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최고봉 매킨리(Mckinley)
자연의 혹독함과 생존이 맞서는 곳
사진·글 : 박준기 영화감독
▲매킨리에서는 단독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다. 눈에 덮인 채 곳곳에 숨어 있는「크레바스」에 빠질 경우, 로프로 연결된 동료가 구조해주어야 한다. 각 등반팀들이 서로를 연결한 채 산을 오르고 있다.
神은 하늘과 바다와 대지가 모인 둥근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빛과 어둠을 교차시켜 시간을 밀어 넣었다. 주름을 잡아 구릉을 만든 후 영원히 지속될 얼음의 냇물도 만들었다.
그리고… 못내 아쉬워서였을까? 꼭짓점을 향한 마지막 툰드라 대륙의 한복판에 인간들이 오르지 못할 자신들의 안식처까지 만들었다. 하늘까지 맞닿을 듯 치솟은 이곳은 오랫동안 낮고 묵직한 긴 숨을 들이쉬며 순백색의 여름 백야와 보랏빛 긴 겨울을 드리웠다.
일찍이 알래스카 아사바스칸 인디언들이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이라고 부르던 거대한 聖地(성지), 「디날리(Denali)」. 그러나 황금을 찾아 대륙으로 들어온 문명은 해발 6194m의 이 거대한 땅을 「매킨리」라는 낯선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 후, 이 神들의 땅에 도달하려는 인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들은 시속 120km의 강풍과 영하 50℃ 이하까지 떨어지는 태초의 자연에 맞서며 생존이라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고, 때때로 죽음에의 합격자들도 생겨났다. 아시아의 두 위대한 탐험가가 이곳에서 生을 마감했다.
1979년 한국인 고상돈은 頂上에서 하산 중 실족사했고, 1984년 일본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동계 시즌 단독 초등이라는 믿기지 않을 기록을 세운 후 만년설 속 어디엔가에서 잠자고 있다.
▲高山을 오르며 경험하는 위험요소 중 하나는 크레바스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크레바스는 간혹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조심스럽게 크레바스 옆을 지나고 있는 산악인들.
매킨리를 오르며 문득 산과 연극무대의 공통분모가 떠올랐다. 연극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기는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펼치는 연기와는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들이 무대에서 토해 내는 긴 대사는 결코 연출이나 암기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뼈 마디 깊숙한 곳에서 발산되는 본능에 가까운 狂氣(광기)만이 그 몸짓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 전부를 최초로 올랐던 이탈리아의 鐵人(철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의 저서에서 「원정을 떠나기 전 날에는 밤새 하염없이 운다」고 했다. 그것이 산을 오르며 다가올 공포감에서인지, 그런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자로서의 본능적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또한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발산되는 광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등반 도중 사고를 당한 미국 산악팀의 시신과 부상자를 랜딩 포인트에서 비행기로 싣고 있다. 특히 4월에 등반하는 경우 사고의 위험이 높다.
매킨리는 히말라야와는 조금 다른 연극무대이다. 포터들을 동원해 베이스 캠프까지 짐을 나르고, 때로 셰르파들의 도움을 받으며 등반할 수 있는 히말라야와 달리 미국령인 매킨리를 오르는 클라이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주연부터 조역·단역까지 역할이 각기 다른 여러 명의 연기자들에 의해 펼쳐지는 무대가 히말라야라면, 매킨리는 생존이라는 관객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모노 드라마이다. 결국 이곳을 오르는 클라이머는 자신의 힘만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연기를 해야 하는 솔리스트인 셈이다. 그런 특이한 장르 때문에 화려한 경력의 탐험가들조차 이곳에서 마지막 대사를 내뱉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매킨리에 내재되어 있는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해발고도 6194m라는 높이만을 본다면 분명 매킨리는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북위 63도로 북극점에서 불과 3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까닭에 겨울부터 5월 말까지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극한의 환경을 유지한다. 세속적인 인간들이 좋아하는 높이에 따른 수치의 법칙이 이곳에서는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텐트를 치기 위해 캠프지를 만들고 있는 클라이머. 햇빛이 쏟아지는 날에는 복사열 때문에 만만치 않은 더위를 경험한다.
매킨리 산은 미국의 마흔아홉 번째 州인 알래스카의 「디날리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제약조건이 많이 따르는 디날리 국립공원의 캠핑 허가를 받아 공원에 들어갈 경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매킨리 산의 북면을 볼 수 있지만, 관광객이든 산악인이든 대개는 「탈키트나」라는 마을이 이 산의 전초기지가 된다. 앵커리지 북쪽, 와실라를 거쳐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에 수많은 경비행기 회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1시간 이상 매킨리와 주위의 빙하를 돌아보며 자연이 빚어 놓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 산을 등반하고자 하는 산악인들 역시 경비행기를 이용해 카힐트나 빙하를 건너 해발 2000m의 랜딩 포인트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등반을 시작하게 된다. 비행장 근처에는 1977년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 2년 후 이곳에서 生을 마감한 고상돈씨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따금씩 한국인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악인들은 랜딩 포인트에 도착한 후 실질적인 출발을 하게 되는데 頂上까지 극복해야 하는 표고 차는 무려 4000m나 된다. 하산한 후에는 모든 팀이 등반 도중 발생한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와 확인을 받아야 한다. 쓰레기 양이 현저하게 적거나 없을 경우 적지 않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사법권을 가진 산악경찰, 즉 레인저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능한 산악인 출신들로 법이 정한 규칙 내에서의 감시와 안전, 구조 등이 임무이다.
등반 루트는 5개 정도인데 일반적으로는 등반이 용이한 서쪽 루트로 많이 몰린다. 그러나 이 루트 역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윈디 코너(Windy Corner)」로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狂風(광풍)이 몰아치는 곳으로, 시속 120km 이상의 바람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탈키트나 비행장 옆에 있는 한국 산악인 고상돈의 추모 기념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그는 1979년 이곳에서 조난사했다.
매킨리의 경우 한국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까닭에 간간이 비보를 접한다. 작년 6월에는 前 기상청장이었던 신경섭씨가 하산 중 사망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13년 인간이 이 산의 頂上에 처음 오른 이후 매킨리로 향하는 인간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北美대륙 최고봉을 오른다는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실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싶다.
팽창주의를 추구했던 美 제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의 이름에서 유래한 현재의 명칭보다는 아사바스칸 인디언들이 원래 칭하던 「디날리」라는 이름이 훨씬 가슴에 다가온다. 문명은 관조를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을 많이 올라본 사람들은 「정복」이란 말 대신에 「등정」이란 단어를 선택한다. 神이 허락할 때만 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자신이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출처> 2007년 5월호 / 월간조선
▲편집자 길라잡이
북아메리카 대륙의 최고봉
미국 알래스카 주 중남부 알래스카 산맥 중심 가까이에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최고봉(6,194m). 앵커리지에서 북북서쪽으로 210㎞ 떨어져 있으며 더날리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산의 두 봉우리 중 더 높은 남쪽 봉우리는 5,100m의 높이로 솟아 있다. 그 웅장한 봉우리의 위쪽 2/3는, 길이가 48㎞를 넘는 것을 포함한 많은 빙하의 공급원이 되는, 만년설로 덮여 있다.
1794년 영국의 항해가 조지 밴쿠버가 쿡(또는 알래스카) 만에서 이 산을 보았다. 1903년 변호사 제임스 위커셤이 최초의 등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물리학자 프레더릭 A. 쿡은 자신이 정상에 올랐다는 거짓 주장을 널리 퍼뜨리고 다녔는데, 이것이 자극이 되어 1910년 2명의 탐광자 윌리엄 테일러와 피터 앤더슨이 북쪽 봉우리를 정복했다. 1913년 6월 13일 허드슨 스턱과 해리 카스턴스가 탐험대를 이끌고 진짜 정상인 남쪽 봉우리를 정복했다.
인디언에게는 더날리('높은 것'이라는 뜻), 러시아인에게는 볼샤야고라('큰 산'이라는 뜻)로 알려져 있었는데, 1889년 탐광자 프랭크 덴스모어의 이름을 따서 덴스모어 봉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이름은 1896년 다른 탐광자인 윌리엄 A. 디키가 붙였는데, 그해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를 기념해 붙인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원래의 인디언 이름을 되찾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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