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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전북 임실, '가을 풍경' 가득한 옥정호와 임실

by 혜강(惠江) 2009. 10. 15.

 

전북 임실

'가을 풍경' 가득한 옥정호와 전북 임실 

가난했지만… 강은 행복을 품었다.

 

 

박경일 기자

 

 

전북 임실 옥정호의 이른 새벽. 섬진강 물이 밤새 피어올린 운무는 호수를 지우고, 길을 지우고, 사람들의 마을을 다 지웠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 옥정호에 가면 낮과 밤의 기온 차로 이른 아침 운무가 가득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른 새벽, 섬진강 물을 가둔 옥정호가 보이는 국사봉에 올라 온통 운무에 휩싸인 강과 산을 내려다봅니다. 호수 주위로 산 능선이 빙 둘러친 것이 마치 오목한 그릇과도 같습니다. 그 그릇 안으로 가득 고인 운무가 발밑에서 조용히 출렁입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산자락을 오른 몇몇 사진가들이 묵직한 중형 카메라를 꺼내 놓고 서 있었지만, 한 손으로 가볍게 쥘 수 있는 자그마한 디카 하나 챙겨 들어도 좋겠고 그저 맨몸으로 올라도 그것으로 족합니다. 섬진강의 물이 밤새 피어올린 운무가 호수를 지우고, 강변 길을 지우고, 사람 사는 마을을 지우는 풍경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런 가을날의 감흥을 사진 안에 가두기란 아예 턱도 없으니, 마음에나 고이 담을밖에요.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섬진강과 동강을 들 수 있습니다. 섬진강이나 동강이나 둘 다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기실 이 두 강의 아름다움은 전혀 다릅니다. 동강의 물길은 빠르고 탄력 있지만, 섬진강의 물은 그보다 훨씬 느리고 묵직합니다. 동강의 아름다움에서 이른 새벽 푸른 강을 박차고 오르는 물오리떼들을 떠올린다면, 섬진강에서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돌아오는 농군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답니다. 섬진강에서 길어 올리는 마음속의 풍경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까까머리 아이들의 자맥질과 폴짝폴짝 건너는 징검다리, 저물녘 개구리 울음소리, 혹은 검정 고무신….

  섬진강이 구례와 하동을 굽이칠 때, 그 강은 매화와 벚꽃 잎이 분분히 날리는 봄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을 섬진강은 옥정호에 모여 담겼다가 다시 흘러내리는 임실 즈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냅니다. 섬진강은 임실 땅을 부드럽게 흘러갈 때 가장 ‘섬진강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터덜터덜 섬진강을 따라가다 강변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자식들이 세상을 떠난 가난했던 부모 ‘월곡양반’과 ‘월곡댁’을 기리며 고추밭에 세운 소박한 비석을 만났습니다. 평생 손톱이 다 닳도록 밭을 일구며 일곱 남매를 키워내곤 세상을 뜨고만 어머니 ‘월곡댁’이 그리웠던 막내아들은 ‘월급날이면 술 한 병 사들고 달려오라’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월급을 쪼개 모아서 ‘가난했지만 /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란 문구가 새겨진 ‘사랑비’를 세웠답니다. 

  일면식도 없는 월곡댁에게서 ‘어머니’를 봅니다. ‘어머니의 강’인 섬진강을 봅니다. 이 비석 앞에 서면 너나없이 아릿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겹쳐지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질 겁니다.

  가을 섬진강이 무겁게 흘러가는 임실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어찌 ‘좋은 여정’이 멋진 경치만으로 이뤄지겠습니까. 빼어난 경치도 좋지만, 어쩌면 길에서 봐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정호에 담수가 시작되면서 섬 아닌 섬이 되고만 외얏날에서 홀로 기거하고 있는 노인의 밭은 기침 소리, 논두렁 길로 한참을 들어가서 만난 이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는 호랑이바위….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으되 찾아가볼 만한 임실의 풍경을 기웃거려 봤습니다.
 
 
섬진강물 쉬어가는 호수엔 옛 언덕마을 추억 서려있네
  
 
 # 작은 비석이 길어 올린 추억의 시간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섬진강변의 진뫼마을 고추밭에서 마주친 자그마한 비석 하나. 그 정갈한 비석에 새겨진 글귀가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월곡양반·월곡댁 / 손발톱 속에 낀 흙 / 마당에 뿌려져 /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비석 옆면에는
 
  '어머니·아버지 / 가난했지만 /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라고 새겨져 있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필시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보냈을 일곱 남매의 이름으로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의 임자는 월곡양반 김동팔(1988년 작고)씨와 월곡댁 조남순(1985년 작고)씨다.

  너나없이 고단했던 시절. 그때는 어떤 부모든 그랬겠다. 자식을 바라보며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었을 월곡양반과 월곡댁. 이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생애를 기리며 비석은 서 있다. 비석을 짚으며 읽다가 ‘참으로 행복했다’는 글귀에서 자식의 사무친 그리움이 울컥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비석이 ‘취직이 되면 주말마다 술 한 병 사 들고 달려오라’던 생전의 어머니 말이 잊히지 않았던 월곡댁의 막내아들이 세운 것이라 했다. 일면식도 없는 비석공장 사장까지 비석을 새기는 데 기꺼이 돈을 보탰다고도 했다.

  진뫼마을은 회문산을 앞에 두고 그 아래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섬진강은 가을볕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진뫼마을은 6·25전쟁의 생채기가 어둡게 그늘을 드리운 곳이다. 진뫼마을을 포함해 회문산 일대의 마을은 6·25전쟁 당시 끔찍했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9·28 수복 후 회문산에는 조선노동당 전북도상 유격사령부가 숨어들면서 낮이면 국군토벌대가, 밤이면 공산유격대가 상대방에 협조한 이들을 색출해 처형하는 비극의 순환이 계속됐다.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섬진강은 마을 앞을 유순하게 흘러간다.


# 진뫼~구담마을… 최고의 강변길 
 
 

▲ 섬진강을 따라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로 향하는 비포장길에서 만난 풍경. 적요한 강변에서 중백로가 날아오르고 있다.



  최근 전국 곳곳에 ‘걷기 코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코스를 섬진강의 걷는 길에 어디 댈 수나 있을까. 섬진강에서 강물을 따라 걷는 가장 아름다운 코스가 바로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을 지나 구담마을까지 이르는 길이다. 그중에서도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의 옛 천담분교(섬진강수련원)를 잇는 3.5㎞의 비포장 흙길이 백미 중의 백미다. 건너편 강변에는 방목 중인 흑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뿔을 마주 대며 힘을 겨루고 있고, 물 가운데 바위에는 백로며 왜가리들이 조용하게 서 있다. 간혹 물오리떼가 수면위를 미끄러지면서 반짝이는 물방울을 털어낸다. 강을 끼고 있는 논에는 벼들이, 논둑에는 수수가 잘 익어 가고 있다.

  천담마을에 당도할 즈음 길은 포장도로로 바뀌지만, 이어 구담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강변으로 내려서면 다시 비포장 흙길이다.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가 잔돌이 잘 다져진 길이었다면, 이 길은 풀들이 무성한 오솔길에 가깝다. 수면에 바짝 다가서서 이어지는 이 길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강물에 손을 담글 수 있다. 하릴없이 징검다리를 건너 보기도 하고, 투명한 강물 속의 송사리떼를 들여다보며 걷다 보면 곧 구담마을이다. 길은 강물에 끊기지만 구담마을 느티나무 언덕 위에 올라서면 섬진강의 유장한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름다운 강변길의 종착지로는 맞춤할 만한 풍경이다.
 

# 마음으로 담아 오는 옥정호의 운무
 
 

▲ 섬진강 물을 막아 만들어진 옥정호 한가운데 내륙의 섬이 된 외얏날이 떠 있다. 섬이 붕어 모양이라 흔히 ‘붕어섬’이라고 불린다. 배를 타지 않고는 들 수 없는 이 섬엔 3가구가 살고 있다.

 

 
임실은 전북의 14개 시·군 중에서 가장 깊은 내륙이라 할 수 있다. 전라북도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임실의 정중앙에는 섬진강 물을 가둔 옥정호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댐이 1차 준공됐고, 이어 1965년에 수위를 높여 본격적으로 담수가 이뤄졌다. 댐에 물을 가두면서 운암면의 가옥 300여호와 경지면적 70%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몰민들은 부안의 계화도로 이주됐지만, 평생을 농사밖에 모르던 주민들은 막 간척돼 척박한 계화도 땅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다시 돌아왔다.

  옥정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국사봉과 오봉산이다. 특히 일교차가 큰 이즈음에 이른 아침 옥정호는 운무가 피어올라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온통 운무로 뒤덮인 호수와 안개가 차츰 걷히면서 드러나는 호수 가운데 섬 외얏날의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다.

  외얏날은 모양이 붕어와 닮았다 해서 흔히 ‘붕어섬’이라 불리는데 운암벌에 우뚝 솟은 언덕이었던 곳이 물이 차면서 섬이 됐다. 굳이 배를 빌려 타고 외얏날을 찾아 들어간 것은, 국사봉에서 내려다본 매혹적인 섬의 풍광 때문이었다.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외얏날에는 미루나무와 잘 다듬어진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 외얏날의 적막한 가을날 풍경

  외얏날에 거주하는 주민은 고작 3가구에 불과하다. 한 집은 집주인이 간혹 들르는 탓에 빈집이나 다름없고, 다른 한 집은 도회지 생활을 접고 9년 전에 귀농한 가족이 살고 있다. 다 쓰러져 가는 흙집에는 박대서(89)씨가 3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경북 영주가 고향이라는데, 젊어서 낚시를 다니다 이곳을 찾아 아예 정착했다고 했다.

  4남매는 다 도회지에서 살고 있지만, 박씨는 15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낸 뒤에도 혼자 살고 있다. 그나마 임실군에서 외얏날을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어 내년이면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다.

  섬 아닌 섬에서 사는 노년의 삶이 쓸쓸하고 두렵지 않을까. 또 오랜 거처를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박씨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지가 안 죽을라니 겁이 나지. 겁날 게 뭐가 있겠어.” 박씨는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오히려 더 무섭더라”고 했다. 몇 해 전에 한 중년 남자가 섬을 찾아들었다. 박씨는 아내와 자식을 뉴질랜드로 이민 보냈다며 무턱대고 찾아온 이 남자와 같이 한 방을 쓰면서 몇 달을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전기톱이며 값나가는 물건들이 싹 없어졌다. 필시 남자가 돈 되는 물건들을 다 가지고 나간 것이었다. 그때부터 간혹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반갑지만은 않더라고 했다. 말은 그랬지만, 박씨는 불쑥 찾아든 객에게 이야기 내내 차라도 한잔 내놓지 못하는 살림을 미안해했다.


# 임실에 숨어 있는 쏠쏠한 구경거리
 
 
                                 ▲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호랑이바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유쾌해진다
 


  임실에는 미처 알려지지 않은 구경거리들이 꼭꼭 숨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전북 임실군 신평면 호암리 두류마을의 ‘호랑이바위’였다. 말이 호랑이바위지, 험상궂은 호랑이의 모습이 아니라 이빨을 다 드러내며 웃고 있는 해학적인 모습으로 깎은 석물이다. 논둑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호랑이바위는 주민들의 안내 없이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숨겨져 있다.

  임실군 삼계면 삼계리의 삭녕 최씨 문중의 재실인 록천제의 흙담 벽도 찾아가볼 만하다. 기와로 흙담 벽에 아(亞)자를 가득 새겨 놓았다. 이뿐만 아니라 획수가 많은 용(龍), 수(壽), 복(福)자와 같은 복잡한 글자도 기왓장을 쪼개 정교하게 새겼다. 아(亞)자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 다시 내려온다는 의미도 있으니 아마도 윤회를 뜻하는 것이겠다. 이 밖에도 임실에는 태조 이성계가 기도 끝에 용이 자신의 몸을 씻어 주는 꿈을 꾸고 크게 기뻐하며 ‘삼청동’이란 글을 남긴 상이암도 있고, 1000년 전 주인이 불에 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고 죽었다는 개의 전설이 있는 오수마을도 있다.
 
 
옥정호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서전주나들목으로 나와 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이 길을 조금 가다가 21번 국도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21번 국도를 만나면 다시 좌회전해 21번 국도를 타면 된다. 이 길을 타고 가다가 27번 국도를 만나는 사거리에서 순창 방향으로 우회전해 다시 21번 국도로 올라선다. 이어 운암삼거리에서 좌회전해 749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면 길 왼쪽에 국사봉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정자가 있지만, 차를 대고 약 20분 정도 국사봉을 향해 산길을 오르면 옥정호 전망대가 있다.


  옥정호 한가운데의 외얏날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외얏날 주민들이 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외지인들이 자주 찾아드는 것을 번잡스러워 하니, 인근 용운리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의 배를 빌려 타고 들어가면 된다.
 

<출처> 2009. 10. 14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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