 꽃을 피우며 봄의 당도를 알렸다.

  구조라분교를 찾았던 열흘 전에도 가지마다 매화가 꽃망울을 내밀었으니, 지금쯤은 분교 담 안의 네 그루와 담 밖의 한 그루 매화나무가 터뜨린 꽃 폭죽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터다.


# 고도를 높이고 물러서서 바다와 섬을 굽어보는 맛

  거제에서는 누구나 바다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해금강, 외도, 신선대, 바람의 언덕, 공곶이, 지심도…. 거제에서 손꼽히는 명소는 죄다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빚어낸 풍경들이다. 거제의 산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암봉으로 이뤄진 산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산정에 올라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야말로 거제의 산이 가진 매력의 핵심이다.

  거제는 섬이지만 산이 유독 많다. 해발 500m를 웃도는 제법 높은 산들도 있다. 거제의 중심인 고현에서 해금강이 있는 동쪽 해안에 닿으려면 어떤 길을 택하든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제의 산자락 능선들이 어찌나 첩첩이 늘어서 있던지 동쪽의 산자락을 남북으로 길게 이은 ‘거제지맥’ 종주코스까지 있을 정도다. 종주코스는 거제 북단의 대금산에서 시작해 시루봉, 국사봉, 노자산, 가리산을 거쳐 최남단의 망산으로 내려서는 무려 50㎞ 남짓한 길이다.

  이렇듯 많은 거제의 산 중에서 가장 최고의 경치를 빚어내는 곳이 단연 최남단의 망산(望山)과 거제 서해안을 바라보고 솟은 계룡산(鷄龍山)이다. ‘바랄 망(望)’이란 이름은 거려말 잦은 왜구의 침입에 주민들이 이 산 정상에 올라 망을 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름이 지어진 연유가 이러하니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의 전망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고 산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곳곳에서 바다를 향해 솟아 있다.

  거제도의 한복판에 솟아 있는 계룡산은 해발 566m로 거제에서 가장 높다. 계룡산의 매력은 망산과 마찬가지로 정상에서의 빼어난 조망이다. 거제의 명소는 대부분 섬 동쪽 해안에 몰려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부드럽고 낮은 서쪽 해안은 암벽의 절경이 펼쳐진 동쪽 해안만 영 못하다. 그러나 계룡산에 올라보면 서쪽 해안 풍경의 맛이 전혀 다르다. 섬 뒤로 다른 섬이, 그 뒤로 또 다른 섬이 겹쳐지면서 마치 지리산이나 태백산 정상쯤에서 첩첩의 능선을 굽어보는 듯하다.


# 홍포에서 여차까지 최고의 해안도로를 걷는다

  망산은 해발 397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산 아래 홍포마을에서 곧바로 치고 오르면 4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하지만 그래서는 능선상의 암봉에서 바라보는 절경을 다 놓치고 만다. 보통 주민들은 저구마을 삼거리의 남부주유소에서 출발해 내봉산을 넘어 망산 정상에 올랐다가 명사 쪽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택한다. 거리는 5㎞ 정도로 산행시간만 3시간가량 걸린다.

  본격 등산이 아닌 여행의 일정이라면 망산을 오르는 최적의 코스는 따로 있다. 여차마을에다 차를 두고 마을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 망산 정상에 들렀다가 홍포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3.8㎞ 남짓으로 2시간 30분쯤이면 넉넉하다. 산행 후에는 홍포에서 여차마을까지 최고의 해안절경이 펼쳐지는 비포장 구간을 걸어서 되돌아온다.

  망산에서 ‘최상의 전망대’는 정상이다. 줄곧 해안 풍경을 굽어보며 걸어온 터라 눈이 무뎌질 법도 하건만 ‘천하제일경’이란 정상표지석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경관에 말을 잊게 된다. 깎아지른 암봉 아래로 대·소병대도와 매물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수석처럼 떠 있다. 옥색 비단 같은 바다 위에 주름을 그리며 미끄러지는 고깃배들도 이 풍경에 가세한다.

  정상에서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해미장골 등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금세 홍포마을이다. 산행 후 홍포에서부터 남쪽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산행 출발지점인 여차까지 걷는 길은 거제뿐만 아니라 남해안을 통틀어서도 최고의 해안 산책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보통은 차를 타고 돌아보게 되는데 차를 타는 것보다는 그 길을 타박타박 걷는 맛이 몇배나 더 좋다. 그 길에 서면 걷는 내내 ‘아 좋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거제 서쪽 바다를 굽어보며 정감록 이야기를 듣다

 

 

▲ 거제에는 명승지들이 대부분 섬 동쪽에서 있어 알려진 해넘이 명소가 없지만, 신거제대교 아래 성포의 일몰은 깜짝 놀랄 만큼 매혹적이다. 서쪽의 능선으로 해가 넘어갈 때쯤이면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내만(內灣)의 바다가 온통 핏빛으로 물든다. 봄이 무르익으면 이곳 성포에 늘어선 횟집에서 향긋한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거제도의 중심에 우뚝 솟은 계룡산은 정상의 암봉이 닭벼슬처럼 생겼다해서 ‘닭 계(鷄)’자를, 발치의 구천계곡이 용 꼬리와 같다 해서 ‘용 룡(龍)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상서로운 이름만큼이나 산에는 전설이 많다. 육지에서 500m 남짓한 산이라면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겠지만, 섬 속의 산이 이 정도 높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계룡산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다. 정상 못미쳐 나타나는 억새풀밭의 평원은 태곳적에 캐악이란 이름의 신선이 심고 길렀다는 무밭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바위틈 어딘가에는 신선이 놀던 장기판 바위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절터가 남아 있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50년대 중반쯤 이곳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계룡산에 얽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이른바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6·25전쟁 때 포로수용소가 계룡산 아래에 있었는데, 산 아래서 주민 10만명과 피란민 20만명, 포로 17만명이 목숨을 구했다. 그래서 정감록의 ‘계룡산하 구백만(鷄龍山下 救百萬·계룡산 아래에서 백만명을 구한다)’이란 글귀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계룡산은 임도를 따라 차로 거의 정상 고도까지 오를 수 있다. 차가 닿는 임도 끝인 고자산재의 음달바위 정상에는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를 감시하던 통신대 건물의 잔해가 아직 남아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1㎞ 남짓. 정상과는 해발고도가 큰 차이가 없으니 구태여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좋다.

통신대 건물 앞의 음달바위 정상에 서면 가까이로는 산달도와 거제면의 만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통영과 그 앞뒤로 섬들이 오밀조밀 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어찌나 섬이 많던지 어디가 섬이고 어디가 뭍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마치 지리산에서 첩첩이 이어진 산봉우리가 운해에 잠겨 있는 풍경과도 같다. 섬이 산봉우리를, 바다가 운해를 대신한다.

 


묵을 곳 & 먹을 것


  거가대교 개통을 전후해 거제 곳곳에는 펜션과 호텔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동쪽 해안을 따라가는 14번 국도를 달리다보면 펜션들이 내건 간판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다. 해금강 마을로 가는 길 옆의 ‘블루마우리조트’(055-632-6377)를 추천할 만하다. 객실에 들어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빼어나다. 와현해수욕장 곁 해안도로변의 ‘거제 씨팰리스호텔’(055-730-1000)은 깔끔한 호텔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보인다. 지세포의 ‘상상 속의 집’(055-682-5252)은 내부시설이 고급스럽다. 복층형 패밀리 스위트룸에는 객실에 스파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거제의 대표적인 맛집으로는 장승포의 ‘항만식당’(055-682-3416)과 신현읍 고현리의 ‘백만석’(055-637-6660)이 있다. 항만식당은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된장을 풀어 끓인 해물뚝배기를 내놓는다. 백만석은 다져서 네모꼴로 냉동한 멍게와 김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비벼먹는 멍게비빔밥을 내놓는다. 이즈음 거제에는 양식굴이 한창이니 서정리 ‘거제도 굴구이’(055-632-9272)도 찾아가볼 만하다. 거제대교 아래 성포에는 횟집들이 몰려 있는데, ‘동방석횟집’(055-633-8910)과 ‘성포청해횟집’(055-632-4799) 등이 봄철의 진미인 도다리쑥국을 잘 끓여낸다. 도다리 철이 아직 일러 이달 말쯤부터 맛볼 수 있다.

 

 

 

 

<출처> 2011. 2. 16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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