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카이코우라
눈으로 고래사냥, 짜릿한 바다 이야기
글·사진=김슬기 트래블게릴라 편집장
▲유람선을 타고 고래 구경에 나선 관광객들.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보기로 했다. 외국에서 차를 빌리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울에서 예약한 다음, 공항에 있는 렌터카 창구를 찾아가 예약번호와 이름을 대면 된다. 예약할 때 미리 번호를 알려준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자동차 키와 주차장 번호를 건네준다. 4WD 흰색 혼다-CRV를 하루 빌리는 비용은 대략 6만원.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다. 아무래도 조수석에 앉은 기분이라 어색하다.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조심스럽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는 스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공항주차장을 빠져나와 다른 차들의 뒤를 무작정 따라갔다.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는 한적한 편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앞차를 따라가니 제법 운전할 만했다. 나는 대견하게도 예상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발 전에는 오른쪽 운전대를 잡는다는 불안감이 컸지만, 큰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뉴질랜드 남섬 동부의 해안도시 카이코우라(Kaikoura).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북쪽 해안선 도로를 따라 2시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인구 4000명의 작은 도시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언어로 ‘카이’는 음식, ‘코우라’는 바닷가재를 뜻한다.
▲유람선에서 본 돌고래들
인구 4000명 작은 도시 … 향유고래 등 1년 내내 고래 구경 가능
카이코우라를 찾은 목적은 고래가 보고 싶어서였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을 본 이후 나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고래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특이하게도 카이코우라에서는 1년 내내 고래를 볼 수 있다. 향유고래(Sperm Whale)는 1년 내내, 11~3월에는 범고래(Killer Whale), 6~7월에는 혹등고래 (Humpback Whale). 돌고래나 알바트로스 등의 조류도 볼 수 있다.
▲오른쪽 운전대는 금세 익숙해졌다(위).이코우라의 관광안내소(아래).
향유고래를 보여주는 유람선 회사로 찾아갔지만 오늘 출항하는 배는 만석이니 내일 오라고 한다. 일단 예약을 해놓고 후배가 워킹홀리데이로 일하고 있는 포도 농장에 찾아가기로마음먹었다. 포도농장은 역시 항구도시인 블렌하임(Blenheim)에 있는데, 카이코우라에서 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다. 이제는 오른쪽 운전대에 완벽하게 적응해 기분좋게 드라이브를 즐길 정도가 됐다. 미리 준비해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장엄한 성악곡을 들으며 눈물 날 듯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자연 풍광을 즐기며 여유롭게 달리고 또 달렸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검게 그을린 건강한 얼굴이었다. 그는 한 와인회사가 운영하는 포도농장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다닌다고 했다. 우리는조용한 오두막을 얻어 이 지역에서는 흔한 전복과 홍합절임을 안주로 삼아 와인을 마시며 밤늦도록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다시 카이코우라로 달려갔다. 고래를 볼 수 있는 유람선 삯은 1인당 10만원이 약간 넘을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배는 컸고 아주 청청결했다. 승무원들도 매우 친절했다.
선실 좌석에 앉아 향유고래를 비롯한 카이코우라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고래들과 해양생물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했다. 출항한 지 20분 정도 흘렀을까? 선실 밖에서 탄성 소리가 들렸다. 우리일행도 서둘러 배의 상부 전망대로 나갔다. 코발트 빛으로 반짝이는 수면 위로 한 무리의 돌고래 떼가 우리 배와 나란히 헤엄치고 있었다. 물에 젖은 지느러미가 바로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도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 앞에 향유고래가 나타났다! 거대한 몸집과 큰 꼬리가 물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과연 장관이었다.
배는 3시간 동안 바다 위를 돌면서 고래들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여주었다. 우리는 기분좋게 귀항했다. 이후 며칠 동안 햄머스프링, 마운트쿡, 와나카, 퀸즈타운, 애로우타운, 밀포드사운드 등 뉴질랜드의 여러 도시를 자동차로 여행하며 진정으로 ‘아오테아로아’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의 또 다른 이름인 아오테아로아(Aotearoa)는 마오리족의 언어로 ‘길고 흰구름의 나라’란 뜻이다.
뉴질랜드를 떠나는 날, 공항에서 여행 내내 동행한 혼다를 반납했을 때는 이미 오른쪽 운전이 몸에 완전히 익은 다음이었다. 10여 일간의 꿈같았던 여행은 무척이나 근사했다. 또 ‘고래를 보고 싶다’는 어릴 때부터 품어온 작은 소원을 이뤘다는 기쁨에 마음속으로 빙긋이 미소 지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출처> 주간동아 552 호 /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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