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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전북 완주, 10만 그루 편백 숲에서 상쾌한 '초록 샤워'

by 혜강(惠江) 2018. 6. 27.

박경일 기자





수령 40년을 넘긴 편백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전북 완주 죽림리의 편백나무숲. 숲 곳곳에 평상이 설치돼 있어 진한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앉거나 누워 쉬어갈 수 있다.



 전북 완주를 ‘전주의 배후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오산입니다. 도시 기능이나 경제적 사정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되, 여행 목적지의 매력으로 말하자면 완주는 전주와 당당히 겨루고도 남습니다. 전주의 공간들이 역사에 몸을 기대고 있다면, 완주의 매력은 분방하고 다채롭다는 데 있습니다.


 완주에는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울창한 편백숲을 두른 마을이 있고, 맑은 물을 끼고 이어지는 진초록의 수변 길이 있으며, 정갈한 한옥과 현대식 건축을 비벼서 만든 매혹적인 공간도 있습니다. 폭포로 쏟아지는 물길도, 이야기가 스며든 땅도 있습니다. 완주로 떠난 여행에서 유독 걸음이 바빠지는 건 그래서입니다.



# 청량한 숲과 맑은 물을 걷다

  전북 완주의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 ‘죽림(竹林·대숲)’을 지명으로 쓰고 있지만 마을 뒤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건 편백나무다. 공기마을 뒤 옥녀봉과 한오봉 자락에는 줄잡아 10만 그루가 넘는 거대한 편백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1976년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니 이곳의 편백나무는 수령 40년을 훌쩍 넘겼다.

 공기마을 뒤편의 임도를 따라 산책로를 걷다 몇 발자국만 숲 안으로 들이면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만나게 된다. 나무가 어찌나 촘촘한지 햇볕조차 들지 않아 어둑하다. 이런 숲마다 벤치나 평상을 놓아두었다. 피톤치드의 상쾌한 향기를 맡으며 느긋하게 쉬어가라는 배려다. 평상을 놓아둔 자리에는 숲 그늘 아래 누워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더 깊고 짙은 편백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찾아 들어가서 오래 걷는 것도 즐겁지만, 여기 공기마을 편백 숲은 ‘머무는’ 것이 더 어울린다.

 머물며 즐길 수 있는 공기마을의 편백 숲은 세 곳이다. 먼저 주차장에서 임도 산책로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편백숲이 있다. 편백나무 아래 평상을 놓아둔, 가깝기도 하거니와 평상 등의 시설이 잘돼 있어 편하게 쉴 수도 있는 곳이다. 여기서 임도 산책로를 따라 더 걸으면 샛길인 돌탑길로 들어설 수 있다.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탑을 세워놓은 편백 숲이다. 이쪽의 편백 숲 아래로는 작은 개울이 있어 청량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세 번째 편백 숲은 임도 산책로 반환점을 1㎞ 정도 앞두고 산자락 아래에 세워둔 삼림욕장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면 된다. 입구의 주차장에서 가장 멀어서 그럴까. 삼림욕장은 공기마을 편백 숲 가운데 가장 인적이 드물다. 돌아올 때는 길을 되짚어 나오지 말고 길을 따라 내처 걸으면 유황편백탕이 있다. 유황 물을 끌어올려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탕이다. 끌어올린 유황수는 온천이 아니라 찬물이지만, 물에서는 달걀이 썩는 듯한 유황 냄새가 진하다.

 공기마을 편백 숲을 찾아가는 길이라면 오가는 길에 상관저수지를 끼고 도는 수변 숲길도 함께 찾아가 보자. 편백 숲에서 저수지까지는 불과 6㎞ 남짓. 차로 간다면 10분 정도의 거리다. 상관저수지는 80여 년 동안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있다가 해제된 곳으로 물이 맑고, 숲이 깊다. 줄곧 찰랑거리는 물을 끼고 걷는 숲길도 좋고,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우거진 상류 습지의 경관도 훌륭하다.

 이 길은 전북지역 4대 종단이 조성한 ‘아름다운 순례길’과 달래봉(436m)과 마재봉(312m)을 잇는 등산로가 겹쳐지는 길이다. 지도를 볼 것도 없이 줄곧 물을 끼고 걸으면 순례길과 등산로를 이어붙인 운치 있는 산책코스가 된다. 저수지를 다 돌기에는 길이 멀고, 길도 원점 회귀 코스가 아니니 내키는 만큼 걷다가 되짚어 오면 된다. 




전북 완주 오성한옥마을의 한옥 고택 아원 만휴당의 다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경사의 지형을 활용해 현대식으로 건축한 미술관을 기단으로 삼아 미술관 지붕이 곧 마당이 되도록 했다.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해놓은 미술관 지붕에 물을 담아 마당의 연못처럼 배치했다. 이 연못의 수면에는 앞산의 초록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뜻밖의 감각적인 공간

  완주는 전북 전주의 강력한 자장(磁場) 아래 있다. 서울에 양수리와 양평이 있는 것처럼 전주에는 완주가 있다는 얘기다. 농촌이면서도 개성 있고 감각적인 공간이 완주 곳곳에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개성과 감각이 빚어내는 정점의 공간이 바로 카페다. 완주에는 세련된 카페가 곳곳에 있다. 우아한 미술관을 표방한 곳도 있고, 감각적인 건축미를 드러내는 곳도 있다. 이런 곳들만 순례하듯 다니는 여행자가 있을 정도다. 시골의 한적한 전원에 커피 한 잔에 많게는 1만 원까지 받는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건 수요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이런 카페의 감각을 알아봐 주거나, 찾아오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전주의 젊은이들과 전주로 여행 온 청춘들이다.

 완주에서 내로라하는 카페는 여럿이다. 완주군청 건물 뒤 군수의 관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 ‘어울림’도 있고, 잔디마당의 아늑한 벽돌집 ‘소울 갤러리’도 있으며 저수지를 끼고 있어 낭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스 카페’도, 가정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금자네 시댁’도, 고급 리조트 느낌의 ‘두베’도 있다. 모두 저마다의 매력으로 단장한 곳들이라 단언컨대 어디를 택하든 실망할 일은 없다.

 그래도 그중 딱 한 곳만 꼽아보라면 단연 소양면 위봉산 아래 ‘아원(我園)’이다. 아원은 전통 한옥과 현대적 미감의 미술관을 결합한 복합공간이다. 미술관이면서 펜션이고, 그러면서 또 간이 카페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현대적인 미술관을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다 전통미 넘치는 한옥을 올렸다. 구릉의 경사 지형을 활용한 공간 구성이다.

 미술관에서 계단을 딛고 지상으로 올라서면 한옥 마당이다. 미술관 지붕이 곧 한옥 마당의 일부가 되도록 해놓았는데, 열고 닫는 미술관 지붕에다 한 뼘쯤 물을 담아 연못처럼 배치했다. 연못은 한옥 대청마루에 앉으면 보이는 초록의 산을 수면 위의 그림자로 그려낸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솜씨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자연과 바람을 느끼는 사이에 맞은 편 산자락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슬쩍 끼어들었다.


# 낭만으로 지어낸 한옥의 아름다움

  아원의 널찍한 마당에는 세 채의 한옥과 한옥 뒤에 숨은 한 채의 현대식 건축물이 있다. 그중 두 채가 경남 진주에서 뜯어와 이축한 250년 된 한옥. 단정하고 정갈한 고택의 널찍한 대청마루에 앉으면 마치 초록색 바탕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듯하다.

 본래 이곳 아원은 숙박객을 받는 숙소다. 숙박요금은 깜짝 놀랄 만큼 비싸다. 널찍한 대청마루와 넓은 다실, 그리고 방 두 개를 갖춘 한옥 만휴당이 1박(4인 기준)에 80만 원. 방 하나짜리 안채 설화당(2인 기준)도 1박에 40만 원이다.

 아원에서의 숙박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지만, 구경하며 쉬어갈 수는 있다. 아원 숙박객의 퇴실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고 입실시간은 오후 4시. 퇴실과 입실 사이인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이 비는 4시간 동안 아원은 카페가 된다. 그렇다고 커피나 음료를 대놓고 파는 건 아니다. 문화관람료 1만 원을 내면 드립커피나 오미자차를 웰컴 티로 내준다.

 아원과 견줄 만한 곳이 바로 인근의 소양 고택이다. 소양 고택은 아원보다 낮고 평화롭다. 소양 고택에서 눈길을 끄는 건 담 하나를 두고 들어선 고급 리조트 풍의 현대적인 카페 ‘두베’다. 낮은 한옥과 리조트 풍의 이층 건물은 이질적인 것 같지만, 전혀 거부감없이 썩 잘 어울린다. 아니 현대적 건물이 있어서 한옥의 분위기가 더 낭만적이다. 한옥도, 시멘트 건물도 모두 치장하지 않고 간결함을 추구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적인 미감으로 획득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일까. 카페는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가득했다.

 아원과 소양고택은 오성한옥마을에 있다. 이곳의 한옥마을은 전주나 안동의 한옥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하회마을 고택이 범접하기 어려운 무게감으로 거리가 느껴진다면, 여기 완주의 한옥은 보자마자 묵어가고 싶어서 탄성이 나온다.





▲ 완주 오성한옥마을의 소양고택과 카페 ‘두베’. 담 하나를 두고 있는 한옥과 현대식 건축이 제법 잘 어울린다.



# 불상을 앉히고 봉황을 잡아두다

  송광사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한옥과 카페 이야기부터 시작했지만, 완주 소양면의 여행지 얘기를 꺼낸다면 마땅히 먼저 앞세워야 하는 것이 송광사와 위봉사, 두 곳의 절집이다. 송광사라면 대개 전남 순천의 송광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절집의 규모나 위세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기 완주의 송광사도 신라 경문왕 때 창건한 절집이니 내력만큼은 지지 않는다.

 완주 송광사는 일주문부터 독특하다. 그냥 편안한 대문 같다. 산문이 절집의 담장과 붙어있어 그렇고, 기둥만 세우는 다른 절집의 산문과는 달리 여닫는 문까지 달아놓아 더 그렇다. 일주문 안으로 금강문이, 금강문 안으로 천왕문이, 천왕문 안으로 대웅전이 들어온다. 문과 문, 그리고 문과 법당이 소실점의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붙잡는 것이 보물인 종루다. 종루는 열 십(十)자 모양의 이층 누각인데 처마 아래 기둥머리에 겹쳐 짜 맞춘 나무(공포·貢包)의 화려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대웅전의 좌불도 보물이다. 흙으로 빚은 좌불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일어선다면 지붕을 뚫고도 남을 기세다. 좌불은 인조와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귀환을 기원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대웅전에 들면 천장을 유심히 보자. 천장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천인(天人)을 빠른 붓질로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그림이 있다. 춤추는 이의 자태와 옷을 그린 선이 마치 음악의 선율을 그림으로 옮긴 듯하다.

 송광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절집 위봉사가 있다. 봉황이 날고 있는 자리에 지은 절이라는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높은 기단 위에 화려하고 우람하게 일주문을 세웠지만, 정작 절집은 조촐한 규모다. 산문에 들면 누각 봉서루(鳳棲樓)의 기둥 아래를 지나게 된다. 봉서루란 ‘봉황이 깃든 누각’이란 뜻. 누각의 한쪽 기둥을 받친 바위에다 ‘위봉사(威鳳寺)’라고 새겨놓고는 봉황을 뜻하는 봉(鳳)자 위에다 기둥을 세웠다. 날아가는 봉황을 잡아두려 함이었으리라.


# 단아한 선비의 풍모… 삼정승 소나무



▲ 완주 봉동읍 제내리 우산정사 인근의 삼정승 소나무. 하나의 둥치가 여윈 듯한 세 개의 가지로 갈라져 곧게 솟았다.


    

 완주 봉동읍 제내리에는 진천 송씨 종중의 재실인 우산정사가 있다. 제내리(堤內里). ‘방죽 제(堤)’ 자에 ‘안 내(內)’ 자를 쓰니 지명을 우리말로 풀면 ‘방죽 안’이다. 마을의 이름이 된 방죽은 지금도 있다. 그것도 흔적 수준이 아니라 8300㎡(약 2500평)가 넘는 제법 큰 방죽이다. 방죽에는 지금 초록의 백련 잎으로 가득하다. 연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이제 곧 장마가 지나가면 합장하듯 꽃대를 올릴 순백의 꽃들이 볼만 하겠다.

 방죽을 마당처럼 거느린 우산정사에서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한 그루는 재실 마당에 있고 다른 한 그루는 방죽을 낀 산자락에 있다. 먼저 재실 마당에서 자라는 300년 된 용솔 얘기부터. 용이 여의주를 삼킨 형상이어서 용솔이라 부른다는데, 가지를 우산살처럼 옆으로 뻗어내 자라는 모습에서 대번에 용을 떠올리게 된다. 소나무 둘레만 18m, 높이는 무려 14.5m에 달한다.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위용이 당당하다. 이 소나무는 재실을 향해 절하듯 키를 낮춰 자란다고 해서 ‘효자솔’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름대로 소나무는 키가 용마루 높이를 넘지 않는다.

 방죽을 끼고 있는 마을 어귀 산자락에는 ‘삼정승 소나무’가 있다. 진천 송씨 집안의 며느리 삭녕 최씨가 시집올 때 친정 변산에서 가져온 솔씨를 심은 것이 자란 나무란다. 450년 수령을 헤아린다. 하나의 굵은 둥치에서 곧게 뻗은 세 개의 가지가 늘씬하게 하늘로 치솟았다고 해서 삼정승 소나무라고 부른다. 나무의 기세가 얼마나 당당하면 붉은 기운의 세 개의 굵은 가지에서 정승을 떠올렸을까. 여느 노거수처럼 풍만하지도 기이하지도 않지만, 여윈 듯 단아한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선비가 연상된다. 기품 넘치는 강직한 선비 말이다.


# 명나라 사신과 나눈 인연을 잇다

  진천 송씨 종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표옹 송영구다. 우산정사를 가보자 권한 것도 사실 이 인물 때문이다. 경상감사와 병조참판,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와 국방부 차관을 지낸 그는 청렴하고 강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전해지는 얘기 한 토막. 도지사 임기가 끝나고 송영구가 낙동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터에 닿았을 때의 일이다. 배웅을 위해 동행한 이방의 한 마디. “경상도에 계셨다가 가지고 가시는 것은 손에 쥔 부채 하나밖에 없군요.” 마땅히 칭찬이었는데도 그 말을 듣자마자 송영구는 쥐고 있는 부채마저 낙동강에 던져버렸다. 이런 연유로 문중에서는 낙동강을 ‘부채(扇)를 던졌다(投)’는 뜻의 투선강(投扇江)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송영구는 중국 명나라의 대문장가 주지번(朱之蕃)과 나눈 교유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이듬해 사신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된 송영구는 숙소에 불을 때던 한 청년이 장자의 문장을 외는 것이 신통해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왔지만 여러 번 낙방해 돈을 떨어져 품을 팔고 있다는 청년의 얘기에 송영구는 수중의 책 몇 권을 필사해주고 돈까지 보태줬다.

 그리고 2년 뒤 청년은 과거에 당당히 수석 합격했는데, 그가 바로 명나라의 대문장가 주지번이다. 주지번은 훗날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왔다가 은인인 송영구를 찾아 전주를 거쳐 익산까지 내려왔다. 지금도 전주 객사 현판에 걸린 힘찬 글씨 ‘풍패지관(豊沛之館)’은 그때 주지번이 남긴 솜씨다. 주지번은 마침 청풍군수 임기를 마치고 성주목사로 나가려고 하던 송영구와 13년 만에 해후했다. 이 만남에서 주지번은 송영구에게 스승의 집을 일컫는 망모당(望慕堂)이란 편액을 써서 줬고 사후 묏자리도 골라주었다고 전한다. 그 글씨도, 묘도 다 남아있다.

 망모당과 송영구의 묘는 완주가 아니라 익산 땅에 있다. 우산정사가 있는 봉동읍 제내리는 완주 땅이지만, 익산의 망모당까지는 고작 4㎞ 남짓이다. 신라와 고려 때 여기는 하나의 지역이었다. 지도 위에 행정구역의 금이 그어진 지금도, 심리적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익산 IC는 익산이 아니라 완주 땅에 있다. 익산 IC의 입구도, 출구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다. 그러니 완주의 우산정사에서 익산 망모당까지 불과 4㎞ 거리를 넘나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 가는길·묵을곳·먹을것 


편백숲·완주 한옥마을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다시 완주갈림목에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상관IC로 나와서 17번 국도 관촌·임실 방면으로 달리다가 왼쪽으로 상관온누리약국이 보이면 편백숲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한다. 여기서부터 편백숲까지는 마을 길이다. 평일에는 넉넉한 편이지만, 주말에는 주차장이 부족한 편이라 주차를 위해 일찍 서둘러야 한다.

 상관저수지는 상관우체국에서 U자로 굽은 고가로 전라선 철로를 건넌 뒤 749번 지방도로를 따라 화심리 쪽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제방이 먼저 보이는데, 상류 쪽 물 건너편 쪽에 수변 산책로가 있다. 아원, 소양 고택과 카페 두베 등이 있는 오성한옥마을과 송광사, 위봉사, 위봉폭포는 송광사 앞을 지나는 도로 송광수만로 주변에 있어 길을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들를 수 있다. 송광수만로는 동상·대아저수지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732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전주만큼은 아니지만 완주에도 괜찮은 숙소들이 여럿 있다. 아원, 소양 고택 등이 있는 오성한옥마을에 숙소를 잡는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숙박비가 특급호텔에 버금갈 만큼 비싸다는 것. 이서면의 더클래식호텔(063-226-3211), 편백 숲이 있는 상관면 공기마을의 상관리조트&스파(063-230-4500) 등을 추천한다.

 완주의 맛으로 첫손 꼽히는 곳이 소양면의 화심순두부(063-243-8268)다. 식당의 규모도 크지만 주차장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크다. 대표메뉴는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어 끓여내는 화심순두부찌개. 실한 순댓국밥을 내는 삼례읍의 유성식당(063-291-8182)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이름난 맛집이다. 소양면 송광사 인근의 송광산장은 묵은지를 넣고 끓인 닭볶음탕이 유명하다.




<출처> 2018. 6. 2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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