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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경북 의성, 마늘과 컬링의 고장 - 사찰 고분군 등 마늘·컬링이 전부가 아니었네

by 혜강(惠江) 2018. 3. 10.



경북 의성

마늘과 컬링의 고장

·

400년 古宅, 1300년 사찰, 2000년 고분군… 마늘·컬링이 전부가 아니었네



의성 = 표태준 기자




고택 모여 있는 사촌마을
김사원이 세운 만취당
보물로 지정된 왜란 전 건물 한석봉이 현판글씨 썼다고 해

선비와 학자의 고장
송은 김광수·서애 류성룡…
사촌마을에서 태어나 대·소과 급제자 49명 배출

금성산 고분군
삼한시대 조문국의 도읍지
고분 260여기 흩어져 있어 조문국박물관도 들러볼만

육쪽 마늘로 유명
중국집서 짜장면 주문해도
마늘종 무침이 밑반찬으로 흑마늘삼계탕·흑마늘꿀 별미

컬링체험장
컬링센터는 선수 전용
8월 별도 훈련장 완공되면 체험 프로그램 운영 예정




겨우내 무채색이었던 의성 마늘밭에 새싹이 피어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심은 마늘은 3월이면 새싹이 돋아나고, 6월 말 수확한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쪽수는 달리더라도 맛은 깊다 아입니까!"

30년 동안 의성 마늘을 팔아온 태영상회 사장 이상현(74)씨가 마늘 껍질을 까 쪽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의성 마늘은 쪽수가 6개 안팎인 한지형 마늘(추운 지방에서 나는 마늘)로 쪽수가 10개 내외인 난지형 마늘(따뜻한 지방에서 나는 마늘)에 비해 수는 적지만 진액이 많아 매운맛과 단맛이 강하다. 이씨가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손으로 마늘 한 쪽을 쪼갰다. 둘로 갈라진 마늘을 다시 붙인 뒤 잡고 흔들었다. 언제 쪼갰느냐는 듯 떨어지질 않았다. "이게 다른 마늘과 달리 진액이 많아 다시 붙여도 안 떨어지는 겁니다. 평창올림픽 은메달 딴 컬링 대표팀도 이 마늘 많이 먹고 힘냈죠!"

지난 2일 찾은 경북 의성군 의성공설시장은 마늘의 고장답게 마늘 출하 시기가 아님에도 곳곳에 마늘 파는 상인들이 보였다. 뿌리를 한데 모아 묶은 길쭉한 통마늘들이 상가에 주렁주렁 달렸다. 의성 마늘은 크기는 작지만, 밀도가 높고 단단해 저장성이 좋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배한 마늘을 냉동 보관하지 않은 채로 두었다가 지금 팔아도 여전히 맛이 살아 있는 이유다.



① 참나무 그득한 사촌가로숲. 바로 옆에 있는 사과 과수원이 운치를 더한다. ② 한산한 고운사의 모습. ③ 금성산 고분군은 언덕에 서서 내려보면 풍경이 더 운치 있다. ④ 한석봉이 쓴 만취당 현판.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의성군은 인구수 5만4000여 명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특산물인 마늘 외에는 별달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평창올림픽 은메달을 딴 여자 컬링 대표팀 팀원들의 고향이자 잔잔히 흥행을 이어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이곳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에 널리 알려진 명소는 적지만, 꾸며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의성 마늘처럼 말 그대로 쪽수는 달리지만 그 맛은 깊은 여행지다.


꾸밈없어 매력적인 의성 여행



상인 이상현씨가 시장 입구에서 통마늘을 두 손에 움켜쥐고 있다(왼쪽 사진). 사촌마을에 있는 주택 담벼락에는 시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벽화와 시가 새겨진 담벼락과 고택(古宅)이 모여 있는 사촌마을은 의성의 대표 명소다.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사촌마을에 도착했는데 관광지 느낌은 없고 영락없이 한산한 농촌 마을이다. 경로당 옆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에게 길을 묻는다. "여가 사촌마을이여. 여도 저도 다 백 년씩 된 건물 아니여. 쩌가 내 집인데, 창고에 자전거가 있으니깐 한번 타고 둘러봐."

타지에서 온 낯선 이에게 선뜻 자전거를 빌려주는 정겨움에 당황한다. 얼떨결에 문이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자전거를 가지러 갔다. 경계심 없이 꼬리를 사방팔방 흔드는 하얀 진돗개가 반가움을 주체 못 하고 하늘로 껑충 뛴다. 챙이 넓은 모자와 각종 농기구가 바구니에 담긴 자전거를 타고 사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만취당(晩翠堂)으로 페달을 밟았다. 어린이 키만 한 흙담과 초가집이 뒤섞인 풍경이 푸른 하늘과 뒤섞인다.

만취당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1582년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이다. 임진왜란 전에 만들어진 건물이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어 보물로 지정됐다. 만취당은 김사원의 호로 사랑채 격의 건물이다.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직접 썼다고 알려졌다. 만취당 마루에 걸터앉는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우뚝하니 서서 향기를 내뿜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지재재거린다.

만취당을 나와 근처에 있는 안동김씨 종택을 둘러본다. 사촌마을은 신라 때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고 한다. 특히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유명 유학자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선비와 학자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18명, 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31명이나 된다. 이 작은 마을의 저력은 마을의 유래와 볼거리, 특징, 전해오는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사촌마을 자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촌마을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수백 년 된 참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사촌가로숲이 있다. 볼 빨간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점곡초등학교를 지나자 '사촌가로숲'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개천으로 내려가 가로수 길을 걸었다. 머리도 마음도 비우고 걷다 보면 1㎞ 길이 정도 되는 숲이 어느새 끝을 보인다. 길을 틀어 사촌가로숲 옆으로 빠져나오자 사과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이 나왔다. 사람을 뒷짐 지고 내리깔아보는 빌딩들이 없어 시야가 자유롭다. 껑충 뛰면 과수원 끝이 보일 성싶다.

사촌마을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에는 그 이름처럼 자태가 고운 사찰이 외로이 홀로 떠 있다. 고운사(孤雲寺)는 681년 화엄종의 시조인 승려 의상이 세운 절이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이곳에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뒤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을 따서 이름 지었다. 입구에서부터 절 냄새가 은은히 퍼지는 고운사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특히 차로 고운사를 향해 가는 도로 양옆에 줄지어 선 가로수 길이 다른 세계로 향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컬링으로 활기 띤 의성읍


상황버섯을 갈아 넣어 황금색 빛을 띠는 의성 흑마늘 삼계탕.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의성군청이 있는 의성읍은 평소에는 한산한 읍내이지만, 매월 2·7·12·17·22·27일이면 의성공설시장에 장이 서 활력을 북돋는다. 장날 찾아간 시장에는 작은 도시 특유의 에너지와 정겨움이 느껴졌다. 곰보빵을 두 개 5000원에 팔고 있는 상인 앞에서 눈싸움을 벌이는 아이와 엄마가 눈에 띈다. 파라솔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상인들끼리는 컬링 얘기가 한창이었다. '여자컬링 은메달! 장하다 의성의 딸!' 같은 현수막 따위가 이곳저곳 걸려 있다.

시장에서 1㎞ 거리에는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이 컬링을 배운 의성컬링센터가 있다. 선수 육성용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8월쯤이면 일반인들도 컬링을 체험해볼 기회가 생길 예정이다. 의성군이 국비 60억원을 들여 이곳 의성컬링센터 바로 옆에 2개 시트 규모의 별도 훈련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의성군은 오는 8월쯤 건물이 완공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컬링 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늘의 고장답게 의성에서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주문해도 마늘종 무침이 밑반찬으로 나온다. 의성 전통 시장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는 아예 마늘만 파는 '의성마늘장터'도 있다. 지금은 장사꾼들이 없지만 마늘 수확 철인 6월이 지나면 통마늘을 쌓아놓아 마늘 향이 그득하다고 한다. 마늘 소스로 맛을 낸 통닭이 이 지역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알려졌지만, 의성 마늘을 넣어 만든 삼계탕도 일품이다. 군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의성흑마늘삼계탕오리'(054-833-5255)로 향한다. 녹두와 찹쌀 그리고 상황버섯을 갈아 넣은 덕분에 닭고기와 국물이 황금색이다. 흑마늘삼계탕을 주문하면 나오는 '흑마늘꿀'은 별미다. 의성 양봉장에서 나온 꿀에 흑마늘을 갈아서 섞었다. 마치 춘장같이 생겼는데, 그 맛은 달콤하면서 감칠맛이 강하다. 원기 회복 효능이 있어 들고 다니며 먹는 농민들도 있다고 한다.



천 년 넘은 고분 서성이며 봄 향기 느껴볼까

군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는 260여 기의 고분들이 높고 낮게 흩어져 있는 금성산 고분군이 있다. 삼한 시대에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도읍지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조문국은 신라 벌휴왕 2년(185년)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됐다. 언덕에 올라서서 2000년 가까이 된 고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고분군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화 '영광의 탈출'의 OST가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고분 모양으로 지어진 고분전시관(054-830-6907)에 들어가면 고분 안에서 출토된 유구와 유물을 볼 수 있다.

금성산 고분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의성조문국박물관(054-830-6909)이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모형석실고분과 민속유물전시관, 미로정원, 도자기정원, 공룡놀이터 등이 조성돼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그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문국 관련 유물과 의성 지역에서 출토됐던 유물들이 모여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객이라면 가볼 만하다.

차로 이동하던 중 푸릇푸릇한 마늘밭 위에서 웃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눈에 쏙 들어왔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말을 걸어본다. 겨우내 싹이 얼지 않도록 덮어두었던 보온용 비닐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라며 정겹게 답한다. 흙은 물론이고 비닐까지 뚫고 올라와 기어코 머리를 내민 새싹에서 겨울은 가고 봄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낀다.




[출처] 2018. 3. 10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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