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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문화일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재미

by 혜강(惠江) 2018. 11. 10.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재미

 

콘서트장처럼 뜨겁게 달구는 영화의 매력에 빠지다.

 

 

글 남상학

 

 

 

 

 

 11월 8일, 비 오는 날이었다. 문래동에 사는 좋은 벗 이한수 님의 초대로 점심 대접을 후하게 받고, 영화를 좋아하는 그를 따라 영등포 롯데시네마로 이동했다. 요즘 관객의 환호 속에 상영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음악영화는 좋아한다. 음악에는 흥이 있어 귀가 즐겁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 영화는 과거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라 위대한 밴드 ‘퀸(Queen)’의 멋진 콘서트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퀸은 1970년대 초반 런던에서 결성되어 다수의 히트곡을 낸 록 밴드 퀸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Don't Stop Me Now', 'Good Old-Fashioned Lover Boy' 등이 CF 배경음악으로 쓰였고, 'We Will Rock You'의 발을 두 번 구른 뒤 박수를 치는 리듬으로 세계인의 취향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밴드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중심으로 영국 록의 전설 밴드 퀸(Queen)의 결성부터 1985년 라이브 웨이드 공연까지, 15년 간 일어난 일화들을 다룬 영화였다. 2018년 10월 개봉한 이 영화는 브라이언 싱어와 덱스터 틀래처가 감독을, 앤서니 매가튼이 각본을 맡았다. 영화는 트레데의 일대기를 다룬 점에서 전기(傳記)요, 음악, 드라마 영화라는 장르에 해당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큘리(라미 말렉)는 공항에서 수하물 관리 일을 하던 잔지바르 출신의 이민자였다. 음악의 꿈을 키워오던 프레디는 한 클럽에서 보컬을 구하는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타에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 베이스에 존 디콘(조셉 마젤로), 드럼에 로저 테일러(벤 하디) 그리고 보컬에 프레디 머큐리까지,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록밴드 퀸은 이렇게 탄생된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도 언뜻언뜻 Queen의 멤버들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동작에 예상치 못한 잔재미를 느끼게 한다.

 

 

 

 

 

 특색 있는 음악, 프레디의 뛰어난 가창력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앞세워 퀸은 나날이 인기를 높여 간다. 영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프레디는 그에 안주하지 않고 실험적인 곡, 무려 6분짜리 '보헤미안 랩소디'를 발표하며 월드 스타의 자리를 굳건히 다진다.

 

 

 

 

 

 

 하지만 사람 일은 잘 될수록 삐걱거리기도 하는 법, 프레디는 솔로 데뷔 제안을 받으면서 멤버들의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던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 데뷔라는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결국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멤버들과 결별을 선언한다.

 

 퀸을 떠난 프레디는 피폐하고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퀸으로 복귀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세상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의 록밴드 ‘퀸’ 되기까지 그는 음악은 물론 외모와 동작 모두에 심혈을 기울인다.

 

 

 

 

 

 영화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1985년 7월에 있었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무대의 재현이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열린 이 공연은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진행됐다. 영국에서는 약 7만 2천 명이 공연장에 운집했다. 엄청난 규모를 구현하기 위해 비행기 활주로에 무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아무리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렸다 해도 사람들로 빼곡한 웸블리 스타디움을 보는 사람이라면 당시의 열기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흐르는 노래에 취해 관객들은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콘서트장처럼 뜨겁게 달구는 영화의 매력에 한껏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편, 머큐리에게는 약혼녀였던 메리 오스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성애자였던 머큐리에게는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동성 연인 짐 허튼이 있었다. 영화는 이 두 사람에게도 관심을 집중시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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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2018. 11월 10일자에는 <양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의 남과 여…진짜 사랑은 누구였을까>라는 홍주희 기자의 글이 흥미를 큰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여기 그 기사를 소개한다.  

 

 

양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의 남과 여…

진짜 사랑은 누구였을까 

 

 

홍주희 기자(중앙일보)

 

 

▲프레디 머큐리. [중앙포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9일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열흘만이다. 전설의 록밴드 ‘퀸’을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라는 사실만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의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흥행 대열에 들어섰다. 

 

  약혼까지 했던 평생의 ‘소울메이트’ “누구라도 메리를 대신할 수 없어”

   런던 부촌의 대저택 유산으로 남겨

  전속 미용사로 알려졌던 동성 연인, 반지 낀 채 숨 거둘 때까지 함께 해

  정작 유산은 50만 파운드만 남겨줘

 

  ‘보헤미안 랩소디’는 기본적으로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 직원이었던 파로크 불사라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되는 모습을 담아낸 전기영화다. 퀸의 명곡을 배경음악 삼아 성공-좌절-극복의 스토리를 풀어냈고, 똑 닮은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극장을 콘서트장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가 사랑한 남과 여…영화에는 없는 진짜 삶

 

  

 그럼에도 한편에선 영화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머큐리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 영화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영화 예고 영상이 처음 공개됐을 때 SNS에서는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영화가 숨기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머큐리의 약혼녀였던 메리 오스틴과의 관계가 영화를 지배하는 반면, 머큐리가 죽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동성 연인 짐 허튼과의 관계는 지나치게 짧게 다뤄졌다는 지적도 있다.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워싱(Straightwashing)’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스트레이트 워싱’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묘사하거나 보이게 하고, 역사적인 인물의 정보를 바꿔서 그 내용이 이성애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머큐리는 직접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알려진 그의 개인사를 통해 그가 양성애자였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실제 머큐리는 영화에 등장한 오스틴과 허튼 외에도 독일의 여배우 바바라 발렌틴, 독일의 레스토랑 경영자였던 남성 빈프리드 키르히베르거 등과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어쨌든 이같은 영화의 ‘빈틈’이 궁금증을 남겼다. 그 질문 중 하나를 지난 1일 미국 매체 베니티 페어의 기사가 던졌다.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의 연인관계에 관한 진짜 이야기(Bohemian Rhapsody: The True Story Behind Freddie Mercury’s Relationships)’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에 위대한 사랑은 누구였을까.

 베니티 페어는 “영화가 두 사람(메리 오스틴, 짐 허튼)과 머큐리와의 관계에 대한 디테일을 생략하고, 중요한 팩트를 윤색하고 수정하고 있다”며 실제 이야기를 전했다. 

 

 

 

머큐리의 ‘유일한 친구’, 메리 오스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오스틴과 머큐리는 1969년 처음 만났다. 각각 19살, 24살이었다. 슈퍼스타가 되기 전 패기 넘치는 가수였던 당시의 머큐리에 대해 오스틴은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며 “자신감이 넘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금세 데이트를 시작했고, 이는 영화에 꽤 유사하게 담겼다. 연애는 순탄했고, 73년 머큐리는 오스틴에게 프러포즈했다. 오스틴은 이렇게 회상했다.    

 

 “크리스마스에 큰 박스를 받았다. 박스 안에 또 박스가 있고, 또 박스, 박스… 마침내 작은 박스에 보석 반지가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속삭였다. ‘결혼하겠다’고.”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했다. 머큐리는 부모에게 오스틴을 소개했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오스틴을 위한 곡을 작사·작곡했다. 불후의 명곡 ‘Love of My Life’다.  

 

 하지만 결혼식은 결국 취소됐다. 2013년 데일리메일 인터뷰에서 오스틴은 “머큐리가 양성애자임을 털어놓은 뒤 결혼식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이렇게 끝났다.  

 

 

 

▲프레디 머큐리(왼쪽)와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 [중앙포토,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서로의 ‘소울 메이트’로 평생 교류했다. 머큐리는 공공연히 오스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왜 자신이 메리를 대신할 수 없냐고 나의 연인들이 묻곤 하는데, 그건 그냥 불가능하다”는 식이었다. 1985년 어느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메리이며, 다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내게 그녀는 관습법상 아내이고, (우리 관계는) 결혼생활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그걸로 충분하다”  

 

 오스틴은 훗날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머큐리와의 관계는 그가 에이즈 진단을 받고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머큐리는 유언장을 통해 오스틴에게 자신이 거주하던 영국 런던 부촌인 켄싱턴에 있는 방 28개짜리 저택 ‘가든 로지’와 900만 파운드(약 132억원) 상당의 자산을 상속했다. 머큐리는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동성 연인 대신 오스틴에게 저택을 남기면서 “나의 아내가 됐을 것이었기 때문에 (이 집은) 너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2000만 파운드(약 294억원)의 가치를 가진 이 저택을 오스틴은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 ‘퀸 ’팬들의 성지(聖地)로 여겨진다. 머큐리가 묻힌 곳이 그의 유언에 따라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머큐리의 마지막 연인, 짐 허튼   

 

 

 허튼은 머큐리가 91년 11월 24일 45세로 사망할 때까지 가장 오래 함께 한 연인이었다. 영화 속에선 허튼의 직업과 두 사람이 만난 시기 등이 실제와 다르게 묘사돼 있다.  

 

 두 사람은 1983년에서 1985년 사이, 런던의 게이클럽 ‘헤븐’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튼은 당시 사보이호텔 소속 미용사였다. 허튼이 2006년 영국 타임스오브런던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두 사람은 머큐리가 사망할 때까지 약 7년간 연인 관계를 이어갔지만, 첫눈에 서로에게 반하지는 않았다. 

 

 

▲프레디 머큐리(오른쪽)와 브라이언 메이. [중앙포토]

 

 

 처음 만났을 때 머큐리는 허튼에게 술을 한잔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가 슈퍼스타라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던 허튼은 거절했다. 그렇게 끝났을 관계는 1년 반 뒤 또 다른 클럽에서 다시 마주치면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했고, 1년 뒤 허튼은 머큐리의 저택 ‘가든 로지’로 이사했다.  

 

 외부에 사생활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렸던 머큐리는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허튼은 외부에 연인이 아닌 전속 미용사로 소개되곤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로 오랜 시간 함께했다.  

 

 허튼은 인터뷰에서 두 사람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와 함께 소파에 누웠다. 그는 내 발을 마사지해주면서, 하루가 어땠는지 묻곤 했다”    

 

 

 

▲머큐리의 연인 짐 허튼이 펴낸 『머큐리와 나』. 책 표지 속 작은 사진이 짐 허튼과 프레디 머큐리다.

 

 

 87년 머큐리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뒤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병색이 완연해지면서 알리지 않고 싶어했던 에이즈 감염설이 퍼졌고, 마지막 1년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튼은 투병 기간 내내 허튼은 머큐리 옆에 있었다.  허튼은 머큐리가 숨지기 며칠 전 나눈 마지막 대화를 기억했다.  

 

 “새벽 6시 그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했다.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까’ 물은 그는 혼자 난간을 붙잡고 걸었다.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앞서 걸었다. 의자에 그를 앉히고 조명을 켜 각각의 그림을 비췄다. ‘오, 정말 멋져’ 그의 말이었다”  

 

 머큐리의 사망 후 ‘가든 로지’가 오스틴에게 상속되면서 허튼은 갈 곳을 잃게 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머큐리는 허튼이 머무는 조건으로 오스틴에게 저택을 상속했지만,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튼은 자신 대신 오스틴에게 저택을 상속한 머큐리를 탓하지 않았다. “(머큐리가) 50만 파운드(약 7억 3000만원)를 남겨준 덕분에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서다. 허튼에 따르면 머큐리는 그가 선물한 결혼반지를 낀 채로 숨을 거뒀다.

 

 두 사람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 『머큐리와 나(Mercury and Me)』를 펴낸 허튼은 2010년 사망했다. 그 역시 90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출처> 2018. 11. 10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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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와 세대 공감

 

최현미 문화부 부장



 요즘 어디를 가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야기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 주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해 ‘레미제라블’이 세운 역대 음악영화 최고 기록을 넘보고 있다.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얼롱 상영’이 이어지고 오랫동안 관심 밖이었던 프레디 머큐리 관련 책들도 30∼40배나 판매가 급증했다. 영화 때문에 말 그대로 한국에서 그룹 ‘퀸’과 프레디 머큐리가 새로 발견되고 있다.  

 실제로 영화의 최대 관객 군은 ‘퀸’에 낯선 20대다. 예매정보만으로 모든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한 멀티플렉스의 예매순위를 보면 20대가 가장 많고 이어 30대, 40대, 50대, 10대 순이다. 음악 사이트에서 ‘퀸’ 노래를 가장 많이 듣는 이들 역시 20대다. 사실 이 같은 관객 분포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영화가 흥행하려면 연령별 관객이 M자 분포곡선을 보여야 한다는 일명 M형 분석이 나왔었다. 10대와 40대,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봐야 그 영화가 대박을 친다는 해석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선 ‘뉴스’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엔 문화적인 386 세대가 10대 자녀를 둔 부모가 되어 자녀와 한 작품을 같이 즐기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M자 곡선이 아니라 젊은층이 더 열광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때문에 이는 ‘뉴트로’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돌아온 복고 레트로(Retro)가 아니라 새로운 복고 뉴트로(New-tro). 최근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도 중장년을 대상으로 지난날 향수에 호소하는 복고와 달리 과거를 모르는 1020세대들이 옛것에서 신선함을 찾는 뉴트로가 내년도 주요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루만 지나도 모든 것이 낡아 버리는 어지러운 속도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모두가 행복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피곤한 시대에 지쳐 이제 화려하고 완벽한 것보다 오히려 낡고 오래된 것에 마음이 가는 감성과 연결된 트렌드이다. 다만 뉴트로의 핵심은 과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에 있다.  

 ‘뉴트로’로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보여준 새로운 해석은 퀸과 퀸의 음악 그리고 머큐리가 지금 젊은이들과 공명하는 현대성이다. 당연히 전설의 퀸 음악에 대한 새로운 팬덤도 분명하지만 세대 간 대화는 끊어지고 마음 터놓고 대화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스스로 약자였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한 머큐리, 또 비록 소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며 누구도 자기 인생에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는 그의 ‘선언’에 젊은 세대들이 마음을 포갤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전 비교적 풍요로웠던 한국에서 태어나 많은 것을 보고 자랐지만 결국 세상에 나와 보니 불황과 실업에, 분노로 가득 차고 권위적인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좌절한 젊은 세대들이 그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음악 영화의 역주행은 한국 젊은 세대들이 우리에게 토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젊었을 땐 퀸이…’라는 이야기에 그치지 말고 이 ‘말들’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현실에선 어려운 세대 간 대화가 이 위대한 뮤지션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출처> 문화일보 / 201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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