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기원전 2세기 번영의 땅
'비밀의 성전' 요르단 페트라
- 좁고 긴 계곡을 지나 '거대 조각'과 마주하다
페트라(요르단)=글·김우성 기자 / 사진·영상미디어 이경민 기자
▲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반짝이는 알 카즈나. 그 앞에 선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냈다.
인간이 꿈을 꾼다. 꿈속에서 구상(具象)은 논리를 잃는다. 논리를 잃은 구상은 추상이나 상상으로 도약한다. 신이 꿈을 꾼다. 그 꿈은 반대로 도약한다. 신은 추상을 구상화한다. 질료는 흙과 물, 불과 바람, 그리고 시간이다.
중동국가 요르단의 남쪽 고도(古都) 페트라(Petra)에서, 신과 인간의 꿈은 뒤섞인다. 고대 아랍인 나바테안(Nabataean)족은 신의 형상을 원과 네모로 추상화했고 그들의 신 두샤라는 천혜의 지형을 선사했다. 뒤섞인 꿈은 지금도 남아 나바테안족의 후예, 베두인족의 거처로 현존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도, 빛과 어둠의 경계도 모호한 페트라를 찾았다. 며칠 동안 자꾸만 눈을 비볐다. 발 딛고 선 공간이 눈앞에서도 믿기지 않았다.
▲ 다른 이들이 공터에 건물을 쌓을 때, 나바테안은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제 도시를 가꿔냈다.
◆ 신의 꿈
먼저 페트라에서 신이 꾼 꿈. 페트라 들어서는 길은 협곡이다. 이 협곡은 좁고 깊다. 기껏해야 협곡의 폭은 3~10m인데 그 높이는 때로 100m를 넘어선다. 터무니없는 비례의 협곡은 바싹 길을 압박하며 소리를 가둔다. 베두인 젊은이가 말을 몰고 지날 때마다 말발굽 소리는 절벽과 절벽 사이에서 파동쳤다.
협곡은 그 소리의 파동을 닮았다. 협곡의 질료, 사암은 바람의 출렁이는 물결 모양으로 1.3㎞쯤 이어진다. 수평의 파도는 때로 용암이 흐른 자국 같은 수직의 무늬를 만난다.
소리와 물질이 서로 닮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풍경은 태양 각도를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가까운 협곡은 늘 어둑하나 먼 데서 굽이치는 협곡 정상은 빛을 받아낸다. 그 빛으로 먼데 절벽이 외려 가깝다. 페트라의 해는 원근감을 교란한다. 이 같은 길은 전례 없다. 해서 현실을 딛는 발걸음이 자꾸만 멈칫한다.
▲ 사방을 바위산이 감싼 천혜의 요새, 페트라.
◆ 인간의 꿈
협곡의 끝에 2000년 전 나바테안족이 그린 꿈이 있다. 신과 인간의 꿈이 서로 만나는 순간은 극적이다.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매끈한 질감의 사암이 반짝인다. 이 질감은 인간의 흔적이다. 흔적은 처음엔 아슬하게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다 온전히 협곡을 빠져나올 때에야 전체를 보여준다. 그때,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낸다.
비로소 시작되는 유적의 서곡, 알 카즈나(Al Khazna·보물창고). 신전이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나바테안 족의 건축물이다. 그들의 건축은 협곡과 완벽하게 조화한다. 다른 민족이 공터에 건물을 쌓아갈 때 나바테안족은 기존의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건축의 뜻을 전복했다. 거대한 암벽을 깎아 기둥을 세웠고, 그 안을 파 공간을 만들었다.
나바테안족은 다른 민족의 꿈과 문화를 제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둥은 로마의 코린트 양식이되, 기둥이 떠받친 형상은 이집트 이시스 여신과 스핑크스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양식, 그리스·로마식 건축이 모두 페트라에 있다. 그 도시를 나바테안은 렉무(Rek Mu)라 불렀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진 뒤 그리스인들은 페트라(Petra)라 불렀다. '바위'라는 뜻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어원이 바로 페트라다.
꿈의 흔적을 남긴 나바테안족의 기원은 모호하다. 중동 사막지대 유목민이라 추정할 뿐이다. 페트라는 당시 주요 동서 무역로 중 하나였던 '왕의 대로' 길목에 자리했고, 나바테안족은 이를 장악해 기원전 2세기부터 20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무역로가 향후 북쪽 다마스커스로 옮겨가며 페트라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1000년 가까이 지난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버크하르트에게 발견되며 서방세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숱한 이를 매혹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3'와 '트랜스포머2'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나바테안족의 도시 설계는 색다르다. 알 카즈나를 필두로 드넓은 분지 지형에 닿기까지, 도시를 감싼 절벽은 사암을 파낸 무덤으로 빼곡하다. 그 안쪽으로 시장터와 교회, 원형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공영역이 있다. 죽은 이가 산 자를 감싸는 형식이다. 이를 관통하는 길은 서쪽, 앗데이르(Ad-Dayr·수도원)에서 마감한다.
알 카즈나를 닮은 거대유적 수도원은 높다. 가파른 벼랑길을 40분 이상 올라야 마주칠 수 있는 그곳에 선 경계 밖으로 아라바 광야가 내려다보인다. 오르는 길에 드문드문 선 이정표는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전망대."
동쪽 협곡에서 서쪽 수도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꿈이 쌓은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무덤은 나바테안족의 것이요, 원형극장은 로마 시대의 흔적, 극장 맞은편 교회는 비잔틴 형식이다. 이 풍경은 어렴풋하다. 신의 꿈이 인간이 쌓은 꿈의 흔적을 깎아낸 탓이다. 1000년 넘게 지속한 풍화와 간헐적인 지진은 인간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냈다. 교회는 터만 남았고 무덤에 새겨졌을 정교한 문양은 지워지고 없다.
신의 꿈이 인간의 꿈을 지워낼 때, 신화의 시간은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페트라에서 그 시간은 지금도 여전하다. 유적 사이사이를 말과 낙타로 누비는 민족, 양떼 몰며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는 민족, 정주 대신 이주를 고집하는 민족, 베두인족이 페트라의 풍경을 지키고 있어서다.
◆여행수첩
◆환율 :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가는 길
①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10만원 추가 시 두바이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www.emirates.com/kr, (02)2022-8400 ② 암만~페트라: 육로로 3시간 소요. 암만 공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암만 시내에 있는 압달리(Abdali) 버스 정류장으로 간 뒤 'JETT'라는 국영 관광버스를 탄다. 매일 오전 6시 30분 출발. 페트라에서는 오후 5시 출발. 편도 8JOD. www.jett.com.jo ③ 길이 쉬워 차를 빌리는 것도 방법.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공항에서 나와 '아카바(Aqaba)' 방향으로 사막대로를 타고 가다 '페트라(Petra)' 이정표가 보이면 그 방향을 따른다.
◆입국비자 :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페트라 정보① 페트라 입장료: 10월까지 하루용 33JD, 이틀용 38JOD. 11월부터 각각 50JOD, 55JOD로 오른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이틀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② 묵을 곳: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가 페트라 유적지와 가깝다. www.movenpick-hotels.com 유적지에서 15분쯤 걸으면 페트라 시내다. 여기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20JOD부터. www.tripadvisor.com, www.activehotels.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페트라(Petra)'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여행사에서 '만실(滿室)'이라는 호텔도 인터넷을 통하면 방이 많다.◆여행 상품: 롯데관광에서 페트라를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주요 연락처: 요르단 관광청 www.mota.gov.jo +962-6-4603360, 요르단 명예영사관 (02)3701-8474
`불가사의' 페트라 입장료 14만원 `헉'
▲ 요르단 남서쪽에 있는 페트라는 나바테아 왕국시절인 기원전 2세기부터 200년 동안 번영했던 도시로 기암절벽을 깎아 만든 4천여 곳의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바위와 모래 색깔 때문에 `장밋빛 붉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배'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페트라의 알 카즈네 신전. /연합뉴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요르단의 고대 도시 ‘페트라’ 입장료가 이달부터 최대 14만원으로 올라 외국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요르단 남서쪽에 있는 페트라는 나바테아 왕국시절인 기원전 2세기부터 200년 동안 번영했던 도시로 기암절벽을 깎아 만든 4천여 곳의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바위와 모래 색깔 때문에 ‘장밋빛 붉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17일 페트라 개발관광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외국인의 페트라 하루 입장료가 50JD(요르단 디나르.8만원) 또는 90JD(14만원)로 인상된 반면 자국민 입장료는 1JD(1천600원)로 동결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입장료는 21JD(3만4천원)였으나 올해 1월1일과 3월1일, 이달 1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특히 당일치기로 요르단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장료는 90JD, 하룻밤 이상 요르단에 머무는 외국인의 요금은 50JD로 나뉘었다.
요르단은 이집트, 시리아, 이스라엘,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올해 1∼9월 입국했다가 하루 만에 관광을 마치고 출국한 당일치기 관광객의 수가 전체 관광객의 45%인 290만명에 이른다. 입장료 인상에도 대부분의 요르단 관광객은 페트라를 보러 왔기에 올해 상반기 페트라 입장객은 작년 동기간 대비 42% 늘어난 46만2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상반기 페트라 입장료 수입은 910만JD(145억원)를 기록, 작년 동기간 수입 620만JD(99억원)와 비교해 46%나 증가했다. 과거 페트라의 입장료는 외국인도 1JD였으나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1989년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배’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90년대 초 20JD로 외국인 이중요금제가 도입됐고, 2000년대 들어 21JD로 올랐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요르단의 고대 도시 `페트라' 입장료가 이달부터 최대 14만원으로 올라 외국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17일 페트라 개발관광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외국인의 페트라 하루 입장료가 50JD(요르단 디나르.8만원) 또는 90JD(14만원)로 인상된 반면 자국민 입장료는 1JD(1천600원)로 동결됐다. 당일치기로 요르단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장료는 90JD, 하룻밤 이상 요르단에 머무는 외국인의 요금은 50JD로 나뉜 것이 다. /연합뉴스
요르단 정부는 2004년 이라크전으로 관광산업이 냉각되자 입장료를 11JD로 낮췄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보고 이듬해 다시 21JD로 올려 작년까지 유지했다. 관광 당국은 작년 12월 “서비스 질을 높이고, 외국 관광객의 요르단 체류시간 연장을 유도하도록 새로운 요금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라며 “페트라 입구부터 알카즈네 신전까지 말 타는 비용과 안내서가 입장료에 포함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올려도 너무 올렸다’라는 게 관광객들의 주된 반응이다. 배낭 여행객 이모(23)씨는 “외국인 이중요금제까지는 이해하지만, 세상 어느 유적지 입장료가 14만원까지 하느냐”며 “페트라 하나 때문에 요르단까지 온 관광객들에게 ‘돈 있으면 보고 없으면 보지 마라’는 식”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출처> 2010. 10. 28 / 조선닷컴
'해외여행 및 정보 > - 요르단, 중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사막 위 신기루와 같은 도시 (0) | 2019.04.04 |
---|---|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중동 신화(神話)를 이끈 환상의 도시 (0) | 2019.04.04 |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가나안 입성으로 출애굽 여정의 순례를 마치다 (0) | 2009.08.27 |
요르단 느보산,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세가 눈을 감다. (0) | 2009.08.27 |
메드바 성죠지교회,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로 유명 (0) | 2009.08.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