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진주‘유등축제’, 밤엔 등불…낮엔 꽃불…‘불타는 24시’

by 혜강(惠江) 2010. 10. 10.

 

진주‘유등축제’

밤엔 등불…낮엔 꽃불…‘불타는 24시’

 

진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 진양호반을 따라 도는 1049번 지방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드넓은 코스모스 꽃밭이 펼쳐진 내촌마을을 만난다. 내촌마을의 만개한 코스모스 꽃밭 뒤로는 호반의 대숲이 펼쳐지고, 그 뒤쪽은 맑은 물빛의 호수다. 코스모스와 대숲, 호수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가을풍경이 화사하다.

 

 

# 유등의 불빛, 진주 남강을 화려하게 수놓다

 

  지난 1일 오후. 진주성 너머로 해가 지고 곧 어둠이 내렸다. 남강변의 진주성곽과 촉석루를 밝힌 조명이 점점 또렷해질 무렵. 유등축제 개막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2, 1…. 밤하늘로 쏘아올린 화려한 폭죽이 꽃무늬를 그려내는 동안 남강에 띄워진 유등(流燈)에 일제히 불이 밝혀졌다. 진주교와 천수교를 건너서 남강변으로 밀려가던 인파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남강 위로 쏘아올린 불꽃 폭죽과 강물에 뜬 유등 불빛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남강에 띄운 각양각색의 유등이 펼쳐 보이는 화려함은 가히 압권이다. 강강수월래를 하는 여자의 모습과 칼을 들고 호령하는 장수, 호랑이와 가야금을 뜯는 처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의 해학적인 모습들…. 동화책, 역사책, 설화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갖가지 형상으로 꾸며 놓은 600여개의 유등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나무로 뼈대를 대고 종이로 바른 등의 색깔이 어찌나 선명하고 밝은지 마음까지 다 화사해지는 기분이다.

 진주 유등축제를 밝히는 것은 유등뿐만이 아니다. 촉석루 건너 길 곳곳에 옛 진주성 전투를 재현하거나 갖가지 동물을 형상화한 화려한 등이 설치돼 불이 밝혀졌다. 진주 시민들이 저마다 소망을 담아 달아맨 2만5000개의 ‘소원등 터널’에도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여기에다가 ‘연인들의 길’로 꾸며진 남강변의 만경동 대숲에는 갖가지 경관조명과 설치조형물을 들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진주 남강변은 말 그대로 ‘빛과 색의 도시’가 된다.

 진주 시민들이 모두 쏟아져나온 듯 축제가 열리는 남강변은 인파로 가득했다. 진주교 위에도, 천수교 위에도 유등축제를 보러나온 이들이 저마다 가족, 연인의 손을 잡고 가을밤 등불의 정취에 한껏 취했다. 10월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수많은 축제가 열리지만, 진주 유등축제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가을축제 가장 앞줄에 이 유서 깊은 축제를 놓아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 유등축제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다

 

 

▲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를 재현한 유등의 모습.



  유등축제에서는 등불의 화려함만 들여다볼 일은 아니다. 유등축제가 각별한 것은 그것이 이른바 ‘루미나리에’류의 평면적인 볼거리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등의 등불에는 이른바 ‘고난을 극복한 진주 시민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주의 유등축제는 임진왜란 때 펼쳐진 진주성 전투에서 유래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진주성을 방어하던 김시민 장군은 3800명의 병사로 왜군 2만명을 물리친다. 당시 진주성 내의 병사들은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들을 저지하고자 하늘에는 풍등을 올리고 남강에 유등을 띄워 성 밖의 의병과 연합작전을 펼쳤다. 풍등과 유등은 봉화(烽火)와 같은 일종의 군사신호였다. 특히 유등은 당시 진주성에 포위된 병사들이 멀리 두고온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등에 쪽지를 넣고 띄우는 우편 역할도 했다.

 왜군들은 이듬해 다시 9만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진주성으로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키고 7만명의 주민과 병사를 학살했다. 진주성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이 됐다. 유등축제는 이렇게 약 500년 전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한 주민과 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행사였다. 남강에 떠 있는 유등 중에서 유독 병사들의 전투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독립된 유등축제는 지난 2002년에 시작됐지만, 이전에도 유등행사는 1949년 시작된 개천예술제의 부대 프로그램으로 치러졌다. 올해로 60회를 맞는 개천예술제가 열리지 못한 해는 지금까지 3번뿐이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그리고 신종 인풀루엔자가 확산된 지난해였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과 1952년, 폐허의 잿더미 위에서도 열렸던 예술제가 지난해 신종 플루 여파로 취소되면서 주민들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올해 유등축제의 유등이 예년의 400여개에서 600여개로 늘어나고, 유등의 형태가 예년보다 훨씬 화려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유등축제가 6일부터 진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기간과 맞아떨어지면서 축제 규모도 한층 커졌다. 유등축제 개최 기간은 오는 12일까지다. 벌써 축제의 절반이 지났으니, 역대 최고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유등축제의 장관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 진양호의 푸른 물빛, 그리고 호반의 코스모스

  유등축제가 열리는 동안 진주에서의 밤은 남강변의 화려한 축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다면 낮에는 어디가 좋을까. 사실 진주에는 촉석루와 남강을 빼고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다. 내세울 만한 절집도 이렇다 할 곳이 없고, 수려한 산세를 갖춘 산도 없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 바로 인근의 진양호다.

 진양호는 덕유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경호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의 줄기를 남강댐으로 막아 이룬 인공호수다. 저수량은 3억1000만t에 달하고, 유역면적 규모도 2285㎢(69만여평)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진양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는 곳이 진양호공원의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 위쪽 진양호 전망대. 새로 단장한 전망대에 올라서면 거대하게 펼쳐지는 호수 뒤편으로 멀리 지리산 능선이 첩첩이 이어진 웅장한 모습을 대할 수 있다. 잔뜩 흐리거나 안개 낀 날만 아니라면 지리산 영봉인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는 장관도 볼 수 있다.

 진양호 공원 입구에서는 남강댐 건설로 수몰된 진양호 건너편 섬 아닌 섬으로 오가는 자그마한 배가 한 척 있다. 수몰지역의 묘역으로 가는 성묘객들이나 물 건너에 자그마한 밭을 두고 있는 농민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하루 네다섯 번씩 운항한다. 이 배를 타고 인적 없는 옛 마을로 들어 호수 주변을 따라 나있는 조붓한 길을 따라 낭만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현지 주민들에게는 무료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왕복 뱃삯을 2000원씩 받는다.

 진양호 공원 입구에서 호수를 끼고 왼편으로 돌면 1049번 지방도에 올라 호반을 드라이브할 수 있다. 진양호를 건너는 진수대교를 지나 첫 마을인 대평면 내촌마을에는 지금 강변의 너른 땅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이곳에서는 마을축제인 ‘살살이꽃 축제’가 열렸다. 살살이꽃이란 코스모스의 순우리말. 코스모스 꽃이 바람에 살랑살랑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스모스야 가을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이지만, 이곳 내촌마을의 너른 코스모스 꽃밭은 호반의 습지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내니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촌마을에서 당촌~하촌~중촌~대평마을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도 좋다. 호수로 길게 뻗은 곶의 끝에 자리잡은 대평면 신풍리에서는 눈을 확 휘어잡는 풍경은 없지만, 적막하면서도 호젓한 강변마을의 유순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진주 가는 길

 

‘진주라 천리 길’이란 말대로 진주는 수도권에서 멀지만 찾아가는 길만큼은 간명하다.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지나 비룡갈림목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탄다.

서진주나들목에서 내려서 공설운동장 방면으로 향하면 진주성이나 남강의 유등축제장이다. 나들목에서 진양호도 가깝다. 진양호를 도는 호반도로는 내륙구간과 호수를 낀 구간이 교차한다. 가장 빼어난 구간이 대평면 내촌마을에서 명석면 오미리까지 이르는 구간. 복잡하게 지도를 볼 것 없이 진양호공원에서 내비게이션으로 청동기문화박물관을 목적지로 정하면 호반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진주의 유등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탓에 숙소를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진주에서 전국체전까지 열리는 바람에 진주 일대 숙소가 태부족이다. 진주에서 가장 빼어난 숙소라면 진양호반의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055-746-3734). 객실에서 드넓은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남강변 동방관광호텔(055-743-0131)은 유등축제를 즐기는 데는 더없이 위치가 좋다. 유등축제를 보는 최고의 전망대는 촉석루 건너편 6층짜리 빌딩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파로스’. 이곳에는 남강을 굽어보는 낭만적인 테라스가 있다.

진주시에서는 축제기간 중 시 일원의 경로당 등을 무료숙소로 개방하고, 칠암동 경상대병원 앞 남강 둔치에 텐트촌을 마련하기도 했다. 텐트촌은 진주시청인터넷 홈페이지(www.jinju.go.kr)에서 예약을 받는다. 진주시청 문화관광과(055-749-5832)로 문의하면 민박 숙소를 안내해주기도 한다.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음식문화 등에서 평양과 쌍벽을 이뤘던 진주는 맛집의 유구한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맛집들을 두루 엮어도 하루 여정이 된다. 가장 이름난 곳이 이른바 ‘교방음식’을 한정식차림으로 내놓는 ‘아리랑’(055-748-4556). 교방음식이란 조선시대 때 한양으로 뽑혀가 궁중음식을 접했던 진주기생들이 진주로 돌아와 교방청에서 연회상을 차려내면서 발전한 음식을 말한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진 음식은 색감이며 모습이 어찌나 화려한지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1인분 3만5000원부터. 사골국물로 밥을 짓고 온갖 나물에다 육회를 얹어내는 진주비빔밥도 놓치기 아까운 메뉴다. 천황식당(055-741-2646)과 제일식당(055-741-5591)을 최고로 친다. 해산물로 육수를 내는 진주냉면 역시 이름난 먹을거리다. 메뉴를 그대로 상호로 쓰는 ‘진주냉면’(055-741-0525)이 가장 유명한 곳이다.

 

 

<출처> 2010. 10. 6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