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53) : 메드바 성죠지교회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로 유명
- 메드바는 비잔틴 시대 요르단 기독교 최대의 도시 -
글·사진 남상학
* 메드바(마다바) 성 죠지교회 *
‘물이 많은 시내’이라는 뜻을 지닌 메드바는 암만에서 30㎞, 카락에서 북쪽으로 약 85㎞ 떨어진 지금의 마다바(Madaba) 지역이다. 요르단 고원에 있는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령당한 모압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한 후(민21:30)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13:9,16).
다윗 때에는 암몬인 손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대상19:7). 모압 비석에 의하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은 메드바를 다시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아들 대까지 40여 년 간 이곳에서 거했다. 그러나 메사에 의해 이곳은 다시 정복당했다. 그 뒤에도 이 땅의 소유주는 계속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 후 106년 메드바는 아라비아 지방의 도시로 편입되면서 기독교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의 박해 때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 당하기도 하였고, 기원 후 451년의 칼케톤(Chalcedon) 회의록에 근거하여 메드바는 보스트라의 대주교 밑에 주교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비잔틴 시대에 메드바는 기독교의 한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그러나 기원 후 614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에 의해 메드바의 비잔틴 도시는 파괴되었고, 8세기 중반에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880년 초에 이르러, '카락'(Kerak)에서 그 곳에 사는 기독교인들과 회교도들이 종교 문제로 충돌하게 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크리스천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서 카락의 크리스천들은 황급히 당시 통치자 오토만 터키 당국에 그들이 이주해서 살 수 있는 땅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이러한 청원에 따라, 오토만 제국은 카락에서 북쪽으로 약 85㎞ 떨어진 곳에 있는 마다바의 땅을 지정해 주었다. 오토만 제국이 오갈 데 없는 카락의 크리스천들에게 과거 크리스천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마다바 지역을 배정해 줌으로서 이곳은 다시 기독교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터어키 당국은 이주자들로 하여금 집은 자유롭게 짓되, 교회만은 과거 비잔틴 시대 교회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만 지을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메드바로 이주한 2천여 크리스천들은 무너진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위에 새 교회를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1887년 마다바에 머물던 라틴 선교사 슈마허(G.Schumacher)가 처음으로 도시의 주요 흔적을 찾아냈으며, 1897년에 메드바 지도가 클레오파스 키킬리디스(Cleopas Kikilidis) 신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지금의 마다바는 우리나리의 작은 읍 정도의 마을인데, 이 마을 북쪽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세운 성 죠지교회가 있다. 이 성 죠지교회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1896년에 발견된 모자이크 자도를 바닥으로 해서 성 조지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원래 이 모자이크 지도는 고대 근동지역의 지도로서 가로 5.6m, 세로 15.7m의 대형으로 약 30평의 바닥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그간 3분의 2가량이 훼손, 지금은 10평정도 분량만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예루살렘 부분은 동편 끝의 약간만 제외하면 잘 보존되어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관련 성경 : 민 21:30, 수 13:9, 수 13:16, 대상 19:7, 사 15:2), 이 모자이크 지도는 북쪽의 레바논의 시돈과 두로, 남쪽으로는 이집트의 델타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지도상에는 많은 고대 유적지들과 교회가 나타나 있으며, 예루살렘 지역의 지도는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성 죠지 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에는 기원 후 542년 11월 20일에 봉헌된 예루살렘의 네아 교회가 그려져 있어 유스틴 황제(기원후 527-565)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볼 때 마다바 성 조지 교회의 지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가장 오래된 지도에 해당한다.
마다바 지도는 현대의 지도 그리기 기법에 기준하면 사실적 균형미는 많이 떨어지지만, 성서지리학의 연구결과 이 지도의 정확성은 더욱 확증되고 있어서 이 지도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고고 지리학적, 지형학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모자이크 예술의 전성기는 로마시대와 비잔틴시대였다. 이때 지은 저택이나 교회 건물의 바닥은 거의 예외 없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모자이크 작품은 자연석을 소재로 삼아 만들었기 때문에 견고할뿐더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비잔틴 시대 마다바는 요단강 동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번성하는 기독교 도시가 되었고 이때 이 곳은 모자이크 예술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모자이크 장인들이 모여들면서 이 곳은 모자이크 도시로 비잔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독교 도시였던 마다바에는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교회의 바닥에는 모자이크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남겨졌다. 그들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 다.
* 메드바(마다바)는 상점들에도 모자이크 제품으로 가득차 있다.
* 성 죠지교회 모습
* 교회 내부
* 교회 바닥에 모자이크 지도가 선명하다.
* 교회 내부에 걸린 성화도 모자이크 작품이 많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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