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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공주, 공주의 ‘스리 박’을 아시나요? 박찬호, 박세리, 그리고…

by 혜강(惠江) 2020. 2. 3.

공주여행

 

공주의 스리 박을 아시나요? 박찬호, 박세리, 그리고

 

 

공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01.공주 박찬호기념관뒷마당에 그의 투구 폼을 형상화한 조각이 세워져 있다. 공주=최흥수 기자  

   

 “공주의 스리 박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김영희 공주 문화관광해설사의 기습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박찬호와 박세리는 짐작하겠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판소리 명창 박동진이다. 공주에 이들 스리 박을 기념하는 공간이 각각 조성돼 있다.

 

 먼저 박찬호기념관. 야구팬이라면, 특히 야구 꿈나무라면 꼭 들러 보고 싶은 곳이다. 공산성 남측 자락 산성동의 그가 나고 자랐던 2층집을 7개 전시관으로 꾸몄다. 주소도 산성찬호길

19번지. 1전시실은 야구선수 박찬호의 시작과 끝을 전시하고 있다. LA다저스(1994~20012008) 시절 소장품과 선수생활을 마감한 한화 이글스(2012) 유니폼, 두 번의 국가대표 시절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 다저스 시절을 제외하고 몸담았던 메이저리그 6개 구단 소장품도 있다.

   


02.박찬호가 선수 시절 입었던 유니폼과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03. 메이저리그 124승 승리구와 특별한 의미가 담긴 공도 전시하고 있다.

  

04. 전시관 앞 황소 조각. 조각가 지용호씨의 작품이다.


05.박찬호기념관으로 가는 길 담장에 하교할 때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박찬호의 모습이 장식돼 있다.

 

 2전시실은 어린 시절 야구의 꿈과 열망을 키워 간 방이다. 중동초등학교와 공주중ㆍ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유니폼을 전시했다. 4전시실은 영광의 순간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기록을 담은 124개의 승리구와, 은퇴하기까지 특별한 의미를 담은 공들을 전시하고 있다. 체인지업을 비롯한 5가지 구종을 실제 손 모양대로 본뜬 석고 작품도 있다.


 뒷마당으로 나가면 그의 투구 폼을 형상화한 3개의 스테인리스 조각이 세워져 있고, 전시관 앞에는 폐타이어로 만든 힘센 황소 조각이 버티고 있다. 모두 조각가 지용호씨의 작품이다. 전시관은 제법 높은 위치여서 공주 원도심 한 귀퉁이가 정겹게 내려다보인다.  



06.박세리의 모교인 금성여고 인근의 세리파크’.


07.1998년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던 맨발투혼장면을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산리고군분 주차장 건너편, 공주문예회관 입구에는 박세리공원이 조성돼 있다. 아재개그 같지만 실제 명칭은 영문 ‘Seri Park(세리파크)’. 대전 유성구에서 태어난 박세리는 1993년 골프부가 있는 공주금성여고에 입학해 3학년 때 이미 전국 규모 대회에서 7승을 올리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도로 옆 자투리땅을 이용한 자그마한 공원에는 양말을 벗고 연못 가장자리에 빠진 공을 쳐 올리는 박세리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98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US오픈 우승을 일궈낸 그의 맨발투혼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박세리의 우승은 당시 ‘IMF 사태로 고통을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줘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세계적 스포츠 스타인 둘에 비하면 대중성이 떨어지지만, 명창 박동진(1916~2003)은 국악계에 한 획을 그은 존재다. 1968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1971년까지 춘향가ㆍ심청가ㆍ적벽가ㆍ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완창하는 초인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완창은 소리꾼이 한 작품을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것으로, 박동진은 흥보가5시간, ‘춘향가8시간에 걸쳐 불렀다. 이후 완창은 명창의 기량을 가늠하는 유력한 공연 방식이 됐다  



08.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 생전 유품이 전시돼 있다.


  09.박동진이 완창했던 판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공산성에서 약 7km 떨어진 그의 고향마을 무릉리에 판소리 체험 학습과 연수를 위한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이 있다. 한옥 형식의 전시관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가 완창한 판소리 다섯 마당도 들어 볼 수 있다.

 

<출처> 20201. 29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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