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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이중섭거주지, 서귀포 문화의 거리에서 이중섭의 향기에 취하다

by 혜강(惠江) 2010. 2. 5.

                                

이중섭 생가 · 이중섭 미술관

(제주올레 6코스) 

 

서귀포 문화의 거리에서 이중섭의 향기에 취하다

 


·사진  남상학


 

 

 

 

  서귀포 아케이드에서 서귀포항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중섭 거리가 있다. 8코스 종점인 대평리에 가는 버스를 타가 위해 지났던 거리를 다시 걸어내려갔다. 오전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나 오후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문화의 거리는 이중섭의 생가가 있는 길목 하나를 통틀어 이중섭 문화의 거리라고 명명(1998. 12. 3)했다. 문화의 거리는 단조로운 도시의 거리를 문화적 콘텐츠로 바꿔 자유분방하고 활력 있는 거리로 바꾸려는 취지일 것이다. 올레꾼들이 대거 몰려드는 이곳에 이중섭 화가의 예술성을 고양하고 향토문화예술 분위기를 조성, 문화가 살아 숨쉬는 거리를 연출하는 동시에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서양화가 이중섭은 6.25시절 서귀포에 피난 와서 서귀포의 서정과 풍물을 화폭에 담아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고 서귀포를 떠난 후에도 서귀포에서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중섭은 가난하고 절박한 피난시절이었지만 서귀포에서 이상세계를 발견해 작품화했다. 전쟁이란 암울한 현실과는 무관한 남국의 평화로움을 담은 ‘서귀포의 환상’과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달구지를 타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이중섭 가족의 모습을 기록한 ‘길 떠나는 가족’이 대표작이다.

  서귀포시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짧지만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지었다. 현재 이중섭문화의거리는 서귀포시 중앙동 서귀포상설시장 입구에서 솔동산 입구까지 이어진다.

 

새로 단장된 이중섭 문화의 거리

  그런 인연으로 서귀포시는 서귀포가 준 이중섭화가의 예술혼을 승화 발전시켜 특색 있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고자 이중섭이 살았던 거주지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 것이다. 국내 최초로 화가의 이름이 붙여진 서귀포시 중방동 이중섭문화거리는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등 그의 작품을 형상화한 가로 조형물과 야외전시대 등이 설치돼 거리에서 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이중섭 문화거리는 1960∼70년대 서귀포시 중심지였다. 당시 이 일대는 관광극장, 삼일극장 등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이 3개나 밀집돼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주변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중심지라는 명성을 잃게 되었지만, 그 옛날의 모습들이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그나마 거리 정비와 함께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한다.  

  거의 정비가 끝난 문화의 거리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360m 거리를 이중섭의 그림을 컨셉으로 하여 꾸몄다. 노후된 목재보도와 차도를 인조 현무암으로 교체하고 구간별 테마에 맞는 거리를 조성하였고, 이중섭의 그림을 문양으로 한 블록을 중간중간에 배치하고, 화단을 예쁘게 꾸몄다. 가로등 15개소도 이중섭 그림이 있는 현판을 제작, 설치했다. 예술적 분위가 물씬 풍긴다.  

 

   문턱 낮아 넘겨다 본서귀포 앞 바다 섬 쌀가마니 같다
   흙바닥에 누운 황소
여물통 베고 엎드려도 여전히 배는 홀쭉하다
   핥아버린 무쇠 솥
두 눈처럼 껌벅이고 있다
   물 항아리 바다는 채워지고
배고픈 방안에선물고기 두 마리가 연신 뛴다.
   담배연기 내뿜는 굴뚝 집 처마 아랜
이십 촉 전등이 가슴을 긁는다.
   흰 발목 아내가 걸어올
부두 길을 황소 눈이 구부린다.

  

    - 이희선의 '이중섭 거리에서'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이희선의  ‘이중섭 거리에서’란 시를 읊조리며, 서귀포의 한 거리를 이중섭 화백을 생각하여 문화의 거리로 명명한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선 이중섭미술관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중섭 문화의거리 중심에는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 일가가 살았던 집이다. 손에 잡힐 듯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문학관은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이 고장 인심을 소재로 높은 창작 열의와 불멸의 예술성을 후대에 기리기 위하여 서귀포시에서 건립한 것이다. 당시 가나아트 이효재 대표가 ‘섶섬이 보이는 풍경’, ‘파도와 물고기’, 은지화인 ‘가족’, ‘물고기 아이들’ 등 이중섭 원화 8점을 흔쾌히 내놨다. 이듬해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도 ‘파란게와 어린이’란 작품을 기증했다.


서양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서양화가,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平原) 출생.
․1937년 동경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하여 신인으로
주목 받았다.
․1940년·1943년 미술창작가협회전에서 수상하였으며,
․1945년 귀국하여 원산(元山)에서 일본여성 이남덕(李南德;야마모토, 山本方子)과 결혼
하였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를 지냈다.
․6·25 때 원산을 탈출, 부산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헤어져 부산·통영(統營)·제주 등지로 떠
돌아다녔다.  이 때 이중섭은 그림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담배곽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는데, 이 때문에 1952년 부인이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다.
․1953년 가족들과 만나기 위하여 일본에 밀항하였으나 얼마 후 귀국하였다.
1955년 친구들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작품경향>

   그는 주로 소·닭·새·어린이·가족 등을 그렸다.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탄력적이고 단순화된 형태, 원색의 선명함으로 사람 내면을 표현한 그의 작품세계는 향토성이 강하며 동화적인 동시에 가족에 대한 정감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서구 근대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하였다. 숱한 에피소드와 강렬한 개성이 풍겼던 그의 예술성은 1970년대 이후 평전과 연극·영화로 기려지고 있다. 대표작품으로 《싸우는 소》《흰소》 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투계》《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길떠나는 가족》 등이 있다.(참조 : 야후 인물 검색)

 

 

 


  
  1층 상설전시관에서는 이중섭의 예술과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과 연표 등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2층의 기획전시실에는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며 대관 전시관으로도 활용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기획전으로  “섬에 가는 호랑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칠십리와 이중섭의 예술혼이 만나면서 한적했던 이곳은 요즘 그의 자취를 느끼려는 문화 올레꾼들로 북적인다. 지역의 작은 미술관에 10만 명에 이르는 발길이 이어진 것은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올레길과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황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환상

 

달과 까마귀

 

천재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집


  미술관 바로 아래 이중섭이 살았던 초가집은 옛날 모습대로 초가로 복원된 것이다. 그가 살던 집에는 화가의 서귀포 행적을 엿보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는다. 불운의 시대 천재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한 평 남짓한 구석진 방에는 그의 흑백사진이 빈방을 지키고 있다. 흑백사진 속 그는 혼자 중얼거리는 듯하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고.

 

  이중섭은 1951년 1·4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로 피난을 왔다. 전쟁통에 모두가 궁핍했지만 그의 피난살이는 더했다. 한 평 셋방에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게를 잡아먹는 등 찢어지게 가난했다. 벽에는 이중섭의 초상화와 그의 시 ‘소의 말’ 만이 그의 가난했던 서귀포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중섭의 시 ‘소의 말’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의 시처럼 아름다운 서귀포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1년여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하지만 그의 예술혼은 서귀포 칠십리 해안에 아직 서려 있다.

 

 

구상의 '이중섭거리 이름 기념시'가 새겨진 돌



  이곳 문화의거리는 전국에 도보여행 바람을 몰고 온 제주올레 6코스에 포함되면서 문화 명소로 떠올랐다. 앞으로도 이 문화의 거리는 서귀포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예술을 함께 즐기려는 올레꾼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주변에서 바다방향으로 가면 서귀포항과 새섬공원, 천지연폭포을 만난다. 한라산 방향으로는 갈치, 고등어 등 먹거리가 풍부한 명동로가 인근에 있다.

    올레 8코스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서귀포아케이드상가를 거쳐 이중섭 문화의 거리에서 마음껏 예술적 향기를 맛본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서귀포항 부근 숙소로 돌아왔다. 올레걷기 셋째 날 일정을 멋지게 소화한 것에 마음이 부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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