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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구미 금오산,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 최초 발상지

by 혜강(惠江) 2009. 5. 20.

구미  금오산(金烏山)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 최초 발상지

 

- 수려한 경관과 채미정 등 유적 많아 - 

 

·사진 남상학

 

 

 

  우리나라에는 금오산이 여러 곳에 있다. 구미 이외에 경주와 양산, 하동과 여수에도 있다. 이 중에서 구미 금오산(金烏山 : 해발976m)은 구미시, 칠곡군, 김천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대부분 수려한 경관과 유적은 구미시에 있다. 기암괴석과 수림으로 절경을 이루어 예로부터 영남팔경으로 불리며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 각종 유적이 많아 연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데,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5월과 10월에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다. 

 

 

 

  평지 돌출형으로 구미역(驛)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 떨어져 우뚝 솟은 명산이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하였다. 그 이유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에 중국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유명한 숭산(嵩山)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남숭산이라 명명하였고,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부른 것이다.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케 되었다.


  그러다가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신라에 불교를 전해준 아도(阿道)화상이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중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名山)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 대각국사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던 중 저녁놀에 황금빛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금오산(金嗚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산의 동쪽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것 같이 보여서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오산에는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주봉인 현월봉(顯月峰)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으며,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기암절벽에 급경사가 많아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또 산 입구에는 고려 말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피해 금오산 아래 은거하여 성리학을 개화하고 영남사림파의 기초를 마련한 야은 길재 선생의 높은 학덕과 만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된 채미정((採薇亭, 지방기념물 제55호)이라는 정자가 있다.  '채미'는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의 백이와 숙제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서 먹고 살았다는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이라 불리는 야은 길재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받고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며 벼슬을 버리고 금오산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세종 원년(1419)에 67세로 별세하자 나라에서는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의 지조가 백이·숙제와 같다고 여겨 뒷날 세워진 정자에 채미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금오산은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77. 9. 5 박정희 대통령이 쓰레기로 더렵혀진 금오산도립공원의 계곡을 청소하면서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해에 「자연보호를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정부 안에 필요한 기구를 설치하고 민간단체도 결성, 서로 협조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에 따라 자연보호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다보면 수풀을 가로질러 곧게 뻗어 있는 성곽이 보인다. 바로 금오산성이다. 금오산 정상부를 두른 내성(內城)과 외성(外城) 이중구조로 된 성으로, 금오산성에는 남문 ·서문 ·중문 ·암문(暗門) 및 건물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고려 말 인근 주민을 징발하여 산성을 수비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10년(태종10)~1413년에 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방상의 요충으로 부각되어 1595년(선조 28) 성벽을 수축하여 승병대장 사명(四溟)도 이에 참여하였다. 1639(인조 17)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내성과 외성을 다시 쌓았다. 1868년(고종 5) 마지막으로 수축하여 당시의 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산정 부락터에 남아 있다. 

 


  금오산 중턱에는 해운사, 도선굴, 대혜폭포 등의 명소가 있다. 대혜교 위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바로 바로 해운사 옆이다. 가파른 바위 절벽 아래 자리 잡은 해운사는 신라 말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대혜폭포는 해운사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대혜계곡에서 높이 27m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鳴金)폭포라고 한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살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절 뒤쪽 암벽 위로 쇠사슬 난간을 잡고 가파른 암반을 간신히 오르면 천연동굴 도선굴이 아슬아슬하게 올려다 보인다. 높이 4.5m, 길이 7.2m의 이 동굴은 신라말 도선대사가 수도한 도선굴이다. 이 곳에 서면 구미공단과 낙동강 물줄기, 멀리 해평의 냉산 등도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일품이다. 동굴 내에는 자그마한 불상과 함께 법당이 들어서 있어 평일에도 불자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금오산 최고의 절경은 정상 부근에 자리한 약사암이다. 정상 부근에 오르면 일주문이 나오고, 여기서 100m 가량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기암괴석에 달라붙은 듯 자리한 약사암을 만날 수 있다. 신라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록이 없다.


  약사암 법당 안에는 지리산의 석불 삼구(三軀) 중 하나가 봉안됐다는 전설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수십m의 기암괴석이 뒤를 받치고 있는 모양새가 아슬아슬하리만치 절경이다. 약사암 맞은 편엔 흔들계단으로 연결된 범종각이 있는데 그 생김새가 신비롭다. 

 

 


  금오산에는 마애보살입상이 있다, 이곳은 등산로가 여러 곳 있으나 주로 관리사무소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채미정, 자연보호 기념비, 케이블카 승강장, 해운사, 대혜폭포, 약사암을 거쳐 정상까지 오른 후 하산은 약사암에서 법성사를 거쳐 내려오는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 5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정보

 

* 위치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288-2
* 문의 : 구미시청 문화공보담당관실(054-450-6063) 관리사무소 054-450-5760)
* 숙박
· 금오산장(054-456-9000), 힐타운(054-453-1100), 실크로드(054-457-6341),
· 엠빌리지(054-457-1233), 한솔파크빌리지(054-442-8772)

* 식사
· 정일품(금오산도립공원 단지 내, 삼계탕, 버섯전골, 낙지전골, 비빔밥, 054-452-3268)
· 다혜골(공원단지 내, 전통닭백숙, 054-443-6234)
· 금오동산(공원단지 내, 닭요리의 명가,  054-452-8801)
· 미가 매운탕(구미시 봉곡동 230-9번지, 054-444-2374, 메기매운탕)
· 월전주돌솥밥(054-481-4237, 010-7755-4237, 구미시 선산읍 교리 1164-5, 영양
  돌솥밥, 해물돌솥밥, 돼지갈비, 매실삼겹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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