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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2

<저녁 눈>과 <겨울밤> / 박용래 A. 저녁 눈 - 박용래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 만 다니며 붐비다 *말집 : 추녀가 사방으로 뺑 돌아가게 만든 집. B.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월간문학》(1966) ▲이해와 감상 위의 두 작품은 모두 박용래의 작품으로,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는 그의 시 세계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또 이 두 작품은 고유어만을 사용하.. 2020. 3. 22.
(시) 겨울밤 / 남상학 겨울밤 어둠이 내게로 와서 헐벗은 몸을 감싸더니 기어이 마른 살과 뼛속을 파고들어 혈관을 녹슬게 한다. 가장 날카로운 칼로 깎고 또 깎아 이제는 날 선 무기가 되어 마지막 양심을 시험한다. 작은 불빛 하나 없이 혼자 가는 들길엔 검은 그림자뿐 내 영혼의 씀바귀 메마른 잎에 바람이 스친다. 눈을 뜨고 있어도 마비된 몸은 일어서지도 한 발짝 나아가지도 못하는 엉겅퀴 거친 땅에 떨어진 운석(隕石) 한 조각 몇천 소절의 떨리는 노래로도 몇만 마디의 울음 섞인 기도로도 열리잖는 하늘 내 영혼은 천 길 낭떠러지 끝에 한 그루 나무로 서 있거니 채찍처럼 아픈 울음을 남기며 빈 가지에 새 한 마리 날아와 묵은 어둠을 털고 새벽잠을 깨우는 그날은 언제일까? 진실은 가쁜 숨결 속에서 싹이 트는 것 불씨는 수북한 잿더미 속.. 2020.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