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문화일반

장사익 ‘찔레꽃’ , 인생부터 먼저 배운 소리꾼… 듣고나면 한약 잘 달여먹은 느낌

by 혜강(惠江) 2019. 3. 7.

장사익 ‘찔레꽃’ 

 

인생부터 먼저 배운 소리꾼… 듣고나면 한약 잘 달여먹은 느낌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음악동네를 들썩이던 시절 공연장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던 두루마기 아저씨가 계셨다. ‘너에게 모든 걸 뺏겨 버렸던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1993년 ‘하여가’ 중).

 

 

 

▲장사익

 

 

 

 얼마 전까지 카센터 직원이었던 그에게 음악은 무너뜨릴 수 없는 청춘의 보루였다. 이미 15가지나 되는 직업을 전전한 남자의 손에는 일명 날라리라고 불리는 관악기가 들려져 있었다.

 

‘너를 볼 때마다/ 내겐 가슴이 떨리는 그 느낌이 있었지/ 난 그냥 네게 나를 던진 거야’.

 

 객석의 열기에 무대는 비등점에 도달했지만 사나이의 신경은 오로지 ‘하여가’ 가사에 쏠려 있었다. 드디어 스탠바이. 하지만 아직은 등장할 때가 아니다.

 

 ‘난 그냥 이대로 뒤돌아 가는가/ 넌 그냥 이대로 날 잊어버리나’. 그 순간 큐. ‘역사적’ 순간이 왔고 그와 태평소는 물아일체가 된다. 무정한 카메라는 남자의 땀방울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부는 악기에 몇 초 집중할 뿐이다. 미디어는 대중음악과 국악의 환상적 만남이라고 기술했지만 새로 쓰는 ‘악장가사’ 아카이브(기록보존함)엔 따로 몇 줄 보완하는 게 좋겠다. 그 장면은 놀랍게도 서태지와 장사익의 도킹(우주선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PD는 못내 아쉽다. 그때 클로즈업으로 몇 초 잡아놓는 건데. 그러면 두고두고 그 컷이 반복재생 될 텐데. 하지만 그 ‘아저씨’가 전율의 소리꾼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이제부턴 결과론이다. 정수기가 아니라 약탕기를 통해 나온 목청. 풀뿌리, 나무껍질도 잘 골라 달이면 보약이 된다. 이를테면 인생을 달인 노래가 약즙으로 우러난다. 방울방울 음미하고 나면 한약 한 첩 잘 달여 먹은 느낌이다.  

 

 “많은 가수가 노래를 하며 인생을 배우지만 저는 인생을 배우고 노래를 했어요.” ‘태평소 아저씨’는 자신을 ‘절차 없는 사람’이라고 낮춘다. 그렇다면 인생에 필요한 절차는 누가 정해주는가. 그가 말한 절차(節次)와 그가 행한 절차(切磋)는 비슷한 듯 다르다. 후자는 탁마(琢磨)와 짝을 이루어 빛을 발한다. 불길을 이긴 탄소가 다이아몬드가 되듯 갈고 닦으니 광채가 난다.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허영자 시인의 ‘감’ 중). 

 음악동네 봄 기슭엔 꽃들이 만연하다. 장사익(사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제목은 ‘찔레꽃’이 유망하다. 그가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꽃필 수 있다. 조그만 꽃이라도 피워야 한다.” 그 꽃은 장미꽃 뒤에 가려 있으나 자존심, 자존감이 만만치 않다. 이름도 ‘찔러서’ 찔레꽃이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백난아의 ‘찔레꽃’(1942). ‘엄마 일 가는 길에(중략)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던’ 하얀 찔레꽃은 이원수의 동시를 이연실이 개사(1972)했다. 장사익의 ‘찔레꽃’(1995)은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이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노래는 가수를 찌르고 마침내 우리를 찌른다.  


 그는 나이 먹는 게 재미있단다.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은 세상을 봅니다.” 45세 이전을 밤, 그 이후를 낮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아부지 장구 칠 때 옆에서 태평소 불던 아저씨가 제 기억에 늘 있었거든요.”

 

 마침내 1993년 1월 4일 사물놀이패로 들어갔고 거기서 분 태평소보다 뒤풀이 때 부른 가락들로 그의 삶은 낮으로 역주행한다. ‘동백아가씨’ ‘님은 먼 곳에’ ‘열아홉 순정’ ‘빛과 그림자’ ‘봄비’. 박수치던 사람들 곁에 그를 알아본 귀인이 있었으니 그가 피아니스트 임동창이었다.

 장사익은 시를 노래하는 가수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 중).  시인의 30주기(7일)에 맞춰 오늘은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출처> 2019. 3. 7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