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
부침의 역사서 ‘공존(共存)’ 배우다
무수한 외세 침입… 독립 후 쉼 없는 내전 …
헬싱키·투르쿠·난탈리(핀란드)=글·사진 이귀전 기자
◆풀지 못할 정답 품고 있는 무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핀란드의 만화 ‘무민(Moomin)’은 ‘뽀통령’ ‘뽀느님’으로 불리는 ‘뽀로로’와 비교할 수 있다. 역사는 ‘뽀로로’보다 훨씬 오래됐고, 엄마 아빠 등 가족이 등장한다. 1940년대 등장한 만화니 ‘뽀로로’와 비교하면 할아버지뻘이다. 어릴 때 무민을 봤던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됐고, 세월이 흘러 손주들이 그때의 무민을 보고 있다.
핀란드의 ‘국민 만화’라 불리는 무민 캐릭터는 하마를 닮았는데, 북유럽 전설 속의 거인족인 ‘트롤(Troll)’을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무민과 ‘무민 파파’, ‘무민 마마’로 이뤄진 가족은 핀란드 숲 속에 살며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사건·사고와 마주친다. 대홍수와 혜성의 충돌 등 엄청난 재해를 겪기도 하고 불청객이 찾아와 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무민 가족은 상황을 원망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른 이와 갈등을 겪지 않는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 전경
새로운 환경에 처하지만 무민 가족은 다툼과 분열 대신 최대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긍정적 삶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이 같은 내용은 무민이 나왔을 때 핀란드 상황과 관련 있다. 지은이 토베 얀손이 첫 무민 동화 ‘무민 가족과 대홍수’를 펴낸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때다. 핀란드는 러시아 침공으로 영토를 뺏기고, 배상금까지 지불할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토베 얀손은 전쟁 대신 홍수로 재난과 절멸의 위협이 주는 공포를 다뤘고, 그 안에서 핀란드인들에게 현재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줬다.
이후에 나온 무민 동화도 문제가 닥쳤을 때 갈등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는 내용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무민을 통해 전쟁이나 재해가 아닌, 가족들이 함께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내용을 접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만화 무민은 세대를 거슬러 핀란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무민이 유명해진 이유도 그 내용이 핀란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의 흔적 바다 요새
무민에서 가족의 유대감이 부각되는 것은 외세의 점령과 침략을 거치며 탄생한 핀란드의 역사와 관련 있다. 핀란드가 현재 국가 체계를 갖춘 건 1918년이다. 스웨덴은 12세기부터 십자군전쟁을 빌미로 핀란드를 병합한 뒤 지배했다. 1809년 러시아와 스웨덴 간 전쟁으로 러시아 자치령이 된 핀란드에선 독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러시아혁명 후인 1918년에야 핀란드는 독립국가가 됐다. 독립 후에도 이념 갈등으로 우리처럼 내전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내전 후엔 러시아 침공으로 국토 일부를 뺏기고, 이를 되찾기 위해 다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핀란드 민족은 현재의 땅에 거주했지만, 많은 부침 속에 이룬 국가 역사는 올해로 101년밖에 안 된다. 바이킹 후예인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은 언어가 비슷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같은 북유럽에 있어도 핀란드는 언어가 전혀 다른 데다 외세 침략과 독립 후 내전 등의 영향으로 자신의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수오멘린나 요새는 핀란드를 지배한 스웨덴이 18세기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건설했다.
이런 역사의 대표적인 장소가 수도 헬싱키 앞바다 여섯 개 섬에 걸쳐 지어진 ‘수오멘린나’(Suomi+Linna·핀란드의 성채)다. 핀란드를 지배한 스웨덴이 18세기 건설한 해상요새로, 바다 건너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지었다. 러시아 점령 때는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쓰였다. 역사의 흔적은 그대로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여름 관광지 중 한 곳이다. 섬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산책로를 거니는 이들과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이 요새의 주인이 됐다.
헬싱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15분 정도면 수오멘린나에 이른다. 오래된 성벽과 녹슨 대포들을 보며 당시의 참담함을 떠올릴 수 있다. 대포가 바라보는 방향은 헬싱키 시내 쪽이다. 러시아가 점령했을 때 배치한 대포를 그대로 놔둔 것이다. 하지만 아픈 과거가 그려지기보다는 성벽 위에서 보는 북유럽 특유의 짙은 하늘과 구름이 그리는 한 장의 풍경 사진이 더 눈에 들어온다.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품고 넘어 온 이방인에게 바다보다 더 짙은 하늘의 푸름은 꿈꿨던 환상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핀란드 헬싱키의 수오멘린나 요새는 방어용이자 공격용, 창고 등으로 이용할 수 있게 두꺼운 성벽 내에 터널을 뚫었다.
요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성벽 안에 뚫은 터널이다. 방어용이자 공격용, 창고 등으로 이용할 수 있게 두꺼운 성벽 내에 터널을 뚫었다. 일부 구간은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는데, 특별한 시설을 해놓지 않아 손전등 등이 필요하다. 일부 구간은 암흑 자체이고, 벽을 좁게 뚫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만 간신히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 이 창을 보면 내부는 넓고, 외부는 매우 좁게 돼있다. 내부에서 외부에 있는 적을 손쉽게 공격하면서 효율적으로 방어하려고 한 방식이다. 요새에서 육지까지 연결된 터널도 있는데, 이 구간은 외부에 개방되지 않는다.
페리가 출발하는 항구에는 과일과 잡화 등을 파는 헬싱키 마켓 광장이 있다. 물가가 비싼 핀란드지만,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제철 과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자녀와 함께하는 아빠들
자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는 아빠들을 일컫는 ‘스칸디대디(scandi daddy)’란 말이 나온 곳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배경으로 한 북유럽 국가다. 평일 낮에 아빠와 아이가 같이 다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가장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난탈리다. 헬싱키에서 난탈리에 가려면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투르쿠로 이동해야 한다. 투르쿠는 스웨덴 통치 시절 핀란드 자치의회가 있어 옛 수도 역할을 했다.
▲투르쿠성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핀란드에 드문 고성이다.
▲핀란드 옛 수도 투르쿠에서는 유럽 중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핀란드 투르쿠의 감옥은 흉악범들이 있던 곳으로 ‘감옥호텔’로 변신 중이다.
핀란드는 왕이 직접 통치한 역사가 없다. 다른 유럽처럼 화려한 성이나 거대 건축물들을 보기 힘들다. 투르쿠는 옛 수도였기에 핀란드 다른 도시와 달리 중세의 성과 대성당 등 유럽하면 떠오르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투르쿠성은 스웨덴이 통치하던 시절 스웨덴 왕을 위해 지은 성이다. 다른 유럽에 있는 성에 비해 규모나 화려함은 비할 바가 안 된다.
왕이 머무르는 성이라기보다는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를 위한 공간 정도로 보인다. 실제 쓰임새도 스웨덴 왕이 임명한 총독 관저 등으로 사용됐다. 핀란드 독립 후엔 감옥으로도 사용되다 지금은 박물관 역할을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핀란드의 유일한 고성이기에 이들에겐 각별하다. 투르쿠의 독특한 볼거리 중 하나는 실제 감옥이다. 현재 감옥호텔로 변신하기 위해 공사 중으로, 일부 건물은 투어를 할 수 있다.
▲무민월드는 육지와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다. 무민 만화에 나온 세상을 본떠 만든 곳이기에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느낌을 준다.
▲핀란드 무민월드는 무민 만화에 나온 집들을 실제처럼 지어놨고, 만화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며 방문객과 사진을 찍는다.
▲바스키섬은 아이들이 21개 미션을 해결해야 섬을 탈출한다는 컨셉으로 조성된 곳이다. 활쏘기부터 짧은 짚라인, 사금 채취, 외줄타기, 블록 쌓기 등 몸과 머리를 활용해야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난탈리는 투르쿠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대통령 별장이 있는 여름 휴양도시다. 대통령 별장보다는 이곳의 무민월드가 더 유명하다. 무민월드가 있는 곳은 섬이다. 육지와는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다. 무민 만화에 나온 세상을 본떠 만든 곳이기에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느낌을 준다. 무민 만화에 나온 집들을 실제처럼 지어놨고, 무민 등 만화 캐릭터들이 온 종일 돌아다니며 방문객과 사진을 찍는다. 시간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춤을 따라 하는 아이들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무민월드에서는 시간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춤을 따라하는 아이들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핀란드 무민월드는 무민 만화에 나온 집들을 실제처럼 지어놨고, 만화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며 방문객과 사진을 찍는다.
우리나라 놀이공원처럼 다양한 놀이기구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전혀 없다. 자연 친화적으로, 동화 속 모습 그대로, 아이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무민월드 인근에 있는 베스키섬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섬에 들어서면 난파선 곳곳에 숨어있는 해골 수가 몇 개인지 세는 첫 미션이 기다린다. 아이들이 21개 미션을 해결해야 섬을 탈출한다는 콘셉트로 조성된 곳이다. 정답이 없는 미션도 있다. 활쏘기부터 짧은 짚라인, 사금 채취, 외줄타기, 블록 쌓기 등 몸과 머리를 활용해야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핀란드 20여곳에 있는 실내놀이터 슈퍼파크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핀란드 20여곳에 있는 실내놀이터 슈퍼파크도 아이들에겐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 옆엔 덩치 큰 아빠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행 tip
○…헬싱키 카드는 헬싱키 시내 대중교통 이용과 주요 관광지 및 박물관 입장, 파노라마 투어 버스, 수오멘린나 페리 이용 등의 혜택이 포함된 트래블 카드다. 관광 안내소, 주요 호텔, 헬싱키 카드 홈페이지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미식 여행을 목적으로 투르쿠를 찾는 여행객은 ‘투르쿠 푸드 워크 카드’가 유용하다. 카드를 구매하면 사흘 동안 지정된 레스토랑 10곳 중 다섯 곳을 골라 테이스팅 투어를 즐길 수 있다. 추가로 방문하는 레스토랑 한 곳은 15%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핀란드 국영항공사 핀에어는 ‘스톱오버 핀란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유럽 주요 도시로 향하는 여행객은 핀란드 경유 시 5시간부터 5일까지 머물 수 있다. 비행기 환승시간을 활용해 헬싱키 시내를 둘러보거나 고속 페리를 이용해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 에스토니아 탈린도 방문할 수도 있다. 헬싱키를 경유하는 항공권 구입 시 스톱오버 핀란드 패키지를 예약할 수 있다.
<출처> 2018. 7. 19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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