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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전남 구례, 얼음물 모이는 여름 지리산 ‘물이 차다’

by 혜강(惠江) 2009. 9. 18.

 

전남 구례

 

여름 지리산 ‘물이 차다’

 

 

박경일기자

 

 

 

▲ 더위를 물리치는 피서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수락폭포의 거센 물줄기 아래 서면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온몸에 한기가 스며든다. 올여름은 특히 잦은 비로 지리산이 물을 한껏 머금고 있어 폭포의 물줄기가 훨씬 굵어졌다

 

 

숨이 턱까지 차고,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듭니다. 거센 폭포의 물줄기를 맞아 온몸이 휘청거립니다. 어찌나 물살이 센지 귀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오들오들 추위에 입술은 파랗게 질리고, 이까지 딱딱 마주칩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의 수락폭포. 예부터 ‘물맞이 폭포’로 이름난 곳입니다. 한여름이면 전국에서 물을 맞으러 오는 인파로 북적대는 곳이지요. 올해는 유난히 긴 장마로 지리산이 넉넉하게 물을 품고 있어 이곳 폭포의 물살도 여느 때보다 훨씬 더 힘찹니다. 어찌나 물이 많고 거센지 폭포는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압의 소방호스에서 ‘뿜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수락폭포에는 한여름 폭염이 온데간데없습니다. 굳이 폭포 아래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우르릉거리는 물소리와 차가운 물보라, 거센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서늘한 바람만으로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고 맙니다. 폭포 아래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물을 맞는 사람들은 물론이겠고, 주변에 둘러앉아 물맞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오슬오슬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전남 구례에서 수락폭포 말고 숨겨진 물맞이 폭포를 하나 더 찾아냈습니다. 문척면 금정리 화정마을의 천단폭포입니다. 계족산 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커틑처럼 펼쳐지면서 넓은 암반으로 떨어지는 곳입니다. 관광안내도는 물론이고 이정표도 없이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30~40여년 전만 해도 이곳 폭포에서 물을 맞고는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너 진변마을의 백사장으로 가 모래찜질을 했답니다.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다니며 폭포 물맞이와 강변 모래찜질을 교대로 즐겼다니 그 운치가 이즈음의 피서와는 아예 격이 다릅니다.

지금은 산자락에 활엽수 대신 소나무가 밀생하면서 폭포의 수량이 영 예전만 못합니다. 섬진강 건너 백사장도 수달보호지구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제한됐습니다. 물맞이와 모래찜질로 여름을 보내던 옛 풍류를 즐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천단폭포를 찾아가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산중에서 호젓하게 물맞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여름철 구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이 천은사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들은 다 제 계절이 있습니다. 검붉은 흑매화가 피어나는 화엄사는 ‘봄의 절집’이겠고, 핏빛 붉은 단풍이 물드는 연곡사는 ‘가을의 절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의 절집’으로는 단연 천은사(泉隱寺)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샘(泉)’이 ‘숨었다(隱)’는 뜻을 가진 천은사는 절집 앞으로 천은제란 운치 있는 저수지와 빼어난 계곡을 끼고 있습니다. 지난봄 바닥을 드러냈던 천은제는 이즈음 지리산을 내려온 맑은 물을 가득 담고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천은사에 들어 절집 앞에 솟는 차가운 감로수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설선당 뒤쪽의 평상에 걸터앉아 순한 매미의 울음과 함께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것도 좋겠고, 고즈넉한 극락보전에 들어 대들보와 기둥 곳곳에 숨겨져 있는 13마리의 용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꼭 차가운 폭포수에 뛰어드는 것만이 피서일까요. 하안거가 해제되면서 화두를 지고 씨름하던 스님들이 바랑을 지고 만행을 떠난 빈자리. 방장선원 툇마루에 걸터앉아 느긋한 부채질과 물소리로 순하게 더위를 씻어 내는 것이 어쩌면 더 시원하게 여름을 나는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천둥 치는 폭포, 퐁퐁 솟는 샘, 계곡마다 골마다 물

 

 

전남 구례… 수락폭포·천단폭포·천은사

 

 

▲ 지리산 자락의 천은사는 지리산에 물이 그득 담겨야 정취가 살아나는 ‘여름의 절집’이다. 지난봄까지 바닥을 드러냈던 절집 앞의 저수지 천은제는 이즈음 지리산 계곡을 흘러내려온 맑은 물로 그득하다. 절집으로 드는 다리 위에 세워진 수홍루 아래에서 물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절로 청량해진다.

 

 

천은사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감로천. 그 자리에서 솟는 샘물이 아니라 절집 뒤편 지리산 자락의 저수지에서 끌어온 것이긴 하지만 물맛은 나무랄 데 없다.

 

 

 # 온몸으로 느끼는 지리산 폭포의 힘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의 수락폭포는 눈으로 보는 폭포가 아니라 ‘온몸을 던져서 느끼는’ 폭포다.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거센 물살. 호기롭게 웃통을 벗어젖힌 장정들도 물살에 맞아 휘청거린다. 온몸을 때리는 물에 눈을 뜰 수 없고, 귀는 곧 떨어져 나갈 듯하다. 물살이 온몸을 아프게 두드려 대는 데다 물도 차가워 30초를 견디기 힘들다. 폭포 아래를 몇 번 드나들면 마치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다 녹진녹진해진다.

수락폭포는 한여름이면 전국에서 물맞이 인파가 몰리는 명소 중의 명소다. 전국의 명산에 이름난 폭포는 많지만 이른바 ‘물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제주 서귀포의 소정방폭포와 경북 청도군 남산의 약대폭포, 전남 화순군 유천리의 만연폭포 등이 대표적인 물맞이 폭포다.

물맞이 폭포가 드문 것은 대개 폭포 아래 시커먼 소(沼)가 만들어져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락폭포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에 어른 10여명이 설 수 있을 정도의 암반이 형성돼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폭포가 무른 바위를 깎아 뒤로 밀려나면서 소 뒤쪽의 단단한 바위를 미처 깎아 내지 못해 만들어진 암반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수락폭포에 물맞이 행락객들이 몰려들었던 것은 뛰어난 접근성 때문이기도 하다. 대개 큰 폭포들은 심산유곡에 자리 잡고 있어 제법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수락폭포는 논과 논 사이로 흐르는 유순한 물길을 따라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서늘한 바람과 물안개, 그리고 우람한 물소리로 가득한 폭포는 더할 수 없이 힘차다.

수락폭포는 자연이 만들어 낸 물놀이 테마파크다. 폭포의 물줄기는 곧 물안마를 즐길 수 있는 바데풀이고, 폭포 아래 소는 자연 수영장이다. 폭포 위쪽으로는 속을 파낸 통나무로 수로를 내 길게 쏘아 대는 물줄기를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서 축포를 쏘아 올리듯 이쪽저쪽에서 물줄기를 뿜어낸다. 그러나 수락폭포를 물놀이 테마파크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 자연이 만들어 낸 장엄한 위용도 위용이거니와 지리산을 휘감고 내려온 물을 어디 인공 수영장을 채운 수돗물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

 


# 그리운 섬진강변 나룻배·모래찜질



구례 땅 섬진강 남쪽에도 꼭꼭 숨어 있는 물맞이 폭포가 있다고 한다. 외지로 알려진 적이 없이 마을 주민만 알음알음 찾아드는 곳이라 했다. 계족산 자락의 천단폭포. 관광안내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안내판도 하나 없는 곳.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여름 더위를 쫓던 명소 중의 명소로 꼽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사학자 겸 언론인이었던 호암 문일평은 ‘호남의 명폭(名瀑)’으로 부안의 직소폭포, 무등산의 용추폭포와 함께 이곳 천단폭포를 꼽기도 했을 정도다.

폭포는 마치 얇은 커튼처럼 쏟아졌다. 물길이 넓어 힘 있게 꽂히는 폭포는 아니었지만, 물줄기가 둥글고 너른 바위 위로 떨어져 물맞이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암반은 마치 콘크리트를 타설한 것처럼 자갈이 박혀 있다. 강바닥이나 바다 밑에서 큰 압력을 받아 자갈과 흙이 바위로 굳어졌다가 지각변동으로 불끈 솟아오른 것이리라.

폭포 아래에는 가슴까지 차는 자그마한 소가 만들어져 있다. 마침 인근 주민 몇몇이 물맞이를 하면서 더위를 쫓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이 폭포에서 물을 맞고 물길 아래 섬진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진변마을 섬진강가 모래밭으로 가서 모래찜질을 하곤 했다”고 입을 모아 추억했다. 폭포의 물맞이와 강변에서의 모래찜질을 번갈아 즐기던 풍류는 생각만 해도 운치가 넘쳤다. 그러나 아쉽게도 계족산의 식생이 변화하면서 물이 줄어들어 폭포의 위용은 예전만 못하고, 진변마을 쪽 섬진강 모래사장은 지난 2001년 수달경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며 아예 출입이 금지돼 모래찜질도 할 수 없게 됐다.

비록 출입은 제한됐지만 구례 쪽의 여름 섬진강 풍광도 빼어나다. 섬진강은 ‘섬진청류’라는 말에 걸맞게 진한 푸른빛을 띤다. 특히 구례 쪽의 섬진강은 1급수로 워낙 물이 맑아 그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구례에서 하동 쪽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것도 좋겠고, 부드러운 강물을 따라 래프팅을 즐기거나 하동 쪽 섬진강의 모래톱에 내려 발을 담그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맛도 좋다.



# 차디찬 계곡물 넘치는 천은사



구례는 섬진강변이 벚꽃 꽃터널을 이루는 봄철과 피아골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제 계절이라지만, 지리산 깊은 골짜기마다 풍성한 물을 품고 있는 여름의 정취도 이에 못지않다. 구례에는 연곡천이며 유곡천, 황전천, 문수천 등 지리산이 안고 있는 물길 계곡이 허다하다.

그중 천은천을 끼고 있는 천은사를 찾아간다. 화엄사며 연곡사 등 구례에 이름난 절집을 마다하고 하필 천은사를 찾아가는 건 이곳이 아름다운 계곡과 녹음으로 가득한 저수지를 앞에 둬 요즘처럼 물이 가득해야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절집이기 때문이다. 천은사는 지리산이 한껏 물을 머금는 여름에 찾아가야 할 ‘여름의 절집’이라 할 만하다.

천은사에는 한때 법당 앞에 차고 맑은 샘이 솟았는데, 몇 차례 화마로 절집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렁이를 잡아 죽이자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그래서 절집의 이름도 ‘샘 천(泉)’에 ‘숨을 은(隱)’자를 쓴다. 이렇게 사라졌다는 샘은 아직도 찾아볼 수 없다. 저수지의 물길을 건너는 수홍루를 지나면 맑은 물이 가득한 감로천이 있고 관음전 앞에도 물이 솟는 곳이 있으며 방장선원 안에도 돌확에 물이 담겨 있지만, 이 물은 샘에서 솟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자락 산정의 저수지에서 끌어온 것이다. 그렇다 해도 물맛은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차고 또 달다.

절집의 위세나 유물 등으로 보자면 천은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절집의 대표 격인 화엄사에 비해 초라하다 느낄 정도지만, 꼼꼼히 둘러보면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줄줄이 딸려 나오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현판. 둘 다 당대의 명필로 꼽히던 원교 이광사의 솜씨인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손칼국수발 같다’고 감탄했던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현판 글씨처럼 힘차다. 대웅보전 옆 명부전 현판은 예서체로 썼는데 날렵한 글씨가 마치 날아갈 듯하다.

극락보전에 들어 화려한 문양과 조각들로 가득한 대들보와 천장을 올려다보자. 극락보전에는 모두 13마리나 되는 용이 숨겨져 있는데, 특히 불상 위 닫집에 얽히고설킨 5마리 용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대들보의 두 마리 용이 뿜어낸 불과 여의주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도 독특하다. 또 기둥에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수달과 불을 먹는 해태가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천은사를 끼고 흘러가는 천은천은 계곡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비록 물에 몸을 담글 수는 없지만 대신 계곡의 청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다. 손부채 하나 챙겨 들고 설선당 뒤쪽의 작은 평상에 앉아 시퍼런 소를 내려다보거나, 하안거가 해제된 후 고즈넉해진 방장선원에 들어 음악처럼 들리는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리라.

 

 

 

 

 

<출처> 2009. 8. 12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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