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위도의 망월봉
달빛을 따라 그 섬에 오르고 싶다
박경일기자
▲ 위도의 주봉인 망월봉에 열사흘달이 환하게 떴다. 망월(望月)이란 이름답게 이곳에 오르면 달빛에 젖어 달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굽어볼 수 있다.
▲ 위도를 종주등반하면서 대할 수 있는 풍경.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남해바다를 연상케 한다.
전북 부안의 격포항에서 뱃길로 50분. 위도에는 망월봉(望月峰)이 솟아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둥싯 솟은 달을 바라볼 수 있다는 봉우리입니다. 섬이 노을빛으로 물들 무렵, 망월봉에 올랐습니다. 곧 해가 지고 푸른 하늘에 휘영청 달이 떠올랐습니다. 열사흘 달빛이 환합니다. 달빛이 수면 위에 은가루처럼 뿌려져 반짝거립니다. 저 아래 해안을 치는 파도소리가 산 능선까지 타고 올라옵니다. 달빛 아래에서 차가운 겨울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라니…. 마치 입안에 화한 박하사탕을 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겨울, 위도를 찾아간 것은 ‘매혹적인 등산로가 마치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는 지인의 귀띔 때문이었습니다. 남북의 봉우리를 잇는 16㎞짜리 등산로를 따라 걷는데, 길 양쪽으로 파도소리가 들리더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위도는 자그마한 섬이고, 가장 높은 봉우리래야 높이가 254.9m에 불과합니다만 파장봉과 망월봉, 도제봉, 망금봉을 오르내리는 맛은 빼어났습니다. 능선길에서 내려다보면 정금, 딴정금, 딴달래섬, 모여…. 정겨운 이름으로 점점이 떠있는 섬들도 아름다웠고, 해안을 끼고 들어선 딴시름, 깊은금, 논금, 전막, 살막금 같은 포구 마을들의 경관도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위도라면 지난 1993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가 먼저 떠오릅니다. 16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위도 사람들에게 아직도 사고의 상처가 깊습니다. 불편한 기색 탓에 주민들을 붙들고 사고 당시 사정을 묻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여간해서는 당시의 비극에 대해서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파장금에서 진리 쪽으로 가는 해안가에 세워진 서해 훼리호 위령탑 앞에는 낭자한 선혈처럼 때이른 동백이 붉은 꽃을 틔워내고 있었습니다.
위도에는 등산로 말고도 낭만적인 해안도로도 있습니다. 위도에서 온 여객선이 닿는 파장금에서 시작해 섬을 한바퀴 도는 20㎞짜리 해안도로입니다. 바다에 바짝 붙어 달리는 해안도로는 철부선에 싣고온 차로 달리는 것도 좋지만, 걷기에도 그만입니다. 그 길에는 옛 풍경들이 자주 발길을 잡습니다.
진리의 해안가에는 지주식 김발을 건져올려 발장에 김틀을 놓고 김을 부어서 건조하는 재래식 김을 만드느라 한창입니다. 구운 김을 조선간장에 찍어 먹는 그 기막힌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기계 대신 전통방식으로 김틀에 김을 부어 건장에 말리는 위도의 이른바 ‘손 김’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겁니다. 딴치도 앞에서 마을 아낙들이 썰물 때면 캐오는 자연산 홍합의 졸깃한 맛도 아는 사람만 압니다. 돌보다 더 딱딱한 자연산 껍데기를 가진 자연산 홍합의 쫄깃쫄깃한 속살의 질감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지요.
슬픔의 세월 살아낸 섬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 망월봉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내려다본 풍경. 앞으로는 코앞에 바다를 품고 있는 딴정금의 포구마을이, 멀리 식도가 바라다보인다.
▲ 파장금 선착장에서 가는 길에 세워진 서해훼리호 위령탑. 위령탑으로 드는 길에는 때이른 붉은 동백이 피어났다.
# 쓸쓸하고 고즈넉하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섬, 위도
위도는 쓸쓸했다. 하루 네 번 위도까지 여객선이 뜨는 격포항도 한적했지만, 위도로 향하는 228t급 파장금카페리호에는 고작 열댓명 안쪽의 승객들만 타서 한가하다 못해 썰렁했다. 승객들의 과자 봉지를 노리며 여객선을 뒤따르곤 하는 갈매기 떼도 격포항에서는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승객들은 뭍에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위도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민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장판을 깐 객실에서 목침을 베고 누웠다.
격포항에서 출항한 여객선은 무인도인 임수도 앞바다를 지나쳐 위도 파장금항에 닿는다. 배가 돛단여를 지나 임수도 쪽으로 향하면서 물살이 눈에 띄게 거세졌다. 조타 핸들을 잡은 선장은 “이곳이 16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가 난 곳”이라고 했다. 292명의 생명이 수장됐던 곳. ‘심청전’의 무대인 인당수도 바로 이곳 임수도 앞 바다였단다. 임수도 앞바다는 옛부터 풍랑이 거세 주민들을 바다에 바치는 ‘수장’ 풍습이 있었던 곳이었다. 임수도가 심청이 중국 상인에게 팔려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 속의 배경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승객 중 한 명이 창 밖을 내다보고는 ‘매화가 피었다’고 했다. 바다가 거칠어지면서 파도가 부딪히면서 흰 물살이 이는 것을 그리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 ‘매화’ 때문인지, 거센 조류와 파도에 밀려 파장금페리호도 뱃머리가 자꾸만 틀어졌다.
격포항을 출항한 지 50분 만에 배는 위도 파장금항에 닿았다. 위도에는 자그마한 섬들이 오종종하게 떠있어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를 연상케 했다. 섬은 조용했다. 섬에 단 한대뿐이라는 버스가 털털거리며 여객선을 마중 나왔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풍경. 위도의 첫인상은 그랬다.
# 달빛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며 산길을 걷는 맛
하필 섬까지 와서 산에 오르는 것일까. 그건 겨울 숲 사이로 짙푸른 바다와 해안가에 들어선 포구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섬 산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박하향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을까. 서울 여의도 면적(2.95㎢)의 4.8배쯤 되는 위도에는 제법 산봉우리들이 많다. 그래봐야 주봉이 해발 254.9m에 불과하지만, 그런 봉우리를 오르는 3~6㎞짜리 4개 등산코스를 주르륵 이어 전장 16㎞의 종주코스도 있다.
파장금 선착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진리 쪽으로 향하다가 서해훼리호 위령탑 앞에서 위도의 최고봉인 망월봉에 올랐다. 위도의 동북쪽과 서남쪽을 잇는 종주코스를 온전히 끝에서 끝까지 밟겠다면 시름마을 쪽에서 시작해 파장봉부터 올라야 하겠지만, 망월봉을 먼저 딛고 도제봉과 망금봉을 지나 전막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택했다. 낙조와 함께 위도 8경 중의 하나라는 망월봉에서 달빛에 젖은 바다풍경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봉우리 이름도 ‘달을 바라본다’는 ‘망월봉(望月峰)’이 아닌가. 마침 음력보름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망월봉 정상에서는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이 시야를 막아선 탓에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풍경은 보이지 않지만, 서쪽 하늘이 온통 붉어지는 장엄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서쪽으로는 칠산 앞바다와 상·하왕등도, 고군산 군도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변산반도와 선운산이 아스라하다. 그 광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해가 넘어가자마자 반대편 하늘에 열사흘 달이 둥싯 떠올랐다. 달빛이 바다에 반짝인다. 한때 칠산 앞바다에서 무리지어 몰려들었다는 조기떼의 은비늘과도 같았다. 망월봉을 넘고 개들넘을 지나 도제봉을 오르고 다시 능선을 타고 망금봉을 향한다. 뒤쪽에서 비치는 달빛이 밝아 길이 환하다. 이런 정도라면 랜턴도 필요없겠다. 밤이 되면서 파도가 더 높아졌는지, 달빛에 비친 바다에서는 수시로 매화가 피어났다.
# 위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며 만난 풍경
이튿날에는 해안을 따라 위도의 포구마을을 돌아봤다. 위도에는 섬 주위를 도는 해안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해안도로는 20㎞ 남짓. 전 구간이 바다를 바짝 끼고 돈다. 해안도로에서 보는 풍경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그것과는 또 다르다. 논금과 미영금, 깊은금을 도는 해안은 부드럽고 또 곱다. 섬 안으로 솟아오른 산 능선이 그렇고,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이 그렇다. 거칠거나 탁한 데가 한 곳도 없다.
위도는 고려 때는 수군의 요지였고, 조선시대에는 멀고 먼 유배지이기도 했지만 그때도 섬의 아름다움은 여전했을 터다. 그래서일까. 허균의 ‘홍길동전’의 율도국의 모델이 된 곳도 바로 이곳 위도였다. 위도는 수백년 전에도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이상향의 땅이었던 것이다. 한때 위도는 조기 파시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칠산바다에 조기떼가 몰려들 때면 위도는 조기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위도에는 풍요의 기억들도 있지만,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도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섬 사람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이다. 파장금항에서 진리 쪽으로 향하는 해안 언덕에는 서해훼리호 위령탑이 상처처럼 서있다. 탑에는 당시 사고로 희생된 292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섬 주민 45명의 이름도 있었다. 그 이름 뒤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이 있었을까.
위도는 풍경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소박하게 사는 섬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갯가에서 얻은 먹을거리들이 있다. 썰물이면 뭍으로 이어지는 치도 앞바다에는 삼태기를 허리춤에 차고 굴이며 홍합을 캐러 나가는 섬 아낙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캐낸 자연산 굴 맛도 좋지만, 그보다 더 높이 쳐줄 만한 것이 자연산 홍합이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껍질의 자연산 홍합 속살은 쫄깃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진리 어촌계의 150여 가구가 발장에 김틀을 놓고 빻은 김을 붓고 건장에서 말려낸 김은 거끌거끌하면서도 향긋했다.
격포항서 여객선 하루 4번… 자연산 홍합탕 별미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 위도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부안나들목에서 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과 변산을 거쳐 격포항까지 간다. 부안나들목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줄포 나들목으로 나와 곰소를 거쳐 격포항으로 가도 된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태인나들목에서 나와 부안을 거쳐 격포항까지 가면 된다.
격포항에서는 하루 4번(오전 8시·10시, 오후 1시·4시) 위도까지 여객선이 운항된다. 위도에서 나오는 배시간도 똑같다. 차량도 싣고 운항하는 카페리호다. 위도에는 순환도로를 도는 버스 1 대와 택시 1대가 있다. 굳이 차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큰 불편이 없다.
다만 날이 궂으면 배가 안 뜨는 날이 많으므로 미리 격포항 매표소( 063-581-1997 )에 운항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돌아오는 배가 뜨지 않으면 자칫 섬에 발이 묶일 수도 있으므로 일기예보를 꼭 확인해야 한다. 정월 초사흘날인 오는 28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중요무형문화재 82호인 띠뱃놀이를 재현하니 이때를 맞춰 찾아가도 좋겠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위도에는 포구마을마다 민박집들이 들어서 있다. 여름 휴가시즌에만 반짝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겨울철에는 간간이 찾아드는 낚시꾼들 외에는 찾아오는 외지인이 없어 방 사정은 넉넉한 편이다. 대부분 횟집과 민박을 겸하는 곳들이 많다. 민박집들은 대부분 1박에 3만원을 받는다.
여객선이 닿는 파장금항 안쪽에는 ‘해넘이 횟집’( 063-582-7886 )이 있다. 횟집을 겸해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파장금에서 서남쪽 해안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는 깊은금해수욕장 앞에는 역시‘그래 그집’( 063-583-3234 )이 있다. 주민들은 말린 붕장어와 톳을 넣어 끓인 톳매운탕을 추천했지만, 비린 맛이 워낙 강해 외지인들은 입맛에는 맞지 않는 편이다. 대신 자연산 우럭이며 광어를 도톰하게 썰어서 내놓는데, 1kg에 5만원선이다.
매운탕 맛도 괜찮은 편이다. 역시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그곳에 가면’( 063-682-2630 )은 회도 좋고, 매운탕도 좋지만 특히 반찬으로 내오는 해초나물이 맛깔스럽다. 위도 횟집에서는 곁들이로 내놓는 자연산 홍합탕이 별미 중의 별미다. 양식 홍합을 끓여낸 홍합탕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물맛이 깊고 홍합살이 쫄깃하다.
푸짐한 음식을 기대한다면 위도보다는 격포항 인근 격포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군산식당( 063-58...)을 첫손으로 추천할 수 있다. 흐드러지게 차려지는 백반도 좋고, 백합으로 맑게 끓여낸 탕 맛도 좋다. 특히 갖은 재료를 넣어 끓여낸 백합죽의 고소한 맛은 일품이다.
<출처>2009-01-2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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