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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영월, 푸른 신비에 쌓인 섶다리, 그리고 적멸보궁

by 혜강(惠江) 2008. 12. 9.

 

<박종인의 여행편지>

 

영월, 푸른 신비에 쌓인 섶다리, 그리고 적멸보궁

 

 

글·사진·영상=박종인 기자

 

 

  강원도 영월로 갔습니다. 온천지가 푸른 신비에 싸인 아침이었습니다. 흘러가는 서강(西江) 물살 위로 그림자가 비춥니다. 그림자를 자세히 보니 거기에 숲이 있고 소나무가 있고, 산이 있고, 다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사물을 반영하는 강물, 그리 맑은 강물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 이 맑은 물을 보십시오 

 

  

  그 맑은 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이름은 섶다리입니다. 강원도 영월 판운리 서강 자락에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다리가 서고, 해마다 장마가 지면 떠내려가는 ‘찰라적’ 다리지요. 그 찰라의 미학이 아쉬워 사람들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굳건하게 서 있도록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맑은 강물을 바라보고, 그리고 석가모니의 흔적이 남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갔습니다. 여행의 주제? 희망과 소망과 꿈과 여유입니다. 다음 주까지 두 번으로 나누어 영월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들려드릴 이야기가 하도 많아서 한번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오늘 띄우는 영월 편지는 수도권에서 하룻나들이로 충분한 코스를 잡았습니다.   

 

 

         

▲ 아이가 학교로 갑니다. 눈에 보이는 천지사물이 모조리 맑습니다

 

 

 하나, 푸른 다리를 만나다 - 서강 섶다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푸른 아침이었습니다. 가볍게 구름이 내려앉은 하늘 아래에 서강이 흐릅니다. 정확하게는 평창강입니다. 저 멀리 산자락이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을 자세히 보니 낯선 다리가 하나 눈을 붙잡습니다. 강의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잇고 있으니 다리가 분명한데, 보통 봐왔던 콘크리트 다리도 아니고 징검다리도 아닙니다. 나무입니다. 통나무를 잘라 교각으로 삼고 그 위에 흙을 덮어쓴 솔가지가 가득한 살아 있는 다리입니다. 그 살아 있는 다리가 푸른 아침 햇살에 고고히 서 있었습니다. 영월 주천면 판운리의 아침입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섶다리라 불렀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득한 예부터 조선 사람들은 작은 나무들을 묶어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작은 나무들을 우리말로 섶나무라 합니다. 판운리의 섶다리도 그러합니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버드나무를 켜서 교각을 만들고, 소나무 가지와 참나무 가지를 쳐서 상판을 만들고 그 위에 솔가지를 얹고 흙을 쌓아 사람이 밟을 길을 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장마가 지면 섶다리는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하류로 떠내려가곤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붙어 있기 보다는 자연으로 회귀하는게 이치에 맞다는 섭리를 사람도 다리도 알고 있던 게지요.

 

         

 

   

   지금 판운리의 섶다리는 섭리와 무관하게 오래오래 서 있습니다. 그리움을 만족시키려는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다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섶다리가 주인공이 되어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 왁자지껄한 시간은 지나고, 한적한 다리가 은근히 사람들을 부릅니다.

 

 

        

▲ 오래오래 머물렀습니다 

 

 

  나는 거기 강변에 오래 머물며 강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산 그림자와 강변의 나목(裸木) 무리,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강물이 섶다리와 함께 그려놓은 거대한 풍경화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오직 다리 하나 보기 위해 서강까지 가리? 꼭 가보십시오. 세상 사는 데 마음 헛헛해진 분들에게 서강 섶다리 일별을 권합니다.

 

 

         

▲ 천 개의 돌 속에 천 개의 마음

 

 

 둘, 천 개의 돌 속에 천 개의 마음을 만나다 - 법흥리 돌탑

 

 

   법흥리로 갔습니다. 다른 곳에서 게으르게 시간을 허비하느라, 날이 저물 무렵이었습니다. 법흥리에는 계곡이 있고, 계곡 끝자락에는 법흥사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적멸보궁을 가는 길목에 급하게 차를 세웠습니다. 길 왼편에 무심(無心)으로 쌓은 돌탑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석공(石工)들이 막 작업을 중단하고 새참을 먹으러 간 듯,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에는 온기가 남아 있고, 공구들이 이리저리 앉아 있습니다. 커다란 물레방아 옆으로 탑들이 도열합니다. 잘 생긴 원추형 탑에 못난이 바보 탑까지, 아직 탑으로 완성되지 못한 크고 작은 돌들 위로 사람들의 소원이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늘진 절벽 아래 있는 탓에, 그 빛깔은 푸릅니다. 푸르디 푸릅니다.

 

 

           

▲ 못 생겨서 더 정겨운 탑

 

 

 누가 이 거대한 작업을 하고 있을꼬. 의문은 100미터 뒤에서 풀렸습니다. 도로 위로 플래카드가 나부끼는데, ‘나의 복, 소원 탑쌓기 체험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요, 길 떠난 나그네들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서 쌓는 탑인 거예요. 명산대처마다 객들이 쌓아놓은 돌탑들이 많지요. 어느 개인이 아니라 법흥리를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쌓는 탑, 쌓는 소원이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웬만한 이벤트의 몇 백 배는 되는 감동에, 나는 또 거기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마음의 선물이었습니다.

 

 

        

           ▲ 적멸보궁 연등

 

 

적멸보궁 - 아무도 말을 하지 않다

 

  계곡 끝에 법흥사가 있습니다. 굉장히 큰 절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정진 도중 문수보살을 만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받고 돌아와 창건한 절입니다. 불상을 모신 다른 절과 달리,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있기에 불상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그런 적멸보궁이 다섯군데 있습니다. 여러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님, 반드시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을 오르십시오. 우람한 송림으로 에워싸인 그 오솔길은 명상과 사색의 길입니다. 길을 오르다 뒤돌아 보십시오. 하늘과 맞닿은 아홉 봉우리들이 그리 아름답습니다.

 

 

         

▲ 적멸보궁 가는 오솔길. 세월 잊은 나무들이 엉켜 있습니다

 

 

  어두운 오솔길을 오릅니다. 하늘이 연보라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각이었습니다. 돌로 만든 축대를 지나, 오른편으로 급하게 꺾인 오솔길. 적멸보궁 가는 길입니다. 가로등이 켜집니다. 세월을 알 수 없는 나무 뿌리들이 발길을 붙듭니다. 모퉁이를 지나고, 또 모퉁이를 지나고, 돌계단을 만났을 때 위를 바라보니 거기에 연등들이 발갛게 빛나고 있습니다. 나는 신성의 공간에 닿은 것입니다.

 

  앞마당 세 방향을 연등들이 호위하고 있고, 한쪽에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옆문으로 힐끗 속을 바라봤습니다. 불상 대신에 진신사리가 나무 상자 속에 들어 있습니다. 몇몇 아낙네들이 큰절을 하며 소원을 빕니다. 한 분은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멎은 듯 멈춰 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연등이 나를 반겼습니다  

 

 

 사진은 감히 찍지 않았습니다. 아니, 굳이 찍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옛날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은 인도 부다가야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순례를 온 한 프랑스 구도자에게 물었습니다. “깨우침은 그대 마음에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이곳까지 왔는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성지(聖地)는 달리 성지가 아니다. 그곳을 성지라고 생각하고 온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서 성지를 만드는 것. 미운 맘 먹고 성지에 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똑같은 마음입니다. 진신사리가 있어 성지이지만,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에 더욱 더 성지가 되는 것. 그 마음이 어둠 속 연등처럼, 한 줄기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문화는 향수할 줄 아는 사람의 것 - 고판화박물관

 

 

  사실, 낮 동안 치악산 고판화박물관에 갔더랬습니다. 고판화박물관은 원주에서 섶다리로 오는 길목에 있습니다. 길섶에 낯선 이정표가 있길래 불쑥 들어갔더니 그리 아름다운 공간이 나를 반겼습니다. 정확하게는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입니다.

 

  명주사는 오래도록 군승으로 봉사했던 한선학 스님이 세운 태고종 사찰입니다. 태고종은 조계종과 달리 가족을 이루고 성(聖)과 속(俗)을 융합하며 사는 종파입니다. 한선학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찰과 교회와 성당은 저마다 박물관을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문화포교, 생활포교를 할 수 있다는 거지요. 한선학 스님도 그래서 오래도록 수집한 아시아 각국 옛 판화 3500여 점을 정리해 절 옆에 고판화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주지승이자 관장이지요.

 

  절집 생김부터 상식을 벗어납니다. 삼척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귀틀집 혹은 너와집을 흉내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스님이 직접 깎은 목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박물관은 그 오른쪽입니다. 아담한 규모지만, 들어가 학예연구사로부터 설명을 들으면 그 속살 크기에 감탄이 나옵니다. 몇 달 전, 일본인들이 조선의 귀한 목판을 재료로 화로를 만들었다는 뉴스가 나왔었지요. 그 화로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 소장돼 있습니다. 한선학 관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야 좋은 재료로 사용한 거지만, 그 가치를 몰랐던 우리가 잘못된 거지요.”

 

 

          

▲ 지금 박물관에는 일본 고판화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일본 고판화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색안경을 잠시 벗고, 일본의 문화를 엿보십시오. 문화는 향유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리고 한 관장의 설명과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아 주천에 있는,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한우 고기 마을 다하누한우촌을 빼먹었습니다. ‘지대로’ 된 맛있는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루 나들이 코스. 배를 든든하게 채우십시오. 자, 오늘은 이렇게 맺습니다. 다음주에는 주천 동쪽, 영월의 진수 1박2일로 초대하겠습니다.

 

 

:::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기준)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대구 방면→신림IC→주천 방면 우회전. 이하 주천 방면으로 계속 직진. 터널을 지나 1km 정도 가면 왼편에 고판화박물관 가는 길.→계속 길을 이어 주천에 닿으면 ‘다하누한우촌’ 간판이 크게 보인다. 시간이 맞으면 여기에서 한우로 점심, 아니면 여정 계속. 잊을만 하면 이정표가 계속 나타나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주천 읍내에서 사거리가 나오면 영월 방면 우회전 대신에 평창 방면으로 직진→가는 길에 법흥사 가는 갈래길이 나온다. 법흥사는 이 갈래길에서 좌회전해 14km, 섶다리는 이 갈래길에서 계속 직진→판운리 가게들이 나오고 도로 옆에 흐르는 강폭이 넓어지면 속도를 낮출 것→섶다리 이정표를 따라 판운리 쉼터, 판운초등학교 부근에 속도를 급감하면 섶다리 앞에 주차장이 나타난다.

 

 

                

                  ▲ 섶다리 가는 길 

 

 

 

▶ 대중교통:영월보다는 원주에서 출발하는 게 낫다. 서울에서는 기차(청량리역)나 버스(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로 원주까지 간 뒤 주천행 시외버스로 주천까지 간 뒤 섶다리는 시내버스, 법흥사도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고판화박물관도 마찬가지 ‘신림’에서 정차하는 버스를 탈 것. 다음 주에 소개할 영월 1박코스는 당연히 영월까지 간 다음에 움직일 것.

▶ 먹을 곳:주천면 다누한우촌. 현지에서 직접 도축한 한우를 판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옆에 있는 식당에 가져가면 상차림 삯으로 3000원을 받고 고기 구워먹을 준비를 해준다.

▶법흥사 템플스테이 ‘몽당연필(夢堂緣必)’:꿈(夢)을 이야기하고 당당(堂堂)한 자신감을 이야기하고 인연(緣)을 이야기하고 반드시라는 필연(必)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1박2일 5만원(학생 1만원, 유아 무료) 걷기 명상, 좌선, 발우공양, 백팔염주 꿰기, 백팔배 등, 심심할 정도로 험난한 이 세상을 되돌아 볼 프로그램으로 꽉 차 있다. www.bubheungsa.or.kr, 033-374-9177
▶ 고판화박물관:www.gopanhwa.or.kr, 033-761-7885, 월요일 휴관 

 

 

 

<출처> 2008. 11. 27 / 조선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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