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 블러드 다이아몬드(The Blood Diamond)
피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다이나믹 액션
뉴 액션 히어로로 돌아온 디카프리오의 액션 연기가 눈부신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지상 최대의 진귀한 분홍빛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목숨을 건 모험을 그린 액션 대작이다. 아프리카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죽음의 대결이 기존 액션들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강도 높게 그려진다. 때문에 지난 1월 11일 개봉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이는 관객층의 스펙트럼이 줄어든다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배급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활용해 ‘18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초강력 다이나믹 액션’임을 강조했다. 18세 이상이 관람 가능함을 강조하는 것은 보통 성애를 다루거나 성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작품들이 대다수. <블러드 다이아몬드>처럼 액션임에도 18세 이상 관람가를 강조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더욱 강조해 더욱 강하고, 더욱 스펙타클하고, 더욱 확실한 볼거리를 원하는 성인 관객들에게 초강력 액션으로 확실히 어필했다.
그러나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단순히 자극적인 영상만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목숨을 건 위험한 탈출을 시도하는 용병 역할을 맡아 거칠고 야성적인 액션 히어로로 탄생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와 <디파티드>로 골든글로브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제니퍼 코넬리와 <아일랜드><콘스탄틴>과 <천사의 아이들>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디몬 하운수가 함께 출연한다.
또한 <라스트 사무라이><가을의 전설> 등을 연출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세계 최고 품질 다이아몬드 생산지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 보인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기구입을 위해 밀수거래를 일삼던 용병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솔로몬(디몬 하운수)이 유래 없이 크고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해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처는 그 다이아몬드가 일생일대의 발견이라는 것과 폭력과 난동이 난무하는 아프리카에서 벗어날 기회를 줄 것임을 알고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이 다이아몬드는 솔로몬에게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들을 구하기 위한 목숨보다 소중한 것! 다이아몬드를 숨긴 사실이 발각될 즉시 사살 당할 것을 알았지만 솔로몬은 이를 은폐한다.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은 시에라리온에서 폭리를 취하는 다이아몬드 산업의 부패를 폭로하면서 분쟁 다이아몬드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이상주의적 열혈 기자. 매디는 정보를 얻기 위해 아처를 찾지만 이내 그가 자신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아처는 매디의 도움으로 솔로몬과 함께 반란 세력의 영토를 통과하기로 결정한다. 아처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 솔로몬은 가족을 위해, 매디는 진실을 위해 분쟁현장에서 열연한다.」
여전히 기아로 굶어죽는 아이들이 난무하고 무법천지의 전운이 감도는 곳. 신이 버린 대륙 아프리카. 그 대륙에 내려진 길고도 지독한 저주는 과연 신의 뜻일까. 사실 그 저주는 20세기 초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 땅에 발을 디디며 시작된 것과 다름없다. 그 길고도 지난했던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탈피한 21세기의 아프리카는 여전히 신음한다. 그들이 여전히 미개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다스리기에는 미숙해서? 서구의 지배가 물러난 마당에도 그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20세기 새롭게 부흥한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을 비교군으로 세우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용당하고 있다. 그것은 그 땅에 내려진 저주 같은 축복. 무한한 자원덕분이다.
사실 이 영화는 작년 국내에서 개봉했던 두 영화와 맥락을 함께 한다. 그 표면적인 현실은 "호텔 르완다"를 상기시키고 은밀한 커넥션에서 비롯되는 내부적 고발의 의도는 "콘스탄트 가드너"를 상기시킨다. 도무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그 아비규환 같은 미로 속을 헤매는 아프리카의 진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아수라장 속의 근원을 파헤치는 두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그 계보를 잇는다.
물론 이 영화는 극의 형태를 띠는 픽션의 논리를 따른다. 그것은 영화로써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아닌 헐리웃산(産) 극영화로써의 허구성은 당연한 모양새다. 다만 그 허구를 통해 들려주는 진실된 목소리를 관객이 얼마나 귀담아 듣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는 때론 실화보다도 더욱 와 닿는 경우가 많다. 오랜 내전으로 비극을 겪어야하는 아프리카 대륙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그 대륙의 비극이 잉태된 것은 서구의 침략적 과거사로부터 기인된다. 선교사들이 거짓웃음을 앞세워 그 대륙에 첫발을 디디고 그것은 결국 그 대륙이 지닌 수많은 자원을 갈취하기 위한 수작이었으며 종래에는 그런 거짓웃음 뒤에 숨겨져 있던 본심의 총칼을 앞세워 마치 땅따먹기 하듯 이권을 침탈했던 서구의 식민정책이 날뛰던 미친 시절. 그 시절아래 신음하던 아프리카는 21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 후진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
영화는 1999년 내전이 심화되던 시에라리온의 참혹한 현장에 포커스를 맞춘다. 시작에서 보여주는 몇 줄 남짓의 고백 같은 자막은 그 현장을 실감나게 여겨달라는 일종의 권고와도 같다. 반군에 의해 점령당한 다이아몬드 광산. 그리고 반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고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시민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총을 쥐어주며 살인실습까지 종용하여 그들을 살육의 현장으로 내모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허구를 밑천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한다. 제목 그대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의미는 단순히 혈색 좋은 다이아몬드 빛깔을 의미한다고 여기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핏빛의 정서가 개입되는 다이아몬드의 현실은 실로 잔혹하다.
반군에 의해 몰살당할 뻔한 솔로몬 반디(디몬 하운수 역)는 가족을 가까스로 구출하지만 본인은 붙들리고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압송된다. 그곳에서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던 중 위기를 무릅쓰고 큰 다이아몬드 원석을 뺴 돌린다. 우여곡절 끝에 위기를 모면하는 솔로몬은 다이아몬드 밀수 교섭인인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를 우연찮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를 통해 두 남자는 긴밀한 관계로 엮어진다. 그리고 대니를 통해 그곳의 진실을 캐내려는 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역)이 얽히며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어진다.
반군들은 무자비하게 일반인들을 학살하고 살아남은 자를 끌고 와 도끼로 손목을 절단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이 벨기에의 식민정책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비극적인 참상의 행위조차도 서구가 저지른 저주 같은 만행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마치 오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프리카의 길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고행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여전히 잔재한 낭만의 대륙 아프리카가 지닌 잔혹한 진실은 이 열악한 국가의 미로 같은 근대사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시에라리온이라는 국가 자체가 역사라는 측면 안에서 간과되는 서구의 범행이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영국의 노예제 폐지로 영국과 영국 식민지 흑인 노예들이 방류되어 세워진 국가인 시에라리온은 그 국가의 시작부터가 서구의 원죄에서 출발한 셈이다.
영화의 화려한 스케일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것은 그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 현장감이다. 영화는 시에라리온의 내전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민간인을 살육하는 장면부터 실제로 그 곳에서 벌어졌던 민간 기자들의 사살. 무법천지의 어지러운 그 당시의 그 현장의 정세를 스크린 안에 여과 없이 투영한다. 또 시에라리온의 수도인 프리타운이 반군에게 점령당한 후 처참하게 파괴되고 학살당한 모습은 전혀 안심할 수 없는 그곳의 정세를 그대로 표출한다. 특히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소년병의 실체는 꽤나 충격적인데 시가를 물고 마약을 하며 술을 마시고 사람을 서슴지 않고 죽이는 어린 소년들의 영상은 이것이 영화라는 허구임을 명심해도 충격을 남기게 한다. 어린 아이들의 행위보다도 그 행위를 조장하는 그곳의 현실이 얼마나 끔찍했는가를 가장 잔인하게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극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이아몬드는 반군들의 수입원이고 그들은 그 수입원을 통해 무기를 증강하고 힘을 축적한다.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에 도취될수록 시에라리온은 피로 얼룩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아프리카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국가인 시에라리온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수출한 실적이 없다. 더군다나 다이아몬드가 생산되지 않는 주변국가에서 버젓이 다이아몬드가 수출되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합법적 커넥션, 즉 밀수의 형태를 통해 다이아몬드가 유통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만 그 실적 자체만으로도 드러나는 비리의 유통망이 지속되는 것은 그 다이아몬드를 소비하는 부유한 국가들이 그것을 암암리에 인정하고 오히려 부추긴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판매를 통해 재미를 보는 서구의 기업들은 그 불법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싼값에 다이아몬드를 축적하고 수요량을 조절해서 비싼 값에 다이아몬드를 공급한다. 또한 그 다이아몬드를 제공하는 반군은 그 대가로 무기를 얻고 그 무기를 통해 내전을 심화시킨다. 내전이 심화될수록 다이아몬드의 유통은 원활해지고 기업의 이익은 극대화된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흘리는 피는 기업가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발판이 된다.
물론 그 다이아몬드를 소망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 심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모든 다이아몬드가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다이아몬드가 피를 먹고 자란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 진실을 대하고도 개인의 허영심을 고취시키는 것에 관심을 쏟을 것인가라는 갈등을 짊어져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목소리의 도착지점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 씬과 반투명한 로맨스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맥거핀과 같은 효과다.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영화적 쾌감을 동반하면서까지 관심을 얻고자 하는 방편인 셈이다. 다만 그 본질을 손에 쥘 것인가 그 본질외면의 쾌감만을 주목할 것인가는 관객의 몫인 셈이다.
물론 다이아몬드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주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비극을 통해 누려지는 풍요로운 현실에 대해 한번쯤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대의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위해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는 손목 잘린 어린아이들이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처럼 자신이 지닌 장미를 위해 가시에 찔려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겪었던 비참했던 과거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도 암울했던 식민시절을 겪어본 민족으로써 타인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사가 무색해지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은 지성인의 선택이 아닌 민족적 본능이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2007. 1. 11 / 대한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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