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기행>
나주 오미(五味), 첫술만 떠도 감탄이 절로
구진포 장어·영산포 홍어·나주 곰탕·사랑채 한정식·송현 불고기
곰탕 맛 좀 알면 '맑은 국물'… 마니아라면 '홍어 코' 도전
나주=글·김우성 기자 / 사진·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한때 여기, 강 따라 사람들이 흘러들었다. 거리는 번성했다. 여인숙은 꽉꽉 찼고 요정은 노랫소리로, 장터는 흥정하는 소리로 복작거렸다. 강 따라 번성한 거리는 강이 막히자 서서히 퇴색했다. 여인숙도, 요정도, 장터도 사라졌다. 그 흔적을 추억하듯 진한 홍어 냄새가 거리를 흐른다. 나주 영산포 얘기다.
맛의 도시, 나주에서 역사는 음식으로 기록된다. 곰탕은 흥성했던 조선시대와 맞닿았고, 홍어와 장어는 영산강의 전성(全盛)을 기린다. 역사를 추억하는 음식의 맛은 깊다. 깊어서, 이들 세 음식은 각기 나주 곰탕·영산포 홍어·구진포 장어란 이름으로, 이제는 그 기원을 잃은 거리에 버젓이 살아 있다. 어느 틈엔가 사람들은 이곳 불고기와 한정식을 합쳐서 나주 오미(五味)라 부르기 시작했다. 뿐인가. 나주 금성산 차는 맑고 청아한 향으로 여운을 남긴다. 자, 나주 오미와 금성산 차 이야기.
1미(一味) 구진포 장어
"이제 영산강에 자연산 장어는 없다 봐야죠. 전통 손맛만 남은 거지."
구진포 대승장어 최순남 대표도, 이성자 문화관광해설사도, 더는 자연산 장어란 단어에 집착하지 않았다. 1940년쯤 영산강에 기대 크고 작은 장어집이 들어섰던 구진포다. 1981년 무안 삼향과 영암 서호를 잇는 하굿둑이 바닷물 유입을 막은 뒤로 장어는 잡히지 않았으되, 구진포 장어 거리는 그대로 남았다. 장어집 10여 군데가 지키고 선 이 거리는 영산강의 과거 영화(榮華)를 대변한다.
▲ 구진포 장어
영산강은 길고 넓다. 큰 물줄기 셋을 포함해 1345개 물줄기 길이가 2740㎞다. 전남을 훑고 지난 영산강은 나주에서 바다로 뻗거나, 해수를 깊게 받았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영산강 하구는 물고기의 천국이었고, 나주는 영산강을 토대로 화려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켰다. 조금물 도랑 참게, 몽탄강 숭어, 영산강 뱅어, 구진포 웅어, 황룡강 잉어, 황룡강 자라, 수문리 장어, 복바위 복어 등 나주의 어팔진미(魚八珍味)가 그 증거다.
나주 일미(一味) 구진포 장어는 손맛이다. 구진포 장어 거리 대승장어에서는 장어를 구울 때 직접 만든 양념장을 이용한다. 이 양념장이 독특하다. 마늘·생강·매운 고추·당귀·감초 등을 고아 장어 머리를 삶은 물과 함께 끓여낸다. 양념 끝에 내놓는 장어구이는 한약 특유의 냄새를 배경으로 달콤한 향이 솔솔 풍겨 코끝을 간질인다.
서울 등지와 달리 '4미' 장어를 고집하는 점도 특징이다. '미'는 1㎏당 장어 수를 세는 단위다. 4미면 1㎏당 4마리에 해당한다. 장어 1마리에 250g인 셈. 5미는 잘아서 먹을 게 없고 3미는 너무 커서 양념이 제대로 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특유의 손맛과 정성으로 구워낸 장어는 담백하면서도 보드랍고 달콤하다. 곁들인 장어 내장구이도 구진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장어 내장을 프라이팬에 기름을 튀기듯 듬뿍 붓고 볶아 초고추장과 함께 낸다.
2미(二味) 맛의 혁명, 영산포 홍어
"저는 여기 있을게요. 들어갔다 오세요."
영산포 홍어 옹기 숙성실 앞에서, 나주 영산포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성자 문화관광해설사는 들어가길 꺼렸다. 유리창 건너 바라본 숙성실은 평범했다. 20여 개 남짓한 커다란 옹기를 볏짚이 덮었다. 옹기마다 홍어 70~80마리가 쉼 없이 숙성된다고 했다.
▲ 영산포 홍어, 여기서 홍어가 들어간 요리가 몇 접시일까? 셋? 넷? 정답은 여덟 접시다. 홍어찜, 홍어 무침, 홍어 튀김, 홍어회·수육, 홍어 떡갈비, 홍어 전, 홍어포·홍어 껍질 튀김, 홍어 코·내장이 그 주인공.
영산포 홍어는 독하게 태어난다. 독하게 태어난 만큼 첫 맛은 적응하기 어렵다. 대신 한 번 맛 들이면 엄청난 중독성으로 사람을 끈다. 황석영이 썼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라고. 맛의 혁명을 주도하는 거리, 영산포 홍어 거리는 사시사철 홍어 냄새로 시큼하다. 여기저기 모두 홍어 식당이고, 식당마다 홍어 손질로 분주하다.
지금은 이 과정을 숙성실에서 인위로 재현한다. 식당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나주에서는 10도 이하에서 숙성시킨다. 온도 변화가 적은 곳에서 천천히 숙성해야만 차지다. 영산포 홍어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이곳 홍어식당 영산홍가에서 홍어 정식을 시키면 홍어찜, 홍어 삼합, 애국, 홍어 떡갈비, 홍어 포, 홍어 튀김이 나온다. 홍어 마니아라 자부한다면 '홍어 코'에 도전할 만하다. 숙성도가 가장 강하다. 지독한 화생방 훈련이라는 뜻이다.
▲ 나주 곰탕
본래 나주는 전라도 제일 도시였다. 983년 고려 성종 때 12목(牧·광역자치단체에 해당) 중 하나로 선정된 이후로, 나주는 1000년 가까이 호남 지역의 교통·문화·행정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해서 나주의 별명은 '작은 한양'이다.
작은 한양, 나주의 멋은 금성관(錦城館) 일대에서 빛을 발한다. 멋의 주역은 둘이다. 양반의 거리가 하나요, 그 거리 사이를 휘도는 나주 곰탕의 고소한 향이 둘이다.처음엔 의아했다. 화해하기 어려운 양반과 서민의 길이 금성관과 나주 곰탕 거리에서 만난다. 이성자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이유가 있다. 금성관에서 금성산은 지척이다. 성 밖 서민은 금성산에서 땔감을 해와 성안 저잣거리에서 새벽부터 팔았다.
하얀집은 분위기부터 정겹다. 좁고 긴 형태의 내부 한쪽으로 커다란 가마솥 2개와 고기를 써는 커다란 도마가 나란하다. 곰탕을 주문하면 큰 들통에 담긴 밥을 뚝배기에 담곤, 가마솥에서 국자로 곰탕을 퍼내 붓는다. 썬 파와 달걀 노른자 지단, 깨, 고춧가루를 조금 얹어내면 곰탕 완성이다.
첫술을 떠 입에 넣는 순간, 약간 과장해 지금까지 먹어왔던 곰탕은 곰탕이 아니었나 싶었다. 국물은 뿌옇지 않고 맑은데, 진하고 깊다. 기름기를 제거해 담백하다. 고기도 무척 많다. 질기지 않고 부드러우며 쫄깃하다. 하얀집뿐일까. 어느 나주 국밥이 더 나은지는 개인 선호도에 달렸다. 이 일대 나주 곰탕집들의 맛 수준은 전체적으로 높다고 소문났다. 이게 나주 삼미(三味)다.
목사내아에 짐을 풀 때 목사내아지기 최경화씨는 "꼭 금성 명다원에 가서 금성산 차를 드셔 보시라"고 권했다. "나주는 음식문화뿐 아니라 차 문화 역시 발달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나주에 앉은 산, 금성산은 나주 진산이다. 이 산에 약 2만5000평 규모의 야생 차밭이 있다고 했다.
나주향교 옆 금성명다원은 전국 유일하게 금성산 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금성명다원 주인 송영건씨가 전한 사연은 이랬다. 2000년대 초반 웰빙 열풍이 불며 금성산 야생차밭을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부쩍 늘었으되, 관리하는 이가 없어 차밭은 금방 쑥대밭이 됐다. 나주시는 휴식년제로 출입을 막았고 2008년부터는 차밭 관리를 한 사람에게 맡겼다. 그가 바로 송영건씨다.
송씨가 내준 차는 황차(黃茶)였다. 발효시켰음에도 차는 떫지 않았고 입에 머금었을 때 여러 과일 향이 혀끝에 머물렀다. 송씨는 이를 "풋사과의 청초한 향"이라 표현했다. 발효에 필요한 성분인 폴리페놀이 다른 국내 찻잎보다 많이 함유된 대신 외국 홍차보다는 적어, 떫지 않고 과일 향이 풍부하다.
사실 나주는 차와 인연이 많다. 추사 김정희와 차를 통해 교류했던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이 나주 운흥사다. 운흥사가 있는 마을 이름은 다도면(茶道面)이다. 일본 강점기 때는 금성산 차 생잎을 수매했던 일본인도 있었다고 했다.
홍어와 장어, 곰탕으로 한껏 채운 배를 금성산 차로 다스림은 나주 맛 기행의 깔끔한 마무리다. 아직도 속이 다시 헛헛하다고? 나머지 두 미학(味學), 불고기와 한정식이 기다린다.
▲ (위로부터) 사랑채 한정식, 송현 불고기
②송현 불고기 : 이 집, 외관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허름한 판잣집에 간판도 없다. 내부도 식당이라기보다 구멍가게를 닮았다. 메뉴는 단 하나, 불고기다. 돼지고기 목살과 삼겹살을 직접 썰어 연탄불에 구워준다. 짜지 않은 된장을 발라 상추에 싸먹는 맛이 일품. 7000원인데, 양이 푸짐하다. 동신대 옆길로 가다 오른쪽을 꼭 눈여겨보시길. 문에 송현 불고기라 삐뚤빼뚤 쓰여 있다. (061)332-6497
주요 식당 연락처 및 가격 :
영산홍가 홍어 정식 외국산 2인 4만원, 흑산도산 1인 4만원. (061)334-0305 대승장어 장어구이 1만8000원. (061)336-1265 하얀집 곰탕 7000원. (061)333-4292 금성명다원 야생황차 3000원, 녹차 4000~5000원. (061)331-9969
더 즐길거리: 홍어·장어·곰탕 거리는 식당뿐 아니라 보고 즐길거리를 같이 품고 있다. 먼저 곰탕 거리. 옛 나주 중심지였던 이 일대엔 나주목 객사 건물 금성관을 비롯해 목사의 살림집이었던 목사내아(牧使內衙), 조선시대 관문 정수루(正綏樓), 나주향교 등이 모여 있다. 정수루 바로 앞에 있는 나주목문화관(061-332-5432)을 먼저 둘러보면 좋다.
영산포 홍어 거리 일대엔 과거 번성했던 흔적과 일본 강점기 때 흔적인 적산가옥이 많다. 영산포 등대는 내륙 하천가에 세워졌던 유일한 등대다. 최근 4대강 사업으로 어수선하다. 구진포 장어 거리에선 천연염색문화관(061-335-0091)이 가깝다. 주말마다 천연염색·판화·규방공예·압화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다.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기준)
①호남고속도로~나주 곰탕 거리: 호남고속도로 산월IC→무안광주고속도로 방면 우회전→무안광주고속도로 운수IC→나주IC→양천교차로에서 나주 방면 좌회전→8㎞ 직진하다 산정삼거리 좌회전→200m 앞 우회전해 직진하면 조선시대 관문 정수루. 왼편으로 곰탕 거리다. 4시간.
②나주 곰탕 거리~영산포 홍어 거리: 정수루에서 금낭동 주민센터를 끼고 우회전→1.5㎞ 직진, 한전사거리에서 좌회전→영강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영산대교를 건너면 영산포 홍어 거리. 10분.
③영산포 홍어 거리→구진포 장어 거리: 영산대교를 다시 건너 영강삼거리에서 목포 방향 좌회전→3㎞ 직진하면 구진포 장어 거리.
묵을 곳: 천년 목사골 나주를 느끼기엔 목사내아가 제격.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로 작년부터 일반인에게 숙박 장소로 공개하고 있다. 나주시가 직접 운영한다. 방 크기와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5만~15만원. (061)332-6565
<출처> 2010. 12. 16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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