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운주사(運舟寺)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뀐다?
- 계곡을 가득 메운 석불 석탑 -
글·사진 남상학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에 자리한 작은 절로 불가사의의 전설이 전해지는 신비의 절이다. 조선 중종 25년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가 1,000기의 불상과 석탑을 가졌던 ‘천불천탑’ 사찰이라고 기록돼 있다.
지지리도 못나
말 한마디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벗들이여 우리 새로 벗이 되자
우리가 밟은 땅 위에서
푸른 하늘이 되자
구름장 걷고
화순 땅
운주사 마른 풀밭 위에서
이 시는 고은 시인의 '운주사' 전문이다. 이 시를 음미하며 화순땅을 밟고 운주사로 찾아들었다. 지금은 12기의 석탑과 70여 기의 석불만 남았다. 그러나 절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석불과 탑들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어 천불천탑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운주사는 화순읍에서 30km 거리의 작은 산골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여느 절처럼 명산명곡(名山名谷)도 아니요. 넓고 큰 들판도 아닌 아주 작고 움푹 팬 골속에 그처럼 신비로운 불사가 있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운주사에 들어가면 일주문을 통과하면서부터 이어지는 작은 협곡 전체가 탑과 불상으로 꾸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손을 맞는 것은 행자승이나 보살이 아니다. 불상과 석탑이다. 운주사에는 수많은 불상이 있다. 커다란 바위를 이고, 절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벌판에 앉고, 산 속에 누워 있다.
머리나 몸통만 남은 불상도 있다. 이곳 불상에선 석굴암 본존불 같은 근엄함을 찾아볼 수 없다. 금동불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눈매가 희미하고 코는 닳았거나 삐뚤어져 있다. 어떤 것은 어눌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불상인지, 돌장승인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운주사 불탑과 불상에 대해서 가지는 가장 큰 의문은 누가, 언제, 왜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대규모 유적을 건립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운주사의 건립에 대하여는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전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설(說)이 전해 진다. 그 중에서도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나라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세웠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태평양을 향해 배가 나아가는 모양이며, 배의 머리는 태백산과 금강산이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영주산은 배의 꼬리에 해당하며, 부안의 변산은 배의 키이고, 지리산은 배의 노이며, 화순의 운주산이 배의 배(腹)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동해안인 관동, 영남 지방은 산이 높아 무거운데 호서, 호남 지방은 평야가 많아서 가볍기 때문에 배가 동쪽으로 기우뚱거리니 나라가 편안치 못하고 항상 변란이 많다고 한다.
화순 지방에 전해 오는 설화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운주사 자리에 높은 탑을 많이 세워 돛대로 삼으면 배가 균형을 잡으리라는 생각을 했단다. 더 안전하게는 천 개의 부처를 만들어 배를 젓는 사공이 되게 하면 아무리 높은 풍파도 거뜬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여겨서 만든 것이 운주사의 천불이라고 한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배의 형국으로,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혹은 동쪽에 비해 서남해안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천불 천탑(千佛千塔)을 조성하여 천지와 신불(神佛)의 기운을 모아 균형을 잡자는 것이다. 탑이 기(氣)를 모으는 안테나라고 한다면, 운주사의 천탑(千塔)은 관동, 영남 지방의 기운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변의 산천에 천 개의 봉우리를 형성하여 정기를 수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역사적 사실을 밝힌 것은 아니다. ‘왜’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몇 가지 주장과 가설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경내 산기슭에 있는 칠성바위를 보고 착안한 것으로, 운주사의 천탑은 하늘의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밖에 몽고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경과 같은 의도로 조성했다는 설, 미륵의 혁명사상을 믿는 노비와 천민들이 들어와 천불 천탑과 사찰을 만들고 미륵공동체사회를 열어놓았던 곳으로 추정된다는 것 등 몇 가지 주장들이 있다.
어쨌거나 운주사를 찾음에 있어서 무작정 돌부처와 돌탑의 생김만을 보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찰에서 보았던 잘 생기고 정교하게 짜인 석불이나 탑들이 비하면 운주사의 석불과 돌탑들은 왠지 엉성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오히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 편하기까지 하다. 얼핏 석불들은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들이 무질서 하게 나열된 듯도 한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여 오히려 다정해 보인다.
운주사 둘러보기는 먼저 9층석탑에서 시작하여 7층석탑, 석조불감, 대웅전, 공사바위, 시위불, 와불, 칠성바위를 돌아 내려오기로 한다.
운주사에서 일주문 다음으로 들머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9층 석탑이다. 운주사에서 가장 크고 수려한 탑이다. 부여 정림사지의 5층 석탑과 형식이 같은 것이라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탑신석 안에 겹마름모꼴의 무늬와 꽃잎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국내에서 유일한 모습이라 한다.
창건설화에 따른다면 운주사의 중심탑이며 돛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뒤로 7층석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운주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 만하다.
7층석탑은 가늘고 곧다. 7층석탑을 지나면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보물 제797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불감을 보게 된다. 판석으로 법당 형태를 만들고 그 속에 두 체의 불상을 봉안해 놓았다. 마치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두 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신기한 모양이다.
내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두 불상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정확히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단다. 이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석실 안에 두 불상이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는 기록과 일치한다.
절은 천불산 다탑봉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했다. 대웅전 뒤쪽의 공사바위로 오른다.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운주사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다.
운주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옛날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 바위에 앉아 공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바위에 오르니 과연 절터와 들머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곳을 공사바위라 하고, 바위에는 도선국사가 앉았다는 곳이 마치 의자마냥 움푹 패어져 있다.
그리고 왕건이 탄 말의 발굽이라는 흔적도 여태 남아있다. 왕건이 나주를 점령하고 점령군을 주둔시켰던 곳이 바로 운주사 건너라는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운주사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와불과 칠성바위다. 두 곳 모두 대웅전에서 오른쪽 언덕위에 있다. 10분 정도 숲길을 따라 오른다. 와불은 두 불상이 나란히 누워 있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10m 길이의 와불은 석불을 조성하고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불완전석불인데,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고 한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도선국사를 보좌하던 상좌가 꾀를 부린 탓이다. 상좌는 새벽닭이 울면 일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날이 밝기 전에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천상의 석공들이 불상을 내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단다. 화가 난 도선국사는 상좌를 돌로 만들어버렸다.
오르는 길에 상좌불이 있다. 상좌의 행동이 익살맞다. 와불은 곤히 자고 있다. 장삼을 걸치고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얹었다. 그리고 웃고 있다. 눈매와 입술 모양이 온화해서 그렇게 보인다. 후대 사람들은 미륵불이 세상에 오는 날 불상이 일어설 것이라고 믿었단다.
와불에서 정남쪽 아래로 크기가 각기 다른 7개의 둥근 바위, 즉 칠성석(七星石)이 놓여있는데, 이것은 일곱 개의 자연석을 원형으로 다듬어 배치하여 그 모양은 북두칠성의 형태와 똑같다.
그래서 운주사는 일반 불교사찰이 아니라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찰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 칠성석의 직경, 원반끼리의 중심각, 각 원반 중심간의 거리, 돌의 위치와 두께 등이 현재 북두칠성의 밝기나 위치와 똑같은 비례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칠성바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와불은 북극성의 위치에 있으며, 나머지 큰 부처와 탑들이 밤하늘의 일등급 별들의 위치와 똑 같다고 한다. 즉, 운주사는 천체를 땅에 옮겨다 놓은 형상이라는 것이다. 칠성석의 이러한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누가, 왜, 하필 운주사 서편 산 중턱에 만들었는지, 또 천불천탑과의 관계 등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정호승의 '풍경 달다'
▲ 가는길 : 운주사는 광주를 거쳐 간다. 경부와 천안~논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동광주IC로 나온다. 광주 제 2외곽순환도로를 따라 가다 소태IC로 나오면 29번 국도와 만난다. 29번 국도를 이용, 화순읍과 능주를 지나 춘양에서 822번 지방도를 따라 가거나 능주에서 도곡을 거쳐 간다. 서울 기준 5시간 소요.
대중교통은 광주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광주까지는 5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일반 1만3,000원, 우등 1만9,200원. 광주터미널에서 운주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2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 먹을거리 : 운주사 입구에 있는 용강식당( 061-374-0920 )은 추어숙회(사진)와 추어탕이 별미다. 추어숙회는 달군 돌판에 양파를 깔고 매콤하게 익힌 미꾸라지를 놓는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두르고 미꾸라지 위에 부추를 얹어서 나온다. 추어숙회는 초장을 찍어 깻잎에 싸먹어야 맛이 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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