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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여행 종합

서해 낙조여행, 저물어가는 노을을 잡아라

by 혜강(惠江) 2009. 12. 23.

 

서해 낙조여행

 

저물어가는 노을을 잡아라

 

일몰시간 체크하고 300㎜ 이상 망원렌즈 챙겨야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 삽교호에 지는 보랏빛이 감도는 일몰.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다시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이 즈음이 되면 잠잠하던 상념들은 기다렸다는 듯 수런수런 일어난다. 진자운동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날들이었으나, 그런 지난 일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서산에 지는 노을이 보일 터이다.


  자연주의 사진을 주장했던 에머슨이 19세기 영국의 농촌을 기록하던 시대나 작고한 사진가 정도선이 한반도의 구석 구석을 주유하던 시절에도 자연을 탐미하는 것처럼 단순하고도 즐거운 일은 없었다. 아마도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 일의 가치를 더욱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산골짜기에서 느낀 순간들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던 워즈워드처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을 꾸는 것도 바로 지금 해야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섬. 가까이 있어서 편안한 강화도는 낙조를 감상하기 참 좋은 곳이다. 초겨울 바람이 매서운 날 그곳으로 길을 나섰다. 강화대교를 건너 왼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확이 끝나고 한산해진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시기에 보는 농촌의 시각적인 여유다. 84번 지방도로를 타고 전등사 입구를 지나 동막리, 여차리를 거쳐 갔다.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탁 트인 조망이 곧 열렸다.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 보이는 곳, 바로 장화리다.

 

▲ 당진 석문의 일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진가들이 벌써 방죽에 진을 치고 있다.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지면서 장화리 일대는 캘리포니아 해변처럼 펜션이 즐비하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사진가들의 발걸음이 한발 한발 옮겨진다. 그 움직임에 긴장감이 감돌고 붉은빛으로 산화해가는 하늘의 여명이 숙연해진다. 

 

  사진가가 되고 싶어 하던 시절, 컬러 필름을 장착하고 처음으로 바다 촬영을 간 곳이 바로 강화도였다. 서툰 앵글이었지만 그때까지 남아 있는 초가집이 반가워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해안 끝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갯벌 위로 떨어지는 고즈넉한 낙조를 만났다. 필터를 바꾸어 가면서 사진 찍던 그 장소 대신 그때의 기분이 강화도 곳곳에 남아 있다. 셔터와 노출 문제로 고심하던 일을 생각하며 촬영의 기본을 열거해본다. 일몰 촬영은 대체로 밝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어 일출보다는 쉽게 느껴지는 게 보통이다.

 

▲ 안면도 꽃지에 지는 넉넉한 노을.

 

         미리 현장에 도착해서 전경과 중경 살펴야

 

  첫째, 촬영을 가기 전에 일몰시각을 파악하고 날씨를 살핀다. 12월 31일의 일몰은 인천을 기준으로 오후 5시25분이다. 대기가 맑은 날은 해가 단순해 보이고 노을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하늘에 엷은 구름은 무방해도 짙은 구름은 좋지 않다. 


  둘째, 현장에는 적어도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포인트를 정하고 전경과 중경의 요소를 살핀다. 일몰 전까지 해가 떨어지는 장소가 옮겨가는 일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 장화리 일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경의 요소.  

 

 

   셋째, 보온대책으로 겨울의 차가운 바닷바람에 대비한 두툼한 파카와 장갑, 그리고 얼굴을 가려주는 모자가 필요하다. 카메라가 얼지 않도록 여분의 배터리를 따뜻하게 보관해야 하며 서브카메라를 품안에 넣어두는 것도 좋다. 

 

  넷째, 렌즈와 액세서리를 챙겨둔다. 전체 분위기를 묘사하려면 광각렌즈가 필요하지만 일몰 촬영엔 적어도 300mm 이상이 필요하다. 태양의 세부가 보이게 하려면 600mm 정도는 써야 한다. 망원렌즈를 쓰는 데 따르는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삼각대는 필수적이다.

 
 
장화리 일대·고려산 적석사도 낙조 포인트
 
   다섯째, 감도 설정과 노출 보정을 해야 한다. 일몰시의 촬영 감도는 ISO 50~200 사이가 무난하다. 지는 해라도 어느 정도 밝기가 있으며 노이즈 방지를 위해 저감에서 중감도에 세팅하는 것이 좋다. 노출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두 스텝 정도 브리케팅해서 찍어둔다. 

 

 

   태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사물을 기준으로 노출을 측정하면 평균값으로 산출되지만 전경이나 중경으로 등장하는 사물은 실루엣으로 묘사되는 점을 인식한다. 카메라에서 가까운 중경은 플래시를 터트려서 어느 정도 보정할 수 있다. 이러한 수칙 외에도 플레어나 고스트 이미지로 불리는 난반사를 막기 위해 필터를 빼고 찍기도 하는 등 현장 경험이 늘어날수록 챙겨야 할 게 많이 보이지만 사진 찍는 즐거움도 역시 늘어날 것이다.  
 
  장화리에 어둠이 내리면서 펜션의 불빛이 하나 둘씩 켜졌다. 아름다운 낙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마지막 구름이 해를 가린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노을을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귀 끝이 아파올 만큼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사진가들이 결국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을빛의 잔상이 사라진 들판을 걸어 나오는 동안 서해의 낙조에 감탄하고 즐거워했던 일을 추억한다. 삽교호 너머로 지는 보랏빛 일몰과 안면도 꽃지에 떨어지는 넉넉한 노을, 군산의 하늘을 물들이던 황홀한 노을 등등 기억할 만한 장면을 참 많이도 보았다. 모두가 다 사진여행의 수확이었다. 어두운 밤, 빛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태양의 노래는 소리 없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다. 
 

 

서해안 낙조 포인트
 

  낙조는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서해안을 찾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가 그 중 많이 찾는 곳이다. 서편의 장화리 일대가 강화도의 낙조 포인트다. 장화리에서 약 5km쯤 떨어진 고려산 적석사도 포인트로도 꼽힌다. 이곳에선 한강 이북의 임진강, 예성강, 송악산까지 바라다 보인다. 배를 타고 석모도로 건너가면 민머리해수욕장에서도 낙조를 찍을 수 있다.
 
 
                                                                      강화도 장화리 낙조를 촬영하기 위해 모여든 사진가들.

 

 

  당진 일대 역시 훌륭한 낙조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이 지역의 왜목마을은 지형상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천의 마량포구도 서해안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부안의 채석강 일대와 안면도의 꽃지해수욕장은 대표적인 서해의 낙조 포인트다.  

 

 

  낙조 촬영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꽃지는 노을 촬영 포인트가 넓고 다양한 앵글이 나올 수 있는 곳이다. 이 밖에 남해안은 진도의 세방리 해안 일주도로가 손꼽히는 낙조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전라남도 장흥의 삭금마을 일대에서도 오붓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남해 금산 일대 역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명소로 꼽는다.

 

 

▲ 꽃지의 낙조를 감상하는 사람들

 

 

낙조 쵤영 가이드

 

 

  낙조 촬영은 포인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망원렌즈다. 일단 300mm 이상의 렌즈를 갖추는 게 좋다. 200mm 이하의 렌즈로 분위기는 찍을 수 있지만 500mm쯤은 돼야 해의 세부가 보이는 장면을 찍을 수 있다. 장비를 갖춘 이후에는 맑은 날씨를 택해서 현장으로 간다. 대체로 늦가을에서 초겨울이 낙조가 좋다.

 

 

 낙조 영에서 중요한 것은 전경과 중경의 요소다. 단지 해만 놓여 있으면 단조롭기 때문이다. 안면도의 꽃지가 낙조 감상의 좋은 곳으로 꼽히는 이유는 적당한 중경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다. 강화도의 장화리 역시 작은 섬이 중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진가들이 많이 찾고 있다.

 

 

 

        <출처> 2009. 12 / 월간산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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