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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북한산 낙엽길, 낙엽 수북이 쌓인 ‘늦가을’을 오르다

by 혜강(惠江) 2009. 11. 7.

 

 북한산 낙엽길  

낙엽 수북이 쌓인 ‘늦가을’을 오르다

 

엄주엽 기자

 

 

 

▲ 청하동 계곡길을 오르다 왼편 부왕사지로 빠지기 직전의 낙엽길. 나무 사이로 조그맣게

보이는 연등(蓮燈) 방향이 부왕사지로 오르는 길이다. 편한 기운이 감도는 길이다.

 

 

▲ 삼천사 계곡 초입에 있는 삼천사가 추색(秋色)에 묻혀 있다.

 

 

   지난 주말의 가을비에 이어진 추위가 이틀 만에 북한산(836.5M)의 색깔을 확 바꿔버렸다. 북한산 단풍명소의 끝물을 맛보고자 이번 주초에 올랐으나 이미 빨간 단풍잎들은 색이 바래 오그라졌고 가을 빛은 흩어져 버렸다. 다산(茶山)이 북한산을 찾아 쓴 시 중에 “가을빛 산문으로 빠져나갔네”(秋色出山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짝이라고 해야 할까.

북한산은 가을산도 괜찮다. 원래 10월 중순에 시작해 11월초면 끝나긴 해도 날씨가 온난해 올해 단풍은 좀 더 갈 줄 알았는데 여지없이 이틀 상관으로 ‘추풍낙엽’이 되고 말았다. 북한산은 코스가 사방으로 다양하고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제 각각 단풍명소로 꼽는 곳이 다르다. 백운대에서 물들기 시작하는 북한산의 단풍명소로는 도선사-백운산장, 도선사-용암문, 진달래 능선-대동문, 칼바위 능선-보국문, 탕춘대 능선 - 대남문, 숨은벽 코스 등 여러 군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산성계곡의 중성문과 중흥사지 중간쯤에서 시작해 부왕동암문으로 오르는 청하동(靑霞洞) 골짜기(부왕사지 코스)가 북한산 최고의 단풍명소라고 생각한다. 다른 코스에 비해 단풍나무가 많고 가파르지 않게 구불구불한 길이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에 편하다.

몇년전만 해도 이 길이 참 호젓했는데 근래에는 삼천사에서 부암동암문으로 넘어오는 등산객이 늘어나 옛적만은 못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코스에 비해 다니는 사람이 적고,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대로 연두색 신록과 짙은 녹음이 좋아 북한산 어디로 들입목을 잡던 청하동만큼은 꼭 들렀다. 이번에 갔더니 단풍이야 쪼그라졌지만 다른 풍취가 계곡을 메우고 있었다. 이 또한 기다리던, 단풍처럼 그 정취가 짧은 북한산의 풍광 중 하나다. 바로 계곡길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한, 아직 색이 덜 바랜 낙엽길이다. 단풍보단 이런 낙엽길을 좋아했었지, 하는 마음으로 금세 바뀌었다.

바스락 바스락 밟히는 낙엽길을 걷는 기분이야 뭐에 비교할까. 마치 나에게만 주워진 하늘의 혜택인 양, 만추에 서늘한 가을 바람을 안으며 폭신한 낙엽길을 걷는 여유로움 역시 늦가을 산행에서만 맛보는 정취다. 제대로 된 낙엽길을 맛볼 수 있는 시간도 초봄 신록이나 가을 단풍처럼 짧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 금세 흩어지거나 바스라져 버리는 데다 첫눈이 오면 그만 흉물이 돼버린다. 첫눈이 온 뒤에는 낙엽밑이 얼어 오히려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부왕사지 코스는 어느 철이나 좋지만 낙엽길도 그만이다. 낙엽길은 우선 가파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 길이 걷기에 적당한 경사를 지니고 있다.

북한산에는 여러 개의 동(洞)이 있다. ‘동’은 지금은 마을을 지칭하는 뜻이 됐지만 본래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리킨다. 신선이 머무는 곳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옛 북한지(北漢誌)를 보면 북한산에는 백운동 중흥동을 비롯해 18개나 되는 ‘동’이 있었다. 현재 좀 상세한 지도를 봐도 ‘동’이 표기된 것은 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옛적 지명을 찾아 조그만 표지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

‘청하동’의 경우 부왕사지에서 부왕동암문(옛 적엔 소남문으로 불렸다)으로 오르다 왼편 바위에 그 옛날 누군가 ‘청하동문(靑霞洞門)’이라고 각자(刻字)를 해놓아 정확히 위치를 알 뿐이다. ‘북한지’에 “청하동은 동문(洞門)이 그윽하고 고요하여 다른 것은 모두 이와 짝하기 어렵다”고 적어놓은 것으로 봐서 옛적엔 북한산 18개 ‘동’중에 최상의 ‘동’으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규모가 적지 않았을 부왕사와 어우러져 골짜기가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부왕사지 부근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껴왔다. 기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산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같은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이곳에 편한 기운이 감도는 모양이다.

부왕사지 코스는 낙엽들이 등산로뿐 아니라 주변을 온통 덮고 있어 지금부터 낙엽길로는 최고의 풍취를 자랑하고 있다. 오르다 중간쯤 왼편 길로 들어서면 아직 석주가 여럿 남아있는 옛 부왕사지 터가 나온다.

부왕사(扶旺寺)는 ‘북한지’에 “임진왜란 때 승장이었던 사명대사 유정(惟政)의 초상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궤에 기대어 흰 사슴꼬리로 만든 총채를 들고 있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한 모습’이었다고 하니 그 초상을 보고 싶다. 하지만 사찰과 함께 초상도 언제 소실됐는지 알길이 없다. 지금은 쓸쓸하게 그 터와 석주만 남아있는데, 주변 풍광이 쓸쓸하니 좋다.

앞서 열거한 북한산의 단풍명소는 모두 낙엽길로도 걸을 만하다. 더 보탠다면, 대남문에서 대동문에 이르는 산성주능선을 따라 산성계곡 쪽으로, 지도에는 안나와 있지만, 능선 사변을 따라 쭉 주능선을 따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사실 이같은 샛길이 없어져야 하는데, 이 길은 워낙 생긴 지도 오래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 등산로로 자리를 잡았다. 주능선 길에 나무가 적어 한 여름이면 그늘을 찾아 등산객들이 이 길을 이용한다. 비록 사면길이어서 코스가 들쑥날쑥이지만 역시 가을 낙엽길로 좋은 코스다.

고양 방면의 밤골이나 사기막골에서 숨은벽 직벽을 만나기 직전의 평이한 숨은벽 능선길도 가을에 수북한 낙엽을 밟으며 걷기에 더할 나위가 없는 길이다. 가을도 어느새 막바지다. 첫눈이 오기 전에 북한산 낙엽길을 즐겨봄이 어떨까.


등산코스
▲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부왕사지 ~ 부왕동암문 ~ 삼천사

대중교통
▲ 지하철 불광역 또는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로 환승해 북한산성 입구 하차


 

 

<출처> 2009-11-06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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