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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조선일보 사랑시

사랑시[17] : 열애 - 신달자

by 혜강(惠江) 2008. 10. 10.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7]

 

                                            열애 - 신달자

 

 

                         

                             ▲ 일러스트=클로이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해설> 상처처럼 온 당신… 그리움으로 욱신거린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모과 장수가 등장했다. 서늘한 저녁 거리에서 그 열매를 만나면 사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수더분한 모양과 고즈넉한 빛깔과 향기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두어 개를 사가지고 오다가 그만 하나를 깨고 말았다. 허나 책상머리에서 그 상처난 모과는 마치 어떤 속삭임과도 같은 짙은 향기로 진동한다. 모과에게 상처는 아픔이겠지만 동시에 향기이기도 하니 시인 신달자(65)의 시 〈열애〉와 닮았다. 상처의 향기를 위해 영원히 상처를 덧나게 하겠다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요즘 세태의 단발성 '일회용 밴드'적 사랑과는 근원이 다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상처 받을 때가 있다. 몸에 난 상처는 제아무리 심해도 치유가 되지만 마음에 난 그것은 잘 아물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랑의 감정은 실은 일종의 상처처럼 온다. 그 상처에는 여느 감정의 상처와는 다르다. 증오나 절망 대신 그리움이 감미롭게 욱신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떤 이는 사랑을 '봉변'이라고 재치 있게 말하기도 한다.

  〈열애〉는 상식적 차원의 사랑을 단호히 거부하고 끝끝내 '감염'된 상처를 안고 가겠다는 '신달자 식' 사랑을 엿보게 한다. 시인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고통과 상처와의 연애가 내 삶의 긴장을 돋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게 사랑이라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전 잠수형이에요. 요령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계산은 아예 할 줄 모르고 바닥까지 푹 빠져 버리는 수렁이 제 사랑법입니다. 허망의 극치를 달리는. 제 경험으로는 나같이 푹 빠져 주는 사랑은 잘 없었어요. 있었다면 제 남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생을 모조리 탕진하는 거렁뱅이로 고통의 수심 깊이에서 살아 왔어요."

  사랑으로 생을 탕진하고 거렁뱅이가 된다는 것은 얼핏 낭만적이다.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삶일 땐 성스럽기까지 하다. 시인의 내면을 '사랑의 거렁뱅이'로 만든, 먼저 이승을 하직한 남편을 시인은 이제 덤덤히 노래한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여보! 비가 와요〉) 한 세계가 되기까지 시인은 상처를 긁고 뜯어서 그것을 봉합하지 않고 아프게,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 아픔이 더욱 향기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랑에 '아련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질게/ 욕이나 할까부다// 네까짓 거 네까짓 거/ 얕보며 빈정대어 볼까부다// 미치겠는 그리움에/ 독을 바르고// 칼날같은 악담이나/ 퍼부어 볼까부다'(〈그리울 때는〉)라는 지독한 사랑의 '현장감'은 차라리 숙연하다. 정말 그리워 미칠 지경이 되면 지독한 악담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을 아는 자, 사랑을 아는 자다.

 

<출처> 2008. 10. 10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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