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산음자연휴양림
다투고, 대결하고, 동거하는… 살아있는 숲속길
조선일보 양평=글·김신영 기자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두 나무가 함께 사는 법
‘겨울에도 줄기가 죽지 않는 식물’을 나무라 한다. 숲에 사는 수많은 나무는 한정된 물과 양분과 햇빛을 지혜롭게 나눠가며 살아간다. 아기일 때는 두 나무가 가까이서도 사이 좋게 살 수 있지만, 키가 커지고 둘레가 불어나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사이 좋게 함께 살거나, 둘 중의 하나가 죽거나, 아니면 아예 한 나무가 되기도 한다. 산음휴양림에서 함께 사는 두 나무의 이야기를 찾아가 보자.
‘당당하게 얹혀 살아요’ 겨우살이
체험코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커다란 소나무가 인사를 한다. 10m쯤 더 가면 오른쪽에 커다란 나무 또 한 그루가 눈에 띄는데, 습한 곳을 좋아하는 왕버들이다. 나무 위쪽을 찬찬히 살펴보자. 거친 회갈색 껍질 사이에 연한 연둣빛의 길고 가는 잎들이 뻗쳐 있다. 왕버들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겨우살이’다. 물은 얹혀사는 나무에서 빨아 먹지만, 스스로 광합성을 하므로 ‘반(半)기생식물’이라 한다.
겨우살이는 저 높은 나무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늘푸른나무인 겨우살이는 초겨울 작고 노란 열매를 맺는다. 새들이 즐겨 먹는데, 뱃속에 들어간 열매는 끈적한 과육을 두르고 새똥에 묻어 나온다.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은 나무에 착 달라붙어 겨울을 난 후 봄이 오면 가지를 비집고 뿌리를 박기 시작한다. 안정을 찾고 새싹을 틔우기까지는 약 5년이나 걸린다.
감아 쥔 채 죽거나, 살거나 다래덩굴
체험코스 입구에 두 채의 통나무집을 지나 왼쪽을 보면 마치 ‘타잔’에 나올 듯한 덩굴 숲이 보인다. 약간 흰 빛을 띄는 껍질로 구별할 수 있는 다래 덩굴은 한 번 나무를 낚아 채면 절대로 놓지 않고 잽싸게 타고 올라간다. 껍질이 짙고 거칠면 노박덩쿨이다. 조용해 보이지만 나무와 덩굴은 생사(生死)를 건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나무를 잡은 덩굴은 단단한 ‘정지 자세’를 취한다.
감긴 나무는 해가 지나면서 줄기가 굵어지는데 덩굴보다 약하면 꼼짝 않는 덩굴 탓에 숨이 막혀 말라 죽게 된다. 반대로 쇠사슬을 끊듯 덩굴을 떨쳐내 버리면 나무가 이긴다. 체험코스⑬을 지나, 덩굴을 끊고 사선(死線)에서 살아남은 층층나무를 찾아보자. 쓰린 상처가 채찍자국마냥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나무 하나+나무 하나=나무 하나 연리목(連理木)
숲 체험 코스⑬을 지나 조금만 더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녹아 합쳐지는 듯한 층층나무 두 개가 보인다. 두 나무가 아주 가까이 있다가 한 나무로 합쳐져 ‘연리목’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나무들이 언제나 대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서 물과 양분과 햇빛을 다퉈가며 나눠 갖느니 ‘살림살이’를 합치며 연리목을 만들기도 한다. 단, 둘이 같은 종(種)일 때만. 두 개의 개체가 붙어 하나가 되는 일은 흔치도 쉽지도 않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연리목이 생기면 상서로운 일이라 여겼다.
일심동체 아니어도 사이 좋게 소나무 혼인목
내려오는 길의 숲 체험 코스?을 지나 10m만 더 가면 두 개의 소나무가 아주 가까이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음휴양림에서 소나무는 드문 나무다. 햇빛이 많은 대신 수분이 적은 척박한 땅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이 숲처럼 나무가 많고 땅이 기름진 곳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이 두 나무는 함께 살기 위해 ‘작전’을 짰다. 나무가 마주하는 부분에는 가지가 성글게 나있고 바깥쪽 가지는 비교적 무성하다. 이처럼 ‘일심동체’가 되진 않았어도 바로 옆에서 서로를 배려해가며 살아가는 나무를 ‘혼인목’이라 부른다. 혼인목은 연리목과 달리 다른 종에서도 가능하다. 단 둘 사이 간격이 붙어있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좁으면 생존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소나무 바로 옆에도 두 그루 나무가 거의 붙어 나란히 자라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하나는 산벚나무, 다른 하나는 신갈나무다. 같은 ‘가족’이 아니니 연리목이 될 수도 없고, 물과 양분을 뺏어먹기만 하며 서로를 압박하고 있는 ‘잘못된 만남’이다. 이 둘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다 둘 중 하나가 죽거나, 둘 다 죽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산음숲은…
● 6번 국도 홍천 방향(서울 기준, 홍천 횡성 원주에서 출발할 때는 양평·서울 방향)용문터널 지나 홍천 방향으로 12㎞ 지점 검문소 지나 3㎞ 더 직진‘단월, 백동’ 도로 표지판 따라 우회전이후 ‘산음 자연 휴양림’ 표지판이 계속 나온다
● 매점과 식당은 공사 중. 산림문화휴양관 앞에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그릴과 벤치, 테이블이 약 20개 있다. 먹거리와 철망, 숯을 준비해가야 한다. 숲에서 묵고 싶다면 통나무집을 이용하자. 4~11인실 통나무집을 5만5000원~11만원(주말·성수기 기준)에 빌려준다. 매월 3일 오전 9시부터 산림청에서 휴양림 인터넷 사이트(www.huyang.go.kr/huyang/sanumm/rate/index.html)를 통해 다음달 예약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7, 8월에는 추첨제로 운영된다.
● 입장료 어른 1000원·청소년 600원·어린이 300원. 주차비 경차 1500원·중소형차 3000원. 그릴 이용료 무료. (031)774-8133 http://cafe.daum.net/Saneum
찾아보아요! 산음숲 곳곳의 풀과 나무 다섯 개
● 피나물 계곡 주위에 펴있는 예쁘고 노란 꽃들.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피 같이 붉은 진액이 나와서 ‘피나물’이라 불린다. ‘나물’이라는 이름과 달리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피나물은 흙이 산성이거나 건조하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이 풀이 많으면 땅이 ‘비옥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족도리풀 심장 모양을 닮은 잎을 지닌 풀을 만난다면 조심스레 손바닥만한 잎을 들춰보자. 족두리를 닮은 짙은 자주 꽃이 숨어 있다. 개미처럼 흙을 밟고 다니는 곤충을 통해 가루받이를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 쪽동백 늦봄에 붉은 가지가 허물을 벗는 것처럼 벗겨지고 있는 나무가 있다면 바로 쪽동백이다. 동백나무가 없는 중부 지방 이북에서는 쪽동백으로 대신 기름을 냈다.
● 굴참나무 회색 나무 줄기를 눌러 보았을 때 푹신푹신하게 들어가면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의 한 종류인 굴참나무다. 유럽 등에서는 굴참나무 껍질로 코르크를 만들어 와인 마개로 흔히 쓴다.
● 생강나무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떤 것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은 아기 공룡 발같이 생겨 짝짝이다. 어린잎에는 잔털이 보송보송 나있다. 잎이나 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난다고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
<출처> 2007. 5. 3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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