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변산반도 : 산, 들, 호수, 강, 바다 등 조물주의 종합 선물 부안

by 혜강(惠江) 2008. 7. 31.

 변산반도

 

산, 들, 호수, 강, 바다 등 조물주의 종합 선물 부안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내변산의 직소폭포로 드는 길에서 만난 이국적인 산중호수. 하류 쪽에 부안댐을 짓는 과정에서 계곡을 보로 막으면서 호수가 만들어졌다. 호수를 끼고 이어진 나무데크 길이 낭만적이다.

 

▲ 부암댐 상류 부근의 수몰지역. 옛길의 자취가 남아 있다.

 

▲ 부안 바다의 차진 개펄에서 ‘그레’를 긁어가며 조개를 잡고 있는 모습.

 

 

 

  너른 땅과 깊은 산. 그리고 광활한 바다와 황토빛 강. 이 모든 것이 한데 비벼지고 섞여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 그곳이 바로 전북 부안입니다. 부안에는 끝간 데 없는 간척지의 너른 논들이 있고, 장대한 암벽을 드러내고 선 내변산이 있습니다. 또 너른 개펄을 안고 있는 외변산의 거친 바다가 있고, 황토빛으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동진강도 있습니다.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 부안에서는 이렇듯 다른 것끼리 만나서 서로 화해하며 어우러집니다.

 부안의 변산반도 바다는 거칩니다. 오밀조밀한 서쪽의 다른 바다와는 아주 다르지요. 삼면이 바다인 탓에 파도와 바람이 많습니다. 채석강의 날선 벼랑이나 적벽강의 울퉁불퉁한 단애도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끈끈한 개펄을 안고 있는 바다도, 개발이 늦은 탓에 더러 보이는 누추한 모습도, 흑백 사진처럼 입자가 굵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안은 홀로 길을 나선 여행자에게 더 어울립니다. 부안의 바다는 각박한 삶에 지칠대로 지친 도회지 사람들의 어깨에 위안의 손을 얹기도 하고, 싸움에서 지고 돌아와 초라한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선 여행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답니다. 자신의 실패를 반추해보거나 새로 시작하는 삶에 용기를 얻고자 한다면, 부안이야말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목적지인 것이지요.

 부안의 여름바다를 한마디로 간추려보자면 ‘펄떡거리는 생명력’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부안의 해수욕장들은 선탠과 비키니의 바다라기보다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마주하거나 뻘밭을 뒹굴면서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다에 가깝습니다. 부안의 바다는 다른 바다보다 훨씬 더 짠 듯합니다. 같은 개펄이라도 부안의 것은 더 차진 느낌입니다. 아마 부안의 노을이 다른 곳보다 유난히 핏빛이 짙고, 장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이제 휴가의 절정기로 들어섰습니다. 마치 ‘워터파크’처럼 맨들맨들 가꿔진 ‘낭만의 바다’를 찾는 것도 좋겠지만, 펄떡거리는 자연의 거친 입자를 가진 격포의 바다에 다녀오시면 어떻겠습니까. 둥글게 휘어진 모래톱과 함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싱싱한 개펄을 품고 있는 모항의 바다를 찾아도 좋고, 채석강이나 적벽강에서 바위 단애를 때리는 파도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부안에서는 내변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소사로 드는 전나무 숲길은 이즈음 짙은 녹음으로 어둑하고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직소폭포 아래 산중호수의 이국적인 정취도 여름이 아니고서는 이렇듯 감동적이지 못할 겁니다.

 부안의 내변산에는 또 조선시대 황진이에 견줄 만한 명기(名妓) 매창의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시에 능했다던 그는 평생 한 남자를 그리며 주옥 같은 시편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으로 시작하는 매창의 시는 빼어난 절창입니다. 내변산의 월명암에도, 날아갈 듯 유려한 처마를 이고 있는 개암사에도 매창의 자취가 어려 있습니다. 휴가길에 매창의 시집 한 권쯤 배낭에 넣어간다면, 아마 부안으로 향하는 여정이 더욱 풍성해질 듯합니다.

 

 

짙푸른 전나무 숲길… 검붉은 적벽강 낙조

 

생명 펄떡이는 부안

 

 

▲ 내소사로 드는 짙은 전나무 숲길. 하늘을 가릴 듯 서 있는 전나무들로 숲길은 어둑어둑하다. 이 길에서는 폐부까지 씻어낼 듯한 청신한 숲향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 시루떡처럼 첩첩이 쌓인 암벽 중국 송나라때 소동파가 배를 띄웠다는 황주의 강에서 이름을 딴 적벽강은 낙조 무렵 암벽이 붉은 해를 받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 감칠맛나게 이어지는 해안선 언덕에서 내려다본 모항해수욕장의 모습. 변산반도의 해수욕장들은 모두 소박한 바다를 갖고 있다.

 

 

 

# 지평선 보이는 만경평야 돌아 변산으로

 

▲ 김제에서 부안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서 만난 지평선 풍경.

 

▲ 김제 망해사의 종루. 망해사는 바다를 절집 마당으로 삼고 있지만, 새만금방조제가 물을 막으면 바다가 아닌 호수를 마주 보고 서게 된다.

 

 

 부안의 변산으로 들어설 요량이라면, 서해안 고속도로 변산이나 줄포나들목에서 바로 닿지 말고, 서김제 나들목에서 내려서 만경 들판을 돌아서 가보는 것이 어떨까. 국내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만경평야. 그 평야에서 바라보는 지평선은 부안 격포에서 만나는 수평선과 대칭을 이룬다. 서김제 나들목에서 나오면 평야 사이로 길게 나 있는 ‘지평선로’가 바로 만경평야로 가는 지름길이다.

 평야의 서쪽 끝은 서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물막이가 끝난 33㎞의 새만금방조제가 물길을 닫으면, 그 끝은 이제 호수가 될 터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제평야 끝자락의 벼랑에 달랑거리듯 붙어있는 절집 망해사(望海寺)도,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을 거두고 호수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호사(望湖寺)로 이름을 바꿔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망해사 앞은 아직은 성성한 바다다. 절집 마당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 있는 종루에서 저물녘 울리는 종소리는 웅웅거리며 가물가물 저멀리 바다로 퍼져나간다.

 망해사를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광활면’을 지난다. 김제에서 지평선을 가장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광활면’이다. 얼마나 장대하게 평야가 펼쳐져 있기에, 지명마저 ‘광활’이라 붙여놓았을까.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702번 지방도 위에 서면 자로 그은 듯한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란한 전봇대들이 가물가물 길 끝에서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다. 앞이나 뒤, 양옆이 모두 그야말로 광활한 벌판이다. 이쪽의 논들도 다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 논 사이의 작은 마을에 붙은 ‘전선포(戰船浦)’란 이름도 간척 이전에 그곳이 바다였음을 알려준다.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다 마무리되고 여의도 면적의 140배 되는 땅이 만들어지면 바다는 저만치 더 물러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전설처럼 남은 마을 이름만으로, 먼 옛날 그곳이 바다였던 시절을 추억하리라.

 

# 내변산 들어서니 그림같은 호수 · 폭포가…

 

 

▲ 암벽을 파내며 곧게 떨어지는 직소폭포의 모습. 내변산의 모든 폭포는 이렇듯 암벽에서 직각으로 떨어진다.

 


  광활면을 거쳐 23번 국도를 타고 등전평야와 내기평야의 너른 들을 지나면 부안에 가닿는다. 그렇게 지평선의 땅 김제를 둘러 돌아왔다면 썰물 때를 기다려 격포의 채석강 앞에 서서 수평선을 만나도 좋겠다. 첩첩이 시루떡처럼 쌓인 벼랑과 붉은 바위의 해안 절경과 그 절경 아래서 보는 수평선의 모습은 빼어나다.

 대개 부안을 찾은 여행자들은 변산반도 해안선만 따라돈다. 이래서는 부안의 진면목을 만나지 못한다. 하서에서 변산까지 잇는 736번 지방도. 그 길을 달려보면 그제서야 내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은 고작 해발 506m에 불과하지만, 제각기 방향을 튼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숲을 이루듯 서 있는데다, 암봉과 암벽들이 장대한 맛을 풍긴다.

 내변산에서 들러봐야 할 곳은 단연 직소폭포다. 내변산 탐방안내소에서 1시간 남짓 오르면 암벽을 파내며 힘찬 물기둥을 직각으로 쏟아내는 직소폭포까지 가닿을 수 있다. 길이 워낙 잘 닦여있어 산에 드는 운치는 덜한 편이라 아쉽지만, 반바지와 샌들차림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어 편하다.

 직소폭포로 드는 길에서는 폭포보다 오히려 등산로의 중간쯤에 있는 산중호수의 운치가 더 감격적일지 모르겠다. 잠깐의 오르막을 지나 숨을 돌릴라치면, 툭 터지는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호수는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호수는 산 아래에 부안댐을 세우는 공사를 하면서 보를 놓아 만들어진 것. 당초 댐을 다 짓고 무너뜨릴 요량이었으나, 산 아래쪽 농민들이 농사에 도움이 된다며 보를 허물지 말라고 요청해 그대로 남겨두면서 호수가 만들어졌다. 물가 주위에 둘러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물그림자를 드리운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은 호숫가의 나무 데크를 돌아 돌아나간다. 한쪽 벽은 짙은 숲, 다른 쪽은 물가를 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등산이 아니라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를 도는 낭만적인 트레킹과도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호수를 벗어나 15분쯤만 더 들어가면 직소폭포다. 직소폭포는 어떠한 꾸밈도 없이 암벽을 따라 물줄기를 직각으로 내리꽂는다. 내변산의 폭포는 죄다 암벽을 타고 장쾌하게 수직으로 쏟아진다. 변산반도 남서쪽의 우동마을 선계폭포도 그렇고, 비가 내리면 모습을 드러낸다는 벼락폭포도 그렇다.

 

# 곳곳에 예술 품은 내소사 ·개암사 ‘명소’

 

▲ 부안 개암사 뒤편에 우뚝 솟은 암봉 울금바위의 모습.

 

 

 부안에는 이름난 절집 두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부안을 찾았다면 누구든 빼놓지 않고 들렀다 가는 내소사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이즈음 푸르름이 가장 짙다. 일주문을 지나 어둑어둑한 전나무 숲으로 드는 길은 누구나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로 아름답다. 예닐곱살쯤 됐을까, 아빠 손을 잡고 그 숲길을 걷던 아이가 “비밀의 문으로 가는 길 같다”고 말했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건만, 길이 짧아서 아쉽다. 내소사에서 눈길을 잡는 것은 대웅전의 꽃문살이다. 정교하게 깎아낸 문살이 마치 예술품과도 같다.

 내소사는 늘 여행자들로 북적이지만, 개암사는 아름다움이 미처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웅장한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은 개암사는 대웅전이 가장 볼 만하다. 대웅전의 팔작지붕은 날렵한 선이 마치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굵은 기둥이 마치 날아오르려는 지붕을 붙잡고 있는 모양이다. 대웅전 천장에는 나무로 깎아만든 험상궂은 아홉마리 용이 있다. 공포와 용마루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용 머리는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변산반도에서 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바로 적벽강이다. 썰물 즈음이면 채석강에는 관광객들이 빼곡하지만, 인근의 적벽강에는 인적이 드물다. 채석강이란 이름이 중국 당나라때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강의 이름을 딴 것이라면,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 소식(소동파)이 놀았던 황주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좋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검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이뤄진 적벽강의 해안은 특히 석양 무렵, 낙조에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적벽강에는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 해안에는 형형색색의 몽돌들이 깔려 있다.

적벽강 부근의 벼랑 위를 따라 해장죽(시누대) 무성한 길을 따라가면 수성당이 있다. 칠산 앞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를 모신 사당이다. 다른 곳의 사당들이 ‘유물’로만 남아 있는 데 반해, 수성당은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굿판이 열린다. 개양할미는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다니는데 아무리 깊은 바다에서도 버선이 젖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 황진이에 비견할만한 매창의 자취 만나

 

▲ 매창의 묘와 시비

 

 

 부안 땅에서는 부안 출신 기생 매창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그가 지은 아름다운 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황진이에 비견할 만한 명기였다던 매창. 그의 이름이 낯설더라도 누구든 이별가의 ‘절창’으로 꼽히는 이 시 한구절만큼은 기억하리라.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

 이별의 정한이 뚝뚝 묻어나는 이 시에서 ‘님’이란 바로 스물여덟살 연상의 촌은 유희경이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유성룡을 도와 나라에 충성을 다했고, 훗날 가의대부 벼슬을 지냈던 인물. 임란 직전 유희경이 마흔여섯살 때 부안에서 그를 처음 만난 열여덟의 매창은 평생을 그를 그리워했다. 조선후기 시가집 ‘가곡원류’에 실린 이 시의 해설은 이렇다. “계랑(매창)은 부안의 이름난 기생이다. 촌은 유희경이 애인이었는데,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 소식이 없었으므로 이 노래를 지어 부르고 절개를 지켰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부안에서 매창과 밀회를 나눴다. 허균은 당시의 선비답지 않게 남녀관계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 여행할 때마다 잠자리를 같이 한 기생 이름을 기행문에 버젓이 적어놓을 정도였다. 황해도사 벼슬에 있을 때도 서울에서 기생을 데려다 놀며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기도 했었다. 분방한 로맨티스트였던 허균은 그러나 매창과는 정신적인 교감만을 나누었다. 매창의 시와 거문고 타는 솜씨를 좋아했던 허균은 매창과 마주앉아 시를 논하고,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흥취에 젖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뜬 매창은 부안읍 남쪽의 공동묘지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잡풀들이 우거진 매창의 묘는 지금도 부안읍 한쪽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매창이 죽고 45년이 지나서 부안고을의 아전들이 그가 지은 58편의 시를 목판에 새겨 내변산 개암사에서 간행했다. 이렇듯 한 여인의 시만을 묶어 책으로 간행한 것은 그야말로 전무한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창의 시집은 세 권이 남아 있는데, 두 권은 간송미술관에, 또 한 권은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에 남아 있단다.

 내변산의 명소마다 매창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서 만나는 내소사는 매창과 허균이 시와 노래를 나누던 곳이었고, 내변산의 월명암도 매창이 자주 들어 참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매창은 월명암에 올라 변산 앞바다로 떨어지는 낙조풍경을 보며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로 시작하는 ‘등월명암’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 찾아가는 길 = 부안에 곧바로 닿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부안나들목에서 내려서 30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30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면 ‘바람모퉁이’에서 서해바다를 만나는데, 이 길을 따라 줄포까지 줄곧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다.

 내변산으로 향하려면 변산에서 하서를 잇는 736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꼭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이쪽 길을 따라 내변산의 한가운데를 달리면 첩첩이 이어진 내변산의 산세를 만끽할 수 있다.

 내변산 산행을 즐기려면 남여치매표소에서 시작해 월명암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여름산행이라면 사자동에서 봉래구곡의 물길을 따라 선녀탕과 직소폭포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택하는 편이 낫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해변을 끼고 있는 해수욕장 인근의 숙소들은 휴가 절정기인 8월초는 대부분 예약이 끝났다. 새로 들어선 대명리조트 변산도 8월 둘째주까지는 방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내변산 안쪽의 민박집들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요량이라면 내변산 쪽에 숙소를 정하고, 해변을 찾아 해수욕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낫다. 내소사 입구의 정든민박( 063-58...)은 주인내외의 친절함으로 드물게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민박집이다. 내변산을 넘는 736번 지방도를 따라 군데군데 민박집들이 있다.

변산과 채석강 일대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부안 궁항 부근에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가 있어, 일대 횟집들이 너나없이 해물로 차린 한정식을 ‘이순신 상차림’이나 ‘충무공밥상’이라고 이름 붙여 내놓고 있다. 변산 일대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맛집은 격포 버스터미널 부근의 군산식당( 063-583-3234 ). 백합을 은박지로 싸서 구워낸 백합구이와 갑오징어 무침 등이 맛깔스럽다. 특히 백합으로 쑤어낸 백합죽(1만원)은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 이 일대 다른 식당의 것과 비교해 보더라도 월등한 맛이다.

 

 

<출처> 2008-07-30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