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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군산 월명공원(月明公園)

by 혜강(惠江) 2008. 5. 25.

 

군산 월명공원

책하며 역사, 문학, 예술을 감상할 수 도심공원

 


·사진 남상학

 

 

 

군산 최고의 전망, 월명공원 전망대


 
 군산 시내에 있는  월명공원(月明公園)은 금강하구둑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조선된 대형공원이다. 월명공원은 월명산, 석치산, 설림산, 장계산, 점방산과 7개동이 연결되어 있는 군산시내 중심에 위치한 관광명소로 4월 초순부터 벚꽃과 함께 군산 앞바다와 군산저수지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 서울의 남산과 같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면적만 무려 77만평에 이르고 산책로의 길이가 12㎞나 되는 거대한 공원으로 해망동과 신흥동에 걸쳐 있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푸른 우레탄이 깔려 있어 걷기에 편리하다. 월명공원 정상에 있는 점방산에 올라서면 금강하구언과 멀리 서해까지 눈에 들어와 저녁이면 하구언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또 하구언 건너편인 장항제련소도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또 수시탑(守市塔) 부근에 조성된 조각공원은 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숨을 고르는 여유 있는 공간으로 인기가 있다. 수시탑 이외에도 채만식 문학비, 은적사 등이 있어 산책을 즐기며 역사와 문학 그리고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촬영되었던 흥천사(興天寺) 앞 금광초교 인근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애국지사 이인식 선생의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인식 선생은 일제 시대 학생투쟁대열에 참여하고 1919년 3.1운동을 선봉에서 이끌었던 군산시 임피면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다.

 

 

월명공원을 오르기 전 흥천사 앞길

 

이인식 선생 동상(위)과 의용불멸탑(아래)


  또 한국 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출전하여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충혼불멸탑, 군산시 경마장 폭발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의용불멸탑이 있다.  그리고 비둘기 광장에서 조금 오르면 오른쪽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기념비를 만날 수 있는데 이 탑이 군산장항 지구 해병대 전승비이다.


 이 탑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간 군산에 제주도에 주둔하던 해병(부대장:고훈길)대가 해군함정으로 군산에 상륙하여 큰 전과를 올렸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군산 장항 이리 지구 해병대 전승비

 

  그 위로 월명공원의 기념물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수시탑이 있다. 그런데 이 탑의 본래 명칭은 성시탑이라는 주장이 있다. 수시탑이 건립 당시 군산시의 부시장이었던 방병기씨(군산시 개정동 509)에 따르면 수시탑은 1967년께 준공되었는데 당시 군산 경제가 매우 침체돼 군산의 경제 활성화가 절실해 군산시민의 의지와 뜻을 모으는 취지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수시탑의 명칭을 군산시의 번영을 뜻한다는 의미로 성시탑(盛市塔)이라 했다는 주장이다.  

 

 

수시탑

 

  28m 높이의 이 탑은 군산의 경제 활성화는 군산항에 선박의 입출항이 많아야 한다는 뜻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선박의 돛 모습과 번영을 상징하는 불꽃모형으로 설계되었다. 수시탑의 설계자는 당시 홍익대 교수로 알려지고 있으며 예산 부족으로 본래 설계보다 2m가 낮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수시탑이든 성시탑이든 지금 이 탑은 군산을 수호하는 상징물로 월명공원에 우뚝 서 있다. 

 

  수시탑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현대소설의 거장 백릉(白菱) 채만식문학비가 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대표적인 소설〈탁류(濁流)>에는 1930년대의 군산이 윗글처럼 잘 묘사되어 있다.

 

 그의 표현대로 채만식문학비 앞에 서면 군산까지 흘러와 서해 바다와 합쳐지는 금강, 눈물의 강이라고도 했고 슬프다고도 했던 '탁류'가 보인다. 주인공 초봉의 삶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 소설 탁류. 그 무대인 군산을 지금에 와서야 바라보는 기분은 사뭇 새롭다.

 

  채만식은 1902년 군산 임피에서 태어났다. 그가 쓴 <탁류>는 군산이 배경인데 1930년대에 일제 수탈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민들이 도시 산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가다 몰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아직도 소설처럼 월명 공원 아래에는 일본식 집들이 있다. 미두장, 째보 선창, 초봉이 남편 고태수가 다녔던 조선은행, 초봉이네가 살았던 콩나물 고개도 있다. 

 

 


  원고지 스무 권을 머리맡에 두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내내 가난했던 채만식은 상여에 생화를 꼽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상여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문학비 주위에는 살아있는 벚꽃이 핀다. 벚꽃 질 무렵에는 철쭉이 피고, 조금 뜸 들였다가 꽃이 세 번 피고 져야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쌀밥 나무라고 부르는 배롱나무 꽃도 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2001년 3월, 군산 금강 하구둑에 채만식문학관(蔡萬植文學館)을 개관했다. 근대소설의 문학 거장인 채만식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문학관은 160평 규모의 지상 2층 건물이며 매주 월요일과 매년 1월 1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운영된다. 실제로 채만식 선생의 행동과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재현한 모형디오라마 시설과 전시실, 자료보관실, 영상세미나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시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수시탑과 마주보고 있는 남쪽 봉우리의 정상에는 1,700평 규모의 바다조각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바다를 상징화한 흰색 자갈 보도를 중심으로 잔디위에 전시된 구상 혹은 비구상의 다양한 대리석 작품들과 브론즈 작품 21점이 서해 바다를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다.

 

  바다조각 공원은 군산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조성된 것이다. 하나같이 의미를 간직한 조각들이 숲에서 무언의 몸짓을 펼치며 방문객을 맞는다.

 

 

 

바다조각공원의 작품들

 

  또 월명공원에는 3.1운동 기념탑이 있다. 체육공원 바로 옆에 1986년 12월 3일에 세워진 3.1운동 기념비의 7m정도 우측에 3.1운동 만세상이 있다. 길이 4m, 폭 1m정도다. 3.1운동 기념비에는 건립문이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 - 당국의 보조금과 시내 각급학생을 비롯한 시민의 충정어린 성금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니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기에 지극하고 온갖 것을 다 바친 선인들의 슬기와 용맹이 우뚝 솟아 보인다. 

 

  군산의 3.1운동은 1919년 3월 6일 설애장날을 기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그리고 예수병원 직원들이 주동이 되어 벌였다.” 그 옆에 휴게정자가 있다. 노인들 몇 분이 앉아서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수시탑에서 숲길로 20여 분을 가면 공원 서쪽의 설림산(雪淋山) 기슭에 은적사(隱寂寺)라는 절이 맞닿아 있다. 200년이 넘은 수령을 자랑하는 팽나무 세 그루가 입구에서 객을 맞는다. 은적사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입했을 때 이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고려 광종 때 정진 국사가 중건하고, 공민왕 때 나옹 화상이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최근에 새롭게 불사를 하여 고즈넉한 맛은 덜하지만, 대웅전의 석가여래삼존불상(전북유형문화재 제184호)은 준엄한 자태로 속인을 맞이한다.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조성한 이 불상은 114cm의 높이에 달하는 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중앙 본존불의 자태는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요함은 숨어 있어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은적’사에서 벌이는 ‘고요’와의 숨바꼭질은 왠지 자꾸만 진지해진다.

 

 

은적사

 

   3.1운동 기념탑에서 월명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인 점방산(해발 139m)으로 오른다. 정상으로 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원에 꽤나 큰 호수가 보인다.  산 속에 넓은 호수가 있다니!  1912년에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1수원지가 ‘공원 속의 호수’로 변하여 큰 나무들과 시민들의 또 다른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월명호수

 

  전망대에 올라서면 군산항과 서해바다는 물론 군산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군산항은 1980년대 이후 상업항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행정선과 대학 실습선 그리고 연안 여객선터미널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1899년 개항 이래 군산시민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역사의 증인으로서 여전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주변 신록의 푸르름과 어울려 군산항의 풍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군산항 일대

 

 

 그 정상에 바로 점방산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봉수대는 서해안선에서 금강 남안을 따라 올라가는 한줄기 통신 계통으로서 동으로 임피 오성산, 함열 소방봉, 용안 광두원, 강경산을 거쳐 은진 황화산에 이르는 금강 남안선의 분기점이 된다.

 

  점방산 정상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둘레 70m 가량의 장방형의 높이 3m의 돌이 섞인 토단이 있으며, 그 토단의 동쪽 낮은 곳에는 50여 평의 넓은 공간이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쳐들어와 식량을 약탈해 가서 해안 지방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군산 수탈의 역사는 개항 이후가 아니라 더 오래 전부터라고도 할 수 있다. 

 

 

 

점방산 사적비와 비문

 

 

 군산 사람들이 월명 공원으로 가는 길은 가지가지다. 78만 평쯤 되는 공원이 등뼈처럼 길게 군산 시내를 아우르고 있어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서 공원을 만나면 된다. 공식적으로 흥천사 길, 군산 여상 길, 청소년 회관 길, 관음사 길, 금성 교회길, 은적사 길 등이 있긴 하지만 그 속에 다시 수많은 비공식 길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산책하기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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