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충렬사
이충무공의 유업을 기리는 사당
글·사진 남상학
세병관을 둘러본 후 곧바로 충렬사로 향했다.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사적 제236호)이 이곳 통영시 명정동에 있기 때문이다.
충렬사는 차량으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 충렬사를 세운 이유는 충무공의 활동 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충렬사는 1606년(선조 39) 당시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에 따라 창건하였는데, 1663년(현종 4)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지어 보낸 현판(사액)을 받았으며,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걸쳐 2번씩 제사를 지내왔다. 지금 정침과 외삼문에 걸려있는「忠烈祠」현판은 현종 임금의 사액현판으로 문정공 송준길의 글씨라 한다.
현종 11년(1670)에 김경(金鏡) 제51대 통제사가 동재와 서재를 지었고, 숙종 7년(1681) 민섬 제60대 통제사가 충렬묘비를 세웠다. 그후 숙종 21년(1695) 최숙 제70대 통제사가 경충재를, 같은 해 김중기(金重器) 제71대 통제사는 숭무당(崇武堂)을 지었다. 정조 19년(1795)에는 〈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어제제문을 하사하였으며, 헌종 6년(1840)에는 이충무공의 8대손 이승권 제172대 통제사가 강한루영모문을 세웠다. 고종 5년91868)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충렬사만은 제외시켰다.
1915년경 비바람에 쓰러진 강한루 영모문은 1987년에 복원하여 현재 충렬사에는 정침을 비롯하여 내삼문, 동재, 서재, 중문, 숭무당, 경충재, 외삼문, 비각 6동, 강한루, 고직사, 전시관, 관리사무실, 서고, 화장실, 정문, 홍살문 등 건물 17동과 5개의 문으로 되었으며, 경역은 2,723평에 이른다.
이곳에는 정조임금이 내린 어제기판(御製記板)과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에게 내린 8가지 선사품(명조팔사품, 보물 제440호)이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설명한 팔사품에 대한 설명.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뛰어난 무공이 전해지자 명나라 임금인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8종류의 유물 15점이다. 동으로 만든 도장인 도독인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모두 2점씩으로, 영패, 귀도, 참도, 독전기, 홍소령기, 남소령기, 곡나팔 등이 있으며, 현충사 성역화 후에 통영에서 진품이 옮겨왔으나 통영시민의 열성으로 충렬사로 되돌려졌다.
도독인은 손잡이가 달려있는 동으로 만든 도장이다. 도장을 넣은 함에는 ‘황조어사인’이라고 쓰여 있어, 중국 황제가 보낸 것임을 알 수 있고, 도장은 관방이라는 글자를 아홉 번 꺽어 새긴 것이다. 영패는 나무로 팔각형을 만들고 한쪽 면에는 영이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대장이라 쓴 다음 이를 표범이 그려진 사슴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었다. 귀도는 칼자루에 용머리와 귀신 머리가 장식되어 있는 칼로, 오동나무로 만든 칼집은 종이로 싸서 붉은 칠을 하였다. 참도의 칼자루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상어 껍질로 싸고 붉은 칠을 한 다음 소가죽으로 감았다.
독전기는 전쟁터에서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 지휘관이 사용한 것으로 홍색 바탕에 남색 비단으로 독전이라 오려 붙였고 중앙에는 “무릇 군사로써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목을 벤다”라고 쓰여 있며, 깃대 머리에는 창이 꽂혀있다. 홍소령기는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홍색의 비단 바탕에 남색으로 영자를 오려 붙였고 자루 끝에 창을 달았으며 이는 문관에게 영을 내리는 신호기이다.
남소령기는 홍소령기와 마찬가지로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남색의 비단 바탕에 홍색으로 영자를 붙였고 무관에게 영을 내리는 신호기이다. 곡나팔은 구리로 만든 나팔로, 목이 구부러진 모습이라 곡나팔이라고 한다. 나팔 입은 퍼졌고 붉은 술을 달았다.
이순신의 사당인 충렬사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유물들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높이 평가한 명나라의 황제가 보내준 것이고, 장군의 넋을 기리고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유물이다.」
그 밖에 사당 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 7년(1681)에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비이며 사당의 뒤편에는 그 일대에서 모아온 역대 수군통제사들의 비 29기를 세웠다. 그리고 지방유형문화재인 충렬묘비와 지방기념물인 동백나무와 많은 동산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본 충렬사는 호국의 영령이신 이충무공을 위시한 휘하장병의 위령을 위하여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춘추향사와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 탄신기념제, 그리고 본 지방 축제인 한산대첩축제 행사의 고유제를 정성 드려 엄숙히 전통제례의식으로 봉행하고 있다.
본 충렬사의 관리는 통제영이 혁파되어 관급이 끊어진 후 1919년에 지방민이 뜻을 모아 충렬사영구보존회를 조직하여 제반행사 및 관리를 해 오다가 1951년에 재단법인 통영충렬사를 설립하여 현재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오고 있다.
<끝>
'국내여행기 및 정보 > - 부산. 경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남망산공원, 충무공의 충절과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되새기는 곳 (0) | 2008.02.04 |
---|---|
통영 미륵도, 환상적인 일주도로와 달아공원에서의 조망 (0) | 2008.02.01 |
세병관(洗兵館),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 (0) | 2008.01.30 |
경남 산청, 한방으로 후끈후끈 숯가마로 뜨끈뜨끈 (0) | 2008.01.26 |
해운대 달맞이고개, 신세대 취향의 낭만과 문화의 거리 (0) | 2007.1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