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당진 합덕읍 신리성지.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 위로 순교미술관 상층부만 하늘로 돌출돼 있다. 조경이 아름다워 예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자주 찾는데, 성당 측은 관광지가 아니라 종교시설인 만큼 기본 에티켓은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당진=최흥수 기자
‘탐관오리 정규야, 합덕 방죽 물고기가 다 네 꺼냐?’ ‘장녹수야! 연산군 빽 믿고 물장난 하지 마라.’ 27일까지 연호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당진 합덕제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얼핏 보면 축제에 불만을 품은 주민이 내건 구호 같다. 연꽃이 피어나는 호수 테두리에는 ‘예당호야, 합덕 방죽 엄마께 효도 좀 해!’ ‘견훤은 왜 예산 신암에 미사일을 쏘았나?’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이게 다 무슨 소린가. 결론부터 말하면 축제 주최인 당진시에서 내건 호기심 유발용 현수막이다.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의림지 대신 황해 연백의 남대지를 꼽기도 한다)와 함께 조선 3대 관개시설이라는 합덕제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보려는 전략이다.
◇장녹수의 탐욕, 이정규의 ‘갑질’…
합덕제는 당진 합덕평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시설이었다. 길다란 방죽에 9개의 수문을 갖추고 인근 마을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둑을 보수할 때마다 기록을 적어 둔 중수비가 5기 남아 있지만, 아쉽게도 맨 처음에 관한 기록은 없다.
‘견훤과 미사일’은 방죽을 처음 쌓은 시기를 설명하기 위한 문구다. 합덕제는 견훤이 후고구려와 싸울 때 병사와 군마에 물을 먹이기 위해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말기에 견훤은 이곳에 둔전을 개간하고 병사 1만2,000명과 말 6,000필을 주둔시켰다. 삽교천을 사이에 두고 왕건과 대치하던 견훤은 군량 조달이 용이한 합덕평야 인근에 성동산성을 쌓았다. 최후의 승리자는 왕건이었지만, 견훤이 성동산성에서 쏜 화살이 왕건이 주둔하고 있던 예산 신암면까지 날아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직선으로 5km가 넘는 거리이니 허풍이 지나치긴 하다.
탐관오리 이정규를 규탄하는 현수막은 합덕농민항쟁과 관련이 깊다. 1894년 1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이정규의 탐욕과 포학에 격분한 합덕제 주변 6개리 농민의 항쟁이다. 이들은 이정규의 악행을 정리해 관할 홍주(지금의 홍성) 목사에게 제출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히려 이정규의 살해 협박이었다.
주민들이 ‘혈원록’에 적시한 이정규의 악행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자신의 저수지에서 연근을 채취하는데 수시로 농민을 동원했으며, 때로는 농민을 위협해 재산을 빼앗았다. 재산을 빼앗긴 농민이 찾아와 애원하자 합덕제에 익사시켰다. 동네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웅덩이의 물을 퍼내면 어느새 나타나 모두 빼앗아 갔다. 농민에게 자신의 노비와 혼인할 것을 요구하다 거절하면 족보를 빼앗아 물속에 던졌다. 이정규가 주민에게 수탈한 금전은 모두 3만 7,000냥이 넘었고 다른 포학도 헤아릴 수 없다.’ 요즘으로 치면 ‘갑질 중의 갑질’이었다. 합덕농민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같은 해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서도 지역의 활동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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