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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스위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비엔나, 음악과 커피에 취하고 싶거든 비엔나로 가라

by 혜강(惠江) 2005. 12. 16.

 

 오스트리아  음악의 도시- 비엔나 

 

음악의 분위기에 젖고 싶거든 비엔나(Vienna)로 가라 

 

 

글·사진 남상학

 

 

 

 

▲비엔나에서는 크고작은 음악회가 많이 열린다. 



  

  아침 7시 30분, 부다페스트에서 전용버스로 4시간을 달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비엔나에 도착했다. 비엔나는 평화를 지향하는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의 수도.

  알프스라는 천혜의 자연이 있는 나라,  한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건설하여 지금의 동부유럽 및 소련을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세계 대전에 패함으로서 국토는 전쟁 전의 4분의 1로 줄어들었고, 2차 세계 대전에도 패해 미국, 영국, 프랑스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가, 1955년 조약에 따라 영세 중립국으로 독립하였다. 

   오스트리아 동부, 다뉴브 강 상류 오른편 해안에 위치한 비엔나는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이곳에 축조된 이래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에 걸친 영광의 도읍지였다. 따라서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고도(古都)로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17세기엔 도시를 덮친 페스트와 터키군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에 의한 궁전, 극장, 교회 등을 재건하여 ‘바로크의 도시’로 불리었다.

    이 고색창연한 궁전들과 비엔나 숲, 여러 음악가의 숨결이 깃든 장소들, 그리고 도시의 상징인 성 슈테판 성당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게른트너 거리, 그리고 느긋하고 우호적이며 친절한 이곳 시민들. 이렇듯 고대와 현대가 함께 숨 쉬는 비엔나는 이곳을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지는 곳이다. 

    그래서 비엔나 여행은 대개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는 합스부르크가가 남겨 놓은 유적이고, 또 하나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을 찾는 음악 여행이다.  


 

 



비엔나 시민들의 휴식처 시민 공원(폴크스가르텐)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와 마주보고 있는 거대한 녹색 공간이 바로 시립공원(Stadtpark) 이다. 시립공원은 도나우 강의 지류에 의해 크게 둘로 나뉜다. 왼쪽 공원에는 영국식 정원이 있고, 오른쪽 공원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1862년 개장을 하였다. 여러 음악가들의 동상이 많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이곳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1세와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4분의 3박자의 흥겨운 왈츠를 연주한 쿠어살롱(Kursalon)이 있고 살롱 옆에는 세계에서도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곳으로도 유명한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모습의 황금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동상이 서있다. 공원 안에는 또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동상도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 동상은 괴테의 좌상을 조각한 에드먼드 헬마 (Edmund Helmer,1850∼1935)가 제작하여 1921년에 제막한 브론스 상으로, 원래는 철제로 된 검은 색 입상이었으나, 지난 1994년 순금으로 도장을 했다고 한다.

    요한슈트라우스는 1846년엔 빈 궁정 무도회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쇤부른궁에서 펼쳐지는 오스트리아 궁정 무용 음악 일체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고, 또 ‘왈츠의 황제’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비롯한 400여 곡의 왈츠를 작곡해냈다. 또한 60여 개의 콰드리유, 130여개의 폴카를 작곡했으며, 그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오페레타에도 진출하여 <집시 바론> <박쥐>와 같은 걸작을 남긴 음악이다.  

 

 

 

공원에는 슈베르트, 베토벤 등 음악가상이 있다.



합스부르크 가의 여름 별궁인 쉔부른 궁전

  기하학적 구성으로 꾸며진 쉔부른 궁전의 정원

 

 

  시민공원을 다음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궁전 쉔브룬을 찾았다. 쇤부른이라는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녕 도중 '아름다운 샘(분수)'(Schonner Brunnen)을 발견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궁전 정문을 들어서서 궁전 가까이에 이르자 난데없이 ‘애국가’가 연주되고, 이어서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16인조로 이루어진 악단이 한국 여행객임을 알아채고 환영 연주를 한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의 애국가를 듣다니 …   과연 ‘음악의 도시’는 다르다고 탄성을 질렀다.

    환영해 주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입구를 거쳐 궁전 뜰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분수’라는 이름의  쇤브른 궁전은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이었던 곳으로,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 때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해 볼 때 베르사유는 주궁이 높은 곳에 있으나. 쇤브룬 궁전은 주궁이 낮은 곳에 있다.

   왕궁 정원은 약 1.7㎢에 달하는바로크 양식으로 단장되어 있으며, 기하학적 구성이 아름다운 화단, 많은 분수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상들이 어울어져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숲은 모두 두부를 썰어놓은 듯 단정하고 질서정연했다. 그리고, 그 정원 끝 언덕에는 프러시아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여 1775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운, 그리스 신전 양식의 글로리에테(Gloriette), 궁정마차 박물관이 있다.   빈의 거리와 빈 숲을 배경으로 한 궁전과 정원의 전망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궁전 외부는 크림색이며, 내부는 18세기 후반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동양의 자기나 칠기, 페르시아의 세밀화 등으로 우아하고 호화롭게 로코코식으로 꾸며져 있다. 니콜라우스 파카시가 설계하였으며, 곳곳에 금박의 장식용 틀로 꾸민 흰색 페널 벽이 아름답다.  모두 1,441개의 방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그 중 39개만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이 궁전에서 가장 큰 방인 그레이트 갤러리는 예전에 황실 연회가 열리던 곳이며, 현재도 국빈이 오면 국빈 만찬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무도회장 오른쪽에 있는 원형의 중국식 밀실(라운드 차이니스 캐비닛)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비밀 회담을 갖던 장소로서 금가루 무늬와 옻칠이 된 벽과 중국도자기, 화병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레이트 갤러리를 지나면 또 다른 넓은 방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결혼식 장면과 마차퍼레이드, 피로연 등을 그린 그림들과 더불어 음악의 신동인 모짜르트가 아버지, 짤쯔부룩 대주교와 같이 쇤부른 궁전을 방문해 연주하고 앉아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다음 방은 블루 차이니스 살롱으로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1세가 1918년 퇴위한 곳으로서 손으로 그린 벽지에는 중국풍경을 새긴 푸른 지도와 도자기, 가구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방마다 이름들(예를 들면, 라지 로자 룸, 밀레니엄 룸, 세라믹 룸 등)이 붙여져 있어 역사적으로 어떠한 사건들이 그 방에서 일어났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2층의 청색계단 오른쪽에 붙어 있는 방들은 예전에 프란츠 요세프와 엘리자베드가 쓰던 거처이다. 두 개의 회랑으로 인해 이 방들과 동쪽 날개부분의 방들이 구별되는데, 동쪽의 방들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카를 대공이 쓰던 곳이다.  중앙 건물은 황제의 생활관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프란츠 요셉과 마지막 황제인 카알1세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1690~1918년까지의 마차가 전시되어 있는 궁정마차 박물관(Wagenburg)과 2층의 아치형 외관이 독특한 온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 등이 있다.

 

 

 

 

 

유명 음악가들이 잠든 중앙 묘지(Zentralfriedhof)

 


  1874년 개장 이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240ha나 되는 광대한 녹지대 안의 약 35만 기의 묘소에는 약 300만의 영혼이 고이 잠들어 있다.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요 인사가 묻혀 있는 명예의 정원, 유대인 묘, 음악가 묘역 등이다. 악성들이 잠든 제 32a구는 정문을 지나 가로수 길을 200m 가량 들어간 왼쪽 5에 있으며,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의 묘와 모차르트의 기념비가 있다.


  특히 비엔나는 예부터 음악도들에게 동경의 도시였다.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고자 유럽 각지로 부터 많은 음악가와 지망생들이 모여들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스트라우스 등은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베토벤, 브람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등은 독일 태생이다. 이들 음악가들은 국적을 초월하여 비엔나에 모여들었고, 비엔나에서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다. 그들은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그러했기에 불멸의 작품들이 나오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베토벤은 무려 스무 번이나 거처를 옮겼고, 모차르트는 아홉 번, 요한스트라우스는 여섯 번이나 옮겼다 한다.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25세(1781년) 때 비엔나에 와서  35세 그가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10년간을 비엔나에서 살았다. 쇤브룬 궁전은 모차르트가 6살 때 처음 비엔나에 와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신동의 묘기를 과시했던 곳이다. 

   베토벤도 본에서 태어났지만 16세인 1787년 모차르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잠시 비엔나에 들른 적이 있고, 그 후에 다시 본의 궁정 기사 발트슈타인의 권고로 다시 비엔나에 왔으나, 모차르트는 이미 죽은 뒤여서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음악의 세계를 펼쳤던 것이다. 이렇듯 베토벤, 모차르트 외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비엔나에서 음악활동을 펼쳤고, 그래서 비엔나는 음악과 함께 호흡한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시내에서 약 20분 걸리는 곳에 있는 넓은 비엔나 숲의 입구에 있는 하일리겐슈타트라는 마을은 베토벤과 관련된 유적으로 유명하다. 베토벤이 1817년 5월부터 약 2개월을 기거한 '베토벤 하우스'가 있고, 제6번 교향곡인 <전원>의 악상을 떠올린 '베토벤 산책로'에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베토벤 산책로에는 기념 흉상이 있다. 

   또 슈베르트는 비엔나의 누스도르퍼슈트라세 54번가의 2층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가는  그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재현, 슈베르트 기념관으로 단장하여 슈베르트를 만나러 오는 이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많은 음악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곳 비엔나. 비엔나는 이들 음악들로 인해 명성을 얻고 있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크고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좌측으로부터 베토벤 묘지, 모차르트기념비, 슈베르트 묘지
위로부터 베토벤, 요한스트라우스, 브람스의 묘

 

비엔나를 빛나게 하는 국립오페라 극장

 

 

  비엔나에서 도보 여행을 한다면, 단연 게른트너 거리를 꼽을 수 있다.  우리는 걸어서 국립 오페라 극장을 둘러보고, 성 슈테판 성당까지 훑어보기로 했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오페라 극장이었다.

  국립 오페라 극장은 르네상스 양식의 극장으로 1869년에 1869년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 공연과 함께 문을 열었다. 유럽 3대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로 공연 횟수는 파리·밀라노보다 약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려한 외부에 어울리게 내부도 고블란의 태피스트리와 모차르트의 마적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화려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에 화재를 당했던 건물은 1955년에 재건되었다. 내부는 매우 우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고 매일 견학투어가 이루어진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실내 입장이 허용되는데, 오페라 하우스 좌측 모퉁이의 입구에서 표를 사면, 언어별 가이드가 나와 약 30분 정도 내부를 구경시켜 준다.

 

 

 

 

비엔나의 상징 성 슈테판 대성당 (St.Stephans Dom)

 


   게른트너 거리의 거의 끝자락에 성 슈테판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게른트너 거리는 우리의 명동과 같은 곳이다. 명품을 파는 고급 상점으로부터 CD나 음반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거리는 거리의 악사와 피에로, 음악회의 전단지를 든 홍보맨, 젊은이드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구경삼아 게른트너 거리를 기웃거리다 보니, 갑자기 하늘로 높이 치솟은 성당을 만난다. 이 건물이 바로 성 슈테판 성당이다. 이 성당은 비엔나의 상징적인 건물로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식 건물이기도 하다. 어찌나 기품이 있어 보이는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슈테플(Steff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성당의 남탑은 높이가 137m로 성당의 탑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343개의 계단을 이용, 73m 높이까지 올라가면 성당의 아름다운 지붕과 구시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종이 있는 북탑에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지붕에는 청색과 금색의 타일로 새겨져 있는 쌍독수리 마크가 있는데 바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이다. 

 

  그 웅장함에서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과 노고의 땀을 엿볼 수 있다. 빈의 상징으로 6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약 1359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의 안에는 안톤 필그램(Anton Pilgram)이 조각한 석조 부조의 아름다운 설교단과 제단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1450년에 만들어진 지하묘지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약 2,000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의 장기 등이 보관되어 있는 카타콤베가 있다.




 

 

가장 비엔나적인 모습, 호이리게(Heurigen)

 

 

  저녁이 되어 색다른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찾았다. 바로 호이리게. 비엔나 여행을 즐겁게 하는 것 중의 하나를 들라면 비엔나의 명물인 호이리게를 빼놓을 수 없다.

  호이리게는 금년 산(産) 즉 작년에 수확한 새 포도주를 뜻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포도주를 파는 선술집을 가리키게 되었다. 호이리게로 이름난 곳이 비엔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그린칭(Grinzing) 마을이다. 비엔나에서는 비엔나 카페 다음으로 가장 비엔나적인 모습과 삶의 방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호이리게는 약 200년 전,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인 요제프 2세가 허가해 농가에서 포도주를 생산 판매한 이래 지금의 선술집으로 변천해 왔으며, 지금도 그곳엔 포도밭 - 양조장 - 호이리게로 이어져 비엔나의 매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에는 해마다 9월이 시작되면  집의 문 앞에 푸른 소나무가 걸리기 시작하고 이것은 바로 햇 포도주가 나왔다는 표시이다. 호이리게는  숨 가쁜 현대를 살아가는 비엔니즈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뜨거운 한낮의 열기가 차츰 식어가는 저녁이 되면 비엔나 사람들은 하나 둘씩 호이리게로 모여든다. 남녀노소 구분  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갓 삶은 돼지고기와 소시지 혹은 훈제 고기와 함께 갓 나온 신선한 포도주를 마시면서 듣는 아코디언 음악, 어느새 기분은 점점 흥겨워지고 옆 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즐겁게 이야기 하고 누군지 모른 헤어진다. 연주되는 음악이 마음에 들면 연주악단에게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하도록 요청할 수 도 있다. 

   이 색다른 분위기에 젖어 우린 만족스런 식사를 마쳤다.  포도주와 훈제 돼지고기, 포도주와 삶은 돼지고기, 포도주와 소시지의 만남은 입맛을 자극했다. 그린칭 마을 외에도 하일리겐슈타트, 누스도르프, 지파링 등이 비엔나 숲 카렌 베르크 기슭에 모여 있다고 한다.

 

 

 

 


작음음악회와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

 

 

    그린칭 마을의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시내로 돌아와 한 작은 음악회에 참석했다.  세계적인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와서 음악회를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무언가 가슴 속이 허전할 것만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음악과 함께 하는 밤'으로 보내고 싶은 생각에 안내자에게 미리 청을 넣어 고가(高價)를 지불하고 티켓을 구한 것이다.  우리는 일행과 함께 입장했다.

   WIENER KURSALON에서 열리는 'VIENNA WALZER CONSCERTS'. 제1부는 W. A. 모자르트(Mozart)의 ‘돈조바니(Don Giovanni)'를 비롯하여 5곡을, 제2부에서는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Strauss)의 작품을 연주했다. 왈츠 곡을 연주할 때는 음악에 따라 무희가 춤을 추었다. 왈츠란 독일어로 “파도치듯 떠오르고 내려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음악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이 들석거리는 것을 어찌하랴.  

    이 춤은 이미 1780년경 남부 독일의 농부들이 추었던 렌들러(Lendler)라는 민속춤에서 유래되었으며, 19세기 초 유럽 사교계에 소개되었을 때는 빠르게 우회전과 좌회전을 하는 춤이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발생한 새로운 리듬에 영향을 받은 왈츠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속도가 느린 모던 왈츠이고, 다른 하나는 빠른 속도로 추는 비엔나 왈츠이다. 왈츠는 기본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강조하는, 기품있고 우아한 춤이어서 많은 사람드레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감미롭고 흥겹고 경쾌한 왈츠.  1시간 반쯤 진행된 이 공연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1866년 오스트리아가 이웃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국민들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그들의 마음을 일신시키고 새로운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작곡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11명의 악단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악회를 마치고 나오니, 시청 앞 뜰에서는 마침 <야외 필름 페스티발>이 계속되고 있었다.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비엔나 여름 음악기간’으로 곳곳에서 100여개의 크고 작은 콘서트가 개최된다. 특히 5월과 6월 사이에는 비엔나 페스티발이 열리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름밤을 음악으로 수놓는 시청 앞 뜰에서의 <야외 필름 페스티발>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그리고 오페라가 상연된다.  넓은 광장의 시청 건물 전면에 대형 스크린이 걸리고, 넓은광장에는 많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관객들은 거의 자리를 뜬 상태였으나,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스크린에 비치는 장면들을 보며, 광장 가득 울랴퍼지는 스트레오 사운드로에 도취되어 있었다.  비엔나의 멋과 낭만이 부럽기 그지없다.  

 

 

 


비엔나커피에 대하여 



  도나우(다뉴브)강이 내려다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왈츠에 흠뻑 젖어보려 했던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음악회에 가느라 비엔나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음악회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팀은 비엔나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몇 군데 노상 커피점을 들렀는데, 비엔나커피를 팔지 않아 헛걸음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비엔나커피를 고집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사실인즉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만드는 방법과 첨가물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커피를 일컫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비엔나커피가 메뉴판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차가운 생크림의 부드러움과 뜨거운 커피의 쓴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진해지는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 한 잔의 커피에서 세 가지 이상의 단계적인 맛을 즐기는 것이 비엔나커피의 매력이며, 또 비엔나커피는 스푼을 사용하지 말고 섞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마셔야 맛이 있다고 한다고 한다.

    비엔나에서는 여러 종류의 커피 가운데, 멜랑시’라는 커피가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커피’의 맛과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이 비엔나커피의 맛을 현지에서 마시지 못하고 떠나다니 -.

 

 

 

마무리하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페스트가 사라지길 기원하며 1700년대에 지었다는  카를 교회를 보고자 했으나 일정상 불가능하여 보질 못하고 호텔에 돌아온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 있었다. 

그러나 짧은 일정이었지만 비엔나에서 이번 여행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의자에 앉으니 하루 종일 비엔나 투어를 하면서 보았던 비둘기의 날갯짓이나 트램(전차)의 바퀴 소리도 모두 왈츠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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