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충주호·단양팔경, 시리도록 아름다운 얼음호수

by 혜강(惠江) 2011. 1. 27.

동토(凍土) 충주호·단양팔경

 

시리도록 아름다운 얼음호수

 

 

박 경 일  기 자

 

 

 

 

▲ 밤새 두껍게 얼어붙은 충주호의 얼음을 깨 만든 물길을 따라 유람선이 떠가고 있다. 치솟은 암봉과 얼음으로 뒤덮인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운항하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먼 북유럽 호숫가의 정취가 떠오른다. 연일 맹위를 떨치는 혹한이 선사하는 낯선 풍경이다.

 

  올겨울 추위는 참으로 혹독합니다. 눈도 많은데다 바람의 날 선 이빨은 또 얼마나 날카롭던지요. 이가 딱딱 부딪치는 매서운 추위에 눈물까지 핑 돌 지경입니다. 계속된 추위로 세상은 흡사 냉동고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서해는 얼어붙어 유빙들이 떠돌고, 남쪽바다의 물고기들마저 얼어죽었답니다. 말 그대로 동토(凍土)의 풍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혹독한 겨울이 우리 땅에 일찍이 보지 못했던 낯선 풍속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온통 얼어붙은 ‘설산(雪山)’이며, 눈에 갇힌 도시, 꽝꽝 얼어붙은 강물…. 그중에서도 압권이라면 충북 단양을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과 그 아래 충주호가 꽁꽁 얼어붙은 풍경입니다. 연일 계속된 한파에 강물이 어찌나 단단하게 얼어붙었던지요.

  덕분에 멀찌감치 강 건너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단양팔경의 제1경인 도담삼봉까지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껍게 언 얼음판을 조심스레 밟아보던 관광객들은 곧 아스팔트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 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습니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 현수막이 나붙어 있긴 했지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얼음판 위로 들어섰습니다. 어른들은 삼봉 정도전이 올랐다던 삼도정에 올라 얼어붙은 강을 굽어봤고, 아이들은 드넓은 얼음판에서의 미끄럼 놀이에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혹한의 겨울이 그려낸 이색 풍경이었습니다.

  그 물길이 이어지는 충주호도 꽝꽝 얼어붙긴 매한가지였습니다. 밤새 얼어붙은 호수에 유람선이 떴습니다. 유람선은 우지끈거리며 얼음을 깨고 뱃길을 잡았습니다. 육중한 대형 유람선이 마치 쇄빙선이라도 된 양 앞서서 밤새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위의 얼음을 우지직 부수면서 물길을 냈고, 작은 유람선들은 깨진 얼음 사이로 푸르게 드러난 물길을 따라 붙었습니다.

  얼음조각들로 가득한 강물 위로 S자의 유려한 곡선을 긋는 유람선에 오른 관광객들은, 나무들이 이파리를 다 떨궈 암봉의 골격이 우람하게 드러난 옥순봉이며 구담봉을 지날 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유람선에서 드르륵 드르륵 뱃전을 긁고 가는 유빙들을 내려다보거나 까마득히 치솟은 암봉을 올려다보노라면 마치 북유럽의 피오르 해안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졌습니다.

  이런 장관을 한눈에 내려다보겠다면 바로 장회나루 뒤편 월악산 자락의 제비봉을 찾아가야 합니다. 제비봉은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데 서너시간은 족히 걸리는 만만찮은 산이지만, 가파른 계단길을 10분 남짓만 올라서서 고개를 돌리면 그때부터 우리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은빛 얼음 호수 풍경을 만날 수 있답니다. 내친 김에 8분 능선의 나무덱 계단 끝까지 더 가면 쩡쩡 얼어붙은 겨울 강물을 깨어서 만든 유람선의 시퍼런 물길과 그 물길 너머로 첩첩이 암봉들이 늘어선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기록적인 혹한이 닥쳐온,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랍니다.

  다른 계절의 단양팔경 명소들의 아름다움이야 익히 알려진 바지만, 겨울의 정취도 그만 못할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혹한의 겨울이 선사하는 이런 이국적인 겨울 풍경은 다른 때는 좀처럼 보기 힘든 멋과 운치를 선사합니다. 매서운 겨울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그 추위가 여행자에게 선사해준 뜻밖의 선물을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아시는지요. 옷깃을 파고들던 지긋지긋한 혹한도 일상을 뒤로 하고 떠나온 여행 길에서는 어쩌면 알싸한 청량제가 될 수도 있음을….
 
 

        정도전·김홍도의 벗 ‘도담삼봉(島潭三峯)’ 만나러 ‘은반’위를 걷다

 

 

▲ 연일 계속되는 혹한으로 남한강의 물길이 단단하게 얼어붙으면서 관광객들이 물 한가운데 떠 있던 도담삼봉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너른 얼음판에서 아이들은 얼음을 지치고, 어른들은 먼발치에서 건너다봐야 했던 도담삼봉의 운치 있는 정자인 삼도정에 올라 겨울강을 내려다봤다

 

 

# 유람선이 얼음을 깨며 물길을 내다


  이른 아침, 충주호의 장회나루. 밤새 얼음에 갇혀 있던 유람선 한 척이 눈이 쌓인 호수의 얼음판 위로 물길을 내기 시작했다. 선체와 두꺼운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협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배가 두꺼운 얼음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면 우지직 얼음이 깨졌고, 깨진 얼음 아래로 잠깐 새파란 물길이 드러났다. 선체에 부딪혀 깨쳐나간 얼음들은 크고 작은 유빙이 돼서 떠다니다 금세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대형 유람선이 마치 쇄빙선처럼 앞서 얼음을 깨 물길을 만들면, 그 뒤를 관광객들을 태운 작은 유람선이 따랐다. 유람선은 이렇게 얼어붙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며 구담봉과 옥순봉을 유유히 돌아갔다.

  올겨울 충주호는 마치 북유럽의 풍경을 방불케 한다. 오랫동안 이어진 혹한으로 강은 쩡쩡 얼어붙었고, 그 얼어붙은 강 위로 눈이 내려 덮였다. 호숫가 주변 산자락은 나무들이 낙엽을 다 떨궈서 장쾌하게 솟은 암봉의 우람한 골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들고나는 산자락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유연하게 S자형으로 굽어진 물길을 따라 유람선이 오르내렸다. 그 앞에서 북유럽 피오르 해안의 겨울 풍경을 떠올렸다.

  유람선에 오르면 감흥은 배가된다. 선체는 얼음과 부딪쳐서 연방 으르렁거렸고, 굽어보면 푸른 빛을 띤 두꺼운 유빙들이 호수 가득 떠 있었다. 고개를 들면 치솟은 암봉의 위용이 장쾌했다. ‘극한의 자연’의 풍경 앞에 마주 선 듯한 느낌. 우리 땅에서는 일찍이 맛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유람선의 갑판에 서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보노라면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의 공기마저 박하사탕처럼 알싸한 청량함으로 다가왔다.

  유례없는 겨울의 추위가 우리 땅 곳곳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풍경 중에 으뜸을 충주호의 장회나루 부근에서 만날 수 있다. 장회나루의 빼어난 경관이야 일찍이 알려진 것. 그러나 올해의 겨울 풍경은 다른 계절과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계절의 장회나루가 멀리서 바라보는 ‘관조의 느낌’이었다면 이즈음의 장회나루는 자연의 힘줄이 ‘날 것’처럼 툭툭 불거진 느낌이다.

 

# 제비봉에 올라 겨울 호수 풍경을 내려다보다

  충주호의 겨울 풍경을 장쾌한 시야로 눈에 담으려면 장회나루 뒤편 제비봉에 올라야 한다. 단양읍의 서쪽에 솟은 제비봉은 월악산 자락이 일으켜 세운 봉우리. ‘제비’란 이름은 충주호 쪽에서 보면 부챗살처럼 펴진 바위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펴 나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비봉을 충주호 전망의 최고로 일컫는 것은 오름길이 암봉의 절벽지대를 이루고 있어 서쪽을 제외한 동쪽과 남쪽, 북쪽으로 장쾌하게 시야가 트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봉의 군데군데 가지를 뒤틀고 자란 오래된 노송들도 푸른 잎을 달고 겨울 정취에 한몫을 한다.  해발 710m의 제비봉은 장회나루 입구에서 정상까지 1시간30분 이상 걸린다. 겨울산행으로는 만만찮은 높이지만, 겨울 호수의 황홀한 전망을 즐기자면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첫 오름길은 계단이다. 비탈진 사면에 나무를 박아넣은 계단에서 시작해 암봉을 딛다가 다시 나무덱이 이어진다. 경사면은 계단을 타고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는 데다 뒤편 호수 쪽의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불과 10분 정도만 오르더라도 고개만 돌리면 ‘아’ 하고 탄성이 터질 만한 풍경을 대할 수 있다. 얼어붙은 호수 주위로 치솟은 암봉들이 주르르 둘러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 유빙이 떠있는 얼어붙은 호수의 S자의 물길로 유람선들이 오르내린다.

  제비봉의 오름길 어디서나 고개만 돌리면 이런 풍경을 대할 수 있는데, 고도를 점차 높일수록 물길의 자취가 더 길게 이어지고 앞산에 가려진 뒤편 암봉의 모습도 드러난다. 오를수록 풍경의 깊이는 더해진다. 겨울 제비봉에서의 전망은 선이 굵고 또한 압도적이다. 자연의 거대함과 거역할 수 없는 위용이 그대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겨울의 매서운 혹한이 선사해 준 풍경이다.

  이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절정의 전망대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정상에 닿기 전 8분 능선쯤의 마지막 나무덱이 놓인 곳을 꼽을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40분이면 넉넉하다. 이 나무 계단에서는 말 그대로 일망무제의 겨울 충주호의 이국적인 모습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다. 그 계단길에 멈춰서 앉았는데 때마침 눈발이 흩날렸다. 눈발의 굵기에 따라 호수와 암봉이 지워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 얼음판을 걸어 도담삼봉으로 들어가다

  단양팔경. 우리 땅에서 이름난 여행지 중의 단연 대표격이다. 그 여덟 곳의 경치 중에서 어느 한 곳도 빠지는 곳이 없지만, 그중 최고의 경치라면 단연 도담삼봉이다. 도담삼봉이 단양팔경에서 당당히 제1경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에는 개국공신 정도전을 비롯해 퇴계 이황과 토정 이지함이 찾았고,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은 그 아름다움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도담삼봉은 이상향을 닮았다. 사람들이 기거할 수 없으나 신선이 머물 것같은 이상적인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신권정치의 이상향을 꿈꿨던 정도전이 도담삼봉에 반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도담삼봉에 가닿을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관광객들은 물 건너편에서 봉우리를 바라봐야 했고, 유람선을 타더라도 주위를 돌며 경관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올겨울은 다르다. 남한강의 물길이 죄다 꽁꽁 얼어붙는 바람에 도담삼봉을 두 발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얼음이 어찌나 두껍게 얼었던지 아스팔트보다 더 단단하다. 꽝꽝 언 얼음 아래로 물색이 푸르렀다.

  얼음판으로 내려서는 선착장 부근에 ‘출입금지’란 붉은 현수막이 나붙어 있지만, 관광객들은 망설임 없이 얼음판을 걸어 도담삼봉으로 들어갔다. 관리책임을 맡은 도담안내소 직원들도 굳이 관광객을 막아서지 않았다. 더러는 얼음을 지치고, 더러는 중봉에 세워놓은 정자 삼도정에 올라섰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빙판 위를 데구르르 굴러다녔다.

  도담삼봉을 한 바퀴 빙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세 개의 봉우리는 시야가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마치 손바닥 위에 수석을 올려놓고 감상하는 기분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찬찬히 올려다보는 도담삼봉의 감흥도 물 건너편에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익숙한 풍경도 시선을 달리하자 낯설 정도로 달라보였다. 언제 또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연일 매서운 혹한과 폭설이 계속되는 겨울의 한복판이다.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보다 그 한가운데 들어 겨울이 선사하는 낯선 풍경을 만나보면 어떨까. 도회지에서는 혹독하게 느껴졌던 추위도, 여행길에서 때론 알싸한 박하향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가다 북단양나들목으로 나온다. 532번 지방도로를 타고 매포읍을 지나 매포삼거리에서 5번 국도를 만나면 우회전한다. 이어 하괴삼거리에서 도담삼봉·가곡 방면으로 좌화전하면 도담삼봉이다. 제비봉은 충주호 유람선이 뜨는 장회나루를 목적지로 삼아 찾아가면 편리하다. 장회나루 길 건너편으로 제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제비봉 등산에 등산화는 필수. 곳곳에 암봉이 많아 눈이 내리는 날에는 위험하므로 초보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묵을 곳 · 먹을 거리

  대명리조트 단양(1588-4888)이 가장 쾌적한 숙소다. 물놀이시설 ‘아쿠아월드’를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단양읍내의 단양관광호텔(043-423-7070), 찜질방과 사우나를 갖춘 이화장(043-422-2080)도 최근 리뉴얼했다. 단양읍의 리버텔(043-421-5600)과 단성면의 팔경모텔(043-421-2900)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우수숙박시설인 ‘굿스테이’지정 업소다.

  단양에서는 마늘정식을 내는 장다리식당(043-423-3960)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한 맛집이다. 구담봉 인근의 얼금골 매운탕 (043-651-6075)은 쏘가리매운탕으로 알아주는 곳이다. 대강면의 고향집 두부(043-421-0150)는 지역에서 생산한 국산콩으로 고소한 손두부를 만들어 내온다. 단양에 갔다면 한때 청와대로 납품됐다는 대강막걸리를 맛보지 않을 수 없는 일. 대강면에 술도가가 있고, 단양 일대의 식당이며 소매점에서 이곳에서 빚은 대강막걸리를 구입할 수 있다.
 
 

깊은 산속 헌책방… “물어물어 오시는 손님 많지요”

- ‘새한서점’ 30여년 운영 이금석씨

 

▲ 깊은 오지에 있는 새한서점은 흙바닥에 책꽂이를 놓고 천막과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두 동의 서고에 13만권의 헌책을 진열해놓고 있다. 노지나 다름없는 서고에는 묵은 책들의 향기가 가득하다.

 

  서점의 최적 입지라면 어떤 곳일까. 학교를 끼고 있고 유동인구가 많은 네거리의 코너쯤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상식을 깨고 터무니없는 곳에 들어선 서점이 있다. 단양군 단성면 현곡리 56번지. 그야말로 깊고 깊은 오지마을에 헌책을 파는 ‘새한서점’이 있다.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의 서점 중에서 가장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리라.

  새한서점을 찾아가자면 현곡리 마을에서도 외줄기 시멘트 농로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그 길의 끝에는 천막으로 지붕을 삼고 얼기설기 판자로 벽을 댄 가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헌책방 ‘새한서점’이다. 도대체 이런 외딴 곳에다 헌책방을 차린 연유는 무엇일까. 인적조차 드문 이런 외딴 곳에서 도대체 장사가 되기는 하는 걸까. 책방 주인 이금석(60)씨를 붙들고 질문을 쏟아냈다.

  “물어물어 이 깊은 곳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로 인터넷 사이트로 헌책을 팔지요. 그닥 돈벌이는 안되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정도의 벌이는 됩디다.”

  이씨는 3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해왔다. 1979년 서울 잠실에서 노점을 차려 헌책을 팔았던 것을 시작으로 서울 답십리, 길음동, 경기 부천 등을 거쳐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에서 헌책방을 오랫동안 운영해왔다. ‘새한서적’이란 지금의 이름도 그때 쓰던 이름이라고 했다. “요즘같이 새 것이 흔전만전인 세상에 누가 헌책을 거들떠보기나 한답니까. 운영은 날로 힘들어지고 임차료를 내는 것마저 어렵게 돼서 이곳으로 내려왔지요.”

  이씨가 단양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2002년. 헌책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찮은데다 서점을 직접 찾는 사람들보다 인터넷을 통한 주문은 늘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굳이 도회지의 목 좋은 곳을 고집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무엇보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책을 보관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셈도 있었다. 그렇게 단양으로 내려오게 됐다.

  삐걱이는 판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맨 땅에 헌책을 꽂아놓은 책꽂이가 길게 이어져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다 책이다. 두 동의 가건물에 들여놓은 책만 무려 13만권이란다. 책의 종류도 상상을 초월한다. 오래된 교과서부터 각종 잡지, 물리, 화학, 미술, 역사…. 영어, 불어 원서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씨는 “간혹 책갈피 속에서 몰래 넣어둔 비상금도 나온다”며 웃었다.

  수만권의 책을 갖고 있으니 ‘감명 깊게 읽은 책’ 한권쯤은 있지 않을까 싶어 몇 번이고 물었지만 그는 “어디 책 볼 시간이나 있겠느냐”며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렇지만 그의 성실함은 감동적이다. 책을 사들이고 일일이 분류표를 적고 가격을 매겨 서점에 꽂아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알음알음 헌책방이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최근 단양군 관광안내 지도에 ‘새한서점’ 이름 한줄이 손톱 만하게 실렸다. 헌책방이 관광목적지가 된 셈이다. 새한서점이 관광목적지로 손색없는 것은 지금은 도시에서 다 사라지고 만 동네 헌책방에서 느껴지던 오래 묵은 책들을 뒤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2011. 1. 26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