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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전남 나주 영산강 동섬의 봄안개

by 혜강(惠江) 2010. 4. 22.

 

전남 나주 영산강

 

굿바이! 동섬… 물안개 사이로 배웅하다

 

 

박경일 기자

 

 

 


 
▲ 이른 새벽 영산강 동섬의 몽환적인 풍경. 이즈음 동섬은 유채꽃 환하게 피어난 강변의 물길을 따라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동섬의 ‘빛나는 봄’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동틀 무렵의 푸른 새벽, 전남 나주의 영산강변에 섰습니다. 봄이 당도했다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공기가 차갑습니다. 시린 손을 비비면서 강둑에 섰습니다. 느린 강물 위로, 깊은 꿈을 덮은 이불처럼 안개가 천천히 피어오릅니다. 그 안개 속에서 강변의 윷꽃들이 때늦은 꽃망울을 하나둘 터뜨리고 있습니다. 왕버드나무도 가지에 파릇한 새순을 틔워 내고 있었습니다.

  영산강을 찾아간 이유는 곧 사라질 풍경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유채꽃 화사하게 피어나고 버드나무 새순이 반짝거리던 영산강의 동섬을 배웅하러 나선 길입니다. 영산강에 떠 있는 동섬은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곧 사라지게 됩니다. 공사 일정으로 보자면 일찌감치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봄날의 유채꽃 정취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 봄까지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올해 봄날의 정취는 동섬이 마지막으로 보여 주는 풍경인 셈이지요. 동섬에서 영산강을 따라 지류를 더듬어 오르다가 샛강을 만났습니다. 지석강이라는 이름을 두고도 ‘드들강’이라 불리는 물길입니다. 오래전 강물에 몸을 던졌다던 ‘드들이’의 전설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노래의 애잔한 곡조를 안고 강은 흘러갑니다.

  강은 배꽃 가득한 들판을 지나고, 농사를 앞두고 괭이자루를 손질하는 놈부들의 마을도 지나고, 소풍 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한 강변 소나무 숲도 지납니다. 강변을 고향으로 두지 않았음에도 고향을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평화로운 강 풍경이 드들강에는 남아 있습니다.

  사실 영산강은 그동안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변모를 거듭한 곳입니다. 강 하구에 방조제가 세워지기 전에는 바다와 물길이 통해 서해에서 젓갈을 실은 젓배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쓰임새 없이 강변에 서 있는 영산포등대는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기념물이지요.

  강 하구에 방조제가 놓이면서 영산강의 뱃길은 끊어졌고, 잇단 범람으로 높은 둑을 갖게 되기도 했지요. 그런 영산강에 이제 다시 보가 놓이고, 자전거 길이 놓이게 됩니다. 앞으로 영산강이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사를 맡은 이들의 다짐대로 ‘더 나은 강’이 될 것을 믿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사라지는 것들은 다 애잔합니다. 뱃길이 끊어지면서 사라진 옛 나루들, 그리고 오래된 추억처럼 서 있는 영산포등대. 이즈음 영산강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사라진 것, 혹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인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900만평 구릉엔 ‘배꽃 구름’… 드들강변엔 ‘버드나무 물결’
 
 
 
 
‘梨花에 月白하고…’ 시구가 절로 배나무는 가지를 휘어 터널을 만들어 기르니 배꽃이 피어나면 절로 꽃터널이 된다. 흰 배꽃은 어찌나 화사한지 마음마저 환히 밝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그곳 물길을 거슬러 나주호 아래 상류쪽에서 만난 드들강 풍경. 마을 주민들이 강 건너 산자락에서 봄나물을 캐서 돌아오고 있다.
 
 
산벚나무·복사꽃…‘흐드러진 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고려 때 문신인 이조년의 시 한 구절. 그 시처럼 어둠이 물든 나주시 세지면의 배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구릉에 섰다. 흰 보름달이라도 둥실 떴으면 좋으련만, 마침 눈썹 같은 초사흘 달이 걸렸다. 비록 하얗게 핀 배꽃에 교교한 달빛이 환하게 고여 있는 풍경과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초사흘 달 아래 배꽃도 마음속에 인화해 두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효석은 소설 ‘메밀꿏 필 무렵’에서 보름날 밤, 메밀꽃이 피어난 풍경을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하다’고 했지만, 달밤의 배꽃도 이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뒤지지 않는다.


  이즈음 전남 나주는 꽃들로 가득하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배꽃의 흰 물결로 넘쳐나고 있다. 길가의 너른 들에도, 야산의 구릉에도 온통 배꽃이 구름처럼 떠 있다. 나주의 배밭은 모두 가지를 잡아 휘어서 터널을 만들어 기른다. 그 터널 위로 꽃들이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

  배꽃은 매화와 벚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매화와 벚꽃을 찾아가면 밀려드는 인파와 북적거리는 차량들로 번잡스럽기 그지없지만, 나주의 배꽃은 조용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주의 배밭은 무려 3000㏊(900만평)에 달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는 도처마다 배꽃의 흰 물결이니, 어느 한 곳에 사람들이 몰릴 일이 없는 게 당연하겠다.

  나주에서 배밭이 가장 넓게 펼쳐지기로는 금천면 일대가 꼽힌다. 금천면 소재지에서 나주시청을 지나 23번 국도를 따라 세지면 소재지쪽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배꽃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길에 오르면 따로 꽃구경이라 할 것도 없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배꽃 그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나주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꽃은 산벚나무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작은 절집 다보사에서 볼 수 있다. 다보사의 세칸짜리 대웅전 쌍여닫이 문살에 새겨진 꽃이다. 왼쪽 문짝에는 연꽃이, 오른쪽 문짝에는 매화며 국화, 모란이 피어 있다. 오랜 세월에도 사철 시들지 않는 꽃이다. 한 불교미술가가 그 꽃을 일컬어 ‘머뭇거림을 녹이는 얼굴’이라고 했다. 절집을 찾아와 문 앞에서 머뭇거릴 이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그 문이 ‘닫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열리는 것임을 보이려고’ 새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짙은 솔숲 사이… 햇살마저 초록빛




  나주에는 유채꽃도 있다. 유채꽃은 ‘꽃이 오래간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퉈 심어 이제 남쪽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꽃이 됐다. 그러나 나주의 유채꽃밭은 좀 다르다. 영산강변의 습지와 동섬에 심어진 유채꽃은 강변의 정취가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강변에서 동섬으로 넘어가는 나무다리와 그 다리 건너 옮겨 심어진 왕버드나무 군락 주위로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은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면 노랗게 유채꽃으로 물든 동섬 일대의 빼어난 정취에 취해 나주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4대강 사업으로 동섬 위쪽에 보가 들어서면서 유채꽃으로 가득한 동섬도 삽날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곧 사라질 것이란 이유 때문일까. 늦게 유채꽃을 피우기 시작한 동섬의 정취는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다.

  영산강을 거슬러 남평읍을 지나서 물길을 따라가면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을 만나게 된다. 화순에서 발원해 능주를 지난 물줄기가 나주호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쳐지면서 이룬 지석강은 영산강 지류 중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드들이’가 잇단 범람을 막기 위해 스스로 제 몸을 제물로 바쳐 마을을 구했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지석강이란 이름보다 ‘드들강’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드들강은 솔밭유원지 부근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포면 쪽에서 광주가톨릭대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 강변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솔숲이 나타난다. 싱그러운 기운이 짙은 솔숲도 좋지만, 연초록빛 신록을 뽐내는 강변의 버드나무 정취도 못지않다.

  이곳에는 작곡가 안성현의 노래비가 건립돼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작곡가다. 6·25전쟁 중 월북했다는 이유로 잊어졌지만, 그 애잔한 곡조만큼은 ‘한국인의 유전자’처럼 누구나의 입안에 남아 있다. 이곳 솔밭 인근은 백사장이었다니, 그의 작곡에 영감을 준 가사 속의 ‘반짝이는 금모래빛’이 바로 이곳이었으리라.




정약용의 유배길 눈물 서린 ‘밤남정’



  나주 땅에서 뜻밖에 다산 정약용을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210여년 전인 1801년 음력 11월21일. 신유박해로 고난의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 형제는 생애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나주읍 북쪽 5리에 있었다는 밤남정의 주막집 ‘율정점’에 당도했다. 서로 다른 유배길로 가야 하는 형제가 함께 보냈던 하룻밤은 얼마나 애달팠을까. 그날을 마지막으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고 그렇게 헤어진 뒤, 16년 만에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율정지별(栗亭之別) 수성천고(遂成千古)’라는 다산의 표현처럼 밤남정 주막집의 이별은 끝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그 짧았던 마지막 하룻밤의 회한은 정약용이 남긴 ‘밤남정의 이별’이란 시에 절절하게 담겨 있다. “초가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 /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두 눈만 말똥말똥 둘 다 할 말 잃어 /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 /…”

  광주를 거쳐 1번 국도를 타고 나주로 들면 나주대교 건너 정면쪽 산자락 아래 큰 건물이 서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동신대다. 그 학교 정문에서 27번 국도로 우회전해 300m쯤 가면 그 인근이 율정점이 있었던 자리다.

  나주에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라면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그늘 아래 시원하게 들어선 정자 ‘만호정’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을 앞에 들던 영산강물이 방조제며 간척공사로 점점 멀어지자 물을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정자에 ‘당길 만(挽)’에 ‘호수 호(湖)’자를 써서 이름으로 삼았다. 정자를 중심으로 마을 대동계가 흥겹게 펼쳐졌다. 마을에서 만난 홍경희(81) 할머니는 “계절마다 노는 일이 달라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개장국, 가을에는 천렵, 겨울에는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집마다 추렴을 해서 음식을 냈는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대동계 회칙에 ‘참새도 고기다’라고 적어 놓았단다.

  철야마을 뒤 덕룡산 자락의 절집 미륵사 뒤편 언덕 위의 철천리석불입상과 칠불석상도 한데 묶어 들려봄 직하고, 덕룡산 반대편 사면의 운흥사며 불회사, 나주호반을 끼고 거미줄 같은 샛길이 펼쳐진 산림욕장도 빼놓으면 아쉬울 곳들이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요금소를 지난 뒤 광산이나 산월나들목으로 나와 13번 국도에 오르면 광주를 지나 나주까지 들어가게 된다. 동섬은 나주시청에서 영산포대교를 건너기 직전 왼편 강 상류쪽에 있다. 영산강 둔치에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는데, 영산포대교 아래는 일찌감치 꽃이 핀 반면, 동섬쪽은 꽃소식이 늦어 이번 주말쯤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드들강은 남평읍에 있다. 읍소재지에서 화순쪽으로 822번 지방도를 타고 광주가톨릭대 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드들강 솔밭유원지가 있다.

● 묵을 곳·먹을거리
  나주여행의 숙소라면 단연 ‘목사내아’다. 목사내아란 옛 나주목을 다스리던 벼슬아치인 목사가 기거하던 집.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목사내아는 한옥이 정갈한 데다 관리도 잘돼 있다. 숙박체험비는 5만~15만원. 061-330-8542. 영산포와 가까운 나주시청 부근에 모텔 대여섯 개가 몰려 있다. 나주의 먹을거리로는 나주곰탕과 홍어가 꼽힌다. 목사내아 앞 매일시장 주변에는 너나없이 ‘원조’를 앞세운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가마솥에서 설설 끓는 맑은 고깃국물이 독특하다. 소뼈를 고아내면 우윳빛이 도는데, 여기다가 양지와 사태를 함께 넣어 고면 국물이 맑아진단다. 하얀집(061-333-4292), 노안집(061-333-2052)과 남평식당(061-334-4682)이 유명하다.






<출처>
2010-04-2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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