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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조선일보 사랑시

사랑시[16] :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by 혜강(惠江) 2008. 10. 9.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16]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 경 림

 

 

                

                  ▲ 일러스트=이상진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1988년>

 

 

<해설>  가진 것 없어도 사랑하는 어여쁜 청춘이여

  - 김선우·시인

 

  〈가난한 사랑 노래〉 이전에 〈너희 사랑〉이라는 시가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신경림(73) 시인이 막 50대 초반에 들어섰을 때다. 시인이 자주 가던 식당에 청초하고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처녀가 시인에게 면담을 청하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신경림 시인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며 한번 만나달라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인에게 어렵게 청을 넣은 이 식당 따님의 마음이 어여뻐 시인은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두 남녀는 머지않아 부부 연을 맺었다. 그때 시인은 두 사람을 축복하며 〈너희 사랑〉이라는 시를 지어 결혼식에서 읽어주었다. 결혼식은 컴컴한 반 지하 방에 열 명 남짓 모여 단출하게 치러졌다. 노동운동을 하던 남자가 수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이 어여쁜 청춘 남녀에게 〈너희 사랑〉을 선물한 후 이들을 생각하며 또 한편의 시를 썼으니 그것이 〈가난한 사랑 노래〉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망설임과 헤어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 삶 찾아나서는/(…)' (〈너희 사랑〉)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방식은 사랑이다. 부자인 사람들이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방법도 사랑뿐이다. 우리 모두 영혼이 가난하고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세상 어디선가 모진 몸싸움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자존과 치욕 속에서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촌에 대한 애틋한 헌시인 그의 첫 시집 《농무》는 우리 시사에 리얼리즘 시의 아름다운 시금석을 놓은 기념비적 시집이었다. 신경림은 시를 어렵고 관념적인 세계로 느끼던 독자들에게 쉬우면서도 깊은 감동이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모든 시집들엔 도시 노동자와 변두리 빈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약자들을 향한 곡진한 애정이 배어 있다. 민중의 삶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되는 경지를 그는 꿈꾼다. 가난하고 못난 우리가 원래 노래였다고! 그러므로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아픈 고백은, 가난해도 절대로 사랑만은 버릴 수 없다는 사랑의 응원가와 닿아있지 않은가.

 

 

<출처> 2008. 10. 9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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