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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경북 의성, 끝모를 과수원엔 사과가 주렁주렁

by 혜강(惠江) 2009. 10. 28.

                                           

경북 의성

끝 모를 과수원엔 사과가 주렁주렁 

이름 모를 못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박경일기자

 

 

 

 

▲ 비가 적은 경북 의성에는 저수지와 작은 못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이즈음에는 저수지와 못에 단풍과 파란 가을 하늘이 담긴다. 옥산면 오류리의 오지마을에서 마주친 작은 저수지 수면에도 가을이 담겼다. (위 사진) 사촌마을 과수원에 매달린 발갛게 익은 사과.(아래) 내달 초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경북 의성은 유난히 비가 적은 곳입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끼여 있는 분지인 탓에 연평균 강수량이 1000㎜에도 미치지 못한답니다. 의성이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마늘이나, 당도가 높은 사과로 유명한 것도 다 이렇듯 적은 강수량 때문입니다.

물이 귀하다 보니 의성에는 곳곳에 물을 가둬둔 저수지들이 많습니다. ‘저수지’란 이름값에 맞게 제법 번듯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웅덩이에 가까운 자그마한 못입니다. 5만분의 1 지도로 의성 땅을 펼쳐 보면 이런 저수지들이 어찌나 촘촘하던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저수지들은 이즈음 화려한 가을 단풍의 색깔을 수면에 반사하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외딴 마을 길에서도, 짙은 숲길에서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자그마한 저수지들은 새파란 가을 하늘과 붉고 노랗게 물든 산자락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내고 있습니다.

청명한 대기 속에서 터덜터덜 걷다가 만나는 이름 없는 자그마한 못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비춰진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지게 된답니다. 의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안동과 청송의 경계를 이룬 의성군 옥산면 일대입니다. 옥산면 일대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밭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과밭을 둘러친 산들도 말 그대로 ‘만산홍엽’입니다.

산 아래에는 선홍빛의 탐스러운 사과와 당단풍나무가, 산자락에는 붉나무와 산벚나무, 생강나무들이 저마다 붉고 노랗게 물들고 있는 풍경이라니…. 알려진 단풍 명소들은 죄다 행락객들로 북적이지만, 이쪽의 산자락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옥산면에 들어선 금봉자연휴양림만 해도 산새 소리만 가득한 곳입니다. 휴양림에 들어 청석골로 이어진 임도를 밟아 봤습니다.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임도 100선’에 꼽힌 곳이라는데, 산허리를 감고 도는 길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그득했습니다.

의성에서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함께 역사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의성은 신라에 정벌당한 2000여년 전의 부족국가 조문국(召文國)의 옛 땅입니다. 더 멀리는 7000여년 전 백두산보다 먼저 불을 뿜었다는 화산의 흔적인 금성산이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사촌마을이나 운곡마을에서 풍류 넘치는 조선시대 대갓집을 만날 수 있고, 최치원의 자취가 서린 고운사에서는 절집으로 드는 오솔길을 걸어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다가 하나 더.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고 권정생 선생의 오두막집을 보탭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안동 땅이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서 나와 의성 고운사로 향하는 길에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면 다섯평 남짓의 초라한 집이 나오는데, 그가 거의 한평생을 머물며 글을 썼던 곳입니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집은 열쇠로 잠겨 있는데, 누군가 댓돌 위에 작은 화분을 하나 가져다 놓았습니다. 평생을 무소유로 청빈의 삶을 산 그가 노숙을 하며 거지 생활을 했던 시절에 썼다는 한 편의 시가 가슴을 흔듭니다.



“사람의 손이 만든 / 콩크리트 다리 밑 / 오늘 밤은 거기를 / 빌어들었습니다 / 주님 / 어쩌면 이런 자리에 / 누추하게 함께 / 주무실런지요.”

 

 

 

굽어진 길 어귀마다 소박한 情 숨어있네

 

 

▲ 금봉휴양림에서 청석골로 이어지는 임도. 붉나무와 산벚나무는 선홍빛으로, 생강나무며 고로쇠나무는 선명한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름난 단풍 명소들은 행락객으로 북적거리지만,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든 이 단풍 길에서는 걷는 내내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 권정생, 그의 집 앞에서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생가



  경북 의성을 향하는 길에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곳 있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가 914번 지방도로에 오르면 곧바로 길 왼편에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 행정구역으로 보자면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지만 의성군과의 경계를 이룬 남쪽 끝에 있어 안동을 찾았다가 들르기란 쉽지 않은 곳이다. 오히려 의성으로 향하는 길에 찾아가는 편이 더 맞춤하다.

  안내판을 따라 시멘트길로 가면 길이 흐려지면서 다섯평짜리 허름한 빨간 슬레이트집 마당으로 들게 된다. 그곳이 바로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이 거의 한평생을 기거하면서 글을 쓴 곳이다. 평생을 자신이 쓴 글대로 바른 삶을 실천하며 청빈하게 살았던 그가 소유했던 것들은 생전의 유언대로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졌지만, “내가 살던 오두막은 허물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라”는 유언만은 그의 삶과 작품을 추억하고 기리려는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지 않았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이 곧 허물어질 듯 서 있는 오두막집에 그의 체취를 느낄 만한 것은 없다.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고, 까치발로 창틈을 들여다봐도 말끔히 치워진 방에서 그가 기거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창호문 위에 그가 손수 비뚤배뚤 쓴 ‘권정생’이라는 글씨 하나만이 그가 이곳에서 기거했다는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지은 책이 수십 권에 달해 인세만으로도 이렇듯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조탑동 교회 문간방에 기거하며 종지기 생활을 했던 그는 돈이 생기면 항상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했고, 초라한 오두막에서 글을 쓰며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했다. 그 집 앞에 서면 그가 생전에 몸소 보여준 “중요한 것은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라는 가르침을 얻게 된다. 자녀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그가 지은 책 몇 권을 챙겨 들고 가서 오두막집 앞 평상에 앉아 마당에 심어진 노란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서 읽어 보면 어떨까.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권정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빈곤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의 점원 등을 하였다.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을 앓으며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그곳에서 작품을 쓰며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저 가난에 찌들어 사는 시골 노인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데 놀랐고 그렇게 책을 많이 낸 분인 줄 알고 놀랐으며 그 책의 인세로 선생의 재산이 10억이 넘는데 놀랐다고 한다. 무소유로 살다간 선생은 유언도 미리 써놓았다고 하는데 그 유언은 다음과 같다.


  “재산은 000목사님과 000신부님께 부탁합니다. 재산은 모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과 중동, 티벳,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평생 아이들을 생각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권정생 선생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다.



#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단풍 숲길을 걷다

 

  경북 의성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지역이다. 의성을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안동·예천을 잇는 5번, 28번 국도를 제외하면 군내의 모든 도로는 예외 없이 왕복 2차선이다. 면소재지와 연결되는 주요 지방도로들은 중앙선이 없는 구간이 허다하고, 교행이 불가능한 도로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길은 빨래가 걸린 낡은 슬레이트집의 담장과 주렁주렁 열린 사과나무 아래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주민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지만, 여행자들에게 목적지까지 맹렬하게 달려가는 길보다 굽은 길이 더 반가운 것은, 이런 길에서 시골마을의 푸근한 정취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의성에서 느끼고 봐야 할 것도 이런 것들이다.

  의성에서도 가장 오지로 꼽히는 옥산면 일대로 접어들면 길은 더 옹색해진다. 옥산면 일대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밀집해 있는 곳. 비가 적은 데다 일교차가 커서 당도 높은 사과가 난다. 과수원에는 울타리도 가림막도 없다. 길가에 바짝 붙어 심어진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이 빨갛게 익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옥산면에서는 어디로 길을 잡든 사과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굽이굽이 달리게 된다. 이름을 붙이자면 ‘사과로드’인 셈이다. 마침 사과를 선별하던 농부에게 “왜 울타리를 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천지가 사과밭인데 하필 내 밭의 것을 따 가겠느냐”며 웃고는 사과 한 아름을 안긴다.

  어디 사과뿐일까. 안동과 청송의 경계를 이룬 옥산면의 금봉리, 금학리, 오류리 일대는 제법 높은 산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어 단풍이 빨갛게 물든다. 금봉리의 오지마을에 들어선 금봉자연휴양림에서는 고즈넉하게 아름다운 단풍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휴양림에서 청석골로 이어지는 6㎞ 남짓의 임도는 산림청이 꼽은 ‘한국의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이름을 올린 운치 있는 숲길이다.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조문국 고분·적석탑

 

 

 



   의성은 이웃한 안동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의성은 안동의 남쪽에 있어 안동을 지나야 당도한다. 의성에는 안동에 버금가는 전통마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동 땅의 오랜 전통마을과 유서 깊은 세도가의 고택들을 다 지나쳐 찾아가야 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의성의 고택이나 전통마을이 안동에 비해 고즈넉한 맛이 있긴 있다고 해도 그 규모와 크기를 안동에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모자라다. 따라서 의성에서 ‘시간의 깊이’를 만나겠다면 ‘안동 땅에는 없는 것’들을 찾아가는 게 더 낫겠다.

  먼저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조문국(召文國·召는 이두문자로 ‘조’로 읽음) 유적인 고분군이다. 조문국은 신라에 멸망했던 삼한시대 부족국가. 당시 부족국가로는 김천의 감문국, 영천의 골벌국, 경산의 압독국, 상주의 사벌국, 청도의 이서국 등이 있었지만, 이처럼 100여기가 넘는 대규모의 고분군이 발견된 곳은 이곳 의성이 유일하다. 조문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신라 벌휴왕 2년(185년) 신라가 조문국을 복속했다’는 단 한 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기록대로라면 이곳의 고분은 무려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것들이다. 잘 정비된 고분의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면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의성에서 찾아봐야 할 또 하나는 다양한 탑이다. 의성의 유일한 국보인 탑리 오층석탑은 나무탑과 돌탑, 벽돌탑 양식을 두루 갖춘 독특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금성산을 뒤로하고 힘차게 솟아오른 탑의 위용이 자못 당당하다. 높이 9.6m에 달하는 대형 탑을 이렇듯 균형과 비례에 맞게 세워낸 도형감각이 감탄스럽다. 관덕동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석탑의 양식인데 몸돌에 정교하게 새겨진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빼어나다. 의성의 탑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을 꼽으라면 안평면 석탑리의 방단형적석탑(아래 사진)이다. 넓적한 돌을 사각형의 단처럼 쌓아 올렸는데, 어찌 보면 무덤 같기도 하고 사방에 돌구멍(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앉힌 것을 보면 탑 같기도 하다. 이 역시 아무런 기록이 없어 언제 무슨 목적으로 세운 것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의성의 옛 전통마을과 마을 숲, 그리고 사과밭

 

 

 

 

  의성은 안동 못지않게 유교적인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안동 김씨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사촌마을이 자리 잡은 ‘점곡면’만 해도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버지 증점(曾點)의 점(點)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증자의 시에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바람을 쏘이다’라는 구절에서 따 점곡면을 가로지르는 하천에도 ‘기천(沂川)’이란 이름을 붙였을 정도다.

  사촌마을은 퇴계학문의 맥을 이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90여호가 사는 사촌마을은 대부분 기와집이고,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도 멋스럽지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만취당 단 한 곳뿐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마을이 초토화됐던 탓이다. 사촌마을에서는 옛집이나 전통마을의 풍모보다 오히려 마을 숲이 더 볼만하다. 마을을 앉히면서 좌청룡의 기세는 빼어나지만 우백호의 지세가 약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숲이라는데, 팽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아름드리 활엽수가 활개를 치듯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숲은 가운데 제방을 끼고 양편으로 800m쯤 이어지는데, 숲 옆으로 울타리도 없이 딱 붙어 사과나무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의성 북부의 반촌이 사촌마을이라면, 남쪽에는 산운마을이 있다. 산운마을은 백두산보다 앞서는 국내 최초의 사화산인 금성산을 끼고 있는 마을인데, 영천 이씨의 집성촌으로 운곡당, 소우당, 점우당 등 운치 있는 10여채의 전통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이 중 눈여겨볼 곳은 전통정원이 멋스럽게 꾸며진 소우당. 별당의 연못과 소나무 숲의 풍류가 빼어나다. 마을 서당 역할을 한 학록정사 본관에 걸린 편액도 표암 강세황의 솜씨이니 눈여겨볼 만하다.

 

 

 

가는길

고운사와 사촌마을을 먼저 들르려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가다 79번 국도로 갈아타면 된다.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서 의성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집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산운마을이나 면 쪽으로 가려면 의성 나들목으로 빠져 927번 지방도와 68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고운사 쪽에서 사촌마을로 넘어가는 79번 도로가 확장공사를 벌이면서 아예 길을 막아 5번 국도와 914번 지방도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묵을 곳 & 먹을 것

속소로는 금봉자연휴양림( 054- 833- 6922)을 가장 추천할 만하다. 인근 대구 등지에서 찾는 이들이 많아 주말 숙박 예정이라면 일찌감치 예약을 해야 한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나온다는 탑산온천은 모텔을 겸하고 있다. 시설은 낡은 편이지만, 숙소에 머물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어 편리하다. 숙박객에게는 온천입장권을 제공한다.

의성 사람들에게 ‘맛집’을 물으면 십중팔구 의성시장의 ‘남선옥’(054-834-2455)을 든다. 대폿집 스타일의 허름한 한우 숯불구이집인데 한우를 1인분(180g)에 1만원에 내온다. 가마솥을 얹고 장작으로 불을 때서 끓여내는 김이 펄펄 나는 소머리곰탕(4000원)도 유명한데 장날에만 내놓는 메뉴다. 의성시장에서 장날에만 맛볼 수 있는 연탄닭발구이와 전국수 등도 별미로 꼽힌다. 의성은 마늘을 먹여 키운 이른바 ‘마늘한우’로도 유명한데, 봉양면소재지에 가면 의석축협에서 직영하는 식육판매장(054-833-9505)이 있다. 이곳에서 고기를 사서 지정음식점으로 가면 상차림 비용만 내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출처> 2009. 10. 28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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