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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영월, 선돌, 단종의 유적, 김삿갓 계곡의 진기한 풍경

by 혜강(惠江) 2008. 12. 9.

 

<박종인의 여행편지>          

 

영월- 선돌, 단종의 유적, 김삿갓 계곡의 진기한 풍경

 

 

글·사진·영상=박종인 기자

 

 

 

 

 ▲ 아직 가을이 남아 있는, 주천의 메타세콰이어  

  

   길지금 영월에 가시면... 재미납니다. 꽤 많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강원도 영월은 정말 눈이 바쁜 고장입니다. 똑같은 생각을 충청북도 단양에서 느꼈더랬습니다. 바보 장군이 죽은 온달산성과 고전적인 관광지 도담삼봉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요. 영월은, 어찌 보면, 단양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곳입니다. 그 이야기, 영월에서 드리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지난 주 떠났던 영월 주천면 섶다리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큰길에서 섶다리를 건너면 마치 섬처럼 오도카니 숨어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 숲길이 있었습니다. ‘보보스캇’이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입니다.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거기 계신 분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래는 그냥 묘목 심었다가 팔려고 했어요. 세 줄을 심었는데, 한 줄 팔아먹고 나니까 두 줄이 남데요. 그냥 놔뒀더니 모양이 괜찮고 해서리….”

 

그래서 15년을 그냥 길렀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로로 변했답니다. 이번 여행은 그 메타세콰이어 숲길에서 시작됩니다.

 

  자, 모범적인 관광지 영월에서 지도는 필요 없습니다. 이정표가 과할 정도로 잘 돼 있으니까요. 주천면에서 ‘영월’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심심할 무렵이면 관광지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이정표가 이렇습니다. ‘영월 책박물관’,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 ‘김삿갓계곡’ 기타 등등. 그 순서대로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정표에 없는 곳들도 다 갔습니다. 자, 그 여행 일기 이제 시작.

 

 슬픈 배거리산  

 

  첫 번째 들른 곳, 영월책박물관은 문이 닫혀 있습니다. 영월에는 박물관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원조격인 책박물관은 폐교된 신천초등학교 여촌분교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입니다.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책들이 이 박물관에 많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았습니다. 문 닫은 지 꽤 됩니다. 영월군과 박물관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지요. 풀이 무성한 운동장에 올라가 아쉬움을 달래는데, 뒤를 돌아보니 위의 배거리산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해발 852.5미터짜리 높은 산입니다. 전하기로는 옛날 천지개벽으로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뱃마을에 살던 마음 착한 부부가 배를 타고 피난을 했는데, 물이 점차 늘어나며 배가 이 산 꼭대기에 걸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배거리산입니다. 천지개벽 때부터 우뚝 서 있었는데, 1991년에 시멘트 광산이 개발돼 꼭대기부터 저렇게 차곡차곡 잘도 부서져 내립니다. 영월 어디에서건 보이는 배거리산이 20년 안 된 세월에 저렇게 황당한 인공구조물로 변해버렸습니다. 예술이지요, 예술. 필요에 의했으되 너무나도 슬픈 예술. 정선에 가면 자병산이라는, 지도에만 있는 산이 있습니다. 역시 채굴에 의해 사라져버린 백두대간 산줄기입니다. 성장과 발전에 희생된 우리의 땅입니다. 책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내 눈 앞에서 산이 울고 있습니다.

 

아 대한민국! - 선암마을 한반도

 

  책박물관 바로 옆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한반도 지형’. 석회암지대인 영월에 흐르는 강은 그 석회암을 강물이 켜켜이 깎아내 동강(東江)처럼 기묘한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한반도 지형’은 바로 그 석회암지대를 흐르는 강이 만든 예술입니다.

  길섶에 차를 대고 한갓진 오솔길을 오르면 멀리 아래에 360도를 휘감는 강이 보입니다. 서강(西江)입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요. 그 생김새를 언뜻 보아도 영락없는 한반도입니다. 갯벌이 많은 서해, 물 깊은 동해 그리고 대륙으로 연결된 만주까지 다 있습니다. 잘 만든 전망대와 벤치까지 있으니, 아까 보았던 슬픈 산의 회한을 다소나마 풀어버리기 좋은 공간입니다. 눈길을 오른편으로 돌리면 배거리산 옆 모습이 보이지만요. 

 

 

삼촌, 나를 죽이지 말아요 - 단종 애사(哀史)

  영월에 왔으니 단종이 묻힌 장릉을 아니 가볼 수 없습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수양대군은 뒤탈을 저어해 영월로 귀양 보낸 조카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좁디좁은 청령포에 갇혀 살던 어린 단종은 마침내 사약을 마시고 죽습니다. 그 시신을 엄홍도라는 사람이 죽음을 불사하고 수습해 묻은 곳이 바로 장릉입니다. 꼭 가보십시오. 어린 임금의 한(恨), 슬픔 기타 등등을 느껴보십시오.

 

  눈여겨 보실 것 하나. 왕릉 초입에 작은 소나무가 서 있는데, 그 이름을 정령송(精靈松)이라 합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 무덤가 소나무를 옮겨와 심은 나무입니다. 몇백년 세월이 흘러, 부부는 그렇게 다시 만났습니다. 정령송은 허리를 왕릉쪽으로 구부리고 서 있습니다. 그리운 당신, 사랑해줘요 이제. 그렇게 소나무가 속삭입니다.

 

 

그를 아는가, 삿갓 김병연(金炳淵·1807∼1863)

 

   1982년, 군사독재 서슬이 퍼렇던 그 시대. 문인(文人)들의 모임인 국제펜클럽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전세계 문사들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답니다. “김삿갓 무덤이 어디 있는가.” 에잉, 김삿갓? 이미 그때 쏘련 모스크바에서는 동방의 시선(詩仙) 김병연에 대한 특집방송이 나왔다고 합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어렵사리 국제대회를 유치했는데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 유적지를 찾아내라고 한 거죠. 그래서 찾았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김삿갓은 ‘양백(兩白) 사이에 묻혀 있다’고 했습니다. 양백은 태백산과 소백산을 말합니다. 이미 일제시대에 시인을 추앙했던 이응수라는 분이 그의 시집을 정리해 펴내고 그의 무덤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잊혀진 일. 그래서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이라는 분이 와석골 골짜기에서 김삿갓의 무덤과 살던 집터를 다시 찾아낸 것이지요. 거기를 갔습니다. 영월에서 ‘고씨동굴’ 이정표를 따라 단양쪽으로 가다보면 나옵니다. 이정표, 커다랗게 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 출신인 김병연이 영월까지 숨어든 사연은 이러합니다. 할아버지가 나라에 대들었다는 죄로 멸문지화를 당합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이천을 거치고 여주를 거쳐 영월로 오게 됩니다. 와석골은 정감록에 나오는 12승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짜기 깊숙한 곳에 숨어 살다가 김병연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게 됩니다. 과거 시험이 ‘한 역모꾼을 통박하라’였는데, 김병연은 통렬하게 그 역모꾼을 비판하고 급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역모꾼이 바로 자기 할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날로 김병연은 “하늘을 대할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전라도 화순 땅에서 죽었는데 훗날 아들이 시신을 수습해 영월 와석골에 묻습니다.

 

  무덤 주변은 정말 잘 꾸며놓았습니다. 그가 남긴 시(詩)들이 조각상들과 함께 전시돼 있고, 100년은 넘어 보이는 서낭당이 옆에서 당줄을 휘감고 서 있습니다. 자, 참배를 마쳤으면 시인의 집터로 가보실까요?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무척 재미납니다. 큰 물이 내리면 수시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지금 그 길은 시멘트 포장공사가 한창입니다. 물길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팍팍한 포장길이 나옵니다. 시멘트 포장이 없었다면 걷기가 불편했을 터이니, 실망은 금물입니다. 그 위쪽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는 꼭 있어야 할 길이니까요.

 

  아랫마을 서낭당은 행정구역이 충청북도입니다. 강원도 영월 한가운데에 충청북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삿갓의 집터까지 가는 1.5km 산길에 자그마치 열 한 차례 강원도와 충청북도 도계(道界)를 건넙니다. 물길 한번 건너면 충북이고, 또 건너면 강원도입니다. 집터 앞 개울을 건너면 다시 충청북도 단양입니다. 그런 첩첩산중에 어린 시인이 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흔적은 없습니다. 대들보도 썩어서 불쏘시개로 사라졌고, 석가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에 김삿갓계곡의 문화해설가 최상락씨가 그 집에 살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삿갓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해부터 이곳에 살아온 이 분은 한복에 상투까지 틀고 있으니 21세기 김삿갓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 삿갓이 선물하는 차 한 잔을 홀짝이고, 초가집 앞에 있는 사당에 참배하고, 요즘은 보기 드문 커다란 고염나무 쳐다보고 산을 내려옵니다. 등산이라 하기에는 미안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조금 벅찬 아름다운 산길 나들이였답니다.


 

쉿, 19금(禁) - 조선민화박물관

 

 

  김삿갓계곡에 조선민화박물관이 있습니다. 국보급 민화들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민화 보는 법을 설명하는 학예연구사를 따라 1층에 전시된 민화들을 구경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호랑이 민화,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기러기 민화, 잘 때도 눈을 뜨고 정신 차리라는 물고기 민화 등등.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저 그렇고 그랬던 그림들이 연구관의 설명에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문제는 2층입니다. 지금 이 박물관에는 춘화(春畵)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절대로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연인이라도 오래 머물지는 마십시오. 오해받습니다. 전시된 그림은 아래와 같습니다.

 

 ▲ 민화  

 

   믿어지시나요, 조선시대에도 야동, 야설, 야화가 있었다는 사실! 모자이크를 없애면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적나라한 풍경이 나옵니다. 조선, 일본, 중국 이렇게 세 나라 춘화들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정말 재미납니다. 1층에서 점잖게 감상했던 민화들과 격이 다릅니다. 가보세요. 아이들일랑 1층에 맡겨두시고요.

 

  그렇게 영월 여행을 맺으려고 했습니다. 워낙에 볼 곳이 많아 욕심이 났지만, 과욕은 금물입니다. 박물관 고장 영월, 혹은 동강 비경을 간직한 영월 그리고 삿갓 시인의 땅 영월, 혹은 슬픈 임금님의 땅 영월 이렇게 영월의 얼굴은 다양합니다. 그 많은 얼굴 가운데 한 두 개만 골라서 만나십시오. 그런데!

 

   위 사진은 삿갓계곡에서 영월 읍내에 들어오자마자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나오는 장승공원 풍경입니다. 11년 전 이곳에 들렀을 때, 무형문화재 박찬수 선생이 깎은 장승들이 저렇게 예쁘게 서서 사람들을 반긴 곳입니다. 2008년 12월, 그 공간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 영월 장승공원  

 

 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이 처참한 광경, 직접 가서 보십시오. 오늘 여기에서 맺습니다.

 

 

::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기준):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대구 방면→신림IC→주천 방면 우회전. 이하 주천 방면으로 계속 직진. ‘다하누한우촌’ 간판이 보이면 그곳이 주천. 주천으로 들어가 ‘영월’ 이정표 따라 갈 것. 가는 길 내내 이정표가 잘 나온다.

▶ 영월책박물관:가장 먼저 나오는 관광지. 현재 기약 없이 휴관 중. 대신에 맞은편에 있는 배거리산을 눈여겨 볼 것. 성장과  보존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하게 해주는 산이다.

▶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책박물관 지나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할 것. 10분 정도 가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고 길섶에 차를 댄 후 평탄한 오솔길로 들어가면 된다.

▶ 김삿갓유적지
:영월에서 ‘고씨동굴’ 이정표를 따라 갈 것. 고씨동굴을 지나서 태백쪽으로 15분 정도 거리다.


▶ 조선민화박물관:김삿갓계곡 안에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학예연구사 설명을 꼭 들을 것. 2층에 있는 춘화 전시장은 어린이 절대 출입 금지. www.minhwa.co.kr, 033-375-6100

 

 ▶ 숙소:김삿갓계곡 펜션 추천. 김삿갓계곡 내에서 가장 깔끔한 숙소. 1박 6만원부터.  www.kimsatgat.net. 주천 섶다리마을에 묵고 싶다면 ‘보보스캇 펜션’ 강추. 너른 부지에 메타세콰이어 산책로가 일품이다. 1박 8만원부터.    033-374-1660 , www.boboscot.com,

▶ 먹을 곳:영월 장릉 앞 ‘장릉 보리밥집’. 30년이 넘은 산채식당. 보리밥 정식 6000원. 각종 장아찌와 나물이 한 상 나온다.  033-374-3986 

 

 

 

 <출처> 2008. 12. 4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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