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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강원 인제 응봉산의 자작나무 숲

by 혜강(惠江) 2008. 11. 28.

강원 인제 응봉산의 자작나무숲

 

하얀 알몸이 처연한…‘북국(北國)의 겨울 비가(悲歌)’

 

 

박경일기자

 

 

 

▲응봉산 임도에 올라 내려다본 자작나무 숲. 이곳에는 서울 여의도 크기의 두 배나 되는 자작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일찌감치 깊은 겨울이 당도해있습니다. 활엽수들은 다 나뭇잎을 떨궜고 가장 늦게 잎을 내려놓는다는 낙엽송마저도 양지 바른 쪽에 있는 것들만 겨우 가지 끝에 노란 잎을 달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날카로운 펜화의 날렵한 선처럼 서있는 겨울 숲은 참으로 적막하고 또 황량합니다.

하지만 자작나무 숲만큼은 다릅니다. 자작나무는 겨울에 더 빛이 납니다. 겨울이 돼서 잎을 다 떨군 후에야 눈부시게 하얀 알몸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자작나무의 하얀 알몸은 눈부시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합니다. 이국적인 정취는 멀고 먼 북유럽 설원의 땅을 떠올리게 한답니다.

그 자작나무를 만나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자작나무는 춥고, 높은 곳에서 삽니다. 간혹 남쪽에서 흰 둥치를 가진 거제수나무(물자작나무)나 사스레나무, 혹은 은사시나무를 자작나무로 착각하곤 합니다만, 순백의 진짜 자작나무는 강원 태백이나 정선, 혹은 진부령을 넘어가는 깊은 산중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일대를 뒤지며 수소문한 끝에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자작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강원 인제군 남면 수산리. 소양호 한쪽 자락을 따라 찾아들어간 산속 마을에서 엄청난 규모의 자작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누구는 응봉산이라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매봉이라고 부르는 산 사면을 따라 자작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전체 2000㏊의 조림지 가운데 자작나무가 심어진 땅이 600㏊(6㎢·181만5000여평)라고 했습니다. 어림해보자면 서울 여의도 면적(2.95㎢)의 두배쯤 되는 넓이지요. 적게 잡아서 1㏊당 1500그루씩만 계산한다 해도, 이 일대에만 90만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는 셈입니다.

산골마을의 계곡에는 쩡쩡 얼음이 잡혀가고 있고, 계곡을 끼고 선 산촌마을 집의 낮은 처마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 마을을 지나 응봉산을 구불구불 넘어가는 임도 위에 올랐습니다. 해발 600m쯤을 오르내리는 그 길에서 내려다 본 자작나무 숲은 장관이었습니다. 때마침 첫 눈이 화르르 날리는 때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이에서 마주친 자작나무 숲은 ‘동화속의 겨울나라’와 같았고, 먼 곳의 숲은 마치 잘 발라낸 흰 뼈들을 늘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수산리를 찾아가거든 굳이 임도를 다 오르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거미줄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 어디로 들든 자작나무 숲이 펼쳐져있기 때문입니다. 꼭 자작나무가 아니라도 볕 한줌 들지않는 산골마을의 작은 집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지 싶었습니다. 겨울 산길을 터덜터덜 걷는 것도 좋겠고, 춥다면 훈훈한 차 안에서 나른한 재즈음악을 틀어놓고 느릿느릿 달려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겨울의 산촌풍경이란 쓸쓸하기도 하고 또 황량하기도 하겠지만, 생각해보면 ‘정면에서 만나는 겨울’의 모습이란 딱 그런 것이지요.

 

 

감탄과 낭만은 없다, 독백과 위로가 있을 뿐

 

 

▲ 나뭇잎을 다 떨궈내고 서있는 응봉산의 자작나무들.

 

▲ 응봉산 임도로 오르는 길. 마침 첫눈이 내려 낙엽이 떨어진 흙길 위를 살짝 덮었다.

 

 

# 귀족의 풍모를 닮은 겨울나무

 강원 북부 산간지역에서 간혹 마주치는 자작나무는 흡사 귀족의 풍모를 닮았다. 짙고 어두운 숲에서 홀로 순백으로 빛나는 둥치를 가졌다는 것도 그렇고, 다른 나무들이 따뜻하고 낮은 곳을 찾을 때, 오히려 춥고 습한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린다는 것도 그렇다.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이 가장 도드라질 때가 바로 겨울의 문턱을 들어서는 요즈음이다. 잎을 다 떨구고 거칠고 투박한 둥치를 드러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자작나무는 잎이 다 지고서야 얇은 종이를 여려겹으로 붙여놓은 것같은, 순백의 수피를 화려하게 드러낸다. 차갑지만 한편으로는 고결해보이는 모습, 그것이 바로 자작나무가 가진 낭만이자 매력이다. 그‘낭만의 절정’은 눈 내린 뒤의 풍경에서 완성된다.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목격했듯이, 눈이 덮인 흰 자작나무 숲에서는 ‘숲의 정령’들이 출몰할 것같다.

 혹독하게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자작나무는 우리 땅에서는 귀하다.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에서 잘 자란다. 백두산이 북위 42도쯤이니 한반도 남쪽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남쪽의 자작나무들은 대개 심어 기른 것이다. 그런 자작나무 숲이 강원도 태백 일원이나 고성의 진부령 쪽에 있다. 그러나 이런 자작나무 조림지의 숲들도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작나무가 끝간데 없이 펼쳐진 곳이 있다고 했다. 무려 서울 여의도 땅 2배만한 넓이의 산자락에 도합 90만 그루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고 했다. 강원 인제군 남면 수도리. 굳이 후미지고 외딴 그곳을 찾아가는 까닭은 바로 장대한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인제군 남면 수산리 마을로 드는 길에서는 단 한 대의 차량도 만나지 못했다. 신남에서 양구방향으로 향하다가 수산리 표지판을 따라 샛길로 접어들면 이쪽부터는 차량은 물론이거니와 인적조차 드물다. 그나마 오른편으로 따라오던 소양호의 물줄기도 끊어졌다. 수산리는 한번 들어섰으면 꼼짝없이 그 길로 다시 되돌아나와야 하는 막다른 길 끝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산리는 이렇듯 깊은 골은 아니었다고 했다. 1973년 춘천 쪽에 소양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초등학교까지 갖춘 제법 북적이는 마을이었다. 그러던 것이 소양호 담수가 이뤄지면서 한쪽 길이 끊어져 수산리는 섬아닌 섬이 돼버렸다. 수산초등학교는 수산분교로 격하됐고, 급기야 그마저도 1999년 폐교가 되고 말았다. 수산리에는 폐교주위를 빼고는 생각난 듯 띄엄띄엄 집들이 들어서있다.

  자작나무 숲은 수산리를 품안에 안고 있는 응봉산(매봉) 자락에 들어서 있었다. 자작나무는 마을 뒤쪽으로 흘러내려온 산 능선부터 산자락의 한쪽 비탈면을 가득 메웠다. 가파른 사면에 들어선 어찌나 촘촘하게 서있던지 순백의 나뭇가지들이 그려내는 날카로운 선들이 얽히고 설켰다.

  어찌 이런 산중에 이렇듯 광활한 자작나무 숲이 조성됐을까. 이 숲은 국내 유일의 펄프를 생산하는 동해펄프가 1987년 펄프생산을 위해 조림을 시작한 곳이라고 했다. 펄프재료로 쓰기 위해 기존의 나무를 다 베어낸 뒤 전체 2000㏊의 조림지역 중 600㏊에 자작나무를 심었다. 자작나무를 선택한 것은 고급 펄프원료가 되는데다,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경제성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심어져 21년을 자란 자작나무는 비록 거목이라 할만큼은 아니지만, 밑둥 지름이 20㎝를 훌쩍 넘었고, 키도 15m는 족히 넘어보였다.

 

# 느릿느릿 걸으며 내려다본 겨울 숲

 

 

▲ 깊은 산골마을 수산리의 띄엄띄엄 들어선 집 굴뚝에서 나무 때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수산리에서 자작나무을 더 잘 보겠다면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한다. 워낙 숲의 규모가 큰 탓에 숲 안으로 드는 것보다는 높이 올라 자작나무숲 전체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응봉산의 잘 다져진 임도(林道)는 자작나무 숲을 내려다보는 특급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96년에 놓인 임도는 산의 8분 능선쯤으로 올라서 산허리를 끼고 돌아간다. 비포장길이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아 조심조심 운전한다면 승용차로도 문제없이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임도의 흙길은 차로 휙 지나치는 것보다는 걷는 것이 몇 배는 더 낫다. 눈이라도 내려 소복히 쌓인다면 순백의 산길을 뽀드득 뽀드득 걷는 맛을 즐길 수 있다. 거칠고 가파르고 위험한 등산로가 아닌, 부드럽게 잘 정비된 눈덮인 산 길을 걷는 맛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임도에 올라서면 시선을 막아서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없어 시야가 탁 트인다. 첩첩이 이어진 산봉우리들이 멀리 설악산 자락까지 시원스레 펼쳐진다. 임도에서 멀리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작나무들은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흰 가지를 일제히 하늘로 뻗은 자작나무들의 모습에서 맑고 차가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임도는 자작나무가 없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겨울 산책로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산허리를 감고도는 임도를 느릿느릿 걷는데, 마침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설악산이며 강원산간 지방에는 폭설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인제는 이날 눈이 첫눈이라고 했다. 사그락 사그락 눈이 내려쌓이자, 어두웠던 숲의 풍광이 일순 환해졌다. 가지마다 쌓인 눈들이 푸근한 그림을 그려냈고, 자작나무 수피도 흰빛이 더 눈부셨다.

 

# 자작나무 숲에서 즐기는 성찰

  사실 ‘들뜬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면, 수산리에서 자작나무 숲을 찾아가는 일은 지루하거나 영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수산리의 자작나무 숲은 접근성이 그리 용이한 것도 아니고,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꾸며진 공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사람들의 손을 빌려 심어진 것이고, 종래에는 종이로 바꾸기 위한 분명한 목적으로 길러진 것이다. 그 나무들이 이룬 숲은 온전히 나무들의 생육을 위해 배치되고 조림된 것일 뿐이다. 처음 이곳에 나무를 심은 이들은 숲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수산리의 자작나무 숲이 매력적인 것은 어쩌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솟아오른 나무들이 아무런 전략이나 목적없이도 저스스로 빼어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숲에서는 떠들썩한 감탄이나 왁자지껄한 행락보다는 고요한 침잠이 더 잘 어울린다. 꼭 자작나무가 아니라도 어떨까. 겨울 숲을 거닐거나, 혹은 그 숲을 멀리 바라보는 일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삶의 위안을 얻거나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에 더 가깝다. 어쩌면 자작나무 숲에서 보아야할 것은 ‘밖의 풍경’이 아니라 ‘내 안의 풍경’이다. 어차피 겨울 여행이란 다 그렇지 않은가. 겨울여행의 명소로 꼽히는 해남의 땅끝마을이나, 부안의 채석강 같은 여행지들도 그 자체보다는 땅끝이라는 비장감이나 우우 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를 만나러가는 일이지 않은가.

 

 

인제읍내에 쾌적한 숙소, 막국수·빙어회 등‘일품’

 

가는 길, 묵을 곳, 먹을 것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 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가자면 6번 경강국도를 타고 양평까지 가서 44번 국도를 타고 홍천을 거쳐 인제 방면으로 향한다. 홍천을 지나서 남면에서 46번 국도로 갈아타고 양구방면으로 향하다 왼편으로 수산리 이정표를 보고 샛길로 접어든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옛 부평초등학교 수산분교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길은 사방으로 난 농로 시멘트도로로 흩어진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면 작은 다리 건너 별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면 오른편으로 비탈사면에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 계곡을 만난다.

다리를 건너 별장을 왼편으로 끼고돌아 더 가면 매봉으로 오르는 임도의 입구를 만난다. 임도의 입구를 찾기가 어렵다면 주민들에게 ‘천막골’을 물어 찾아가면 된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광활한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임도를 끝까지 다 돌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남면 쪽에서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여관들이 몇곳 있긴 하지만 인근에 군부대가 많아 여행자들보다 면회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쾌적한 숙소를 찾는다면 인제읍내까지 나가는 편이 낫다. 인제읍내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의 주상복합식 건물에 들어선 하늘그린호텔( 03... )이 가장 깔끔하다.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콘도형 객실도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남면 쪽은 관광지가 거의 없는 탓에 이렇다할 식당들도 없다. 면소재지 인근에는 군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들이 있긴하지만,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어론리 쪽의 막국수와 보리밥, 매운탕 등을 내놓는‘언덕빼기’( 0...)가 일대에서는 알려진 맛집이다. 겨울이면 빙어회와 빙어튀김 등을 내놓는 부평리의 '동갈보대'( 03...)도 국도변에 있어 외지인들의 발길을 잦은 곳이다.

 

 

<출처>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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