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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상주, 낙동강 제1경 경천대 - 달큼한 감 내음… 늦가을이 익어간다

by 혜강(惠江) 2009. 11. 16.

 

상주, 낙동강 제1경 경천대

달큼한 감 내음… 늦가을이 익어간다

 

박경일기자

 

 

 

▲ 가을색이 짙은 상주 경천대의 풍경. 경천대에 오르면 유연하게 휘어져 흘러가는 낙동강의 물굽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경천대 암봉 벼랑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고사목이 난간 너머로 뻗은 가지를 뒤틀고 서 있다.

 

 

 

경북 상주의 이름났으되 고즈넉한 절집인 남장사. 남장사로 드는 길에 접어들기 훨씬 전, 고속도로에서 내려섰을 때부터 곶감의 단내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남장사 절집 아래 사하촌은 절 이름을 딴 남장마을입니다. 남장마을의 늘어선 곶감 건조장을 지나면 마치 술 익는 내음 같은 달큼한 감 냄새가 어찌나 짙은지 머리가 다 어찔어찔해질 정도입니다.

상주에는 도처에 감나무들입니다. 오래 묵은 감나무들이 따로 과수원이라 부를 것도 없이, 동네 어귀와 도로변은 물론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린 허름한 농가의 마당이나 담장 아래에도 가지를 늘어뜨린 채 붉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서 있습니다.

이즈음에 상주는 ‘곶감’으로 알려졌지만, 한때 내로라하는 위세를 자랑했던 곳입니다. 경상도란 지명도 이 지방의 대표적인 고을인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고, 낙동강이란 이름도 상주의 옛 이름 ‘상락(上洛)’의 동쪽으로 흘러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쯤이면 옛 상주 땅이 얼마나 번성했던지 짐작이 되시는지요.

상주는 그러나 번성했으되, 번잡스럽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속리산 자락에는 예언서 정감록부터 남사고의 비결, 이중환의 택리지에 두루 등장하는 이른바 이상향의 땅인 우복동이 있습니다. 전설로 내려오던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다는 별천지는 자취도 없지만, 용유계곡을 끼고 들어선 호젓한 마을은 몸과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다가 폭포와 정자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비경을 만들어내는 속리산 아래 장각폭포도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곳입니다. 폭포와 정자는 어찌나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지, 두 가지 중 하나가 없었다면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겁니다. 또 상주를 감싸고 흐르는 북천을 끼고 무성한 갈대가 가을볕에 반짝이는 풍경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상주에서 최고 절경이라면 낙동강의 절벽에 우뚝 선 경천대가 첫손으로 꼽힙니다. 이곳에 서면 발아래로 굽어 흐르는 낙동강의 풍광은 물론이거니와 경천대 암봉에 뿌리를 내리고 우람하게 가지를 뒤튼 소나무의 자태도 빼어납니다. 경천대에 바짝 붙여 지어진 정자 무우정에 걸터앉으면 병자호란의 치욕을 못 잊고 북벌을 꿈꿨던 조선시대 학자 채득기의 굴곡 많은 삶에도 시선이 가게 된답니다.

상주에서는 뜻밖에 마주친 작은 풍경에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왔습니다. 남장사 극락보전에서는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백을 그린 그림을 만났고, 우복동에서는 바위에 초서체로 물 흐르듯 새겨진 양사언의 글씨 ‘洞天(동천)’과 마주쳤습니다.

전라도 땅에만 있는 줄 알았던 동학의 흔적이, 경상도 상주 땅에 동학교당으로 뚜렷이 남아있던 것도 뜻밖이었습니다. 동학교당의 건물 창호문살에서 하늘의 이치를 뜻하는 버금 아(亞)자를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동학을 따르는 이들도 없고, 사람들의 관심도 없어 날로 쇠락해가고 있지만, 열여섯에 시집와 이제 팔순을 넘겼다는 허리 굽은 동학 남접주의 며느리는 마치 숙명처럼 동학교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고즈넉이 느려진 걸음은 옛 이야기에 취하고…

 

상주 ‘명소 & 숨은사연찾기’

 

▲ 속리산에서 발원해 상주시를 감아 흘러가는 북천변에는 지금 갈대들이 무성하게 피어나 가을볕에 반짝이고 있다. 북천은 들판을 흘러내리는 물길이지만, 바닥이 훤히 비치고 물고기가 노니는 것이 다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 장각폭포는 폭포와 정자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의 미감을 완성한다. 폭포와 정자, 둘 중의 하나가 없더라도 이렇듯 빼어난 경관을 갖지 못했을 터다.

 

 

# 상주 남장사 법당에 들어 고래 탄 신선을 만나다

 

 

▲ 남장사 마을의 곶감 건조장에 걸린 주황빛 감. 남장사 마을에 들어서면 술이 익는 듯 달큼한 향이 코를 찌른다.

 

 

 

상주를 찾는 여행자를 절집 남장사로 이끄는 것은 절집의 매력만은 아니다. 오히려 잘 깎아 가을볕에 말리는 곶감의 달큼한 향을 쫓다 보면 절집 아래 사하촌인 남장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남장사로 드는 길에는 곶감 건조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잘 깎아 매달아 놓은 주황빛 감들이 가을볕에 말라가고 있는 풍경에서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남장마을을 지나 절집으로 들기 이전부터 볼거리들이 곳곳에 있다. 먼저 산문을 들어서기 전, 길가에 세워진 해학적인 표정의 석장승이 눈길을 잡는다. 퉁 불거진 눈에다가 주먹만 한 코의 장승은 동적이면서도 우직한 느낌을 준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석장승을 지나면 기둥에 용모양의 장식용 버팀대를 세운 독특한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의 우람한 기둥은 1000년 된 칡뿌리라고도 하고, 싸리나무라고도 하는데 사실이야 알 길이 없지만 수피가 거친 것이 한 눈에도 보통 나무가 아닌 성싶다.

남장사에서 이름난 것은 목각탱. 보통 불상 뒤에 내거는 탱화는 종이나 비단에 그림으로 그린 것이지만, 이곳에는 독특하게 넓적한 나무로 불상 스물네구를 조소처럼 깎아 불상 뒤에 세워두었다. 이런 형식의 목각탱화는 전국의 사찰 중에서 6곳밖에 없단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극락보전의 왼쪽 내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수염 난 노인네가 구부정하게 물고기를 탄 채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림이다. 그림 구석에는 ‘이백기경상천(李白騎鯨上天)’이란 글이 쓰여 있다. 풀어보자면 이태백이 신선이 돼서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그린 이가 고래를 본 경험이 없는지, 이태백이 타고 선 것이 고래라기보다는 잉어나 쏘가리 형상이다. 이태백이 술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대로 고래 등에는 두 개의 술병도 올려져 있다. 불교를 받드는 절집에는 대개 부처의 일대기를 담는 게 보통. 그런데 왜 이곳에는 신선과 같은 도가적인 인물들이 그려져 있을까. 남장사 극락보전의 내벽에 그려진 그림은 수수께끼와도 같다.

 


# 속리산 자락 신선이 머문다는 이상향 우복동

신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상주 우복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속리산 남쪽 자락의 상주 땅에는 ‘우복동(牛復洞)’으로 일컬어지는 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상주시 화북면 용현리지만, 주민들은 그보다 ‘우복동’으로 부른다. 우복동은 정감록에서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로 기록돼 있으며, 남사고의 비결에도 기록돼 있다. 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이곳 우복동이 길지 중의 길지로 선비가 머물 만한 곳이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우복동에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상주 장날이면 소금을 사러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삿갓에다 도롱이(비옷)를 입고 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한 사람이 뒤를 쫓았더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고, 도둑도, 사기꾼도, 가뭄도, 홍수도, 전쟁도 없는 곳이었다. 뒤쫓던 이는 서둘러 부인과 자식을 데리고 그곳으로 다시 찾아갔는데, 입구를 끝내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용유계곡을 끼고 있는 용현리는 전설대로 이른바 ‘산자수명’한 곳이다. 속리산 자락은 숲은 깊고, 계곡을 따라 바위벼랑에 가지를 뒤튼 소나무들이 운치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큰 산을 끼고 있음에도 마을은 볕이 환하게 든다. 소나무가 울창한 마을 계곡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절로 평안해져 걸음이 느려진다.

우복동에 들면 마을 초입에 비스듬히 누인 바위 동천암(洞天巖)을 찾아보자. 바위에 물 흐르듯 새겨진 글자가 눈길을 붙잡는다. 초서에 능했던 양사언의 솜씨라는데 웬만한 눈으로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洞天(동천)이란 구불구불한 글씨에서 신선의 풍모가 느껴진다. 속리산 자락에서는 장각폭포도 빼놓을 수 없다. 속리산 자락의 사모봉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폭포를 이루는 곳인데, 폭포의 높이나 위용은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폭포 위에 세워진 정자 금란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금란정은 마을주민들이 1960년대에 세운 것이라니 내력은 보잘 것 없지만 폭포는 정자로 인해, 정자는 폭포로 인해 더 아름다워졌으니 자연과 사람의 손이 합쳐져 비경을 빚어낸 셈이다.


# 경천대에 올라 풍경과 역사를 함께 내려다보다

상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명소를 꼽으라면 예외 없이 경천대를 첫손으로 꼽는다. 무지산 자락의 암봉으로 이뤄진 경천대는 낙동강 물굽이가 흘러가는 1300리 중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경천대는 그곳에 올라 암봉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는 낙동강의 물줄기와 건너편 백사장의 풍경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조선 인조 때의 선비인 우암 채득기의 굴곡 많은 삶과 얽혀 더 감회가 깊은 곳이다.

채득기는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던 인조가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이후 경천대에 정자 무우정을 짓고 은거했다. 경천대란 이름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그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인조의 세 아들 봉림대군, 소현세자, 인평대군을 따라 심양으로 가라는 인조의 명을 어겼다가 3년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마음을 바꿔 심양으로 떠나 세 왕자와 함께 생활하다 8년 만에 되돌아온 그는 울분을 삭이며 북벌의 의지를 다지다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훗날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등극해 채득기가 은거하고 있던 경천대의 산수를 그려 병풍으로 삼아 그의 절의를 사모했다고 전해진다.

이즈음에는 행락객들은 경천대보다 옥주봉 전망대에 더 발길이 잦다. 경천대에서 송림이 우거진 황톳길을 따라 300여개 계단을 올라 고도를 높이면 3층 누각의 전망대가 서 있다. 이곳 전망대에 서면 낙동강의 물줄기가 U자로 유연하게 굽어지는 모습과 함께 백사장을 둥글게 둘러친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경상도 땅에서 뜻밖에 동학의 자취를 만나다

상주 땅에서 흥미로운 곳이 바로 동학교당이다. 동학의 자취라면 아무런 유적이 남아있지 않은 전적지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전라도와 충청도에 몰려 있다. 그러나 이곳 경상도 땅에도 동학의 자취가 남아있다. 그것도 동학으로 세상을 궁구하고, 전파하던 동학본부인 교당이다.

동학교당은 동학교의 남접주를 자처한 김주희가 우금치 전투 이후 속리산에 들어 득도한 뒤 1915년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에 거처를 정하고 동학교의 부흥과 포교를 위해 세운 곳이다. 교당은 주위의 지형이나 지세를 동학교의 논리로 해석해 정(丁)자의 산의 맥과 정(丁)자의 물의 흐름을 합친 산정수정(山丁水丁)의 지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초가지붕을 얹은 건물은 하늘의 이치를 뜻하는 글자인 버금 아(亞)자 형상으로 들어서 있다.

동학교당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은 동쪽 건물의 접주실의 문. 창호문을 발라 잘 드러나진 않지만 문살이 음각한 ‘亞’ 모양의 문살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미닫이문을 닫으면 4개의 ‘亞’자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대적인 민중봉기로 이어져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동학의 교당이 어찌 이렇듯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교당을 세운 김주희가 동학을 기반으로 즉각적인 혁명적 실천에 나선 전봉준과는 달리, 동학을 종교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도들의 발길은 끊긴 지 이미 오래. 교당은 쇠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열 여섯의 나이에 시집왔다는 김주희의 며느리 곽아기(82)씨가 큰아들 김정선(60)씨와 함께 지금까지 동학교당을 지켜오고 있다. 때마다 초가지붕을 얹고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바로 세우고 쓸고 닦으며 교당을 보존해오고 있다. 곽씨는 “여태껏 지켜왔어도 동학이 뭔지도 잘 모른다”며 “어른이 목숨까지 내놓고 하시던 것이니 그저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교당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는 길. 접주실 기둥에 걸린 주련의 글씨가 눈길을 잡는다. ‘만년 묵은 고목나무 가지에도 1000송이 꽃은 피고, 사해가 구름으로 덮여도 어느 한 곳에는 달빛이 비친다.’ 옥중의 최시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라고 했다.

 

 



상주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내려가거나, 경부고속도로 청원분기점에서 청원 ~ 상주 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상주에 가 닿는다. 우복동이나 장각폭포가 있는 화북면이나 동학교당이 있는 은척면 쪽을 목적지로 삼는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나들목이나 북상주 나들목으로 나가야 한다.

청원 ~ 상주 간 고속도로를 타면 화서나들목으로 나가야 한다. 경천대나 남장사를 가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청원 ~ 상주 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상주나들목으로 나오는 편이 가깝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상주에서 묵어가기에는 성주봉자연휴양림이 첫손으로 꼽힌다. 상주 시내에는 상주관광호텔(054-536-3900)이 있다. 시내 무양동 일대에는 새로 지은 모텔들이 많다. 속리산 자락의 화북면 일대에는 민박집이나 펜션들이 곳곳에 있다. 맛집으로는 서보매운탕(054-532-5978)의 메기매운탕이 으뜸이다. 시내 한복판의 청기와숫불가든(054-535-8107)의 한우구이도 이름났다. 고속도로 상주나들목 부근의 새지천식당(054-534-6402)은 우리밀로 밀어 만든 칼국수로 유명한데 외진 곳에 있지만, 점심시간이면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경천대 인근의 경천대청석골(054-536-6022)의 버섯전골도 추천할 만하다.

 

 

 

<출처> 2009-11-1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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