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최고의 여행지 5선(五選)
글·사진 = 박경일 기자
▲광주 양림동의 양림쌀롱 여행자 라운지에서 진행하는 ‘광주 1930 양림 달빛 투어’는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다. 1930년대 ‘모던 걸’ 복장을 한 가이드의 안내로 등불을 들고 양림동 골목의 근대와 현대를 둘러본다. 투어 코스가 지나는 호랑가시나무 언덕 위의 팽나무에 매단 등불이 몽환적이다.
여행지에 대한 개인의 취향이나 감성이 유독 두드러진 해였습니다.
똑같은 여행지를, 다들 똑같이 여행하는 건 이제 구닥다리 방식입니다.
새로운 취향의 목적지를 찾아내고,
그곳을 남들과 다르게 여행하는 것이 여행자들의 목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근대의 공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되살려낸,
이른바 ‘도시재생’의 명소를 자주 찾았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접적지역의 공간이나 분단과 갈등 이야기를 유독 자주 꺼내놓은 것은 남북화해의 사회 분위기 덕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해는 자연의 미감(美感)보다는
시대와 역사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난 경우가 많았네요.
한 해 동안 LIFE & STYLE이 다녀온 ‘최고의 여행지’ 다섯 곳을 뽑아 봤습니다.
# 근대를 기억하는 곳
여행에서 ‘근대’는 단연 올해의 화두였다. 오랫동안 ‘근대의 시간’은 비워져 있었다. 근대를 자산으로 삼은 여행 목적지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드리운 짙은 그늘 때문이다.
근대를 말하면서 제국주의 폭압과 수탈을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근대를 가볍게 말하거나, 가볍게 즐길 수 없게 된 건 이 때문이었다. 처음 근대를 관광 자산으로 삼았던 건 ‘근대골목’을 들고나온 대구. 이후 군산과 목포가 뒤를 이었고, 이제 광주까지 합세했다.
광주 변두리 양림동은 두 가지 의미에서 독특한 공간이었다. 하나는 부채의식 없이 우리의 근대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양림동은 서구 문물이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유입됐으며, 외국인 거주지역이라 일제의 압제와 수탈도 없었다. 일제도 그곳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 식민지에 빚진 것이 없는 양림동이야말로 부채의식 없이 우리 근대를 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다.
두 번째는 양림동이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매력적인 근대풍경을 알아본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협업으로, 골목을 걸으며 근대를 떠올릴 수 있는 지금의 양림동이 만들어졌다. 양림동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인 ‘양림쌀롱 여행자 라운지’와 선교사 사택을 활용한 ‘호랑가시나무 언덕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곳곳에 들어선 갤러리와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동네 식당들도 있다. 이곳은 훌륭한 여행지이기도 하지만, 역사와 문화를 지도 삼아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무엇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는 얘기다. 양림동을 다녀온 뒤에 광주시는 양림동 골목을 중심으로 이야기와 연극, 음악 등을 융합시킨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를 운행하기도 했다.
▲ 강원 속초의 ‘문우당서림’은 서점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인지 보여준다. 2층의 264개로 분할된 책꽂이에 264권의 책에서 꺼낸 문장을 하나씩 적어 놓았다. 문장을 읽다 보면 그 문장이 담긴 책을 읽고 싶어진다. |
# 젊은이들의 감성 여행
속초를 대표하는 건 이제 아바이마을의 갯배나 속초관광시장의 닭강정 혹은 대포항의 새우튀김이 아니었다. 속초에서는 낡고 허름하며 용도를 잃은 공간이 젊은 세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었다. 기사로 쓰지 않았지만, 속초를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옛 목공소 건물 2층의 한 카페였다. 한 세대 전쯤의 딱딱한 관공서나 버스회사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당혹스러운 인테리어. 이곳이 젊은 여행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속초의 카페 ‘비단우유차’다. 카페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도끼다시(테라조) 바닥, 의자인지 탁자인지 구분되지 않는 목재 가구, 무심하게 배치한 화분, 전당포를 연상시키는 카운터 겸 주방…. 모든 것이 이질적이고 낯설다. 거기서 젊은이들이 한자로 된 주문서(注文書)를 쓰고 전당포 창구 같은 곳에서 음료를 받았다. 도대체 왜 이런 곳이 ‘뜨는’ 것일까.
그곳의 매력을 해독할 수 없어 ‘비단우유차’는 기사에서 빠지고 말았지만, 여기 말고도 낡고 오래된 조선소를 그대로 둔 채 카페의 용도로 재해석한 ‘칠성조선소 살롱’이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동아서점’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문우당서림’ 등을 소개했다. 이곳들은 모두 속초의 새로운 명소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궁금했던 것은 왜 대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중소도시의 서점을 찾아오고, 그곳에서 책을 사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중소도시 서점의 책이 대도시에서 파는 책과 다른 것도 아니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게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비싼데도 말이다.
두 서점이 특별했던 건 책을 분류하거나 다루는 방식이었다. 책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로 딱딱하게 나누는 게 아니라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날’이라거나 ‘술에 관한 모든 이야기’ 식의 제목으로 분류해 책을 꽂아두었다. 예를 들어 ‘술에 관한 모든 이야기’란 제목의 책꽂이에는 술의 역사부터 안주 만들기와 해장, 그리고 건강 이야기를 다룬 책을 꽂아두는 식이다. 이런 스타일의 작은 서점은 이제 속초 말고 다른 지역에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강원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눈밭에 불을 밝힌 건물이 ‘박수근 파빌리온’이다. 작고한 건축가 이종호가 화가 박수근의 아틀리에를 모티브로 삼아 10년 넘게 매달려 지은 것이다. 건축이 어떻게 예술가를 기리는지를, 이 건물이 보여준다
# 건축으로 삶을 기리다
눈 내린 이튿날에 강원 양구에서 ‘박수근미술관’과 만났다.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이 태어나 자란 생가 자리에 세운 미술관. 미술관은 접적지구의 인적 드문 중소도시에 진본 그림 단 한 점도 없이, 모작과 복사본만으로 마치 ‘관광개발의 구호’처럼 지어진 것이었다. 모작이나 복사본으로 그 화가를 기억하게 하는 미술관이라니…. 얼마나 모욕적인가.
그러나 지금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 작품 203점과 관련 자료 178종을 보유하고 있다. 기념관 하나가 전부이던 미술관은 현대미술관, 박수근 파빌리온까지 더해져 3개의 독립공간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주목했던 게 ‘건축의 힘’이었다.
미술관 안의 건축물 ‘박수근 파빌리온’은 여수 앞바다에 투신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건축가 이종호가 죽기 직전까지 10년이 넘도록 매달려 작업한 유작이다. 돌과 철망으로 외벽을 마감해 박수근 그림의 질감을 연상케 한 것도, 출입구를 후면에 배치해 길 잃은 관람객이 건축을 오래 들여다보도록 한 것도 오래 고심해 만든 그의 솜씨다.
박수근미술관에서 유심히 보았던 건 건축가의 솜씨가 어떻게 미술관을 찾은 이들에게 공간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애정이 어떻게 미술관을 더 아름답게 다듬어냈는지 하는 것이었다.
생전의 건축가는 자취도 역사성도 없는 생가(生家)를 지으라는 제안을 물리치고 아틀리에와 전시실을 겸한 독특한 공간인 ‘박수근 파빌리온’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이야말로 한 화가의 가난한 삶 위에다 건축이 씨를 심어 틔워낸 싹이다.
양구를 간다는 건, 그리고 박수근미술관을 간다는 건 바로 그 싹을 보러 가는 일과 다름없다.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미술품뿐만 아니라, 예술가를 우리가 어떻게 기려야 하는지를 건축을 통해 보여주는 답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다 여행이 보여주는 것들이다.
▲강원 고성의 717 OP는 북녘땅을 내려다보는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가진 전망대다. 해금강 일대 경관이 펼쳐지는 초소에서 망원렌즈로 당겨본 구선봉. 구선봉 아래 푸른 ‘감호’가 있고, 그 앞에 붉은 깃발을 단 북한군 초소가 있다. |
# 북으로 한발 더 가까이
강원 고성의 통일전망대 옆에 새로 지어진 C자 모양의 통일전망타워가 자그마치 3년이 넘는 긴 공사를 마치고 오는 28일 처음 개방한다. 1984년에 지어진 기존의 통일전망대의 높이는 고작 4m 남짓. 그에 비해 새 통일전망타워는 34m의 높이로 시원한 조망을 자랑한다. 하지만 새 통일전망타워의 조망이 아무리 좋다 한들, 한참 북쪽으로 더 나아간 산정상에 최전방 관측을 위해 설치한, 민북지역 최북단의 ‘717 전방관측소(OP)’ 시야를 따를 수 있을까.
철조망 너머 접적지역인 717 OP는 최근까지만 해도 민간인에게는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보는 북녘 산하의 빼어난 풍경은 여기 근무했던 병사들에 의해 마치 전설처럼 전해져왔다. 여기서 보는 금강산과 해금강 일대의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717 OP에 ‘금강산 전망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꽁꽁 닫힌 717 OP의 문은 봄·가을 여행주간에만 사전 예약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열린다. 이때만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못내 아쉽지만, 바야흐로 남북의 화해 무드로 OP보다 더 북단의 전방 감시초소(GP) 철거가 이뤄지고 있으니, 내년쯤 717 OP가 전망대로 상시 개방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과연 명성 그대로였다. OP에서 바라다보이는 구선봉과 해금강,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 일대의 경관은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금강산 낙타봉과 가마봉, 말무리 반도가 바다로 주르륵 흘러내린 풍경이라니…. 바위와 바위 사이에 숨은 북한군 진지 앞에서 소총을 멘 북한 군인이 혼자 서성거렸고, 이쪽 남방한계선에서는 무장한 우리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대치 공간의 풍경은 대체 어쩌자고 그리도 아름다웠을까.
▲ 경북 칠곡의 호국평화기념관 전시실 로비. 호국평화기념관은 548억 원을 들여 2015년 개관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쟁기념관이다. 딱딱한 교훈으로 가득한 판에 박은 전시공간을 생각했는데, 뜻밖에 구성도 다양하고 전시방식도 흥미롭다. |
# 전쟁의 공간에서 보는 평화
모두 다 목소리를 높여 ‘평화’를 말할 때, 이 땅 위로 지나갔던 뜨겁고 아팠던 전쟁의 기억을 찾아간 여정이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경북 칠곡을 목적지로 택했던 건, 평화의 가치는 비극의 전쟁을 들여다볼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칠곡에서 낙동강 전선 전투의 기록을 찾아다니다가 호국평화기념관에서 그 편지를 봤다. 열여섯 나이의 학도병이 죽기 전에 남긴, 어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 육군 제3군단 소속 학도병이었던 동성중 3학년생 이우근. 편지는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수류탄을 던져 적을 죽인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편지에는 범벅이 돼 있다. 편지를 쓴 학도병은 1950년 8월 10일 전투 중 사망했다. 편지에서 그는 죽음을 예감한 듯 ‘내복을 빨아 입으며 문득 수의를 떠올렸다’고 썼다. 열여섯 나이의 학도병이 그리움을 담아 꾹꾹 눌러쓴 마지막 편지 앞에서 누군들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까.
감동은 또 있었다. 퇴선 명령을 어기고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4000명의 생명을 구한 푸른 눈의 해군 선장이 훗날 수도원의 수사가 됐다는 이야기도, 그때의 인연으로 미국인 수사가 죽기 전까지 머물던 미국 수도원을 칠곡의 성베네딕토 왜관 수도원이 인수했다는 사실도 모두 다 가슴을 덥히는 이야기들이었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에 ‘치열했던 전쟁’을 증거하는 공간이 ‘시대착오’가 아님을 칠곡의 명소들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평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곳은 가보아야 할 곳이다. 그곳이 전쟁을 떠올리는 공간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출처> 2018. 12. 26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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