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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 송광사 길,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 골골골 봄의 달음질

by 혜강(惠江) 2010. 4. 9.

 

순천 선암사 ~ 송광사 길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 골골골 봄의 달음질

 

 

김화성 전문기자

 

 

 

 

 

    봄에는 꽃이 피고 / 가을에는 달이 밝네 /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 겨울엔 흰눈  / 부질없는 일로  / 가슴 졸이지 않으면 /  인간의 좋은 시절  / 바로 그 것이라네 .  ― 송광사 대웅보전 앞에 걸린 ‘이달의 선시’(작품)에서



  전남 순천().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땅. 그곳에 가면 조계산(884.3m)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또 그 조계산자락엔 선암사와 송광사가 깃들어 있다. 송광사가 서쪽, 선암사가 동쪽 둥지이다. 송광사는 조계종, 선암사는 태고종. 둘 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똑같다.

  송광사는 스님들의 사관학교다. 공부하는 스님들로 북적인다. 절 마당을 오가는 스님들의 걸음걸이가 활달하다. 7, 8명씩 줄지어 이동하는 스님들의 자세엔 절도가 있다. 푸른 눈의 외국인 스님도 보인다. 법당의 예불소리가 맑고 슬프다. 청아하면서도 리드미컬하다. 가슴 깊이 저미는 울림이 있다. 서당의 책 읽는 소리가 봄 햇살이라면, 송광사 독경소리는 늦가을 해질 무렵의 어스름 햇볕이다.

  선암사는 곱게 늙은 절집이다. 아늑하고 정갈하다. 어느 건물도 튀지 않는다. 단청 색깔이 물 빠진 청바지처럼 빛이 바래 은은하다. ‘뒤>(해우소)’은 ‘조선적인 너무도 조선적인’ 화장실(측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멋들어진 해우소이다. T자형 목조건물에 맞배지붕. 언뜻 보면 날아갈 듯한 2층 누각이다. 마룻바닥은 시골 부잣집 대청마루처럼 튼튼하고 널찍하다. 왼쪽이 남자용, 오른쪽이 여자용.

  삐걱대는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뒤를 본다. 번뇌와 망상을 아낌없이 몸 밖으로 내보낸다. 강 같은 평화가 밀려온다. 내려다보니 바닥이 깊고 아득하다. 2층에서 일을 보면, 1층 밑바닥에 싸르락! 소리 내며 떨어진다. 편백나무 톱밥을 배설물 위에 층층이 깔아서, 묵직한 소시지변도 사뿐히 내려앉는다. 칸막이와 벽은 나무 살로 돼있다. 바람과 햇볕이 그 나무 틈새를 통해 무시로 들락거린다. 엉덩이가 시원하다. 냄새도 없다. 칸막이가 낮아 옆 칸 사람과 ‘볼똥말똥’ 웃음이 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의 ‘선암사’에서



  순천 선암사∼송광사 길은 조계산을 동서(西)로 가로지르는 산자락 숲길(6.5km)이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조계산은 살집이 많은 흙산이다. 겨우내 물을 품었다가 봄에 몸을 푼다. 봄물이 골짜기마다 콸콸 쏟아진다. 연두 새싹들은 그 물소리를 들으며 깨금발로 큰다. 쭁! 쭁! 하늘 향해 싹을 틔운다. 맨살의 참나무들도 물기가 올라 뱃살을 트고 있다. 봄이 뻐근하다.

 

    선암사 골짜기도 물소리로 낭자하다. 바람소리로 수다스럽다. 선암사 들머리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날아갈 듯이 걸려 있다. 다리 아치안쪽엔 용머리조각이 시냇물을 향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호박돌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운 일주문도 볼수록 살갑고 푸근하다.

  선암사 곳곳엔 나무와 꽃이 지천이다. 그중에서도 늙은 매화가 으뜸이다. 수십 그루가 눈을 지그시 감고 좌선을 하고 있다. 붉은 홍매화,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화, 옥양목처럼 흰 백매화가 저마다 화르르 등불을 매달았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는 정일품 소나무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각황전 돌담길의 홍매화는 늘씬하고 화려하다. 둘 다 600년(추정)이 넘었지만 그 향기가 온 절 마당을 가득 채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꾀벗은’ 배롱나무는 언제 움이 틀지 감감무소식이다.


   선암사 숲길은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단아하다. 시골 마을 숲처럼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세월의 더께를 알려준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장으로서 안성맞춤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다.

  선암사∼송광사 산길은 골짜기를 따라 간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귀가 간지럽다. 옛날 두 절집 스님들은 이 길을 오가며 ‘삶과 죽음의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했으리라. 산중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가 대부분이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참나무는 숯 굽는데 으뜸이다. 가다보면 곳곳에 숯가마 터가 보인다. 옛날 조계산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숯가마가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답게 빨치산의 은신처도 곳곳에 남아있다. 간혹 구식 총이나 실탄도 발견됐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하늘거린다. 보랏빛 얼레지 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꽃잎이 서부 총잡이 모자처럼 뒤로 활짝 젖혀져 있다. 버선코처럼 날렵하다. 하지만 눈을 내리깔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부끄러움 타는 시골 색시 같다. 여기 사람들은 ‘알라꿍’이라고 부른다. 나물로 무쳐 먹으면 맛있다.

  호랑이턱걸이 바위를 만난다. 옛날 호랑이가 이 바위에 턱을 괴고 있었다던가. 나쁜 사람이 지나가면 해코지를 하고, 좋은 사람이면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길은 점점 가파르다. 오르면 오를수록 돌너덜이다. 큰 굴목이재를 넘으면 바로 보리밥집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입 안에 침이 괸다. 둥근 보리밥 알갱이가 부처님 얼굴처럼 떠오른다. 그렇다. 어린 중생들은 밥 한 그릇에 수시로 생각이 바뀐다.

  송광사는 신라 때 길상사로 불렸다. 법정 스님(1932∼2010)이 회주로 있었던 서울 성북동 길상사와 이름이 같다. 법정 스님은 17년 동안(1975∼1992년) 송광사 불일암에 머물렀다. 그만큼 스님의 자취가 많다. 아직도 분향소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기왓장에 적힌 글귀도 스님을 기리는 것들이다.

  ‘그리울 것 같습니다. 스님!’ ‘법정 스님! 다시 한 번 오셔서 맑고 향기로운 사회 구현하소서. 사랑합니다.’ ‘법정 스님!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법정 큰 스님! 당신은 우리 모두의 연꽃이셨습니다.’ ‘법정 큰 스님! 스님께서 좋아하시던 매화는 피었는데….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스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숲을 적시는 밤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한밤중 적막의 극치이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공허하다.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니 나머지는 저 찬란한 꽃들에게 들어라!”

  송광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늙은 매화가 꽃을 매달았다. 바람이 불면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산수유도 우르르 노란 꽃을 피웠다. 수선화는 절 마당가 검은 대나무(오죽) 아래에 다소곳이 노란 옷을 입고 있다. 목련은 그 우아한 꽃봉오리를 막 터뜨리고 있다. 나뭇가지에 핀 하얀 연꽃 같다. 삼지닥나무 노란 꽃은 이미 시들었다. 절 마당 성보박물관에 있는 대원군의 난초그림과 소치 허련의 모란그림은 은은한 봄빛을 머금었다.



  송광사 편백나무숲 민재엔 다비장이 있다. 스님들이 입적하면 화장하는 곳이다. 중생들은 다비할 때마다 타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수군댄다. “용을 그렸다!” “꽃을 그렸다!” “새가 되어 날아갔다!” 법정 스님도 그곳에서 ‘흙 물 불 바람’으로 돌아갔다. 스님은 아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새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우레와 같은 침묵’으로만 남았다.


▼순천만엔 붉은 노을, 낙안읍성엔 밥짓는 연기▼

 

  순천만은 질펀하다. 개펄은 잘 이겨진 풀죽이다. 거무튀튀한 멸치젓이다. 젓국이 이리저리 흘러내린다. 작은 구멍 사이로 뽀르르! 뽀르르! 방울이 떠오른다. 농게 칠게가 빠끔히 머리를 내민다. 장뚱어가 꼬무르르 잽싸게 사라진다.

  순천의 봄은 순천만으로부터 온다. 봄이 곰삭아 짭조름하다. 조각배는 갯벌에 얹혀 발이 묶였다. 요즘 갈대밭은 아직 황갈색이다. 연두색 봄빛은 갈대발 밑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갈대숲은 점점이 동그라미로 떠 있다. 작은 동그라미, 큰 동그라미, 찌그러진 동그라미…. 통! 통! 통! 동그랑땡 징검다리다.


  작은 배가 S자 물길을 따라 꼬리를 그으며 지나간다. 바람에 물고랑이 일렁인다. 겨울철새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쇠백로나 작은 오리 새끼들이 구정물 도랑에서 물장구를 친다. 꺼먼 갯벌 너머엔 연두색 보리밭이 드문드문 펼쳐진다. 갯벌 등짝에 달라붙은 ‘푸른 파스’다. 그 뒤엔 산들의 등 주름선이 아슴아슴 눈에 밟힌다.

  순천만은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 사이에 우묵하게 들어간 습지이다. 사람 두 팔 사이의 넉넉한 가슴 품과 같다. 갯벌 넓이가 무려 21.6km²나 되고, 이 중 25%(5.4km²)가 갈대밭이다. 2006년 국내 연안습지 가운데 처음으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됐다. 세계 5대 갯벌의 하나.

  순천만 갈대밭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용산전망대까지 올라가야 한다. 매표소에서부터 약 3km 떨어진 곳이다. ‘싸드락싸드락 싸목싸목(느릿느릿)’ 걸어도 왕복 1시간 30여 분이면 된다. 전망대는 야트막한 산 위에 있다. 한순간 발 아래 순천만 갯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갯벌은 해 질 때의 모습이 으뜸이다. 하늘도 붉고, 갯벌도 붉고, 바다도 붉고, 너도 나도 붉게 물든다. 볼이 발그레 물든다. 저녁노을은 대책 없이 사람 혼을 뺀다. 그렇다. 해 지는 곳은 언제나 아득하다.

  낙안읍성은 왁자하다. 민속마을이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하다. 성 안팎에 기와집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실제 80여 가구 200여 주민이 어우러져 산다. 남새밭도 일구고, 때가 되면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밥을 짓는다. 농사 지은 것들을 관광객들에게 내다 팔기도 한다. 가을 초가지붕엔 두둥실 박이 열린다.

  성 둘레는 1410m밖에 안 된다. 성곽 위를 한 바퀴 돌고, 동네 고샅길을 기웃거려도 한 시간 정도면 너끈하다. 벚꽃이 흐드러졌다. 동백꽃은 이미 모가지를 툭툭 꺾고 땅바닥에 흥건하다. 초가집 고샅길 돌담 위로 늙은 매화꽃이 꽃을 달고 있다. 마을 빨래터엔 노란 개나리가 늘어져 있다. 뒤울안 대숲 바람 소리가 맑다. 늙은 감나무 한두 그루 없는 집이 없다. 오리들이 골목 도랑물에서 꽥꽥거린다. 순한 눈의 누렁이가 어슬렁댄다.

  동헌 뜰엔 붉은 명자꽃이 우르르 피었다. 1626년 서른둘의 임경업 장군(1594∼1646)은 이곳에 군수로 부임해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그의 선정비가 서 있는 이유다. 읍성 안에는 300∼600년 된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개서나무가 32그루나 듬직하게 서 있다. 아직 일러 푸른 잎은 틔우지 않았다. 서당과 객사도 보인다. 낙안읍성 안에는 20여곳의 민박집이 있다.


|트레킹 정보|

◇교통

 

▽승용차=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지방도 857호선→선암사 입구,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국도 27호선→송광사 입구 ▽기차=서울 용산역∼순천(새마을, 무궁화호)▽고속버스=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순천(순천에서 선암사, 송광사행 시내버스 이용) ▽비행기=김포공항∼여수공항(리무진버스나 택시 이용해 순천으로 이동)



◇먹을거리

 

▽조계산보리밥집(061-754-3756) 선암사∼송광사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다. 각종 산채나물에 보리밥  쓱쓱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직접 담근 막걸리가 혀에 착착 감긴다.

▽금목서(061-761-3300) 참숯불고기 전문, 광양한우생고기 석갈비

▽대대선창집(061-741-3157) 순천만 입구 짱뚱어탕 전문

▽흥덕식당(061-744-9208) 순천역 앞 백반 전문

◇문의

순천시 관광진흥과 061-749-3328 / 선암사종무소 061-754-5247

송광사종무소 061-755-0108 / 낙안읍성민속마을 061-749-3347

순천만자연생태공원 061-749-3006 

 

 

 

 <출처> 2010. 4. 8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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