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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문화일반

3·1운동 막전막후, 전국 100만명이 "독립만세"

by 혜강(惠江) 2019. 3. 1.

 

3·1운동 막전막후,  전국 100만명이 "독립만세"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장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장

 

 

 3·1운동은 서울 탑골공원에서만 열린 게 아니다. 삼천리 곳곳에서 수많은 민중이 만세를 불렀다. 100년 전 오늘만 해도 고양, 해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에서 동시다발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독립선언서 낭독, 독립만세 외침, 시가행진과 같은 닮은꼴 시위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평양에서는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가 각각 고종 추도회를 거행하고 시내에서 합류해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3일 고종 국장 참석차 올라온 수십만 지방 인사들은 3월 1일과 5일의 만세 시위를 목격하거나 참여한 뒤 고향에 돌아갔다. 3월 10일 서울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자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3·1운동 첫 10일간 평안남도가 선봉에 섰다. 3월 4일 강서군 모락장(사천시장)에서는 강서군 모락장교회와 반석교회, 인접 대동군 원장교회와 산수리 교회 등 4개 교회가 연합해 5000명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일제 총격으로 13명이 목숨을 잃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대는 무단 발포를 한 사천헌병주재소를 습격해 헌병과 보조원 4명을 살해했다. 맹산군 맹산면에서는 3월 6일부터 천도교인들이 만세 시위를 시작했다. 3월 10일 일제는 구금된 인사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맹산헌병분견소 마당에 모이게 한 뒤 무차별 사격으로 54명을 학살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시위운동을 전개한 지역이다. 전국 2464건의 시위·휴교·파업이 있었는데 경기도가 단연 1위(449건)였다. 3월 18일 2만명이 나선 강화 읍내 시위는 3·1운동 중 최대 시위로 꼽힌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유봉진이 앞장섰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 했었는데 안중근 의사에게 선수를 빼앗겨 아쉬워했다. 안중근을 숭상한 그는 서울 만세 시위 소식을 듣자마자 동지를 규합했다. 기계 기술자이자 기독교인인 유봉진은 온수리·길직리 교회를 참여시키고 독립선언서와 국민회보를 배포했다. 12인 결사대를 조직하고 태극기와 깃발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3월 18일 시위 현장엔 백마를 타고 나타나 지휘했다. 안중근의 애국혼이 유봉진을 움직였고 대규모 강화 시위를 이끌어낸 것이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유봉진은 평소 안중근을 흠모했다. 자신이 먼저 이토 히로부미를 해치워야 한다고 믿었다. 2만명이 참여한 강화 시위를 이끈 그가 감옥에서 찍은 사진.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유봉진은 평소 안중근을 흠모했다. 자신이 먼저 이토 히로부미를 해치워야 한다고 믿었다. 2만명이 참여한 강화 시위를 이끈 그가 감옥에서 찍은 사진.

 

  경남 합천군 삼가장터에서는 3월 23일 1만3000명이 나선 대대적 시위가 열렸다. 닷새 전 시위에 500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자 다시 준비한 독립 시위였다. 합천군 가회·상백·백산면과 인근 산청군 생미량면 유지들이 반경 20㎞ 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한 독립 만세 시위였다. 시위에 소극적이라고 알려졌던 유림도 앞장섰다.

 4월 2일 통영 장날 시위엔 소복을 입은 통영 기생들이 5000명 시위 대열 선두에 섰다. 정막래(丁莫來·21)·이소선(李小先·20) 등 7명이 기생단을 조직해 시위에 불을 지폈다. 일 군경은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며 강제 해산시켰다. 수원, 안성, 진주, 해주 기생들도 만세 대열에 합류했다. 3·1운동은 전 민족이 참여한 독립운동이었다.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선 3000여 명의 시위대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유 관순이 참여한 이 시위에서 일본 헌병과 보병 증원대가 발포해 유관순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100만 명 넘게 참여한 시위는 5월까지 이어졌다. 서울 학생 시위가 만들어낸 일제 무단통치의 균열을 비집고 종교인, 유학자, 농민, 기생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민족적 열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다.

 

 

공동기획: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출처 :2019. 2. 2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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