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창작 아케이드 & 황학동 벼룩시장
북적북적 장터 아래 뚝딱뚝딱 예술마을
황희연 여행 칼럼니스트
서울 중구 황학동 119번지. 중앙시장 지하쇼핑센터는 윗마을과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탄성이 절로 새어 나오는 기상천외한 공간이다. 윗마을이 1970~80년대 사람 냄새 가득한 시골 장터 분위기라면, 아랫마을은 젊고 세련된 활기가 묻어나는 서울 최고의 '디자인 구역(design district)'이다.
1971년 문을 연 이래 40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신당 지하쇼핑센터. 한때 이불과 한복, 각종 주방용품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이곳은 대형 상가들이 주변 상권을 장악하면서 하나 둘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90개에 달했던 상점은 어느덧 이빨 빠진 노인네처럼 빈 점포만 52개를 품게 됐다.
부수고 밀어내기도 뭣하고 그대로 방치하기도 어려운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 그렇게 생명을 다하는 줄 알았던 한물간 쇼핑센터는 의외로 '별것 아닌' 발상의 전환 덕에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와 상인들이 힘을 합해 낡고 경쟁력 없는 상가를 젊은 공예 작가들의 '예술 공방'으로 바꿔보기로 한 것. 흰 페인트를 칠하고 나무를 덧입히고 개보수를 거듭한 지 몇 달째. 2009년 10월, 신당 지하쇼핑센터는 40여개의 개인 공방을 지닌 '신당 창작 아케이드'로 거듭났다.
저비용으로 장기임대를 해준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실력 있는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작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서자 원래 있는 상가들은 활기를 되찾았다. 상가 초입에 있는 횟집들은 예쁜 메뉴판으로 바꿔 달거나 물고기 벽화를 그려 넣은 '예술 횟집'이 되었다. 상가는 살아났고 작가들은 맘 편히 일할 공간을 얻었다.
입주 작가들의 활동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도자기, 칠보, 북아트, 전통자수, 지점토, 유리공예, 사진, 일러스트, 미디어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공방의 넓은 창문 사이로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문을 꽁꽁 걸어놓은 폐쇄적인 공방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작가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직접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해준다.
2010년 7월에는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아트 마켓 겸 카페 '도시樂'도 문을 열었다. 판매 중인 상품 중에는 예쁜 맥주병으로 만든 시계도 있고, 햄버거 모양으로 장식된 컵받침도 있다. 하나같이 작가의 개성이 상큼하게 묻어나오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이다.
▲ 창작의 열정이 살아 있는 곳, 신당 창작 아케이드.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부터 5시까지 동남아 저녁 하늘이나 파란 바다색을 닮은 무알코올 칵테일을 만들어 나누어준다. 자유기부 형태의 금고가 마련돼 있지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다.
무료 칵테일 음료를 마시며 아트 마켓을 구경하거나 바로 앞에 마련된 갤러리에서 공예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신당창작 아케이드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전시 작품은 모두 입주 작가들이 직접 창작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보고 싶다면, 매주 토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체험 공방에 직접 참여하면 된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체험 공방에 참여하는 것 역시 모두 무료다.
덕분에 신당 창작 아케이드를 방문하면 유리, 금속, 흙, 종이 등 세상천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재료가 하나의 물건으로 자라나는 극적인 '탄생의 순간'을 원 없이 지켜볼 수 있다.
'중고품들의 무덤'처럼 여겨져 온 황학동 한쪽에, 이처럼 젊고 풋풋한 '물건들의 인큐베이터'가 생겼다는 사실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아케이드 옆에 붙어 있는, 누군가 쓰다 버린 고물들이 전시된 황학동 벼룩시장은 신당 창작 아케이드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신당 창작 아케이드가 물건들이 태어난 공간이라면, 황학동 벼룩시장은 생명을 다한 물건들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간신히 마지막 생명을 이어가는 곳이다. 중앙시장 반대편 입구에서 200~300m 거리에 있는 황학동 벼룩시장은 그 꼬리가 지하철 동묘역까지 길게 뻗어 있다. 고물상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종종걸음으로 헤매다 보면 간간이 운치 있는 레밍턴 타자기도 눈에 띄고, 미군용품이나 수입용품, 각종 모형 장난감, 카메라용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 우리 집에도 있었던, 어쩌면 지금도 창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낡은 물건들이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신당 창작 아케이드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여가를 즐기러 온 노인네들은 아침 일찍부터 노점 앞에 서서 닭똥집 하나에 소주 한잔을 거나하게 들이켠다. 몇십 년간 골목을 지켜온 수리공 아저씨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장 난 TV로 쌓아올린 '자기만의 성'에 갇혀 물건들을 고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미 생명이 다한 물건들을 고치는 상인들의 얼굴에서도 공방의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이 묻어 나온다. 그래서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은 비로소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다.
신당 창작 아케이드가 창작의 열정이 살아 있는 곳이라면, 황학동 벼룩시장은 재생의 열정이 피어오르는 곳이다. 나이는 달라도, 목적은 제각각이라도, 열정이 흐르는 곳에는 늘 에너지가 넘친다. 삶이 무료하다면 황학동으로 달려가 물건들이 나고 지는 풍경을 목도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최소한, 무언가 하고 싶은 의지만큼은 실컷 충전할 수 있다.
찾아가는 법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와 기업은행 쪽으로 좌회전한다. 이 길을 따라 100m가량 걸어가면 중앙시장 입구가 나온다. 중앙시장 입구 오른쪽에 '신당 창작 아케이드'라는 이름의 노란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을 따라 지하로 쭉 내려가면 회 센터와 함께 '신당 창작 아케이드'가 펼쳐진다. 긴 지하 통로를 따라 작가들의 공방을 구경한 후 마지막 출입구로 나오면 중앙시장 반대편 입구다. 입구에서 좌회전한 후 황학동 주방용품 거리를 거닐다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황학동 벼룩시장이 나온다. 고장 난 시계나 라디오부터 손때 묻은 LP판에 이르기까지, 생활 골동품들이 한 자리에 널려 있는 흥미로운 노점 거리다.
<출처> 2010. 11. 10 / 조선닷컴
'국내여행기 및 정보 >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악산, 600년 역사 성곽따라 ‘조선의 맥’을 밟다 (0) | 2011.08.10 |
---|---|
도봉산 둘레길 : 걸으면 길이요, 오르면 봉우리 (0) | 2011.07.30 |
4월, 남산 꽃길을 걷다. (0) | 2010.04.30 |
한옥 정취 살아있는 북촌 한옥마을, 100년 전 그대로 남아줘서 고마워 (0) | 2010.04.22 |
뉴욕 센트럴파크와 서울의 남산을 비교하면 (0) | 2010.04.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