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풍차마을 콘수에그라
바람아 불어라! 안구를 정화시켜주는 깨끗한 풍차 마을
변종모 여행작가
바람 따라 떠난 풍차의 언덕, 그곳에서 맛본 순한 바람
라만차의 사나이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곳
▲ 콘수에그라의 풍차./변종모
“너, 또 봄바람 불었구나.” 그렇다. 바람이 들었다. 나로서는 바람이 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때쯤, 마음속 어딘가에 커다란 풍차가 돌며 자꾸만 따뜻한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속에서부터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배낭을 꾸렸다. 바람을 잠재울 방법은 없다.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나아가거나, 바람 속을 오래도록 헤매다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제자리를 걷는 것이다. 간혹 나만 아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도 어김없이 바람이 불었다. 대부분의 사람도 나처럼 마음속 어디에선가 봄바람이 자주 분다는 것을 안다. 묘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다.
◇ 봄바람 불면 생각나는 풍차 마을, 콘수에그라
사진 속 바람이 회오리처럼 빨아들이는 시간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어릴 적 처음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 무모하고도 용감한 돈키호테가 좋았다기보다 이국적인 이름 자체가 좋아서였는지 모른다. 거대한 로봇이나 그 이상의 내가 본 적도 없는 어느 생명체의 이름 같았던 돈키호테가 용맹하게 한 판 승부를 걸었던 풍차. 그 풍차를 보게 된다면 나도 어떤 새로운 도전이나 희망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배낭을 꾸렸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돌고 있던 바람의 실체를 보러 간다는 마음에 무조건 긍정적이고 좋은 마음이 되어 길을 나섰다.
▲ 풍차 마을 콘수에그라는 낮은 집들이 이마를 맞댄 작은 시골 마을이다./변종모
그렇게 좋은 감정으로 만난 마을의 골목 끝. 바람의 냄새가 났다. 그 끝에 걸린 바람의 표식을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목 끝으로 아련하게 보이는 거대한 풍차는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소설 속의 실체이자, 근거 없이 자주 불어대는 바람의 상징이기도 했으니 익숙하고도 반갑다.
바람을 엮어내는 거대한 날개는 하늘의 창문처럼 반듯하고 견고했고, 희고 둥근 몸체는 허공의 등대처럼 우뚝하다. 그 곁에 서고 싶어서 자주 내 마음에 바람이 일었다. 오래된 마을 언덕 위로 펼쳐진 바람의 집들. 마치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바람이 잉태되어, 몇 개의 대륙을 떠돌다가 끝내 너와 나 사이를 시원하게 통과할 거라 상상했다. 그때마다 너는 내게 웃어주었을 것이고 나도 너를 닮은 모습으로 웃었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자주 찾아올 때마다 이런 풍경들을 떠올리며 위로했던 시간의 실체에 나는 발을 딛고 있다. 한낮의 뙤약볕도 깊은 밤의 별들도 이 바람을 맞고서 자라듯 이곳을 스치는 모든 것이 막 태어난 공기처럼 신선했다. 마을의 성당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하릴없는 카페의 빈자리에도 순한 바람처럼 부드러운 공기가 흐르던 곳.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아름다운 풍차의 언덕이 깨끗한 눈과 밝은 마음이게 한다. 잘 왔다고 생각했다.
▲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바람을 엮어내는 풍차들./변종모
꽉 막힌 진공의 나날들. 지친 밤이거나 피곤한 오후에도 우리가 끝내 주저앉지 않는 이유는 내 안의 선선한 바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믿는 것들. 그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생각하며 천을 짜듯 바람을 엮을 것이다. 은밀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바람의 깃발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나만 아는 곳에 거대하게 세워둔 풍차를 보러 가는 날까지 바람 속을 걷듯 걷는다. 조금 흔들리거나 잠시 멈춰도 상관없다.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에 언젠가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 콘수에그라의 풍차 언덕에 있는 낡은 성에서 내려다본 목가적인 풍경./변종모
풍차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마드리드의 톨레도(Toledo) 근교 라만차(La Mancha) 지역에 세 곳이 모여 있다. 캄포 데 크립타나(Campo de Criptana), 엘 토보소(El Toboso), 콘수에그라(Consuegra)는 서로 멀지 않은 곳이라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하루 만에 충분히 둘러볼 수도 있다.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는 하루에 한 곳 정도를 목표로 여유 있게 방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 지역별로 풍차의 개수나 분위기가 다르다. 콘수에그라는 풍차 언덕에 있는 낡은 성에서 내려다보는 목가적인 풍경을 놓치지 말자. 그리고 엘 토보소는 돈키호테를 떠올리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박물관 관람도 좋은 볼거리다.
출처 : 2018. 5. 6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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