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7번 국도’ 따라 동해·삼척 늦겨울 바다 여행
짙푸른 파도·하얀 포말… 해(海)를 품은 길을 달린다
동해·삼척=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강원도 삼척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연결하는 4.6㎞의 ‘이사부길’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짙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달리며 해안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다.
남녘에서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아직 겨울이 물러가지 않았다. ‘마지막 겨울’과 ‘막 시작한 봄’이 공존하는 요즘 동해는 짙푸른 몸짓으로 으르렁거린다. 바다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햇살을 받은 바다는 연초록으로, 구름이 몰려들면 검푸른 빛으로 물든다. 거기에 밀려드는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로 채색한다. 아직 남아 있는 겨울을 찾아 ‘옛 7번 국도’를 따라 동쪽 바다를 달려보자.
강원도 동해시에서 겨울바다를 즐기기에 추암해변 만한 곳이 드물다. 추암역 좁은 굴다리를 통과하면 곧바로 주차장이 나온다. 바로 앞에 모래사장과 바다, 바다로 난 좁은 물길과 소나무 숲이 우거진 바위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 바위산은 원래 독립된 섬이었으나 사빈이 발달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고 한다. 50여 년간 둘러쳐진 군 경계 철책이 2년여 전 철거됐다. 울타리와 나무 데크도 새로 설치했다.
모래사장 위 다리를 건너 바위산을 오르면 다로 추암촛대바위 앞에 다다른다. 애국가 배경 영상에 등장한 바위로, 일출 명소다. 1900년대까지는 바위 3개가 있었고, 그중 2개가 벼락에 부러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바위를 향해 파도는 성난 사자의 기세로 달려들지만 바위에 부딪혀 거품처럼 흩어진다. 손가락을 뻗은 듯 길고 가는 바위 위에 갈매기가 앉아 있다. 멀리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한다. 바다 쪽 길을 따라 내려오면 바위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뒤에 정자 하나가 앉아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단정하다. 촛대바위 남쪽에는 150m 정도의 모래사장을 갖춘 추암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동해시 추암과 삼척시 증산을 연결하는 관광형 도로 개통으로 삼척이 훨씬 가까워졌다. 추암 인근에 우산국을 정벌한 신라 장군의 이름을 딴 삼척 ‘이사부사자공원’이 있다. 신라 지증왕 13년 우산국을 정복하기 위해 싸우던 이사부 장군이 반항하는 섬 주민들을 겁주기 위해 사자 모양의 나무조각을 만들었다는 설화를 전해준다. 공원의 사자상은 매년 8월 이사부광장에서 진행되는 이사부역사문화축전의 나무사자 깎기 대회와 사자탈 만들기 대회를 통해 입상한 작품들이다.
삼척해수욕장에서 삼척항까지 동해안을 만끽할 수 있는 ‘이사부길’이 이어진다. 4.6㎞의 해안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해변 드라이브 코스로,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이 길은 지난해 초까지 ‘새천년도로’로 불렸다. 뉴 밀레니엄을 연 2000년 붙은 이름이다. 다소 딱딱하고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은 이름 대신 삼척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신라 장군 이사부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사부길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해안절벽과 바다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삼척해변을 지나면 길옆으로 탁 트인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기운찬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의 눈을 호강시켜준다. 포효하는 파도가 당장이라도 덮칠 듯 가깝게 다가온다.
구불구불 S자 길을 지날 때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길의 가파른 경사는 긴장감과 짜릿함을 전한다. 가는 길에 비치조각공원이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다를 보여주는 곳으로 사진 촬영 명소다.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해 즐겨 찾는 노상 카페이기도 하다.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어우러진 기암절벽과 해송림은 선 굵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이어 언덕진 곳에 오르면 바다가 발밑에 출렁인다. ‘소망의 탑’으로 불리는 공원이 있다. 2000년 건립된 돌탑으로 매년 새해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명소다. 소망의 탑 아래에는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이 묻혀있다고 한다. 소망의 종은 동해안 일출을 바라보며 종을 세 번 치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이사부길 끝 삼척항에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짠내와 곳곳이 젖어 있는 길바닥이 항구 마을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삼척의 남쪽으로 들어서면 궁촌 해변이 나온다. 이곳에서 해양레일바이크를 이용하면 색다른 방법으로 삼척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 레일바이크는 편도 5.4㎞(궁촌정거장→용화정거장, 용화정거장→궁촌정거장)로 이어진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해송림을 지나면 솔내음·바다내음이 폐포 깊숙이 스며든다.
용화에서는 해양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용머리 형상의 역사(驛舍) 2개가 서로 마주 보며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장호항을 가로지른다. 연결 로프 길이만 880m로 초속 3.5m의 속도로 해상을 누빈다. 케이블카 바닥은 투명한 강화유리로 돼 있다. 50m가량 발아래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찔하게 펼쳐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전망대에서 다시 한번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여행메모
묵호항·묵호등대·논골담길도 명소
동해 가자미물회· 삼척 곰치국 ‘별미’
수도권에서 추암해변으로 승용차를 이용해 간다면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해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동해에서는 묵호항을 둘러봐도 좋다. 벽화골목인 논골담길과 묵호등대(묵호등대해양문화공원)도 가깝다.
궁촌 해변이나 장호항 등으로 바로 가려면 동해고속도로 근덕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좋다.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닿는다.
동해와 삼척에는 겨울철 먹거리가 풍부하다. 묵호항에서는 한류성 어종인 가자미로 만든 물회가 별미다. 가자미 세꼬시에 배·양배추·양파 등을 썰어 넣고 초고추장을 푼 물에 말아 먹는다. 삼척의 명물은 곰치국이다. 토막 낸 곰치를 신 김치와 함께 넣어 얼큰하게 끓여낸다. 임원항 등의 회센터를 찾으면 다양한 종류의 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출처] 2019. 2. 14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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