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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가을에 만나는 진해, 시루봉 오르는 之자 길 야생차 밭… 반백년 넘은 다방

by 혜강(惠江) 2010. 10. 3.

 

진해의 가을

 

‘벚꽃 화장’ 지운 진해의 속살

 

시루봉 오르는 之자형 길 야생차 밭… 반백년 넘은 다방까지 ‘독특한 향기’

 

 

박 경 일  기 자

 

 

 

▲ 산 정상에 집채만 한 바위를 덜렁 얹어놓은 것 같은 모양의 시루봉. 독특한 모습 때문인지 시루봉에서는 신라 때부터 국태민안을 비는 고사가 치러졌다.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제가 올려졌다고도 전해진다. 시루봉에 오르면 진해 시가지와 남쪽 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년 365일 중에서 단 열흘 동안만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도시가 있습니다. 나머지 355일에는 관광객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경남 진해입니다. 진해는 두말할 필요없이 우리 땅에서 으뜸가는 ‘벚꽃 여행지’입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열흘 동안의 진해는 군항제의 벚꽃놀이 인파들로 들썩거립니다. 그러나 벚꽃이 분분히 지고나면 도시는 거짓말처럼 나른한 중소도시의 일상으로 되돌아갑니다.

 봄바람에 일제히 벚꽃이 화다닥 피어날 때의 항구도시 진해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나위 없겠지요. 남쪽 바다를 배경으로 35만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연분홍 벚꽃을 화려하게 두를 무렵의 진해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진해에는 벚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진해가 지니고 있는 진면목을 화려한 벚꽃의 아름다움이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진해를 굽어보는 웅산자락에 솟은 시루봉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안민고개에서 길게 이어진 흙길 산책로에 올라 남해바다를 보며 차밭 오솔길과 편백 숲을 걸을 때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낡은 건물과 오래된 다방에서 근대의 추억들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습니다.

 진해가 특별한 것은 다른 도시나 여행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풍경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산자락에 우뚝 솟은 암석으로 이뤄진 시루봉이야말로 다른 어디서도 비슷한 경관을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입니다. 그 봉우리로 오르는 길에 길게 펼쳐진 야생차밭도 그렇고, 차밭에 촘촘히 들어선 편백나무 숲도 다른 곳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진해의 한복판에서는 6·25전쟁 직후에 문을 열었다는 중국집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장면을 만들어내고 있고, 전란 후에 그 지역 지식인들의 사랑방이었다는 다방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일제강점기이던 1915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진해의 명물과자 ‘진해콩’이 얼추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웅천의 작은 마을인 소사리에 들어선 소박한 근대사 박물관인 ‘김씨박물관’도 독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진해에는 벚꽃 피는 봄날이 아닌, 다른 계절에 찾아가 보아야 할 이유들로 가득하답니다. 이즈음도 나무랄 데 없지만, 가을이 더 깊어져 진해의 벚나무들이 노란색과 붉은색의 중간색조로 단풍이 물들어가는 무렵이라면 더 좋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벚꽃은 잊어라, 구석구석 옛것의 정취

 

 

▲ 진해구 소사동의 ‘김씨박물관’으로 드는 골목 초입.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쯤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모습이다. ‘개업 1934년’이란 글귀가 붙은 ‘예술사진관’은 박물관을 운영하는 ‘고물 수집가’ 김현철(56)씨의 큰아버지가 진해에서 실제로 운영했던 사진관을 기억을 되살려 복원한 것이다.

 

 

▲ 사진 왼쪽은 6·25전쟁 이후 일대 지식인들이 모여들던 ‘흑백다방’. 화가 고 유택열 화백이 운영했으나 지금은 딸 경아(46)씨가 피아노교습소와 주말마다 문을 여는 음악감상실로 맥을 잇고 있다. 오른쪽은 진해의 일제강점기 장옥거리 모습. 새로 지은 번듯한 아파트를 마주보고 있다.

 

 

 이제 ‘진해시’는 없다. 이웃한 ‘마산시’도 없다. 이즈음 진해나 마산을 찾아가면 이정표 앞에서 어리둥절해지게 된다. 지난 7월1일 행정구역 통합으로 진해와 마산이 모두 ‘통합 창원시’가 된 탓이다. 진해시는 ‘창원시 진해구’가 됐고, 마산은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가 됐다. 일찌감치 군항이 들어서 번성했던 진해시와 항만 공업도시로 이름을 날렸던 마산시가 창원시의 일개 구(區)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진해시’나 ‘진해시청’이란 이정표는 모두 치워지고 ‘진해구’ ‘진해구청’이란 이정표가 새로 세워졌다.

  아무튼 진해시, 아니 창원시 진해구는 내로라하는 ‘봄 여행지’다. 항구도시 진해에 심어진 35만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틔우는 봄날의 진해는 ‘봄의 화려함’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군항제가 열릴 무렵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 진해가 화려한 꽃구름을 둘러치고 있는 모습이라니…. ‘진해’를 입에 올리면 그 뒤에 ‘군항제’가 자연스럽게 달라붙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하지만 진해는 벚꽃과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군항제의 떠들썩함만으로 기억되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운 곳이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조용한 항구 도시로 되돌아간 이후의 고즈넉함만으로도 진해는 독특하다. 게다가 진해는 봄날의 꽃구경에만 정신이 팔린 관광객들이 놓친 곳들이 도처에 있다. 외지인들이 미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곳이 태반이란 얘기다. 그렇게 진해에 간다. 남쪽바다의 쪽빛이 더욱 짙어지는 가을의 초입에, 진해에 간다.

  진해에서 가장 독특한 풍경이라면 도시 뒤편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장복산(582m)의 길고 웅장한 능선이 닿는 웅산(703m)의 정상인 시루봉을 꼽을 수 있다. 내륙의 산에서는 700m 남짓한 해발고도가 특별하달 것이 없지만, 바다를 끼고 해발고도 0m에서 시작하는 산에서 그 정도의 해발고도만으로도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일까.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에도 웅산의 정상에는 바다 쪽으로 타고 넘는 구름이 척척 걸려 있기 일쑤다.

  시루봉은 이름에서 짐작되듯 시루 모양의 암봉으로 된 봉우리다. 자은동 삼성아파트 앞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진초록의 차밭과 빽빽한 편백숲을 차례로 지나다가 정상쯤에서 돌연 숲이 사라지며 관목들이 늘어선 초지가 된다. 그 능선의 정상에는 누가 얹어놓은 듯 시루 모양을 빼다박은 암봉이 솟아 있다. 어찌나 독특한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암봉의 뿌리까지 오르는 ‘갈 지(之)’자 모양의 나무덱까지 그 독특함에 가세한다.

  시루봉에 오르면 항구도시 진해와 그 앞의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야각도 180도로 펼쳐지는 바다와 항구의 풍경이다. 나무덱에 기대서서 항구도시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쪽빛 ‘고향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아쉬움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남쪽바다의 쪽빛 색감을 보고싶다면 오전 나절에,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시루봉의 모습을 올려다보겠다면 오후에 올라야 한다.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시루봉에서 마주하는 최고의 풍경이라면 아마도 장복산의 서쪽 자락을 타고 넘는 해가 온통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풍경이리라. 진해구청의 민원인 주차장에서 바라본 낙조풍경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황홀했으니…. 등산로 초입부터 시루봉까지 거리는 3㎞ 남짓. 정상까지 다녀오는 데 3시간여가 걸리는데, 제법 가파른 구간이 있는데다 경치를 즐기면서 오른다면 1시간쯤을 더 잡아야 한다.

  진해구 소사동에는 시인 김달진의 생가에 세운 문학관이 있다. 그러나 돌담을 쌓고 초가로 지붕을 인 문학관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학관 옆에 들어선 ‘김씨박물관’이다. 말이 박물관이지 담도, 경계도 없다. 입장료도 물론 없다. 박물관 초입의 낡은 집 담을 헐어 만든 ‘예술사진관’이란 간판의 옛 사진관과 ‘부산 라듸오’란 간판의 옛 전파상 건물이 단박에 눈을 붙든다. ‘예술사진관’이란 간판 아래에는 ‘1934년 개업’이란 문구까지 써있고, 진열장에는 빛바랜 사진들과 고물 카메라, 오래된 필름들이 놓여 있다. ‘부산 라듸오’의 진열장에는 기억 속에 아득한 옛날 라디오들이 진열돼 있다. 길 안쪽에는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화를 보는 대형사진이 걸린 옛 만화방도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50년 전쯤으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이다. 잘 꾸며진 영화 세트장과는 달리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골목에 들여놓은 풍경이라 실감은 더하다. 골목 안쪽 옛날 영화 포스터가 나붙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김씨박물관’이 있고, 골목 건너편 집에는 ‘꽁트’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들어서 있다. 박물관에는 일제강점기 근대화 과정에서 생산된 온갖 ‘고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커피숍에는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옛 가수들의 낡은 레코드판들이 양철 장난감과 함께 진열돼 있다.

  이것들은 모두 ‘고물 수집가’인 김현철(56)씨가 자비를 털어 지난해 조성해놓은 것들이다. 젊은 시절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그가 16년 동안 전국을 돌며 모은 고물이며 온갖 신기한 잡동사니를 고향으로 돌아와 차려놓은 곳이다. 박물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도대체 어찌 구했을까 싶은 것들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1969년 박정희 대통령 신년사를 담은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제목의 대형 벽보나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에서 썼던 6개 중 하나라는 금전출납기 같은 것들이다.

  김씨박물관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인근 유치원생들의 단골 야외학습장소가 됐다. 박물관을 찾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옛 장난감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지만, 정작 전시물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은 유치원 교사들이다. 비록 박물관이라 이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규모도 작고 전시품도 그리 풍성하진 않지만, 김씨박물관 골목에 서면 옛 추억 속으로 저절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진해는 근대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오래된 도시들이 다 그렇듯 진해도 이즈음 새로 조성한 용원동 일대의 신도심 쪽으로 상권이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다. 이런 탓에 개항 이후부터 줄곧 중심 역할을 해 온 진해 구도심은 소외돼 나날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진해에 근대의 풍경이 아직 오롯이 살아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소외’ 때문이다.

  진해 구도심의 한복판에 ‘팔거리’가 있다.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길이 만나는 로터리다. 진해의 팔거리는 잔디가 심어진 광장 같은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의 차로들이 잘 정비돼 놓여 있다. 새로 설치된 모노레일을 타고 팔거리 우체국 안쪽의 제황산 공원의 진해탑에 올라보면 방사형으로 정비된 도시의 면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해의 근대의 공간은 모두 이 팔거리를 중심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가 위로 우뚝 솟은 중국풍의 팔각누각.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진 것이다. 이 누각의 건너편에는 6·25전쟁 직후인 1956년에 문을 연 중국집 ‘원해루’가 있다. 화교 1세대가 운영해온 이 집에는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다녀가기도 했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진해에서 군생활을 했던 해군이라면 누구나 외출이나 외박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자장면 한그릇을 먹는 곳이기도 했다.

  원해루 부근에는 서양화가 고(故) 유택열 화백이 운영하던 ‘흑백다방’이 있다. 1955년 문을 열어 전란 이후 진해 일대 지식인들의 사랑방이 됐던 곳이다. 비록 지금은 다방이 아닌 유 화백의 딸인 피아니스트 경아(46)씨가 주말마다 음악 감상회와 연주회를 여는 ‘문화공간’으로 남아 있지만, 모습만큼은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이밖에도 팔거리 일대에는 1912년 세워진 진해우체국이며, 같은 해에 지어진 일제 해군병원장 관사와 일제 장옥거리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내서분기점까지 내려간다.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으로 갈아타고 서마산 나들목으로 나와 진해방면으로 좌회전해 어린교 오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서 2번국도를 타고가면 진해다.

먹을 것

제황산공원 입구 부근의 사공추어탕(055-546-0655)이 알려진 맛집. 이동 롯데마트 인근의 동방횟집(055-545-0409)은 자연산회와 가오리조림이 유명한 곳이다. 진해에 갔다면 군것질거리로 ‘진해콩’을 놓치지 말자. 1915년부터 생산돼온 것이라는데 경화당제과에서 가내수공업형식으로 만들어낸다.

 

 

 

<출처> 2010. 9. 2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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