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성경을 통해 혹은 교리서를 통해, 아니면 기독교 채널을 통해서도 여러 성격의 설명을 접할 수 있지만, 다소 색다른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당당하고 치열하게 논박을 벌이던 바울이 아니라, 그가 가장 가난한 마음을 가졌을 때의 고백이다.
감옥에 갇혀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비통함 속에, 바울은 마음이 둘로 찢어졌다. 입으로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빌립보서 1:21) 그러나 속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그도 살고 싶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지역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원후 50년경에 바울이 빌립보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후로 약 10년이 지난 때였다. 유럽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였다. 그가 쓴 다른 서신들을 보면, 바울은 날카롭게 날 선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는 꼭 연애편지 같다. 글에서 달콤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1:3-8) 성경이라 좀 젊잖게 번역이 되었을 뿐,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스위트하트’(sweetheart)며 ‘달링’(darling)이다.
바울이 목회를 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 떠난 교회의 교인들이 그를 험담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달랐다. 오히려 떠난 바울을 위해 몇 번이나 재정적인 지원까지 할 정도였다.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4:16-18) 감옥에 갇힌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자신은 넉넉하게 지낸다며 감사에 감사를 전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