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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연시(戀詩) 따라 걷는 통영―통영을 사랑한 시인의 길

by 혜강(惠江) 2010. 11. 10.

 

                            연시(戀詩) 따라 걷는 통영

 

통영을 사랑한 시인의 길, 백석·유치환·정지용·전혁림을 유혹한 곳  

 

 

                        통영(경남)=글·어수웅 기자 /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난이라는 이는 /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중략)
     샘터엔 오구작작 /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중략)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 한산도 바다에 //
      뱃사공이 되여가며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 내 사람을 생각한다
 

                                            <'통영2' 부분>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1902~1950)이 해방 직후 통영을 둘러본 뒤 지른 일성(一聲)입니다. 지난 2월 말 통영 미륵산 신선대 전망대에는 이 문장을 들머리로 하는 정지용 시비가 제막됐죠. 일순간 시인의 직무유기라는 불경스러운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곧 지용의 통영에 대한 연시(戀詩)였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산양관광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잠시 달리면 통영
           연명마을 포구가 나온다. 코발트블루와 오렌지, 연둣빛과 자줏빛 지붕이 통
           영의 하늘, 바다와 내키는 대로 어우러진다. 이 색의 조화 앞에서, 시인 정지
           용은 또 뭐라고 감탄했을 것인가.


 

  칼(刀)로 통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땅이니까요. 현(絃)으로 통영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윤이상(1917~1995)의 삶을 기려 지난 3월 개관한 도천테마공원에서는 이 세계적인 작곡가의 손때 묻은 첼로를 만날 수 있죠. 나전칠기의 고장인 만큼, 자개로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2010년 5월, 주말매거진팀은 시(詩)로 통영을 걸었습니다. 충렬사 앞 돌계단에 걸터앉아 사랑하는 여인의 빨래를 훔쳐봤던 백석(1912~1995)의 열정과 중앙우체국에 앉아 5000통의 연서를 써보낸 유치환(1908~1967)의 집착, 그리고 "강구안을 채리보모 분이 써언하게 가라앉고 그라는기라"(통영항을 보면 화가 시원하게 가라앉는다)고 외친 동피랑(동쪽 벼랑) 필부필부의 통영 사투리에 반한 까닭이지요. 통영을 사랑했던 시인들과 통영에서 사랑에 실패했던 시인들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연시를 따라 걷는 일박이일, 통영입니다.

                               
                              

 

 

 

◆첫째 날―시인 백석, 통영 여인을 사랑하다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 돌계단에 걸터앉아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백석(白石)을 떠올린다. 75년 전, 시인도 바로 이 차가운 계단에 주저앉아 그녀를 보고 있었지.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시인은 회사 동료의 결혼식 자리에서 첫눈에 반한 통영 여인 때문에 천릿길을 세 차례나 내달렸다. 충렬사 길 건너 명정동에 세운 백석의 시비.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중략)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통영2' 부분)


  반질반질해진 시비 귀퉁이를 어루만지며, 시인의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에 가슴 저리다. 기생이었던 백석 모친의 신분이 문제되어 결국은 맺어지지 못했다던가. 시비 옆에는 두 개의 우물이 여전히 시인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다. 해(日)의 우물과 달(月)의 우물, 더해 명(明)이란 이름을 지니게 된 우물(井). 명정골 빨래터에서 난이라 불린 통영 처녀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당대 최고의 천재이자 미남으로 불렸던 총각 시인을 무릎 꿇린 것은 통영 바다의 아름다움이었을까, 아니면 여인의 아름다움이었을까.

  서호시장 앞으로 내려와 코발트블루 바다를 에둘러 문화동 중앙우체국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사랑이 그곳에 있다. 잘 알려졌듯, 이영도 여사와 5000통의 편지로 남았던 청마(靑馬) 유치환의 사랑이다. 하지만 청마의 문학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던 건, 역시 사랑의 희망적 로맨스보다 그 이면의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우체통 옆 시비의 '행복'은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며 새로운 열정에 탐닉하는 청마를 노래하지만, 청마 흉상과 함께 놓인 시비 '향수'에는 분노한 시인의 절규가 서려 있다. '고향 사람들 나의 꿈을 비웃고/내 그를 증오하야 폐리같이 버리었나니'.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헌신(폐리)처럼 고향을 버렸다고 썼지만, 사실 시인을 쫓아낸 건 예(禮)의 도시 통영이었으니. 본부인이 몇십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다른 여인에게 연서(戀書)를 보내는 유부남을 이 아름다운 도시가 어찌 응원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이 원래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한 사람은 18세기의 영국 비평가 새뮤얼 존슨이었다. 보수적인 도시, 통영의 사람들은 그때 알았을까. 그 불륜의 연애사가 지금 사람들이 통영을 찾도록 하는 또 하나의 문화사로 풍성해졌다는 것을.

※통영의 문화예술 발자취를 따라 쉬엄쉬엄 걸으니 모두 5시간이 걸렸다. 총 이동 거리는 10㎞였지만, 사실은 모두 반경 1㎞ 안에 있는 명소이자 유적들이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시조시인 김상옥, 대여 김춘수, 작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작가들이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나고 자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예의 도시.

 

                                             전혁림 미술관


◆둘째 날―코발트블루 바다에 무릎 꿇은 시인들

  해무(海霧)가 졌다 폈다를 반복했던 날, 미륵산 정상에 올랐다. 전날은 온전히 허파를 엔진 삼은 도보 순례였지만, 오늘은 기계 엔진의 도움을 받는다. 바로 케이블카다. 2년 전 첫 운항을 시작해 벌써 탑승객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국내 최장(1975m) 노선이다.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10분이니, 시속 12㎞. 속도감과 아찔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공식 명칭은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055-649-3804). 왕복 9000원이 그다지 아깝지 않은 흥미로운 탑승이다. 케이블카가 내려놓은 곳은 미륵산의 9부 능선. 이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나무 데크가 놓여 있다. 안내판에는 정상까지 왕복 30분 정도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건 앞사람 꽁무니와 뒤통수만 보고 내려왔을 때의 경우. 시인처럼 여유 있게 풍광 감상하고 내려오니 2시간이 걸렸다.


  신선대 전망대에 이르니 그 이름난 정지용의 기행문 '통영 5'가 시비(詩碑)의 모습으로 통영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첫 문장을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했던 시인은 "우리가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俯瞰)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만중 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부연한다. 첩첩 구름 덮인 산속의 예로부터 비슷한 예가 없던 아름다움이라. 호수 같은 바다에 한산도, 추봉도, 소물매도, 비진도가 호위무사처럼 도열해 있다.

  461m 정상의 미륵산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 장차 미륵불 강림하실 곳이라는 의미다. 습기 많은 5월, 날벌레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가며 도착한 정상에서, 지용의 표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미륵산 내려오는 길, 통영의 아름다움에 무릎 꿇은 또 하나의 사례를 만났다. 봉평동 골목길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전혁림 미술관(사진·055-645-7349)이다. "통영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며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코발트블루의 화가 전혁림(1915~2010). 석탄일 전날 미술관을 찾았을 때 아들인 전영근(54) 화백은 "올 초부터 자리에 누워계시다"고 근심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25일 노화백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술에는 선생이 필요 없어. 자기 혼자 배우는 거라고!"라며 일갈했던 이 '색채의 마술사'가 눈에 선하다.

  미술관을 찾았던 날, 2층 전시실에는 1995년 당시 팔순연에 참석했던 고향 친구 김춘수 시인이 화백에게 바친 헌시가 있었다. '전혁림 화백에게. 전 화백, 당신 얼굴에는 웃니만 하나 남고, 당신 부인께서는 위벽이 하루하루 헐리고 있지만, 코발트블루, 이승의 더없이 살찐 여름 하늘이 당신의 지붕 위에 있었네'. 그리고 1층 전시실에서 노 화백이 평생을 그려온 코발트블루, 통영항 앞바다 풍경의 2009년 작을 발견했다. 아흔넷의 나이에 완성한 유작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무엇인가. 노 화백의 무릎을 꿇게 만든 것은. 5월말에 벌써 살찐 통영의 하늘이 아득하다. 전혁림 화백이여, 부디 고이 잠드소서.

 

 

비경 속에서 피어난 꽃, 통영 '굴'

 

       

 

 '동양의 나폴리' 좀 거창한 별명이 아닐까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통영에 다다르면 나폴리라는 수식어는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통영 앞바다에 항상 가득한 굴 양식장은 고유의 비경에 또 하나의 장식을 더한다.

 

 

 

    

 

                                          사진제공 : 통영시관광과

 

 

굴 풍년, 영양 풍년



  가을이 되면 통영 앞바다는 유난히 풍요로워진다. 그 이유는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꿀, 아니 굴이 한창 수확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꿀도 틀린 말은 아니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고 불러웠다.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 꿀처럼 달고 맛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추측이야 맞건 틀리건, 영양학적 가치로만 따져도 굴은 꿀만큼이나 소중한 식재료다. 과거를 한참 거슬러올라가도 굴은 영양소의 보고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굴이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이유도 단백질 함량이 우유와 못지않게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먹으면 향기롭고 보익하며 기부의 살갗을 가늘게 하고 얼굴색을 아름답게 하니 바다 속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굴은 다른 패류와는 달리 단백질 함량이 높을 뿐 아니라 소화 흡수율이 높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다.

  서양에서 굴은 'Eat oysters, love longer(굴을 먹어라, 보다 오래 사랑하리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산 정력제로 통한다. 실제 굴에는 글리코겐과 아연이 많은데, 글리코겐은 에너지의 원천이며 아연은 성호르몬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속담이 틀린 말은 아니다.

                                     

                                 

 

 

  굴은 크게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에는 채묘와 단련, 수하, 양성, 채취라는 단계가 있다. 어린 유생굴을 받는 채묘 단계를 거쳐 병해 예방과 굴의 성장을 도모하는 단련기를 지낸다. 이 중 우량한 것들만 20~25개씩 어장으로 이동해 밧줄을 수면으로부터 연달아 늘어뜨리는 연승수하식으로 양식장에 시설된다. 바로 이 단계에서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양식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거래되는 상당 부분의 굴이 통영산이다. 예전에는 전라도와 동해 남부에서도 굴 양식이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통영과 여수에서 난다. 특히 통영 앞바다는 굴 양식장으로 가득하며 이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굴 채취시기가 되면 통영에서는 항상 굴 익는 냄새로 가득하다. 집집마다 모닥불 위에서 굴을 굽는데 그 소리는 냄새만큼이나 매혹적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다. 흰 쌀밥에 알찬 굴을 넣고 만든 굴밥과 무를 썰어 넣어 굴과 함께 끓여낸 시원한 굴국은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바다의 향을 선사한다. 이러한 풍경은 가을을 지나 겨울,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추울 때의 굴이 제 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굴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가을과 겨울이다. 그러니 통영 굴의 제철이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메뷰 마저 느끼게 하는 비경

  통영은 갖가지 산해진미가 가득한 곳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1968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로도 고유의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생긴 침식 절벽은 통영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매물도는 작은 섬이지만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하얀 등대는 소매물도만의 자랑이다. 푸르른 잡초로 가득한 작은 바위섬은 전형적인 한국의 섬마을에서 비껴난 근사한 경관을 선사한다. 가보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매물도'라는 이름은 인근 대항, 당금 부락에서 매물 즉 메밀을 많이 생산하였다 하여 일컬어진 지명인데, 소매물도는 매물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이라 하여 그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소매물도로 가기 위해서는 통영에서 여객터미널로 가서 배를 타야 한다.

  여느 바다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통영을 찾을 수는 있으나 도착한 이후에는 서해나 동해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영만의 비경으로 절대적인 미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굴이 항상 자라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대륙 끝에서 만난 아름답고 푸른 바다. 그 곳엔 언제나 굴이 익고 있다.

굴 전문점 ‘향토집’

  통영시 무전동에 위치한 '향토집'에 가면 굴과 관련된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사계절 내내 통영산 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굴찜과 굴구이, 굴튀김, 굴회 등 단품 요리 뿐 아니라 향토풀코스와 같은 코스로 굴을 즐기는 메뉴도 있다. 큼지막한 생굴을 그대로 접시에 담아 초장과 함께 내 놓는 굴회는 통영이 아니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다. 이곳의 굴전 또한 일품으로 알려져 향토집에 들른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주문하는 베스트셀러 메뉴가 됐다.

문의 055-643-4808

가는법 : 대전진주간고속도로->북통영IC->관문사거리에서 좌회전->롯데마트 앞에서 우회전(경남 통영시 무전동 1061-10)

 

주변 볼거리


미륵도관광특구 한산도·비진도·매물도·거제·해금강을 운항하는 유람선터미널과 각종 수상스포츠를 위한 부대시설·숙박·위락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문의 통영관광안내소 055-640-5245)

 

 

 

<출처> 2010. 11. 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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