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디우
유럽 냄새 물씬, 낭만의 해변 휴양지
글·사진=전명윤
*호텔 상투메 레티오에서 바라본 풍경.
5월인데도 날씨는 몹시 더웠다. 버스 안의 온도계가 40℃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앉아 있는 인도인들은 “올해는 너무 시원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분명하다”고 핏대를 올렸다. 에어컨도 없는 차는 벌써 12시간째 인도의 평야를 내달렸다. 찜통 더위에 풍경마저 밋밋해 숨이 막혔다.
인도에 오기 전 김제평야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감동하던 나였다. 그런데 델리에서 13시간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로 12시간을 달리는 동안 이따금 거대한 바위 덩어리만 보일 뿐 평지가 이어지자 산이 보고 싶어졌다. 그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버스는 엉뚱하게 바다에 닿았고, 짭짜름한 바다 냄새와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꼽히는 구자라트 주 서부해안에 있는 디우는 총면적 33㎢인 작은 섬이다. 1961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로 인도연방정부가 인도 내 서양 식민지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빼앗은 곳이다.
이 때문에 디우는 지리적으로 구자라트에 속하지만,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일종의 특별시다. 인도는 술에 관대하지 않은 나라지만 그중에서도 구자라트는 유난히 지독한 금주(禁酒) 지역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음주 면허증을 따야 할 정도다. 따라서 디우는 목마른 구자라트 주당(酒黨)들에겐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다. 주세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인근 주에서도 목이 칼칼한 사람들은 디우로 몰려든다. 무려 12시간의 버스 여정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한낮. 여름철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은 개와 영국인밖에 없다는 인도 속담이 있다. 이 시간쯤 인도인들은 가게문을 닫고 낮잠을 즐긴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한 마리 개가 되어 배낭을 질질 끌고 땡볕의 거리로 나섰다.
디우에는 배낭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숙소가 하나 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엔 성당이었지만, 인도 반환 이후 숙소로 개조된 곳이다. 바로 호텔 상투메 레티로(Hotel Sao Tome Retiro). 더블룸이 한국 돈으로 약 6000원일 만큼 방값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성당 옥상에서의 하룻밤이다. 지붕도 담장도 없다. 매트리스? 역시 없다. 단지 옥상의 맨바닥만 제공될 뿐. 말 그대로 풍찬노숙이지만, 젊은 여행자들은 이 같은 악조건을 기꺼이 감수한다. 바로 전망 때문이다.
*해변에서 작은 갈치를 말리는 인도 여인들(왼쪽). 잘란다르 해변. 그 뒤로 반쯤 부서진 포르투갈 시대의 성이 보인다
1961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 … 바다가재 등 해산물 천국
호텔 상투메 레티로는 디우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해, 시내 전경은 물론 쪽빛 아라비아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집들 대부분이 전등 하나에 의존하기 때문에 밤이면 설탕을 가마니째 뿌려놓은 듯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다. 고맙기만 한 인도의 청명한 대기여….
다음 날 주인장의 오토바이를 매일 타는 조건으로 하루 3500원에 빌리기로 했다. 이제 가야 할 곳은 어시장이다. 디우는 구자라트에서 가장 유명한 어항(漁港)이다. 직접 해물을 사다 부엌을 빌려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간 머물렀던 인도의 해변에서도 해물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외국인 여행자가 많은 탓인지 현지인보다 얼마간 비싼 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비싸다고 해야 대하 1kg에 7000원가량이었지만.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디우에서는 해산물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쌌다. 무게가 족히 1kg은 나갈 법한 바다가재를 별다른 흥정 없이 한국 돈 3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디우에서 머무는 동안 눈만 뜨면 어시장으로 나갔고, 대충 쪄서 바다가재와 새우로 배를 채웠다. 동네 구경을 갈 수 있는 시간은 오후 4시 이후였다. 배가 고프면 다시 새우와 바다가재를 먹고 우리는 죽은 듯이 성당 십자가의 그늘을 따라다니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향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흘째 되자 일행에게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끼니마다 먹은 해물은 우리의 볼살을 빵빵하게 했고 납작했던 배를 볼록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오토바이를 빌려 무작정 섬의 반대편인 서쪽으로 내달렸다. 어차피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는 15분마다 한 대씩 섬을 일주하는 시내버스와 오토릭샤라 불리는 삼륜차뿐이었다. 섬에 난 2차선 이상의 도로라고는 5개뿐이어서 어디를 가도 그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디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해변 나고아 비치(Nagoa Beach)를 지나 10분쯤 더 달리자 제법 큰 어촌이 나왔다. 현지인들이 바낙바라(Vanakvara)라고 부르는 도시다.
남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생선을 먹는다’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일 정도로 인도인은 생선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부들은 대부분 천민으로 분류된다. 바낙바라 사람들은 여느 인도인처럼 낯선 외국인들에게 호기심을 보였지만, 카스트제도에 따라 어려서부터 ‘너희들은 더러운 존재이니 사람에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탓인지 일정 부분 거리를 뒀다.
이로 인한 씁쓸한 감정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다. 우리는 이방인. 이들의 규칙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 중동을 서구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가.
오토바이를 끌고 조용히 마을을 돌았다. 작은 갈치를 말리는 섬 처녀들을 발견했다. 부두 맨바닥의 뜨거운 햇살에 갈치들이 오그라들고 있었고, 처녀들은 나를 의식하지 못한 채 태평스레 갈치를 솎아냈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며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가 찾아왔다. 나는 무심한 듯 카메라를 꺼내 그들의 모습을, 디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차례로 담아갔다.
<출처> 2007.09.11 / 주간동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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