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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포항 하옥계곡과 보경사 계곡, 더위도 시간도 여기서 멈췄다

by 혜강(惠江) 2010. 7. 28.

포항 오지여행

 

포항 하옥계곡과 보경사 계곡

 

쉿! 더위도, 시간도 여기서 멈췄다

 

 

박 경 일 기자

 

 

 

포항의 하옥계곡은 다른 계곡들과는 정취가 사뭇 다르다. 근육질의 거대한 바위들이 솟아있는 사이로 말구유처럼 깊은 소(沼)가 만들어졌고, 그 소 안에는 내연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이 담겨 찰랑거린다.

 

 

  1년 중 단 한번. 바야흐로 여름휴가의 한복판입니다. 아무리 깊고 깊은 산중 계곡이라도 이때만큼은 절대로 사람들의 발길을 피하지 못합니다. 1년 365일 내내 그저 적막 속에서 간혹 바람만 지나가던 인적 드문 오지의 깊은 계곡에도 요즘 같은 여름휴가 시즌에는 사람들로 차고 넘칩니다. 꼭꼭 숨겨져 있는 그런 곳들을 대체 어찌 알고 찾아드는지, 그야말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인파로 가득한 계곡들을 헤매노라면 어디 몰래 숨겨둔, 나만 아는 곳이 한 곳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경북 포항의 하옥계곡. 포항이라면 제철소 혹은 바닷가부터 먼저 떠올리는 외지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하옥계곡은 한눈에 반할 만큼 경관이 빼어나면서도, 아직 사람들의 발길에 훼손되지 않은 곳입니다. 계곡 물길을 따라가는 도로에는 69번 지방도라는 번듯한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길은 아직도 포장되지 않은 옛 흙길 그대로이고 계곡을 끼고 들어앉은 슬레이트 집들은 죄다 20~30년 전쯤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계곡을 따라 물은 기암괴석과 같은 바위 사이를 둥글게 깎으며 흘러내리고, 찰랑찰랑 바위 사이의 깊은 소(沼)에 담긴 물은 쪽빛으로 반짝입니다. 어찌나 물이 맑고 풍광이 빼어난지 감히 그 물에 몸을 담그기조차 죄송스러워질 정도입니다. 하기야 평소에는 인적이 없는 이곳도 여름휴가 시즌에는 포항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간간이 대구에서도 피서객들이 찾아드는 곳이긴 하지만, 피크시즌을 살짝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곳에서는 물가에 그늘막을 쳐놓고 고즈넉한 휴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포항에는 하옥계곡 말고도 또 하나의 빼어난 계곡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내연산 보경사 계곡입니다. 하옥계곡과 같은 내연산 자락을 끼고 있지만 보경사계곡은 하옥계곡보다 더 유명하고, 행락객들의 발길도 잦은 편입니다. 계곡 물가에 자리잡고 수박을 쪼개놓고는 물롤이를 하며 머물기에 좋은 곳이 하옥계곡이라면, 보경사계곡은 타박타박 산길을 따라 수많은 폭포들을 하나씩 헤아리며 오르는 계곡 산행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계곡 초입에서 보경사 독경소리를 벗하며 물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가 땀방울이 맺히면 맑은 물로 푸드득 세수도 하고, 발도 담가가면서 천천히 더위를 쫓아가며 오르는 계곡 산행의 맛이 각별합니다.



  여름 한복판에 포항으로 떠나는 여정. 하옥계곡과 보경사계곡의 서늘한 정기에 빠져도 좋고, 내친 김에 아예 구룡포쪽의 바닷가 해수욕장을 찾아도 좋겠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죽도시장을 찾아가 서걱서걱 얼음이 씹히는 새콤달콤한 물회 한그릇으로 더위를 쫓는 맛도 나무랄 데 없겠지요.

 
 
세상을 등진 듯, 세상을 품은 듯… 그렇게 있었구나
 
 

▲ 내연산 보경사를 끼고 오르는 숲길. 짙은 숲 그늘을 따라 오르는 길 옆으로 쉴 새 없이 폭포의 물소리가 따라온다. 이 길에서는 초록에 젖고, 또 물소리에 젖는다.

 

▲ 보경사 계곡의 보현폭포.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깊은 안쪽에서 폭포가 흘러내린다.

 

 

# 숨은 비경으로 가득한 곳…포항의 하옥계곡



경북 포항이라면 무엇이 가장 먼저 연상되는지. 제철소로 대표되는 공업도시? 호미곶의 해돋이? 구룡포의 과메기? 무릇 도시들은 저마다 대표되는 이미지를 하나쯤은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이런 고정된 이미지가 때론 진면목을 가리기도 한다. 포항이 특히 그렇다. 공업도시와 항구도시쯤으로 기억되는 포항에는 뜻밖에도 ‘세상과 담을 쌓은 첩첩산중의 산골마을’과 ‘맑디 맑은 청정계곡’이 숨어있다.

포항시 최북단인 북구 죽장면의 하옥계곡. 내연산의 향로봉과 동대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비경을 펼쳐보이는 곳이다. 하옥계곡이 오지라는 것을 가장 간단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접근성’이다. 하옥계곡은 멀다. 포항에서 죽장면 소재지를 거쳐 가자면 족히 20㎞는 들어가야 상옥리가 나타나고, 여기서 다시 하옥쪽으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가야 비로소 계곡을 만날 수 있다. 기계면을 지나 기북으로 향하는 길도 있지만 제법 거친 성법준령을 넘어가야 하고, 청하면 유계리쪽에서 들자면 이번에는 아예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파른 고갯길인 샘재를 넘어야 한다. 이렇게 어찌어찌 하옥계곡에 당도한다 해도 도리 없이 계곡을 끼고 이어진 12㎞ 남짓한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비포장도로를 줄곧 따라가도 하옥계곡을 다 볼 수는 없다. 하옥계곡에는 ‘세상을 등진 곳’이라는 뜻의 둔세동 계곡이 있고, ‘소를 잡아 먹고 나와도 모른다’는 덕골계곡도 있다. 일일이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가지를 쳐서 하옥계곡이 거느리고 있는 계곡만 해도 12개에 달한단다. 대부분의 계곡에는 아예 길이 없어 잘박거리는 자갈을 디뎌가며 물길을 올라야 비로소 그 절경을 만날 수 있다.

하옥계곡은 딴 계곡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상옥리 마을에서 하옥쪽으로 터덜거리며 달리다 보면 갑자기 우람한 바위들이 앞을 막고 선다. 직벽에 가까운 산자락의 바위 틈에는 노송들이 늙은 가지를 운치 있게 뻗어내고 있고, 그 아래 정으로 깎아낸 듯한 골짜기들 사이로 맑은 물이 넘친다. 암반 바닥을 흘러내리는 물은 티끌 하나 없이 맑다. 기암괴석을 이룬 협곡을 굽어보노라면 물에 몸을 담그지 않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오지에서 더 오지로 찾아드는 길…도등기마을

상옥과 하옥마을은 옛 신라시대 때부터 전란을 피하려 숨어들었던 곳이다. 그 뒤로 수많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었건만, 이곳은 여전히 깊은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옥계곡은 평소에 인적이 없어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곳이지만, 휴가철이면 포항이며 인근 대구에서 몰려든 피서객들로 붐빈다. 하지만 그래봐야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비포장도로 주변의 계곡들일 뿐. 땀 좀 흘릴 각오가 돼있다면 여기저기로 이어지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 자리를 잡는다면 계곡 한자락을 전세 내서 한나절 고즈넉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하옥에서 내친 김에 더 오지마을을 찾아간다. 오지마을 하옥 사람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오지가 있다고 했다. 이름하여 도등기마을이다. 폐교가 된 하옥분교가 있는 배지미마을에서 좌회전해 험하디험한 산길을 오르면 깊은 산중에 3가구가 사는 도등기마을이 있다. 사륜구동 승합차로도 힘겨운 곳이니 승용차로는 언감생심. 차라리 걷는 것이 더 속 편하다. 배지미마을에서 도등기마을까지는 걸어서 40분 남짓하다.

도등기마을에는 민박 손님을 받는 ‘도등기 산장’이 있다. 억새를 이어 지붕을 얹은 집은 옛 산골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나무장작을 때는 흙집에는 간혹 찾아드는 손님들을 위해 아랫목 장판이 까맣게 탄 작은 방을 들였다. 방안으로 들면 장작을 땔 때 나는 매캐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긴다. 남편을 따라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도등기산장의 여주인은 “비 내리는 날 창호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는 정취가 그만”이라고 했다. 마을에는 계곡도 없고 딱히 이거다 싶은 절경도 없지만, 그저 깊은 산중의 외딴집에서 하루쯤 묵어가는 것만으로도 세상사를 잊기에는 족해 보였다. 아무도 찾아낼 리 없는 깊은 산중에서의 하룻밤은 그것만으로도 매혹적이지 않을까.

 

#산 하나에서 어찌 이리 많은 물이… 보경사계곡

내연산 서쪽 자락의 하옥계곡이 머물며 야영이나 물놀이를 즐길 만한 계곡이라면 내연산 동쪽의 보경사계곡은 시원스레 쏟아지는 수많은 폭포를 헤아려가면서 계곡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말이 등산이지 가벼운 샌들차림으로도 내연산 최고의 비경이라는 연산폭포까지 왕복 2.4㎞ 남짓한 트레킹코스쯤은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등산로는 줄곧 부드러운 경사와 탄력 있는 나무덱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고즈넉한 절집 보경사의 처마끝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시작되는 트레킹코스는 내연산의 삼지봉(710m)으로 이어지는 길. 협암을 지나면서부터 물소리가 짙어진다. 이 길에는 폭포가 끊임없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다녀오는 연산폭포까지 이르는 길에만 쌍생폭포,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 무풍폭포, 관음폭포가 늘어서 있다. 그 위로도 복호 1, 2, 3폭포와 은폭포 및 시명폭포가 더 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우람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해발 1000m 안쪽의 산에서 어찌 이리 많은 물이 솟아나는지…. 내연산의 많은 폭포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 관음폭포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바위들이 즐비한데 그 위로는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막다른 산길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연산폭포의 위용이 장대하다.

내연산은 하옥계곡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내연산이 거느리고 있는 향로봉(930m)을 향해 차고 오르는 본격적인 등산코스다. 향로교 옆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등산객들의 자취가 희미해서인지 이곳에는 원시림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향로봉 정상까지는 3.7㎞로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3시간 안팎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산을 타는 내내 붉은 둥치의 소나무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다.

향로봉 정상에서의 조망도 빼놓을 수 없다.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호미곶과 그 너머의 동해까지 다 내려다보인다. 깊고 깊은 산중의 오지마을과 선경과도 같이 맑은 물, 그리고 장엄한 산자락의 풍경까지 한목에 다 즐길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포항에 있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영천나들목으로 나와 4번 국도를 따라 영천까지 가서 28번 국도로 포항 방면으로 향한다. 영천 조교동 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를 타고 죽장 방면으로 향하면 죽장면 소재지다. 여기서 상옥리를 거쳐 하옥리로 가면 계곡이 펼쳐진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경북 영덕의 옥계계곡 상류에 가닿는다.

 

먹을 것 묵을 곳

하옥계곡에는 이제 막 민박집과 펜션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하옥계곡에는 하옥리버뷰(054-262-2850)와 느티나무집민박(054-262-6630), 하옥산장식당(054-262-7885) 등이 있다. 비록 계곡을 끼고 있지는 않지만 새로 지은 숙소가 깔끔한 어진이네 민박(054-733-8025) 등이 추천할 만하다. 하옥계곡 끝이자 옥계계곡의 상류인 옥계농장(054-734-2154)도 민박 손님을 받는다. 내연산 보경사 입구에는 산채정식을 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포항까지 갔다면 죽도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시장 어디서나 신선하고 저렴한 회맛을 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특히 가자미를 썰어넣은 물회가 유명하다. 죽도시장 근처 북부시장의 새포항물회집(054-251-8847)이 유명하다지만, 죽도시장의 물회는 대부분 비슷한 맛이다.

 

 

 

<출처> 2010. 7. 28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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