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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진천 농다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by 혜강(惠江) 2010. 8. 25.

진천 농다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글·사진·영상=박종인 기자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위를 걷고 있습니다. 반가운 가을비 맞으며 돌다리를 건넙니다. 때는 세상이 광속으로 바뀌고 있는 21세기인데, 이 다리는 만든 지 1000년이 넘었습니다. 나는 1000년 먹은 다리를 건너 빗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가을, 충북 진천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신라시대에 지었다는 진천 농다리. 암돌과 숫돌들을 서로 끼워 맞춘 돌다리다. 

 

 

  나는 지금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에 서 있습니다. 마을 앞에 세금천이라는 개울이 흐르는데, 다리는 그 위를 가로지릅니다. 이름은 농다리라고 합니다. 신라 장군 김서현이 고구려의 낭비성을 빼앗은 기념으로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리이지요. 김서현은 김유신의 아버지입니다. 학술적으로는 고려 말에 만들었다는 보고서도 있긴 하지만, 신라의 나날에 다리를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첨단 공법으로 만든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판에, 이 땅의 민초들이 손으로 만든 다리가 천 년 세월을 인내하여 사람들을 맞습니다.

 

  원래 길이는 100m였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수백 번은 치렀을 장마 홍역에 양쪽이 떠내려가 지금은 93m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3m 정도 폭을 유지하면서 암숫돌 한쌍씩 24칸을 엇갈리게 끼워맞췄습니다. 원래는 28칸입니다. 하늘의 별자리인 28숙(宿)을 상징한 숫자입니다.

 

  그 생김이 위에서 보면 영락 없이 지네입니다. 지네 아시지요.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기어가는 그 벌레. 사람들이 발을 딛는 상판석은 굉장한 정성으로 수집한 돌을 썼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온 돌이지만, 그 무늬와 빛깔은 예술입니다. 그 정성에 다리가 보답을 합니다.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 지네가 울어댄답니다. 그래서 굴티마을 사람들은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샌다고 하지요.

 

 

  다리는 그 지네처럼 몸을 비틀어 물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유속이 센 곳은 상류쪽으로 몸을 틀었고, 약한 쪽은 하류를 향해 몸을 틀었습니다. 그 흐름에 따라 돌들은 조금씩 흔들리며 울어댑니다. 접착제도, 석회도, 시멘트도 콘크리트도 쓰지 않은, 오로지 돌들을 끼워 맞춘 다리입니다. 장마가 지면, 장마에 맞서지 않고 물을 위로 흐르게 놔뒀습니다. 이를 수월교(水越橋)라고 합니다. 그래요, 흔들리기에 부서지지 않고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다. 눈앞의 견고함을 포기했기에 다리는 천 년을 멸실로부터 해방된 것이지요. 다리를 건너니 예쁜 꽃밭이 나를 반깁니다. 꽃밭을 지나 정자에 서서 다리를 바라봅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다리는 열심히 사람들을 실어 나릅니다.

 

 

길상사 가는 길. 은행나무들이 빛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흥무대왕 김유신 사당, 길상사

  

 

  비가 내리기에, 가을이기에 여행이 이렇게 낭만적이 되었습니다. 농다리와 작별하고 읍내 반대편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21번 국도를 타고 군청 앞 사거리를 지나 천안쪽으로 가니, 거기 오른편에 길상사가 나옵니다. 

 

  길상사. 김유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은 이곳 진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김유신의 아버지가 이곳 태수로 있으면서 농다리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김유신의 생가터도 남아 있고, 그의 탯줄을 묻은 태실도 이곳 진천에 있습니다. 태를 묻던 날, 무지개를 타고 신들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돌아갔다고 하지요.  

 

  이정표를 보고 급하게 길상사 초입에 들어서니, 숫기 없이 노릿노릿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숲이 나를 반겼습니다. 빗소리와 연무(煙霧),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은행잎들. 참으로 아늑했습니다. 은행나뭇길을 따라 사당에 다다르니, 그곳에 평화와 안식이 있었습니다. 들리는 건 빗소리뿐. 높은 계단을 따라 문들을 지나고, 낙엽을 밟고,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흥무전으로 갑니다.

 

 

길상사에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김유신은 죽어서 흥무대왕이라는 시호를 받습니다. 이 땅 모든 왕조의 장군 가운데 오로지 김유신만이 ‘대왕’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흥무전은 그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어두운 전 속에 장군이 칼을 차고 갑옷을 입고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대원군 시절, 전국 팔도의 서원 철폐령에 문을 닫았다가 훗날 재건된 사원입니다.

 

  장군과 눈을 맞추고 처마 아래에서 비를 긋습니다. 참 아늑합니다. 비님이 내리지 않더라도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산책할만한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며칠 후면 제 앞에서 이파리를 날리는 나무들은 옷을 벗고, 땅에는 오색 낙엽들이 뒤덮이겠지요. 님께서도 꼭 이곳에 들러 그 낙엽을 밟아보길 권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 보탑사 가는 길입니다.

 


 

통일을 기원하며 - 보탑사

 

 

  길상사에서 나와 천안쪽으로 길을 이었습니다. 주유소를 지나고 고개를 지나니 서석삼거리가 나옵니다. 병천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니 금방 보탑사 사거리를 만났습니다. 교차로가 영어 K자 형이라, 1시 방향으로 우회전을 했습니다. ‘보탑사’ ‘김유신 장군 생가터’ 이정표를 따라갔습니다.

 

  생가터라 하지만, 거기에 있는 기와집은 요즘 만든 건물이기에 큰 멋은 없습니다. 큰길가에 바로 보이는 집입니다. 너른 잔디밭 위에 집이 있습니다. 님께서는 그곳 외관에 실망하지 마시고, 장군의 정신을 읽으십시오. 삼국을 통일한 호연지기를 읽으십시오. 그리고 길을 이으면 길 끝에 보탑사가 나옵니다.

 

탄생지에서 이어진 길 끝 산 속 연꽃골(蓮谷里)에 보탑사(寶塔寺)가 숨어 있습니다. 삼국통일을 염원했던 황룡사 9층목탑처럼, 이 땅 통일을 희구하며 세운 거대한 목탑(木塔) 절집입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님께서 태어난 고향과 무관하게 연꽃골에 들러보십시오.

 

  외길이 계속되다가 왼쪽으로 저수지가 나오고, 그리고 큰 세갈래길이 나타납니다. 반드시 왼쪽으로 U턴 하듯이 꺾어지세요. 그리고 다시 호젓한 저수지 드라이브가 이어집니다. 작은 다리가 나오면 다리를 무시하고 직진하십시오.

 

   아까 ‘숨어 있다’고 했던가요? 이제부터 도로는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길로 변합니다. 드문드문 교행을 위해 틔워놓은 공간을 제외하면 승용차 한 대 지나갈 정도입니다. 숲이 우거져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런 은밀한 길입니다. 그러니 절대 서행, 아셨죠? 보탑사는 그 길 끝에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마침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홀린 듯, 종소리를 따라 걸어오릅니다. 작은 나무다리가 나오고, 그 위로 300살 먹은 느티나무가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종소리가 더 커집니다. 깊되 시끄럽지 않고, 유장하되 서럽지 않은 그런 종소리가 나를 절로 이끕니다.

 

   목수(木壽) 신영훈이라는 장인(匠人)이 있습니다. 고건축에 미쳐 대학도 가지 않고 목수가 되기로 작정한 사내입니다. 오죽하면 호(號)까지 ‘나무 목숨’이라고 지었을까요. 보탑사는 그 사내가 만든 거대한 삼층탑입니다. 신영훈 선생이 삼국시대 목탑 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한, 2000년대의 문화재입니다. 쇠못 하나 쓰지 않는 순수한 나무탑. 높이는  42.71m로 웬만한 아파트 크기입니다. 척 단위로는 탑신이 108척(尺). 백팔번뇌를 상징합니다.

 

 

 

보탑사. 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 땅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입니다.

 

 

   종소리가 멎더니 본전 1층에서 목탁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방으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입니다. 약사여래 앞에는 초파일에 딴 수박들을 놓아둡니다. 동짓날 배를 가르면 썩지 않고 젤리처럼 말라 있다고 하지요. 2층은 대장경을 봉안한 윤장대, 3층은 미륵불 3존을 모신 미륵전입니다. 김유신이 그러했듯, 탑은 이 땅의 통일을 위해 서 있습니다.

  저리도 좁은 길 끝에 이리도 큰 절집이 있다는 것도 놀라움이었고, 가을날 내리는 빗속에서 들은 종소리와 예불 소리도 나에겐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날이 저물도록 한참을 절 안에서 침묵하다가 해거름 꼬리를 쥐고 길을 돌렸습니다. 여전히 비는 내리는데, 마음은 포근했습니다. 찬란한 가을비를 맞으며 떠나간 여행길, 그렇게 하루를 맺었습니다. 다음에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 여행수첩

▲ 가는길(서울기준) : 중부고속도로 진천IC→진천 방면으로 좌회전→‘농다리’ 이정표를 보고 신성삼거리에서 좌회전→이후 충실하게 잘 돼 있는 이정표 따라 농다리까지→농다리에서 나와 계속 직진하면 군청사거리→21번국도 천안, 병천 방면으로 좌회전→5분 거리에 오른쪽으로 길상사 이정표→은행나무 터널을 타고 길상사→다시 나와서 우회전, 주유소가 나오고 고개를 지나 서석삼거리에서 천안 방면 우회전→보탑사 사거리에서 이정표 보고 1시 방향으로 우회전→10분 거리에 오른쪽으로 김유신 장군 생가터→이후 왼편에 저수지 나오고 세갈래길 나오면 U턴 하듯이 좌회전→작은 다리가 나오면 건너지 말고 곧장 작은 길로 직진→길이 굉장히 좁으므로 서행운전→길 끝에 보탑사.

 

 

▲ 먹을곳 : 송애집. 붕어찜. 여러 매체에 소개된 유명한 집이다. 초평저수지가 나오면 그 부근이다. 먹어보면 안다. (043)532-6228

 

 

 

  진천지도

 

▲ 덤 하나! 종박물관:진천IC에서 나와 진천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편에 있다. TV광고에도 출연한 종장(鐘匠) 원광식 선생이 만든 박물관. 평생 동안 만들고 수집한 종을 전시한 고급 박물관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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